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는 달밤에 빛나고
사노 테츠야 지음, 박정원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4월
평점 :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너는 달밤에 빛나고, 사노 테츠야
발광병發光病. 달빛을 받으면 몸이 희미하게 빛나는 병이란다. 뭐 이런 낭만적인 병이 다 있나 싶은데, 원인도 모르고 제대로 된 치료병도 없다는 문장이 뒤이어 눈에 들어왔다. 10대나 20대 초반에 발병하여 대부분 어른이 되기 전에 사망한다는 사실까지 알아차렸을 때는 왜인지 가슴이 서늘해지며 꽉 죄어들었다. 당연한 듯 거쳐 온 10대가 굉장히 이례적인 일처럼 느껴지고, 나는 불현듯 강탈의 감각을 떠올렸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병도 없는 것, 원치 않아도 어른이 되기 전엔 반드시 잃고 말아야 하는 것.
모처럼 옛 시절을 떠올려봤다. 기억하는 것보다 이제는 잊히는 게 더 당연해진 그 풋내의 시절 속에 나는 변함없이 서툴고 어리석고, 그래서 나이 먹은 나를 또 부끄럽게 했다. 뭘 열심히 한다고 날뛴 것 같긴 한데 뭘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설프고 깊이도 없고. 그래서 나는 10대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보고 나면 특히 더 억울해진다. 2002년 Y여고 1학년 13반 3분단 왼쪽 맨 뒷자리에 앉아 두 눈 말똥하게 뜨고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책상 아래로는 폴더 핸드폰의 키패드를 현란하게 눌러대고 있는 그녀의 뒷머리에 이 책을 던져주고 싶다. 제발 영양가 있는 걸 좀 보라고.
사실 소설의 내용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주인공 타쿠야가 어쩌다 발광병에 걸려 입원중인 마미즈를 찾아가게 되고, 또 어쩌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대신해주게 되면서 생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둘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병세는 위중해져 읽을수록 안타까워지는 것도 예상할 법한 패턴이다. 다만 죽음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세가 공들여 읽을 만 했다. 이 또한 누군가에겐 뻔한 얘기가 될 테고, 실로 나도 올해 본 애니메이션 중 거의 비슷한 작품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다정한 말은 하고 또 해도 좋은 것 아닌가.
누군가의 죽음은 슬프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괴롭고, 때론 회복하지 못할 고통으로 여겨져 주인 없는 인형처럼 자신을 내던져놓기도 한다. 하지만 죽은 사람에게 끌려(149p)갈 필요는 없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설익은 아이의 피부로 능숙한 어른인 양 세상에 나서려 할 때, 오염도 전염도 쉬워 다치기는 더 쉬운 그 여린 10대에 누군가 그리 말해준다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잊히는 게 당연해진 그 어느 시절에.
“별은 죽으면 어떻게 돼?”
“빛을 잃고 시체 같은 느낌으로 변해. 아님 블랙홀이 되거나.”
막대한 질량을 가진 별이 죽으면 중력이 붕괴되어 블랙홀이 된다. 그 어떤 물질도, 심지어는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끌려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블랙홀은 우주의 수많은 별들을 집어삼키며 성장하고 합체해서 거대해져 간다.
“인간도 죽은 사람에게 끌려가는 경우가 있을까?”
나는 깜짝 놀라 마미즈를 돌아보았다.
“난 블랙홀이 되고 싶지 않은데.” 149p
마미즈의 입술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마미즈에게 키스했다.
마미즈는 바로 입술을 떼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미즈가 먼저 키스했다.
좋아해.
사랑해.
나는 마미즈에게 수없이 그렇게 말했다. 27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