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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 로마의 가장 위대한 적수
필립 프리먼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0월
평점 :
한니발(Hannibal Barca, BC 247~BC 183?/181?)이란 이름은 전설로 남았다. 카르타고 출신인 불세출의 명장. 로마와 카르타고 간 운명을 가른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걸출한 활약을 남겼으나, 끝내 패전국의 적장으로 전락했다. 한니발은 로마 역사상 가장 큰 위협이 되었음에도 왜 끝내 로마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나? 책은 이 의문에서 출발한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은 기록이 불충분하다는 사실이다. 한니발처럼 유명한 인물을 탐구하는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현존하는 기록만으로 한 사람의 생애를 당시처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아무리 세계사에 한획을 그은 인물이라도 결국 한니발은 패장이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카르타고은 끝내 멸망했으나 로마는 훨씬 오래 지속했다. 한니발에 관한 당대 기록은 곧 적국이었던 로마와 로마 역사가들의 관점으로 쓰인 셈이다. 이 기록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한니발에 대한 바탕이 된다. 이 때문에 저자 필립 프리먼은 일부러 카르타고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애초에 남은 기록 자체가 충분치 않고, 그마저도 로마의 관점이 투영되었다. 이런 조건에서는 객관적인 서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가 택한 차선책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책을 서술하여 지금껏 기울어진 역사의 무게추를 조금이라도 균형 잡는 것이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속담이 말해주는 것은 그만큼 로마란 나라가 숱한 세월 속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지속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하밀카르를 따라 어릴 때부터 로마에 대한 적게심을 불태운 한니발에게 선택지는 처음부터 두 개였다. 적국 로마가 멸망하근, 아니면 본국 카르타고가 멸망하든지. 제1차 포에니 전쟁 결과 막대한 부채를 떠앉았던 카르타고는 로마보다 우위에 있었던 상업과 교역을 바탕으로 또다시 로마를 위협할 세력으로 떠올랐다. 로마는 카르타고와 전쟁을 대비했다. 그러나 카르타고엔 한니발이 있었음을, 한니발이 설마 지중해가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에서부터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진격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스페인에 자리 잡은 로마군 요새, 사군툼을 공격하면서 한니발은 기나긴 2차 포에니 전쟁의 막을 올렸다. 로마는 중요한 식민지 거점을 잃었지만 본국과 거리가 먼 곳이었다. 아직 수습할 틈은 있었다. 그러나 한니발은 로마의 예측을 뛰어 넘었다. 그는 5만 여명의 병력을 직접 이끌고 지금도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지중해성 기후에 익숙한 카르타고인들에겐 알프스 눈보라는 혹독했다. 산맥에 살던 원주민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절반이 넘는 병력을 희생하면서 결국 산맥을 넘었다. 엄청난 규모를 이끌면서 무모한 목표를 제시했던 한니발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로마 본토에서 벌어진 칸나이 전투에서 한니발은 대승을 거뒀다. 한니발은 로마로 진격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역사의 수수께끼였다. 왜 한니발은 로마로 진격하지 않았는가? 첫째, 한니발이 이끄는 별동대는 공성전에 적합하지 않았다. 수비보다 공격 쪽에서 더 많은 병력과 물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니발은 멀리 떨어진 본국에서 충분한 보급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둘째, 카르타고 본국에서 충분한 원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애초에 상업을 우선시했던 카트타고는 전면전보다는 우호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교역 활동을 기대했다. 한니발이 기대한대로 스페인, 사르데냐, 시칠리아를 통제하여 로마의 숨통을 조을 역량도, 의도도 없었다. 셋째, 궤멸적이누피해를 입었지만 로마는 강화 협상에 임할 의지가 없었다. 한양과 국왕만을 노리고 조선의 수도 한양으로 진격했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종래의 관습과는 달리 로마군은 수도가 위험한 와중에도 쉬이 항복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한니발의 계산을 어그러뜨렸다.
결과론적으로 한니발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2천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한니발의 업적과 성취를 되돌아보는가? 숱한 전투에 승리했지만 단순히 그를 결국 전쟁에 패배한 장수로 치부할 수는 없다. 한니발이 취했던 온갖 허를 찌르는 계책(책의 7장 알프스 산맥부터 11장 티키누스강, 트레비아강, 아르노 습지, 트라시메노 호수에 이르기까지 잘 제시되어 있다)은 로마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본국으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적국을 멸망시킬 뻔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그리는 대로 한니발은 로마 멸망의 분기점에 서있던 인물이었다.
로마가 오늘날 서양 문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한니발을 재평가하는 일은 곧 로마 역사를 재고찰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한니발과 그의 맞수였던 스키피오의 말년은 비극적이었으나, 한 인물의 생애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보다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서 무엇을 볼지는 각자 견해에 달린 것이겠으나 적어도 보아야 할 것은 확실히 가려야겠다. 우리가 역사를 탐구하는 이유다.
*. 책과함께 출판사 서평단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