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혼
황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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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쓰고 살고 싶은 죽은 자들과 죽고 싶은 나날을 보내는 산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본격 혼령 미스터리. 지금의 자신을 혹은 자신의 삶을 벗고 싶다는 욕망들의 분투와 그로 인한 결말이 꽤 볼만 했다. 영적 세계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설정이 특히 흥미로웠다. 으스스하다기보다는 신선한 판타지를 보는 기분. 으레 그렇듯 으스스한 쪽은 되레 산 자들의 이야기였다. 죽거나 죽이거나 아무튼 섬뜩하고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건 귀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촘촘하게 얽힌 인물들의 관계가 재미를 더했다. 보통 이 정도의 우연한 짜임이면 인위적으로 느껴질 법도 한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 볼링핀 쓰러지듯 싹 쓸어버리는 사고 역시도 예정된 운명처럼 여겨졌다. 왜지. 귀신이 나와서 그런가. 여튼 꽤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다른 소설도 찾아볼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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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시가 아키라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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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홍보 문구들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스마트 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시가 아키라

 

누구나 겪을 법한 사소한 일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몰고 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를 테면 늘 그렇듯 이런저런 생각으로 멍하게 걸어가다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는데, 그 사람이 은지원이라거나……(그렇게 나는 또 잠시 현실 로그아웃을……). 여하튼 판타지고 로맨스고 스릴러고 그런 흔한 우연이 단초가 될 때 더 관심이 생긴다. 그 작고도 진부한 사건이 이건 오늘 너에게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야하며 현실감을 확 끌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봤을 때 내가 이 소설에 끌린 건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이건 뭐, 제목부터 너무 들이대주셔서.
 
예상대로 누군가 택시에 두고 내린 타인의 스마트폰을 줍는 것으로 사건이 시작된다. 대가도 없이 휴대폰을 고스란히 돌려준 고마운 사람이 자신의 은밀한 비밀 전부를 캐낸 위험한 실체로 등장할 때까지, 독자는 휴대폰과 그에 연동된 SNS로 한 개인이 얼마나 쉽게 조작되고 이용당할 수 있는지를 질릴 만큼 목격하게 된다. 실로 이때의 범인은 너무도 정열적이었다. 은둔형 외톨이 성향이 있는 오타쿠(29)라는 자기고백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원하는 바를 취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정말 그랬다.
 
대상을 향한 비정상적인 집착과 대담하고 적극적인 행동력, 거기에 오타쿠라 자칭할 만한 컴퓨터 분야의 전문성. 이 세 가지가 합쳐져 탄생한 괴물이 인터넷에 지배당한 이 세계에서 어떻게 군림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단지 남친이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휴대폰 대기화면에 내 얼굴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괴물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섬뜩함 또한.
 
엔터테인먼트 개발국장이라는 작가의 이력을 꽤 오래 염두에 두고 읽었다. 그도 그럴게 무슨 일이 있어도 독자를 즐겁게 만들겠다는이라는 문구 같은 걸 책날개에 보란 듯이 써 넣으면 아무래도 기대하게 된다. 그렇지 않나. 만담 같은 대화라든지, 예능 특유의 연출이라든지. 하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소설은 무던하게 흘러갔고 최종장에 거의 다다라서야 나는 아! 하며 작가의 이력을 상기했다. 피해자가 죽기 직전인 상황이었는데. 서장의 결단이 절실한 중요 장면이었는데.
 
아무래도 잘못 짚은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추천사과 뒷표지마저 다 읽고 나니 이번엔 뭔지 모를 억울한 기분이 몰려왔다. 아무래도 과장되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감동의 결말이라는 문구에서 얼마나 오래 생각해봤는지 모른다. 나는 으잉???스러웠던 것밖에 없었는데. 특히 추천사가 정말 읽기 힘들었다. 그렇게 격정적인 추천사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흥분에 전 어조로 뭘 자꾸 단언하는데 그러다보니 외려 진정성을 의심하게 됐다. 그리고 내가 읽었던 책날개는 바로 이 사람의 추천사를 인용해 붙인 거였고…….
 
과장된 홍보 표현들만 아니면 더 마음에 들었을 소설이다. 좀 더 일상적으로 흘러갔으면 좋았을 걸 하는 마음도 있긴 했지만 애초에 일상적에서 범죄나 사체 뭐 이런 게 나오는 게 더 이상할 것 같다. 불륜, AV배우, 자살 등등의 비일상적 요소가 버무려져있긴 하지만 일본소설 특유의 가독성으로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역시 휴대폰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사용하지 않는 SNS를 정리해야겠다였나. 뭐가 되었든 세상이 너무 무섭다로 끝이 난다. 범죄가 너무 가까이 있다. 점점 더 가까이 옮겨오는 게 느껴져 나는 가끔 전력으로 몸서리치곤 한다. 으으으.

 

비밀번호를 뚫어버린 도미타의 스마트폰은 이제 알몸이나 마찬가지였다. 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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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달밤에 빛나고
사노 테츠야 지음, 박정원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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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너는 달밤에 빛나고, 사노 테츠야

발광병發光病. 달빛을 받으면 몸이 희미하게 빛나는 병이란다. 뭐 이런 낭만적인 병이 다 있나 싶은데, 원인도 모르고 제대로 된 치료병도 없다는 문장이 뒤이어 눈에 들어왔다. 10대나 20대 초반에 발병하여 대부분 어른이 되기 전에 사망한다는 사실까지 알아차렸을 때는 왜인지 가슴이 서늘해지며 꽉 죄어들었다. 당연한 듯 거쳐 온 10대가 굉장히 이례적인 일처럼 느껴지고, 나는 불현듯 강탈의 감각을 떠올렸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병도 없는 것, 원치 않아도 어른이 되기 전엔 반드시 잃고 말아야 하는 것.
 
모처럼 옛 시절을 떠올려봤다. 기억하는 것보다 이제는 잊히는 게 더 당연해진 그 풋내의 시절 속에 나는 변함없이 서툴고 어리석고, 그래서 나이 먹은 나를 또 부끄럽게 했다. 뭘 열심히 한다고 날뛴 것 같긴 한데 뭘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설프고 깊이도 없고. 그래서 나는 10대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보고 나면 특히 더 억울해진다. 2002Y여고 1학년 133분단 왼쪽 맨 뒷자리에 앉아 두 눈 말똥하게 뜨고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책상 아래로는 폴더 핸드폰의 키패드를 현란하게 눌러대고 있는 그녀의 뒷머리에 이 책을 던져주고 싶다. 제발 영양가 있는 걸 좀 보라고.
 
사실 소설의 내용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주인공 타쿠야가 어쩌다 발광병에 걸려 입원중인 마미즈를 찾아가게 되고, 또 어쩌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대신해주게 되면서 생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둘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병세는 위중해져 읽을수록 안타까워지는 것도 예상할 법한 패턴이다. 다만 죽음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세가 공들여 읽을 만 했다. 이 또한 누군가에겐 뻔한 얘기가 될 테고, 실로 나도 올해 본 애니메이션 중 거의 비슷한 작품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다정한 말은 하고 또 해도 좋은 것 아닌가.
 
누군가의 죽음은 슬프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괴롭고, 때론 회복하지 못할 고통으로 여겨져 주인 없는 인형처럼 자신을 내던져놓기도 한다. 하지만 죽은 사람에게 끌려(149p)갈 필요는 없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설익은 아이의 피부로 능숙한 어른인 양 세상에 나서려 할 때, 오염도 전염도 쉬워 다치기는 더 쉬운 그 여린 10대에 누군가 그리 말해준다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잊히는 게 당연해진 그 어느 시절에.

 

 

별은 죽으면 어떻게 돼?”

빛을 잃고 시체 같은 느낌으로 변해. 아님 블랙홀이 되거나.”

막대한 질량을 가진 별이 죽으면 중력이 붕괴되어 블랙홀이 된다. 그 어떤 물질도, 심지어는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끌려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블랙홀은 우주의 수많은 별들을 집어삼키며 성장하고 합체해서 거대해져 간다.

인간도 죽은 사람에게 끌려가는 경우가 있을까?”

나는 깜짝 놀라 마미즈를 돌아보았다.

난 블랙홀이 되고 싶지 않은데.” 149p

 

마미즈의 입술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마미즈에게 키스했다.

마미즈는 바로 입술을 떼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미즈가 먼저 키스했다.

좋아해.

사랑해.

나는 마미즈에게 수없이 그렇게 말했다. 2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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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살인의 문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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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를 위한 살의는 공감 받을 수 없다. 라고 쓰고 보니 살의에 공감한다는 거 자체가 좀 이상한 생각인 것 같다. 어쨌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게 되었다는 결론이 납득되기 위해서는(이것도 좀 이상하다) 그만한 과정이 있어야 할 텐데 <살인의 문>은 잘 모르겠다. 주인공인 다지마를 보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을 속이고 불행에 빠뜨린 구라모치를 향해 증오한다, 죽이고 싶다 말하지만, 하는 행동들을 보면 별반 설득력이 없다. 잊을 만하면 아, 나 이 자식 싫어했었지! 죽이기로 했었지! 하며 별안간 흑화하는 기분이랄까. 살의라는 것은 그렇게 죽은 듯하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걸 쓰면서야 그런 생각이 조금 든다.
 
보통은 그렇게까지 싫은 사람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속이고 이용하려는 게 뻔한데 그런 작자와 다단계 같은 수상쩍은 일을 할 리도 더욱 없다. 어리숙하다거나 우유부단한 인간이라 치부하기에도 정도가 지나치다. 물론 이 넓은 세상에 그런 인간도 있긴 할 테지만 그래도 답답한 건 답답한 거다. 초등시절부터 취직을 하고 결혼까지 하고 난 후에도 다지마를 괴롭히는 구라모치의 심정은 더더욱 이해불가고. 근래 부쩍 생각하는 건데, 자신의 신용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정말 믿음직한 사람은 스스로에게 엄지를 치켜들며 나 믿지? 나 믿지? 반복하지 않는다.
 
여러모로 기대와는 달라 당황했던 소설이지만 그래도 세부적인 이야기들은 좋았다. 특히 다단계 직원들에게 빠지고 마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안타까우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차라리 이런 이야기나 잔뜩 넣어주지, 하는 걸 보면 역시 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미스터리보다는 휴먼스토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살인의 문>도 그랬다. 살인이나 살의라는 개념을 제쳐두고 보면 재미있었다. 그걸 제쳐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살인자가 되느냐 못 되느냐, 그 둘 사이에 만일 경계선이 존재한다면 당시 내 마음은 그 경계선 주위를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살인의 문2>, 2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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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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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양이와 인간, 인간과 인간, 고양이와 고양이 사이에 불현듯 백로. 그런 이야기가 스치는 교차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초점을 맞는 자가 곧 주인공이 되는데, 인간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두가 다 주인공이서 마음에 들었다. 느리고 담담한 어조 속에 이별과 불행한 사건이 연속된다. 그럼에도 슬프게 끝나는 화자가 없다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아니다, 새끼고양이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아깽이는 사랑이다. 심장이 막 쿠크쿠크 쪼개진다. 옮긴이는 ‘‘고양이자리에 무엇을 넣어도 좋다.(296p)’고 했다. 아이든 부모든 연인이든 강아지든. 소중하고 아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어울린다. 소중하고 아끼는 것이라면 머리로 이해하고 분석하려 하지 말고 안아주면 되는 것(296p)’이라고. 그러니까 우리 모두 고양이를 안자. 고양이는 사랑이다. 솔직히 고양이 소설에 달리 뭘 더 적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잘 잊는 것은 고양이의 특성입니다. 옛날 일은 잊어도 됩니다. 그러는 편이 여러모로 편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당신은 고양이입니다. 이 사실은 당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억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24p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제 정신이 아니라고들 생각하니까 함부로 말하긴 뭣하지만, 저는 확신했습니다. 고양이 집회에서는 중요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그것은 고양이의 행복에 관한 것이고, 고양이의 행복은 인간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고. 그렇잖아요? 옷도 필요 없고, 도구도 필요 없고, 에너지 자원도 필요 없어요. 이렇게 지구에 친화적인 생물이 행복하지 않고서 어떻게 인간의 행복을 바랄 수 있겠어요? 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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