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약간 막장드라마를 보는 것과도 비슷한 심리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읽었다.

장강명 작가를 좋아하진 않는데(이 작가는 뭔가 나의 길티플레저다...) 독자가 계속 글을 읽게 만드는 솜씨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이번 책에서는 독자의 관음증적 욕망 자극이 아닐런지? (그래서 내가 막장드라마 같다고 느꼈나보다)

글은 깔끔하다.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물론 친구같은 아내 HJ와의 소소한 일상이 재미있게 쓰여져서 글로 된 인스타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마치 레드썬! 하고 최면에 급작스럽게 빠져드는 것처럼, 영화에서 묘사되는 다중인격자의 각성이 그렇듯, 여행경험을 담담히 서술하다가도 갑자기 정색하며 자기 주장을 일방적으로 늘어뜨리는 대목이 한 챕터에 한 번씩은 나오는데 그게 좀 억지스럽긴 했다.
그의 전직이 기자였기 때문인지, 그가 원래 그런 성격이었기 때문에 기자를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자신의 행동이 가진 의미에 대해 정의내리려는 강박관념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글에 담아낸 그의 주장은 상당히 오만하게 느껴진다.
역시 이 정도의 자기확신이 있어야 작가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만의 아집에 꽉 찬 태도가 좀 꼴 같잖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나 역시 그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의 주장은 (마치 내 것이 그렇듯) 그렇게 독창적인 것이 아니고 선도적인 것도 아니고 어느 부분에선 보수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대중적이다. 그런데 그런 대중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마치 자신만이 이 구역의 힙스터인냥 써내려가는 것은 너무 자의식 과잉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난 그가 알랭 드 보통을 향해 내렸던 평가를 고대로 돌려주고 싶다.

˝알랭 드 보통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좀 닮았다. 한국에서 아이돌 취급받는 거 하며, 시원하게 까진 대머리 하며, 스스로 대단한 깊이와 성찰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자부심 하며.˝
(77쪽)

그는 대머리가 아니고 문학계의 아이돌 취급을 받을 정도로 성공한 작가는 아니지만 마지막 대목만큼은 너무나도 그 자신을 묘사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가 같잖게 느껴진 이유에는 자신이야말로 그 모든 기득권 속에서 안락하게 살아오며 그가 한 모험이라고는 고작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로를 결정하고, 부모님이 반대하는 형식의 결혼을 반대하는 상대와 치렀다는 것 뿐인데도 자신이 관습에 엄청나게 저항하며 살아가는 행동주의자인냥 묘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포함돼있다. 

그는 가부장제가 뿌리깊은 한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났고, 자신이 그렇게 혐오하는 학벌사회에서 피라미드의 정점에 놓인 SKY 중 한 곳을 졸업했으며, 기자를 준비하다 실패한다해도 상대적으로 폭넓은 플랜B를 가진 공대 출신이다. 매체가 난립해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중소언론사를 전전하는 기자들이 수두룩빽빽한데 연봉도 준수하고 매체파워도 큰 보수지 동아일보를 10년 가량 다닌 사회인이, 고작 결혼식을 올리지않고 혼인신고만 한 채 살았다고, 부모가 원하는 건설회사에 계속 다니는 대신 기자가 되기 위해 준비했다고, 10년간 최상위 실적평가를 받던 회사를 때려치고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정관수술을 해 자녀를 갖지 않기로 정했다고해서 그렇지 않은 인간을 ‘애완인간‘이라고까지 묘사하며 경멸할 수 있나?

내가 읽은 그의 책은 이것까지 단 두 권 뿐이지만, 그의 책 중 가장 대중적인 이 두 권 모두 관음증과 사이다 서사에 기반한, 그래서 잘 팔리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우선 그의 글은 누구라도 경험할 법한 일상을 디테일하게 묘사해 마치 평행우주의 나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하거나, 카페에서 옆 테이블 손님의 한탄섞인 수다를 엿듣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러고는 주변의 속물적인 인물들을 납작한 평면 위에 그려두고 그들을 도덕적으로 훈계하는 자기 자신을(한국이 싫어서에선 계나를) 인상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가(계나가) 선택한 해결방식은 전복적이지도, 근본적이지도 않다. 다만 독자에게 일시적인 사이다 드링킹적 모멘트와 무한공감을 유도할 뿐이다.

그래, 모든 사람이 다 지사적인 방식으로 상황에 대처하고 자기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사회변혁을 꾀해야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읽는 소설과 에세이에서조차 고작 이런 사이다적 모멘트에 만족한다는 건, 대체 우리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빈곤해지고 있다는 반증인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