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에 반하여
수전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윌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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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의 글은 후대 독자들이 실감할 만한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당대의 고급 취향 예술을 전제로 글을 썼고, 지금 그 목록을 따라가려면 인생의 몇 년쯤은 바쳐야 할 것이다. 요즘 누가 유럽 아방가르드 영화를 본단 말인가. 그녀가 언급한 영화나 도서를 이해하려면 상당한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지금의 독자들에게는 사실상 전문가 영역이다. 결국 후대 독자들은 그 작품들을 보지도 않았고, 보기도 어렵고, 심지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손택이 사랑했던 작품들은 시대 밖으로 밀려났고, 우리가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녀가 비판한 바로 그 ‘해석’을 다시 꺼내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여울이 말하는 것처럼 ‘순간의 아름다움’을 이 책에서 곧바로 느끼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택의 주장은 단순하며 동시에 흥미롭다. 내가 애플TV의 <세브란스: 단절>을 보며 느꼈던 순간의 슬픔과 냉소, 혹은 특정 음악의 코드진행에서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경험들을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 손택은 그런 감각의 경험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하게 만든다.

글을 쓸 때는 내가 쓴 것을 믿었으나, 나중에는 그 가운데 일부를 믿지 않게 되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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