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는 아주 우울했다. 급속도로 살이 빠졌다가 그것보다 훨씬 더 빨리 원래 몸무게 이상으로 돌아왔고 머리는 말 그대로 장식품으로만 달고 다녔으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별 볼일 없는 장식품을 치장하고 다른 생각을 줄이기 위해 화장품을 사들이는 데만 엄청난 돈을 썼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내가 점점 더 멍청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공포에 시달렸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초등학생 때 알던 교향곡들의 넘버와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했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중학생 시절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가 빠르지 않아 답답했고 스무 살을 지나서는 내가 바보가 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작년엔 그런 것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바보가 되어서 편하다고 생각하며 멍청~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올해는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동기들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개중에는 분명 좋은 것들도 있고 전체적으로 학교에 대한 인식은 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가장 강렬했던 몇 가지는 역시 ‘어떻게 저렇게 무식한 말을 할 수가 있지?’하는 혐오의 감정, 그리고 스스로도 그런 부류로 살아가는데 만족하려 했던 나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그래서 작년 한 해 동안 내 애인이 되어줬던 도민호군, 존스씨(도미노피자, 파파존스 피자 -_-)는 멀리하고 다시금 마음에 양식을 채워 넣기로 했다. 그리고 ‘천릿길은 신발 쇼핑부터‘라는 내 평소 소비, 생활행태에 걸맞게 거하게 질러줬다.
지금 쓰는 에세이에 필요하기도 하고 영문학도는 이 정도는 읽어야한다! 라고 우겨서 획득한 민음사전집! 받고나니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그 양에서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풍긴다. 내 방에 있는 책장에는 저게 모두 들어갈 만한 각이 안 나와 저렇게 쌓아뒀는데 꺼내기가 너무 불편해 곧 책장도 하나 찾아봐야 될 것 같다.
리사이징 때문에 제목이 잘 안 보일 것 같지만… 왼쪽은 이미 읽은 책들이고, 오른쪽은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거나 읽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책들, 읽었더라도 뭐라고 하지? graded reader본으로 읽은 책들을 모아 놨다. 이렇게 읽어본 책들을 나눠보고 내가 지금껏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여기는 내가 읽어볼 책들을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쌓아 놨다. 맨 위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내 에세이와도 직결되는 제목이므로 첫 번째가 되었고 [황야의 이리]까지는 헤르만 헤세 빠순이임을 인증하는 순서. 나머지는 그냥 많이 들어본 유명한 제목의 책들을 관심 가는 순으로 대충 쌓은 것.
두 권 이상의 장편들을 아무 의미 없이 모아놓은 줄.
마지막으로는 몇 권 빼고는 이름도 저자도 생소한, 아직까지는 전혀 관심 밖인 책들. 세계 문학 전집 104권에 뽑혔으면 필시 유명하겠지만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책들이 너무 많아서 당황스럽다. 그렇지만 모두 읽어볼 수 있길!
이건 학교 필독도서. 문과 쟁이 집안에서 태어나 문과만을 공부해온 내게 과학 서적들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 질러놓은 이상 죽 사서 개 주는 꼴이 되지 않도록 모두 열심히 읽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