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걸스는 메리 여왕의 신교도박해(1553~1558)의 희생자 8명을 추모하기 위해 만드는 인형이다. 순교자들 중 두 명은 여자아이였는데, 30년 전 이 지역에서 메리와 조이라는 두 소녀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 다발 지점처럼 나쁜 일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을사람 여럿이 사건을 둘러싼 비밀을 품고 있었다. 교회는 전임자의 자살로 공석이 생겼는데 여자 신부인 잭 브룩스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교회에서 불타는 유령이 보이고, 사건사고가 반복되는 찜찜함의 연속이지만 주인공은 역시나 비밀을 파헤친다.

여자 신부를 등장시킨 것을 눈치채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딸이 왜 엄마라고 하는건지 이해가 안갔는데 진짜 엄마였다니. 영국국교회는 여사제를 인정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됐다. 선입견때문에 버퍼링이 걸렸다는 사실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소설은 각자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은폐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들여다보게 했다. 단서를 하나씩 던져주는데 스무고개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메리의 정체는 알 수 있었지만, 플로의 남친 리글리는 생각보다 더 악랄한 놈이어서 놀랐다. 다만 잭 브룩스의 남동생은 전초전만 크게 치루다가 제대로 등장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더 할 이야기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사건만 부각되버렸다. 후속을 염두에 둔게 아닐까하는 추측이 이해가 갔다.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었지만 등장인물들 캐릭터가 참 좋아서 읽기 수월했다. 시간이 촉박해서 급하게 읽느라 놓친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다음에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속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대놓고 숨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배웠다. 사람들은 로만칼라의 이면을 보지 않는다. 보더라도 선입견에 눈이 먼다. - P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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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메르켈런은 신경학과 언어학 박사였다. 하지만 정부의 방침에 따라 여자들만 직업을 잃었고, 손목에 단어 100개가 넘어가면 전류가 흐르는 카운터를 차게 되면서 불만을 가졌다. 대통령과 칼 코빈 목사는 성경을 자기들의 기호에 맞게 발췌해 국민들을 길들였다. 학교는 효과적인 교육장이었고 아이들은 정부의 방침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어나갔다.

집에서 네 아이의 엄마로 지낸지 1년이 지났는데 그녀에게 제안이 들어왔다. 대통령의 형이 베르니케영역어 손상이 생겼는데 실어증 치료제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에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지만 딸 소니아와 뱃속에 있는 내연남의 아기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랬다.

차별에 저항하지 않고 침묵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려보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여자들의 손목에 채워진 단어 카운터는 과거에도, 지금도 유효한 통제 수단이다. ‘여자가‘라는 수식어를 붙인 말들은 남자에게 잘 쓰지 않는다. 그리고 빈도나 강도도 다르다. 낯설지 않은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앤딩이 아쉬웠다. 주인공의 외도와 임신이 계속 마음에 걸렸고, 묵직하고 속시원한 한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좀 더 신경썼더라면 더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침묵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을 주제로 한 비문학을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순종적인 여성과 여자아이들. 지금 나이 든 세대는 통제가 필요하지만, 결국 소니아 또래들이 그들의 아이를 가질 때쯤에는 칼목사의 바람대로 순수 여성과 순수 남성이 세상의 이치가 될 것이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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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즘에 대해 흥미가 생겨서 찾아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위대한 개츠비>, <폭풍의 언덕>이 떠올랐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질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피해자들의 모습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기도취자는 자아를 연출하는데 탁월하다. 그런데 많은 부분을 왜곡하고 있고,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류의 사람들은 빠르게 파악하고 피하는게 상책이다.

나르시스트에 대한 분석은 참 좋았다. 다만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되는 듯한 느낌이 아쉬웠다. 심리학에서도 불교가 유행인건지 명상으로 도피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의욕이 떨어진다.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어도 감정적으로 착취하는 가해자들을 극복하기에는 핵심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글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상대하기 위한 대응 전략이라던가, 감지할 수 있는 사인을 발견하는 데 페이지를 더 할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기도취자의 마법에 걸린 사람들은 그가 자신을 너무나 뻔한 일상으로부터 끌어올려줄 마법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구조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주고,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주는 다른 누군가를 원한다. 사랑받고 싶은 소망은 당연한 것이고,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나기 위해 엄마의 사랑에 의존해야 하는, 가장 어린 시절까지 돌이키게 만든다.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닌 전형적인 자기도취자는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해 그들의 깊은 소망을 활성화시키고, 그들의 바람직한 외면을 이용할 줄 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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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 집어든 책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산주의와는 조금 다른 견해로 봐야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는 스탈린에 의해 왜곡된 공산주의, 김일성에 의해 왜곡된 공산주의의 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르크스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한 결과였는데, 현대 사회에 복지 개념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이 이 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북한, 중국, 소련의 공산주의를 떠올리다 일본의 공산주의 얘기를 들어보니 소프트 코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일본의 침략전쟁과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내에서도 역사를 바르게 보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공산주의에 대해 깊이 있게 알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마르크스, 엥겔스, 스탈린, 레닌 등의 인물들의 캐릭터를 파악하기에는 괜찮았다.

그럼 21세기인 오늘, 굳이 19세기의 마르크스를 읽는 것의 의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투쟁했던 당시의 사회에서 변혁을 꿈꾼 마르크스의 진지한 삶의 방식을 피부로 느끼고, 그가 절실한 마음으로 탐ㄱ두한 학문적 깊이를 제대로 배움으로써 21세기의 현실에서 변혁을 추구하는 기개를 이어받아, 그는 볼 수 없었던 오늘날의 세계를 우리 스스로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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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와 지오는 쌍둥이 자매다. 그런데 부모의 어떤 사정으로 지오는 부모와 함께 서울에서 살게 되고, 은오는 할머니와 부산에서 살게 되었다. 부부는 결국 이혼했고 엄마의 무리한 투자로 경제사정도 바닥을 쳤다. 남은 돈으로 지오의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 겨우 들어가게 되었고 선택지가 없던 은오는 지오의 학교로 전학을 갔다.

은오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교우관계도, 다른 성장환경 속에서 살았던 지오와 함께 사는 것도 어렵기만 하다. 매번 양보만 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불만이 쌓이다 보니 반동이 커졌다. ‘나도 때로는 주목받고 싶다‘는게 모두의 진짜 욕구라는 점에 마음이 닿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웃자라버린 아이의 상태가 마음 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 같아서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이 작가님 책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응어리진 부정적인 에너지를 쏟고, 폭발시키는 것만 같다. 어린 마음에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주인공을 통해 실현시켜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책들도 더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키운 것은 미처 분노로 자라지 못한 슬픔 덩어리였다. 야무지지 못하고 미욱하기만 한 슬픔. 그것이 흥건히 가슴에 고여 어디로든 흐르지 못하고 나를 웃자라게 만들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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