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중심에 놓고 진행되는 인문고전 세미나라니 흥미로웠다. 고전은 저자가 고른 단어 하나에도 샌드위치처럼 의미가 포개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과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갖는다는건 좋은 지적 자극이 될 것 같다. 일반 독서모임보다 발제와 토론이 심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분위기를 무겁게 흐르지 않게 하려면 내공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 경험에 비춰 보자면, 어떤 ‘인문학‘도 문제에 딱 떨어지는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거기서 구르다 보면 살면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들을 다루는 ‘능력‘을 기를 수는 있습니다. 그 능력이 커지면 그 ‘문제‘들을 결코 없앨 수 없다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그런 ‘문제‘들을 옆에 두고 살아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게 인간이 얻어 낼 수 있는 ‘자유‘의 최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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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로잔느의 부모님은 이혼했다. 엄마가 재혼한 새아빠는 못생겼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로웠던 그녀는 가출을 했고 아빠에게 전화하기 위해 카페로 갔다. 아빠는 부재중이어서 자동응답기로 넘어갔고 카페에서 다비드라는 청년을 만났다. 카페 주인은 다비드와 로잔느를 내쫓았고 갈곳이 없었던 그녀는 다비드의 집으로 갔다. 자고 일어났을 때 다비드가 마약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대신 슬픈 미소만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하는데......

로잔느의 가출은 부모를 걱정하게 할만한 요소가 너무 많았다. 낯선 사람을 따라간것부터 화근인데 이남자한테 수영하고싶다고 호수를 데려가달라고 하질 않나, 마약하는 장면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질 않나. 그런데 아이가 왜 집에 돌아가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외로움의 크기가 더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아빠와 엄마의 결혼으로 집에 있기 싫은 마음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였다. 약쟁이 오빠는 나에게 예쁘다는 얘기를 해주니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나중에는 마약살 돈을 구하기 위해 엄마돈을 훔쳐나오는데 걱정이 되었다.

마약이 우리나라는 비교적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는데 해외의 사정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마약을 소재로 한 이 짧은 소설이 흥미로웠다. 자꾸만 슬퍼지는 사연은 뒤로한 채 악마와의 계약을 언급한 다비드의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낯선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을 로잔느도 싫은 환경을 피하고만 싶어서 반대의 선택을 하는 걸 보면서 감정의 힘이 얼마나 센지 깨닫게 된다. 사실 이들은 주변에 널리고 널린 외로운 사람 중 하나 아닐까. 누구나 이런 결말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닿았다.

짧고 명료하면서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대사들의 배치가 좋았다. 티에리 르냉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다.

그 시절에는 말이야, 만일 네가 부귀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같은 걸 원하면 악마랑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했어. 네가 원하는 걸 악마가 주는 거야. 그 대신, 얼마 있다가 악마가 나타나서 네 영혼을 가져가고 넌 영원히 악마의 종이 되겠다고 약속을 해야 돼. 물론 일은 언제나 나쁜 쪽으로 흘러가지. 일단 사랑이든 돈이든 얻게 되면 약속을 지키고 죽고 싶은 사람은 없거든. 하지만 악마에게서 영혼을 다시 살 수는 없는거지. 마술사의 도움으로 악마와의 계약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대개는 미칠 때까지 싸우다가 죽었대.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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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급 지체장애인 변호사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쉽게 건너뛰게 되는 문제들을 조곤조곤 풀어내 이해를 돕는다. 사실 내게는 너무 벅찬 주제이기도 하고, 부끄러운 모습도 발견하게 되서 읽기 쉽지 않았다.

유전자 진단기술이 가져올 미래가 조금 더 걱정되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다운 배려보다 손쉬운 배제를 선택하게 될까봐 겁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기꺼이 키워내기로 선택한 이들과 경제적 효율의 문제가 부딪칠게 뻔해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인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설치 의무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한 투쟁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 과정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겨우 유모차를 밀어보고 나서 노면상태를 인지하게 됐고, 턱때문에 상가를 이용하지 못한 경험이 있으며, 국내와 북유럽의 대중교통을 비교해보게 되면서 지금의 불편함이 당연하지 않다는걸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휠체어, 유모차를 고려한 저상버스와 경사로가 더 많이 확보되면 좋겠다.

각 개인의 역사와 고유한 서사를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 관점은 장애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조금씩 알아가고 들으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유전자진단기술을 통해 장애아를 ‘걸러낼‘ 수 있는 사회는 해당 장애에 대한 의료, 사회복지 지출에 둔감해지기 쉽다. 그냥 ‘걸러내면‘ 될 것을 굳이 낳아서 치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개인은 사회에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죄책감은 타당할까? 위 프로그램의 의미를 소개하면서 연구자 황지성은 첨단기술을 활용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은 사회적 차별과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유전자진단이나 임신중절은 일정 범위 안에서는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다만 그 자유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장애아가 태어나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결국 모든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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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전문가가 아니어도 일반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적정심리학‘을 제안한다. ‘공감‘은 타인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CPR이다. 잘 이해가 가지 않으면 충분한 질문을 해서라도 이해해보려 하고, 상대가 놓인 상태를 손쉽게 비정상으로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 개개인은 모두 타인에게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은 욕구를 지닌 인간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한다. 바른말인 ‘충조평판‘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폭력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마음에 콕콕 박히는 문장들이 많아서 선별하기 어려웠다. 동어반복인듯 보이기도 하지만 변주해서 얘기한다는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로 읽혔다. 공감만 잘해도 훌륭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지인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남의 이야기를 듣는게 고역일 때가 있다. 오래 사귄 친구에게서도 인내심이 바닥을 칠 때가 있는데 그 감정은 뭐였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다시 보고싶은 책이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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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는 이사를 간 동네에서 재준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둘은 집의 방향이 같았고 빠르게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재준이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다른 친구들이 재준의 빈소를 방문할 때도 제일 친했던 유미는 가까이 가지 못했다. 두 달 뒤, 재준의 엄마에게 연락이왔고 유미는 재준의 일기장을 읽게됐다.

재준의 죽음은 중3 아이들도 죽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재준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알고보니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잘 타지도 못하는 오토바이를 빌려탄게 화근이었다. 유미는 일기를 통해 재준의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게 되고, 잡히지 않는 죽음의 의미를 더듬어 본다.

얼마 전 인근 고등학교에서 자살 사건이 있었다. 성적이 상위권에 있던 아이가 자살을 하자 주변의 친구들이 잇따라 자살을 하면서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6개월이 지났을 때 수업을 하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거냐고,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 선생님이 틀렸다. 아이들 각자에게 아픈 역사로 남은 일이다. 고통받는 아이들의 시선에 선생님의 시선을 포개고, 공감하고, 울어줄 수 있었다면 아이들은 조금 더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예고없이 떠나버린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허무함은 살아남은 자가 겪어내야 할 몫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주변인을 떠나보낼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며, 사람은 예고없이 죽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했다.

그런데 책이 좋았냐고 묻는다면 내 기준에는 아니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재준의 죽음과 관련된 단서들이 더 많이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도 찾을수 없었다. 등장인물의 대사들을 통해 뭔가가 더 드러났으면 좋겠는데 머릿속을 확 밝혀주는 한 방이 없었다. 청소년 소설은 특히 오글거리는 티키타카가 많이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벗어날때도 된것같다. 제목의 탁월함에 비해 내용이 약한 느낌이다. 죽음을 주제로 한 청소년 소설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이걸 잘 하냐 못 하냐는 오로지 그걸 즐기느냐, 버티느냐의 차이야. 즐기면 얼마든지 오래 가지만 버티면 금방 끝나. 그게 요령이야.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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