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인의 탄생 - 한국사를 넘어선 한국인의 역사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오늘날 사는 대한민국과 한반도 최초의 국가라는 고조선 사이에는 아득히 먼 간격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조선을 여전히 우리 역사가 시작된 국가로 여긴다. 단군 신화를 액면 그대로 믿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잘 알려진대로 해석해본다면, 중국에서 온 지배 계층이 곰을 숭상하는 부족과 결합한 게 오늘날 한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다만 고조선과 대한민국이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런 생각에는 부침이 있었다. 치열했던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자 도생했다. 나당동맹을 통해 신라가 결국 삼국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고구려의 후신으로 발해가 세워졌으나 두 나라는 하나가 되지 못했다. 통일 신라의 지배가 완전하지 않았기에 말기에는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세워져 후삼국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지만 고려 초기까진 완전히 정신적 통합이 이뤄지진 않았다.
고려가 통일 새로 왕조를 개창했음에도 아직까지 삼국으로 나눠진 국민을 통일시킨 건 저자에 따르면 고려 8대 국왕 현종이다. 현종 때 가장 중요한 사건은 거란의 2차(1010)와 3차(1018) 침공이다. 당대 요나라는 동아시아 최강 군사 대국이었다. 이에 맞서 고려는 치열한 싸움 끝에 승리하여 나라를 지켰다. 국란에 맞서 힘을 하나로 모아야했기에 고려 사람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이 중요하게 작동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관료 집단에서도 세대 교체가 일어나고, 고려의 후계 구도도 확립되었기에 현종 이후 고려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단군 왕검과 고려 현종에 이어 한국인의 정체성을 만든 마지막 인물은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이다. 정도전이 그리던 나라는 불교, 문벌귀족, 권문세족이 득세한 고려가 아니었다. 그는 온 조정 관료들은 물론 백성, 심지어 국왕마저도 사대부가 되어 유교적 통치 체제 아래 놓인 사회를 꿈꿨다. 그리고 이성계와 손잡아 그는 조선을 건국했다. 비록 2차 왕자의 난에서 숙청당한 정도전은 제명을 다하진 못했다. 다만 그가 설계한 국가 조선과 수도 한양은 500년 넘게 이어졌다.
책의 2부와 3부에서 한국인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면 책의 1부는 한반도라는 지리에 맞추어 우리가 어떻게 한국인이 되었나란 설명이 먼저 있다. 단군 신화가 창세 신화가 아닌 건국 신화라는 점에 비추어 한국인이 왜 그렇게 배타적인 건지, 한국인 자체가 혼혈이지만 왜 그렇게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건지 풀어낸다. 그리고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악 지형이 많아 유목에 부적합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농사를 할 수밖에 없었음을, 그리고 농한기에는 수렵과 채집을 계속해서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악착같은 성격이 되었음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한반도에 즐비한 산을 따라 산성을 구축하여 대규모 기병전이 아니라 방어전을 택했고, 이에 따라 칼과 창 같은 근접 무기보다는 방어전에 유리한 활과 화포를 중시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한국인'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저자의 과감한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드라마를 거의 챙겨보지 않지만 요즘 KBS에서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 마침 이 드라마는 고려 현종 시기에 있었던 거란의 제2, 3차 침입을 다룬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 덕분에 전쟁의 양상이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앞으로 현종이 거란의 침입이라는 국란을 어떻게 극복하고 고려 중흥을 이끈, 그리고 한민족을 규합한 군주가 되었는지 더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 방영될 회차를 봐야겠다.
*. 메디치미디어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