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의 <팡세>는 여기저기 인용되곤 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낮았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거라는 말이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이 여기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한 책인데 머리에 지진이 났다. 왜냐하면 기대와 많이 다른 책이었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포스트잇에 메모해놓은듯한 글을 정리하다 만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조각글들의 흐름을 유지하며 읽는 것도, 종교철학에 분류되는 듯한 내용도, 잡힐듯 잡히지 않는 듯한 문장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책이라는게 늘 내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끝까지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맞다, 이 책은 결심씩이나 해야 읽을 수 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를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타고 났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을 12세에 혼자서 터득했고, 유클리드 기하학을 이해하는 등 어린 시절에 두각을 나타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교육열이 높은 아버지가 그를 알아보고 자신의 직업보다는 자녀 교육에 적합한 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교육환경을 조성했다. 먼저 나서서 가르치지 않고 호기심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등 진보적인 교육관을 가진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계산기를 최초로 만들었고으며 파스칼의 법칙을 찾아내는 등의 학자로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빙판에서 발목이 삐끗하는 사고를 당해 의사를 불렀다. 그 의사들은 오랜 시간 함께 보내며 가족들을 전도 했다. 이들은 장세니즘(얀센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가족은 회심을 했고 파스칼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당시 사회에는 인간의 위대성을 주장한 에피크테트(스토아학파)와 비참함에 주목한 몽테뉴(16c 프랑스 철학자)의 입장이 충돌했는데, 파스칼은 상위에 있는 신앙으로 이 문제를 종합했다. 그 결과가 <팡세>라는 명상록이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신앙 안에서 절망과 교만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던 파스칼의 사유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이성만으로 세상을 다 감지할 수 없다는걸 인정하고 기독교에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다. 신앙과 이성 사이에 모순되는 것을 일치시키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보인다. 세세하게 언급하자니 아는게 없어서 설명하기 어렵다. 완독은 했지만 10%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라 아쉽다. 신학자도 철학자도 아닌 일반인은 강의를 듣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이드가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팡세에 대한 좀 더 친절한 글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읽고나니 인간 파스칼이 조금은 궁금하다.

인간은 절망 또는 교만이라는 이중의 위험에 항상 처해 있으므로 은총을 받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는 이중의 가능성을 가르치는 교리보다 인간에게 더 적합한 교리는 없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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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름을 보고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분이어서 놀랐다. 치즈덕후의 에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글이었다.

치즈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만 저자처럼 열성적이진 않다. 그래도 냉장고에 모짜렐라와 슬라이스치즈는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두는 편이다. 가끔 브리와 까망베르는 세일할 때 사는 정도니까.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구워 꿀을 뿌린 뒤 크랜베리가 들어간 하루 견과를 올리면 맛있는 안주가 된다.

델리스 드 부르고뉴, 샤도네이 벨라비타노, 브리야 사바랭. 이 세가지 치즈가 눈길을 끓었다. 백화점 와인코너를 눈여겨봐야지. 잼과 발사믹 글레이즈를 얹는 시도는 새로웠다. 다양한 치즈를 만나보고싶어 다음엔 프로마제의 책을 읽어야겠다.

내가 정해놓은 ‘나‘라는 사람의 경계는 어디까지 존중하고 어디부터 허물어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가 고집이고 어디부터가 열린 태도일까? 분명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 자체가 어느새 나를 편협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계를 알았다면, 슬며시 선을 넘어 밖으로도 나가볼 일이다. 거기에 어떤 세계가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어디에 어떤 꽃이 피어 있을지, 무엇에 내 마음이 덜컹일지 알 수 없으니.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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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라이트형제다. 최초로 비행기를 만든 그들은 날고 싶단는 인간의 꿈을 실현시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비행기의 역사를 보면 이 순수함이 무색해진다. 왜냐하면 전쟁과 관련된 슬픈 역사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작가를 꿈꿨던 현 대한항공 기장님이 쓴 책이다. 비행기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읽어도 흥미있게 읽을 수 있다. 보통의 역사가 한 개인이 소속된 공동체를 중심으로 서술되는데 비해 이 책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시선의 차이가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누구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림을 하늘의 시선에서 내려본 그림을 봤는데 정면이 아닌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책장을 다 덮고난 뒤 미국이라는 존재가 머리에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특히 나는 중동과 이슬람에 대해 무지했고, 뉴스에 보도되는 논란들을 보며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갈등을 부추긴 조직은 다른 나라의 갈등으로 인해 경제적인 이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사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남일같지 않았다.

또한 비행기의 개발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조종사들이 보였다. 날고 싶다는 꿈의 대가는 혹독했다.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온 몸으로 고통을 받아낸 선대 조종사 분들의 희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높은 상공에서 방한복을 입고 뿜어져나오는 연료와 가스를 마셔가며 비행했던 누군가가 있었다. 시험 단계의 비행기들을 테스트하면서, 분쟁지역을 지나가면서, 혹은 힘있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조종석에 앉은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목숨은 누구나 한 개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2차 세계대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비행기는 가미가제 특공대이다. 거기에 사용된 비행기인 제로센을 만든 중심에는 호리코시 지로라는 남자가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혼란스러웠다.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럴리가 없다며 부정했지만 결국 그도 일본사회에 속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피해자로서 전쟁을 반대하는 것과 식민지의 역사까지 포함해서 반대하는 것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똑똑한 과학자 지로가 불철주야 노력한건 그의 사정이고 영화에는 그 비행기가 젊은 청년들의 목숨을 어떻게 앗아갔는지가 산뜻하게 제거되어있다. 전쟁에 사용된 비행기가 은하수처럼 떼지어 나오는 장면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본인들의 감성을 위한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우리나라 입장에서 미화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종사 안창남과 여성 조종사 박경원을 읽을 때 가장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그들을 에워싼 시대적 배경이 너무 무거웠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경원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청연>을 나중에 꼭 만나봐야겠다.

마지막 장에서 직업윤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욕망을 좇을 것인지, 존엄을 지킬 것인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씰의 일화가 떠올랐다. 대농장을 운영하느라 개인 비행기로 씨앗과 농약을 뿌리는 집에서 태어나 열살쯤엔 혼자서 비행을 배웠던 그가 마약을 운반하게 된 과정에 마음이 쓰였다. 어떤 욕구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한다.

비행기의 역사가 길지 않지만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데 놀랐다. 박물관에 가서 전문가의 해설을 듣는 것보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생택쥐페리부터 중동의 이야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세계사를 풀어내는 시도를 한다면 더 풍성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아무리 훌륭한 상품도 수요가 없으면 상품으로써 가치가 없다. 군수산업은 본질적으로 국가 간의 적대적 관계에 의존한다. 세계 군수산업의 지배자인 미국은 그 지배력을 잃지 않기 위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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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호족 인디언 소녀가 백인 노예사냥꾼에 의해 백인 가정에 하녀로 들어갔다. 그러다 시장에서 만난 다른 인디언 하녀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기쁨은 잠시, 총을 들고 그들을 쫓아온 백인을 인디언 전사가 창으로 공격해 죽였다. 이후 백인들은 거주지에서 나가지 않으면 전쟁을 하겠다고 이들을 위협한다. 백인들이 잠시 머무르다가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땅을 돌려주지 않았다. 저항할 힘을 잃은 나바호족은 백인들의 요구에 따라 강제이주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생명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소녀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양이 안전하게 살아있다고 믿었고 출산을 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바호족은 미국 인디언 중 체로키족에 이어 숫자가 두번째로 많다. 1863~1865년 사이에 일어난 강제이주 사건을 롱워크라고 불린다. 이들은 양을 치며 옥수수, 콩, 호박을 키우며 생활했다. 모계사회로 여성들의 입김이 강한 편이었다. 이 책의 배경을 찾다가 이들을 강제이주시킨 사람이 노예해방을 시킨 링컨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이들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맹에 가담하려고 했다가 토벌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링컨이지만 나바호족에서는 철천지 원수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언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암호병, 통신병으로 활약했다. 한국전쟁에 800명이 참전용사로 참여했던 이력이 놀라웠다.

도덕과 법과 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기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약자들이다. 소녀들은 노예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었고, 피난 길에 아이들과 병든 사람들이 죽었으며, 전사였던 청년들 또한 반복된 패배의 경험으로 삶의 의지를 상실했다.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없는 무력감이 전염병처럼 번져나가고 있을 때 꿈속에 나타난 양 덕분에 이 여정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억압하는 환경에서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초등 중학년 이상의 아이들과 읽고 이야기를 나눌 부분이 많아보이는 책이었다.

그 집에서 노예로 사는 동안 나는 로지타가 그곳 생활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지타는 가난한 부족 출신이기 때문에 마님이 사 주는 옷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음식, 그리고 풀신한 침대와 커다란 방을 좋아했다. 게다가 나에게 일을 시키는 것도 좋아했고, 시장에 갈 때 들고 가는 동전도 좋아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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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는 여자에게 참정권이 없었고, 사회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고 배웠다. 조선 후기 문벌사회가 되면서 여성에게 부담을 주는 사회적 풍조가 생겨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개인과 가정이 진짜 사회가 바라는 모습으로만 살았을까?

기록은 남성이 살림에 참여했다고 증언한다. 자녀 교육과 제사, 음식, 노비를 다루는 일, 정원 가꾸기, 농사와 부업, 집짓기, 태교와 출산 등을 신경쓰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관직에 진출해도 비정규직인 관리의 녹봉으로만 가정 경제를 유지하기 힘들었고, 꾸준한 수입원인 농사와 옷감 만들기에 집중했다. 실상을 보고나니 몰락양반은 집안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을 천시했기 때문에 상업행위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고 몰래몰래 은근슬쩍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때 경제에 대해 가르쳤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작은 규칙 하나를 지키면 큰 규칙을 깰 수 있다고 했다. 여성들은 표면적으로 결혼했으니 살림에 매진한다는 규칙을 겉으로 내세우면서 옷감만 짓는 듯이 보였지만 집에서 책도 읽고 글을 쓰기도 했다. 저술은 남편이나 아들, 혹은 남자형제의 도움으로 문집을 세상에 보일 수 있었다. 각 집안 사정과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고, 사회적 분위기와 가정의 분위기의 온도차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맥락을 이해하고 특수성을 찾아 바르게 읽어내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외조하는 한국 남자들에게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들이 많다. 옛날에 남자들이 누렸던 특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조선시대 살림남들의 모습은 그대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살림은 먹고사니즘의 연장이다. 바뀔 때도 되었거늘~~~

이처럼 양반 관료의 녹봉으로 대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은 시골에 있는 집안 소유 농장에서 농사를 지어 가족을 부양했다. 조선 시대 양반 관료가 걸핏하면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간 까닭은 정치가 자신의 뜻과 맞지 않아서인 것도 있겠지만, 가족 부양이라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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