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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차려진 상에 모주만 올려보았다
마블로켓 편집부 지음 / 마블로켓 / 2023년 10월
평점 :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어울리는 술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맥주, 파전에 막걸리, 스테이크에 레드 와인 같은 조합은 실패하기 힘들고 그만큼 안정적이다. 그리고 궁합이 확실한 음식 조합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서로 더 맛있게 보완해준다. 이를 푸드 페어링(food pairing), 특히 와인에서는 마리아주(mariage)라고 부를 정도로 아주 중요시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푸드 페어링은 아주 오랫동안 검증받은 것이다. 하지만 미식을 즐길 때 꼭 이런 고정관념에만 갇혀있어야 하는 걸까? 삼겹살에 레드 와인을, 스테이크에 소주를, 치킨에 막걸리를, 파전에 맥주를 곁들이지 말란 법은 없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이런 낯선 조합이 오히려 더 입맛에 맞고 이게 새로운 발견과 추천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내가 모주를 처음 마셔본 건 2년 전 여름 1박 2일로 짧게 전주 여행을 갔을 때다. 그 때 칼국수, 순대국밥, 콩나물국밥, 그리고 막걸리집에서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안주 행렬을 상대했는데 메뉴판에는 어김없이 '모주'라는 술이 보였다. 막걸리에 대추, 생강, 계피 같은 재료를 넣고 알코올을 거의 다 날려버린 술이다. 식혜를 경상도에서 감주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름에는 술 주자가 들어가지만 사실 알코올은 거의 없었다. 도수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보니 물처럼 목넘김이 아주 좋았고 입안에는 쓰지 않고 달달한 약재 향이 은은히 남았다. 모주를 마신 기억이 점점 희미해질 무렵 이 책을 접했다. "모주를 통해서 전주 음식들을 다시 볼 수는 없을까?"라는 문구에 나도 모르게 끌려버렸기 때문이다.
전라도는 원래 음식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그 중에서 전주는 더 각별한 도시다. 이틀 간 먹은 음식으로는 미식의 고장 전주를 제대로 접하기엔 택도 없었다. 그래서 전주가 고향인 친구의 추천을 받으며 최대한 안정적이고 검증된, '전주'하면 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음식 위주로 먹었다. 그런데 이 책은 모주를 파스타, 치킨, 스시, 소바와 콩국수, 떡볶이와 튀김, 비빔밥 와플, 빙수처럼 낯설기 그지 없고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음식과 먹어도 맛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아니,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낯선 음식 조합이지만 의외로 잘 어울려 궁합이 될지도 모른다. 음식 사진으로 입맛을 돋구지만 결국 음식은 먹어봐야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또 한 번, 아니 여러 번 전주를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 거기서 먹는 음식에는 항상 모주를 같이 주문하기. 화룡점정이다.
덧1) 단순히 음식 소개만이 아니라 상호명까지 제대로 알려준다. 구태여 검색할 수고를 덜어서 너무나 만족스럽다.
덧2) 굳이 밤에는 이 책을 읽지 않으시면 좋겠다. 본인의 인내심과 자제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 마블로켓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