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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안녕 주정뱅이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8월 한 달 내내 권여선에 빠져 지냈다.
처음 알게 된 작가, 단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녀에게 취하고 비틀거렸으며 온몸으로 전율했다. 책에 실린 7개의 단편 모두가 좋다. 단편집을 읽다 보면 한두 개쯤 빼고 싶은 게 있기 마련인데 <안녕, 주정뱅이>에는 허투루 쓴 문장이 하나도 없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 꼭꼭 씹어 넘기고 싶어 다 읽고 필사를 시작했다. 필사를 하니 손끝으로 그들의 사연이 스며드는 기분마저 들었다.
난 술도 싫고, 술자리도 싫고, 주정뱅이도 싫지만, 이 책에 나오는 주정뱅이들에게는 왠지 마음이 간다. 그들은 세상을 버텨내기 위해서, 버텨내고 싶어서,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와 불치병에 걸린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 이혼을 하기 전 이별 여행을 떠난 부부의 처연하고 담담한 풍경, 가난한 가장의 짐을 벗어던지자마자 암에 걸린 이모의 비통하고 처연한 삶...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밑바닥 인생의 아주 처참하고 잔혹한 비극적인 삶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독자는 결코 그들에게 동정의 시선을 던질 수 없다. 아니, 감히 동정할 수 없다고 해야 할까.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겨야 한다고 멋대로 평가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넘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덤덤히 받아들이는 그들에게 왠지 모를 존경과 숙연함이 느껴졌다.
세 번째 단편 '이모'는 몇 번을 봐도 가슴이 얼얼하다. 이모의 인생을 돌아보면 가히 '성인(聖人)'의 삶처럼 느껴질 정도다. 평생을 가족을 뒷바라지하고 암에 걸려 죽을 때까지 최소한의 비용으로 '소박한' 삶을 산 이모. 그녀에게 인생은 결코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사람과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인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자신의 삶은 포기해야 하는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뭘까... 나를 살게 한... 그 고약한 게... (‘이모’ 중에서)
너무 좋은 작품을 읽으면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지는 것 같다. 말을 하면 할수록 내가 처음 느꼈던 감동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서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말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한 달이 다 되도록 감동과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