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p.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
...자신의 삶을 실패라 규정한 다음에는 다른 어떤 것도 그 실패만큼 심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영감은 오직 실패한 자신에게만 몰두했다. 그리고 자신의 실패에만. 영감이 실패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어렴풋하게나마 하게 된 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 P-1

78p. «밥 한번 먹어요»
...그 형 말이 그랬다. 순금을 자꾸 보다 보면 홀려. 다이아몬드나 루비 같은 것도 많이 만져봤지만 금은 달라.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금가락지 같은 거 말고. 그냥 금. 어떤 형태로 고정되기 전의 순금 그대로. 그런 여자가 생기면 꽉 잡아야 돼. 형은 그렇게 말하고 내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 P-1

109~110p. «무슈 파비용의 굴욕»
...제 영혼에 각인된 테루아가 있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영혼에 각자의 테루아를 새기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저 또한 그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저 역시 예기치 못하게 여기까지 흘러온 걸요. 그들이 자신들의 굴욕에 무감해져왔듯 저 또한 제가 겪은 굴욕에 익숙해지기까지 했지요. 게다가 와인으로서는 치명적이게도 저는 본성을 잃어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변질된 정체성으로 더 이상 무엇을 고수할 수 있을까요. 저는 타협이 왜 합리적인지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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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무언가를 체험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것을 상상할 수는 없다. 난 녹색의 밤에 하얗게 빛나는 모래벌판 끝 지평선을 본다. 여기서부터 30킬로미터는 됨 직하다. 어째서 거기 탐피코 방향에서 내세가 시작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난 탐피코를 알고 있다. 순전히 상상으로 인해 불안해하거나 순전히 불안으로 인해 환상적으로 되는 것, 곧 신비주의를 난 거부한다. - P-1

...내 생각에, 헤르베르트는 내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데 동료로서 상처를 받은 것 같았지만, 뭘 믿기엔 너무 더웠다. 아니면 헤르베르트처럼 아무거나 믿으면 될 노릇이었다. - P-1

..그녀는 흐느끼면서 두 주먹으로 나를 때리고, 난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그녀가 그걸 좋아하니깐. - P-1

...배는 항해를 계속하고, 엔진은 밤이고 낮이고 돌아간다. 엔진 소리를 듣고 느끼며 쉼 없이 나아가지만 움직이는 건 해와 달뿐이다. 어쩌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도 환영일지 모른다. 우리 배가 아래위로 피칭하면 파도가 갈라진다. 끝없는 수평선. 사람들은 원반 가운데 마치 고정된 것처럼 보이고 물결만 미끄러질 뿐이다. 시속 몇 노트로 주행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상당히 빠른 속도일 텐데,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 나이만 먹어 갈 뿐! - P-1

..혼자라서 내가 슬플 거라는 그 애의 추측은 내 기분을 망쳤다. 난 혼자서 여행하는 데 익숙하다. 제대로 된 모든 남자가 그렇듯 난 일과 더불어 살아간다. 반대로, 난 다른 것을 원하지도 않을뿐더러 혼자 사는 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남자가 살아가는 유일한 상태 아닐까. 말할 필요도 없이 혼자 깨어나는 걸 난 즐긴다. 그걸 이해하는 여자가 있겠는가? 잘 잤느냐는 질문부터 나를 불쾌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난 생각에서 이미 앞서 나가고 앞일을 생각하는 데 익숙해 뒤돌아보지 않고 계획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녁에 하는 다정한 애무는 뭐 괜찮지만 아침 애무는 견딜 수 없고, 한 여자와 사나흘 이상 보내는 건 솔직히 말해 나로서는 늘 위선의 시작이다. 아침에 감정이라니, 그걸 참아 낼 남자는 없다. 차라리 설거지가 낫겠다! - P-1

...신이 전염병 같은 일을 만든 거고 우리는 신에게서 전염병을 빼앗았다. 이제 우리는 신에게서 번식도 뺏어야 한다.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 반대로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스스로 결정권을 가진 인간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전염병을 전쟁으로 대체할 것이다.... - P-1

...자베트는 내가 진열품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는 걸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단지 서른 살이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무한하고 순진한 신뢰를 보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도 존경하는 마음이 없었다. 존경을 기대하다니, 난 마음이 울적했다. 내 경험에 대해 말할라치면 자베트는 귀 기울여 들었지만 노인네 말 듣듯이 했다. 말을 끊는 법도 없고 예의를 지키지만, 믿지도 않았고 열광하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내가 벌써 얘기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려고 이야기하는 도중에 선수를 치며 말을 끊는 정도였다. 그러면 난 부끄러웠다.... - P-1

..난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느껴야만 한다고 말할 때면 견딜 수가 없다. 그러면 말하는 대상을 보고 있으면서도 나 자신이 장님처럼 느껴진다. - P-1

..난 그 애가 움직일 수 없게 양손으로 머리를 잡았다, 강아지 머리를 잡듯이. 그 애가 목덜미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었다. 내 손은 나사 바이스처럼 단단했다. 그 애가 눈을 감았다. 나는 키스하지 않았다. 그냥 머리를 붙잡고만 있었다. 마치 꽃병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가볍고 부서지기 쉬운, 그러다가 점점 무거워지는 꽃병. - P-1

..난 자살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다고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바뀌느냐 말이다. 이 시간, 내가 원한 건 아예 내 존재가 사라지는 거였다! - P-1

...그녀는 여자가 남자에게 이해받으려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그녀 말로는) 여자를 비밀스러운 존재로 원하는데, 자신의 몰이해에 열광하고 흥분하기 위해서란다. 한나에 따르면, 남자는 오직 자기 말만 듣기 때문에 남자한테 이해받기를 원하는 여자의 삶이란 망가질 수밖에 없다. 한나에 따르면 그렇다. 남자는 자신을 세상의 주인으로 여기는데, 여자는 단지 남자의 거울일 뿐이라는 거다. 주인은 굳이 하인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 P-1

...나의 오류는 우리 기술자들이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거다. 말 그대로 옮기자면, "넌 삶을 형상이 아니라 단순한 덧셈으로 다룬다"는 거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관계도 설정하지 못하고, 그 결과 시간에 대한 관계도 없다. 삶이란 시간 속의 형상이라는 거다. 자기가 아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없다고 한나도 인정한다. 삶은 기술로 정복할 수 있는 질료가 아니라고 한다. 자베트와 관련한 나의 오류란 반복이다. 다시 말해, 나이가 중요하지 않은 듯이, 그리하여 자연에 역행해서 내가 행동했다는 거다. 계속 더하기하면서, 말하자면 우리 자식과 결혼하면서 우리 나이를 지양할 수는 없는 거라고. - P-1

..이날은 뭘 해야 할지, 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상한 날이었다. 나 자신조차 몰라봤고 그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오후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파랗고 힘겨운 날이지만 아름답고 무한했다. 그러다가 결국 저녁에 다시 프라도 담에 앉아 눈을 감는다. 내가 아바나에 있노라, 프라도 담에 앉아 있노라, 떠올려 보려 하지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끔찍하다. - P-1

..사후(死後) 조치: 보고서나 편지, 작은 노트와 같은 내 삶의 모든 증거는 폐기할 것. 하나도 맞지 않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빛 속에 있는 것. 어딘가에서 (최근에 만난 코린트의 노인처럼!) 나귀를 모는 거야말로 우리의 일이지! 금잔화, 아스팔트, 바다 위를 비추는 빛 속에서 우리 자신이 스러질 것임을 알면서도 그 빛을 견뎌 내는 것, (노래할 때의 우리 아이처럼) 즐거움을 견뎌 내는 것. 시간을, 혹은 순간 속 영원함을 견뎌 내는 것. 영원함이란 존재했던 것들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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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p.
..그렇다. 정착민과 유목민을 나누는 것은 가짜 양자택일이다. 왜냐하면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여정이며, 머묾도 그 여정을 구성하는 정서·사회·지리·정치적 기착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결코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삶은 불안하고, 발을 딛고 선 땅은 흔들린다"는 말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 위를 걷는 존재다.... - P-1

12p.
..페렉은 "산다는 것, 그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따금 충돌은 가혹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현실의 벽 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울타리는 나를 보호하지 않고 가둬 버린다. 틈새를 찾아 파고들어 가고, 길을 내서 잠입해 들어가며, 현대 시인들의 말처럼 "자리 잡기étre dans la place" 위해 뒷문으로 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주체의 자기 전개는 자리를 옮기는 과정을 수반한다. 자리를 옮기는 일은 곧 자기를 뛰어넘는 일이다. 이는 인종 간 장벽, 유리 천장, 울타리의 논리 등 보이지 않는 구조물과 신호 체계들로 인해 방해받기도 한다. 매끄럽게 진입하고 싶지만 닫힌 문에 부딪히는 것이다. 그러한 공간은 칸칸이 막힌 채 밀봉되어 있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자유로이 옮겨 다닐 수 없다. 그리하여 칸막이와 벽을 부수고 침입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보다 신중한 방식을 원한다면, 문을 개방하는 주문을 배우고, 규칙을 해독해 내고, 그곳을 지배하는 언어의 세계에 입문해야만 한다. - P-1

15p.
...우리는 우리가 머무는 장소에 이미 익숙하다. 그곳에 자신을 맞추었고 순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착한 삶, 정체된 삶에 길들여 있다. 실존은 그곳에 얼어붙었고, 우리는 그것을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실존은 움직임 없는 것이 되며, 우리는 그 항구성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 P-1

16p.
..정서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나 가족 관계는 움직이는 별자리와 같다. 그리하여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벌어지고, 관계가 구성되거나 재구성되고, 서로 의존하거나 거리를 두는 등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따라 상호적인 자리 게임은 끊임없이 갱신된다. 비어 있는 어떤 자리들은 기억의 장소가 된다. 간절히 원하는 어떤 자리가 있다면, 우리는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리의 문제는 되갚음, 보상, 화해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리의 공백이 고통의 원천이 되는 관계, 타인이나 자기 자신, 또는 구멍 난 역사와의 관계에서 말이다. 우리가 언제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백에 기록하기도 한다. 본문과 나란히 가장자리에 기록된 것은 의미의 개인적인 재전유, 성찰, 권위로부터 거리 두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가장자리에 기록하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로, 언젠가 여백에서만 자신을 주장하던 그 목소리가 텍스트의 심장부를 구성하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 P-1

17p.
...우리는 눈까지 감고 따스한 빛을 즐기기만 할 뿐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내가 이 순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괄호 안에 집어넣은 삽입구와 같은 데 비해, 도마뱀은 자기와의 순수한 일치 속에서 완벽하게 그 자신으로 존재하는 중이다. 빈둥대는 것이 도마뱀의 일이므로Le lézard lézarde.... - P-1

21p.
...라틴어 residere는 산이 무너져 내리고, 파도가 잔잔해지고, 불길이 잦아들고,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묘사할 때도 쓰인다. 그러므로 거주한다는 것은 보다 차분하게 누그러진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운동하는 삶의 격렬함과 충동, 강렬함을 잃어버린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팽이와 같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아주 조금만 이동하는 움직임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는 이처럼 소용돌이치는 에너지의 불안정한 균형 속에서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열망과 운동의 생명력을 결합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 P-1

34p.
..그 정도로 자리가 미리 규정되어 있을 때, 내 실존의 그림이 가장 세세한 윤곽까지 미리 그려져 있을 때, 나를 가시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부재밖에 없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저항하고 자신의 힘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자리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지워 버리거나 사라지는 것이 최후의 방편인 것이다. - P-1

76p.
...내가 다른 자리를 갈망한다면, 그것은 어쩌다 속하게 된 지금의 자리에서 내가 죽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부서진 배처럼 좌초되고 실패를 선고받는다. 편안하지 않다는 느낌, 진정성이 없다는 느낌, 마음 깊은 곳의 불편함은 나로 하여금 다른 지평을 찾게 한다. 내가 노동자, 농민, 장인, 하인이거나 그들의 자식일 뿐이라는 게 부끄러운 이유는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이어받은 열등감 때문이며, 그들이 얻지 못한 성공을 내가 거머쥐기를 바라는 그들의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나일 뿐임을 부끄러워하며 내 "한계"를 의식하게 된다.... - P-1

86p.
...에르노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는 "엑스트라"로서 그곳에 진입한다. 마치 우리의 진짜 삶은 멀리 떨어져 있고, 우리는 일어나는 일들에 진정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부르디외 역시 "우리의 환경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어떤 문화적 사실 앞에서 겪었던 당황함과 무질서"에 대해 설명한다. 이 환경에 속한 척, 이 장면을 사는 척하지만, 내적으로는 거리감을 느끼고 무관심한 것조차 가능하다. 마치 그곳에 충분히 존재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순간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진정으로 살아 내지도 못하며, 현실에 정면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연루되지도 못하는 것처럼. - P-1

89p.
..실제로 우리는 어떤 곳에도 뿌리내리지 않는 것을 강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고정된 자리가 없다는 것, 하나의 사회적 공간에서 다른 사회적 공간으로, 하나의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의 자리에 처함으로써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 역시 하나의 특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온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간격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맹목적으로 승인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모든 형식의 인간 연구에 필요한 비판적 거리를 만들어 준다. 이것이 바로 역사학자 로맹 베르트랑이 매우 분명하게 주장했던 바이다. "안에" 존재하기보다는 "사이에" 존재하기, 안주하지 않고 항상 자리를 바꾸기. 나아가 이런 본성적 "불안"은 어쩌면 인문학의 소명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1

91p.
...이런 식으로 인생에서 놓쳐 버린 것, 실존적 실패, 나쁜 선택, 잘못된 길들은 좌절의 순간을 만들기도 하지만 패주 속에서 나를 구성해 내는 역설적 경험을 가져다주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조품 같은 삶을 산다는 느낌이야말로 새로운 필요에 대한 감각, 실존과 맺는 다른 관계에 대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 P-1

98p.
..불협화음은 사회적 범주와 분류가 뒤섞일 때 나타난다. 내가 올바른 톤으로 올바르게 말하지 않을 때, 관계 속에서 무언가가 "삐걱"일 때, 대화 중에 낯선 음악이 흘러나올 때처럼 말이다. 이러한 불협화음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사회적 궤적이 누설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불협화음은 적응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려 준다. 어쩌면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다.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고 사회적 촌극을 연기하는 것은 너무 값비싼 대가다. 그것은 자리 옮김이 한계에 달하는 지점, 새 자리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지점을 나타낸다. 힘들게 얻은 이 자리를 지탱할 수 없는 순간은 나의 목소리와 말하는 방식에서 들리기도 하고, 몸이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으로 드러나기도한다. - P-1

118p.
..그런데 나는 내적인 삶, 나의 몸 안에서 정말 제자리에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에서 마침내 "내 집"에 있게 되는가? 『모퉁이 푯말』에서 앙리 미쇼는 우리 안의 "자리들"에 대해 질문한다. 내가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머리인가, 다리인가, 뱃속인가? 나는 어떤 흥분이나 노스탤지어, 피로, 권태의 상태로 존재하는가? 어쩌면 "안의 공간"이 있어서 거기서 내가 거주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저의 감각"으로, 감정적 토대로서 나의 존재의 습관을 구성하며,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내 영혼의 형태, 실루엣이라고 할수 있을 내면의 감각을 구성한다.... - P-1

119p.
..내가 쓰지 않는 근육이나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장기가 있는 것처럼, 안의 공간에는 내가 차지하지 않은 백색 지대, 미개척의 영역이 있다. 어떠한 감정적 경험은 나 자신에게 끝내 낯선 것으로 남기도 한다. 분노나 고양, 자부심이나 야망의 모습이 추상으로 남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들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 대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말을 거는 저 사람이 거주하는 보이지 않는 장소에 대해 내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어쩌면 타인은 나에게 이 거리만큼 떨어진 채 "얼굴을 마주한 수수께끼"로 남도록 선고받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 P-1

124p.
.."매일 아침 같은 현존, 같은 상처가 나를 기다린다. 내 눈앞에 버티는 거울이 비추는 이미지를 나는 피할 수가 없다. 초췌한 얼굴, 구부정한 어깨, 근시인 눈, 머리카락은 남아 있지 않고, 정말이지 아름다운 데라고는 없다. 이 흉한 껍데기,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새장 속에 갇힌 채 나는 나를 끌고 다니며 나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 격자를 통해 말하고, 바라보고, 바라봄을 당해야 한다. 나는 이 피부 속에 고여 있다." - P-1

135p.
.."부모 두 사람, 가계 두 개를 가졌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 반복과 단절 사이에서 새로운 모티프가 그려지고 새로운 조합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가 다시 분배되는 것이다. 게임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각자에게는 버릇없음의 몫이 있다. 항해의 균형을 잡기 위한 약간의 밸러스트. 사물에 관한 다른 시선. 가족 신화의 변형. 소금 한 알을 추가하기. 한 걸음 물러서기. 관점 바꾸기." - P-1

141p.
..그러나 가계의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 하나에 자신을 접목한 것처럼 자신을 혈통 안에서 인식하고 그 대리인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누델만은 이처럼 "다른 삶, 다른 정서"를 떠안는 방식에서 자기중심성이 반영되어 있음을 간파하고, 마치 과거의 실존을 반복하듯 조상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특질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조상들의 삶은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것은 위안인가, 변명인가? 그러한 연결은 소속에 대한 욕망, 고독과 새로운 것에 대한 공포로 인해 억지로 만들어지고 과장된 것은 아닌가? 그러므로 가족의 과거라는 지원 없이 자신이 될 위험을 감수하는 것, 자꾸만 과거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기만을 피하는 것은 주체의 진정성과 자율성을 위한 조건이다. 나아가 그것은 주체가 숨을 쉴 수 있는 조건이다. 계보학의 논리는 먼지 쌓인 낡은 종이뭉치처럼 우리를 질식시킨다. "조상의 정체성을 떠맡는" 것, 그것은 "자신의 기억을 가족 내러티브로 축소"하는 것이다. 나의 자리는 내가 위치한 가계의 가지 하나로 완벽히 환원되지 않는다. - P-1

152p.
..알파벳 E 없이 책 한 권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면, 부재 투성이의 구멍난 삶이라 해도 그것을 살아 내는 것 역시 가능하다. 모국어에서 가장 필요한 글자 E 없이 책 한 권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 없이도 인생을 전부 살아낼 수 있다. 그 부재가 우리의 문법을 바꾸고 어휘에 그늘을 드리운다 해도 우리는 계속해서 실존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소중한 이들을 잃었을 때 그들 없이 살기 위해서는 E 없이 이야기를 쓰는 데 필요한 것과 같은 광기와 기발함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삶은 그들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 P-1

157~158p.
...갓난아기가 자신을 안아 주는 부모의 팔 덕분에 자의식을 갖게 되는 것처럼, 우리 존재가 구체화되고 실존이 밀도와 현존을 얻게 되는 것도 타인의 손길,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다. 그러한 팔이 없을 때,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애정과 관심을 기대할 수 없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지지대를 선사하는 낯선 이가 나타나 우리로 하여금 부유하는 실존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다가설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머리에 얹은 손, 짧은 한 마디 말은 내면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된다. - P-1

172p.
..누군가는 바닷속으로 삼켜지고, 사막에 버려지고, 수용소에 끌려간다. 그러나 그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군중 한가운데서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 남자들과 여자들, 아이들이 겪어낸 개인적 재앙의 규모가 어떠하든, 그들이 겪은 공포에 조금도 영향받지 않은 채 제자리를 지키는 무관심한 세상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아이러니이리라. 세계는 끄떡없는 안정성으로 그들의 고통을 모욕한다. 이처럼 동요 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세상보다는 그들의 내적 혼란과 조응하는 폐허가 차라리 나을 것이다. 실제로 안데르스는 1953년 6월 19일 다음과 같은 기묘한 기록을 남긴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오늘날 나를 혼란스럽고 두렵게 하는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은 것, 파괴되지 않고 제자리에 남아 있는 것들이다." - P-1

173~174p.
..이름 모를 이는 말한다. 어떤 자리가 우리에게 꼭 맞다면, 우리는 거기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거라고.
.."올바른 아내를 선택하는 남자는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를 잃게 된다. 직업을 "찾은" 사람은 그 안에 자신을 가둘 뿐이다. 자신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건반으로만 연주하는 사람은 제 손가락으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 P-1

183p.
...호텔에서 지내면 매일 아침 빈손으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 거의 모든 애착에서 초연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호텔에는 역사가 없으므로 여행 가방도 없이 도착한 사람들은 각자 익명성과 가벼움 속에서 자기만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다.... - P-1

184~185p.
..또한 우리가 꿈꾸는 제자리가 독점적 소유물이나 고정된 공간이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루소가 말했듯 위험은 자신의 영토에 담을 치는 데 있다. 자리의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이며, 그것은 소유의 문제와는 별개다. 우리의 공간은 내부에 있다. 우리는 공간을 내부로 옮기는 존재들이다. 이 공간은 가소성을 지닌 채 살아 있으며, 그렇기에 다른 장소들을 향한 꿈으로부터 양분을 공급받지 못할 때 축소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중립적인 지대, 공터, 아무도 손대지 않은 공간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자리를 창조할 수 있다. - P-1

198~199p.
..살기 위해, 자유롭다고 믿기 위해, 우리에게는 여러 공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나를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나로 존재하는 일의 피로감과 오랜 습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다른 장소, 지나가는 과도기적 장소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장소에도 속하지 않고 닻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자리를 소망하지 않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기만의 장소가 없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결핍이 아니라 자유로서 경험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단 하나의 자리만 할당받는 것은 최악의 형벌이 아닐까? 몽테뉴에 따르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자리는 바로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우리를 변모시키는 새로운 자리에서 나로 존재하는 일의 수고로움을 기쁘게 내려놓고 안도하지 않는가? 우리의 존재는 정착, 정주, 소유가 아니라 도약하는 충동, 운동에 있다. - P-1

200p.
..그러나 나는 내 안에 타인을 위한 자리, 그들의 경험과 사고방식과 감정을 위한 자리를 남겨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베르그송이 "마음의 예의"라고 부른 것의 심원한 의미이며, 이는 상대에게 모든 자리를 내어 주는 재량이자 겸허함이다. 이처럼 타인의 자리에서 그의 관점을 취해 보는 것은 단순한 관대함의 제스처를 넘어선다. 우리는 멀리 있는 바깥의 존재이길 그치고 가깝게 감지할 수 있게 된 타인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배가시키고 수천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곧 나의 삶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타인의 자리에 서서 그를 더 잘 이해하고, 지지하고, 돌볼 수 있게 된다. 내가 그 자리에서 보았기 때문에, 혹은 보다 정확히 내가 그 자리를 내면화했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일인칭으로 실험해 본 모든 자리에 그의 자리가 덧붙여지기 때문에, 그것은 나를 침범하거나 어지럽히기보다는 풍요롭게 한다.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현실의 사람이건 허구의 사람이건, 타인의 삶이 우리 안에서 제자리를 차지하면, 이러한 동일시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은 보다 깊이를 갖는다. - P-1

202p.
...어떤 새들은 나무 주위를 선회하며 커다란 원을 그리다 비로소 그곳에 착지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어떤 장소에 스며들어 갈 수 있는 틈이 있는지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문으로만 들어가지 않는다. 늘 환영받는 존재인 것도 아니다. 그 공간을 둘러보고, 거기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보고, 소유의 개념에서 벗어나 그곳을 제 것으로 만들어 보자. 이 장소가 내 소유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통해 존재의 잠재력을 발휘해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따라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무언가 말해 주는 장소는 나를 이곳으로까지 이끈 가시적이거나 은밀한 지리적·사회적·감정적 여정을 담는 곳, 정체성 형성 과정의 흔적을 보존하는 자리일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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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p.
..이 옷의 역할은 ‘이런 옷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하고 알려주는 것이었다고 깨닫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그 옷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너를 산 순간 두근거리게 해줘서 고마워. 내게 어떤 옷이 어울리지 않는지를 알게 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하고 떠나보내면 된다. - P-1

45p.
..수많은 집의 책장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책이란 주인의 소망 그 자체라고.
..‘먹으면 안 된다‘ ‘사면 안 된다‘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공포가 줄지어 있는 책장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이런 걸 해보고 싶어‘ 하는 바람이 가득한 책장도 있다.
..말하자면 이 서재는 모리카와 씨에게 ‘염원의 숲‘이었다. 그러니 버리기가 어려웠겠지. - P-1

51p.
..정리를 하다 보면 이런 식으로 ‘과거의 베스트셀러‘들이 한꺼번에 버려지는 시기가 있다. 꿈에서 깨어난 듯 설렘이 일제히 끝나고 집집마다 똑같은 책들이 졸업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 P-1

120p.
..가방을, 수첩을, 그리고 양말을 새것으로 바꿀 때마다 나는 ‘잘 가!‘ ‘안녕!‘ 하고 인사를 나누면서 물건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건과 주인 사이에 놓인 ‘기억의 영혼‘ 같은 것이 내게 말을 거는 거다. 사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결코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예로부터 무수히 많은 신을 숭상했고 물건에 깃든 혼을 두려워했다. 그 목소리는 분명 누구의 귀에도 전해진다. 단지 그것을 알아차리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 P-1

126p.
.."괜찮아. 이 찻잔의 역할은 이렇게 할머니가 너를 끌어안을 계기를 만들어주는 거였어. 제 역할을 다 하고 깨졌으니 그걸로 된 거야. 기쁘게 보내주자."
..만나는 물건에도 헤어지는 물건에도 반드시 저마다의 역할이 있어 우리의 삶을 조금씩 바꿔간다. 물건을 대하는 내 태도의 기본은 이 다정한 마녀에게 배운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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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p.
...개인 간 수평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공공성은 불투명하지만 숨이 통한다. 반면 하나의 통일된 제3자를 통해 구축된 공공성은 추상적이면서도 투명하다. 이 제3자는 역사 시기마다 다양한 형태와 효과로 나타난다. 예컨대 고도로 종교화된 사회에서는 제3자가 신일 수 있으며, 모든 개인은 신에게 충성하고 책임을 진다. 이 제3자는 화폐일 수도 있다. 짐멜이 분석한 것처럼, 화폐는 모든 것을 정량화하고 모든 사람이 통일된 합리성에 따라 계산하고 예측하도록 만든다. 또한 이 제3자는 상품일 수도 있다. 마르크스가 명확히 밝혔듯이, 상품 생산과 거래의 논리는 다양한 사회적 차이를 제거하고,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상품의 속성에 종속시킨다. 이 제3자는 정치적 권위일 수도 있다. 벤담이 설계한 원형 감옥은 고도로 투명하다. 모든 죄수는 감옥 중앙의 감시탑에 있는 병사를 핵심 기준점, 즉 만능에 가까운 유일한 제3자로 삼고, 죄수끼리는 소통하지 않는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부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개인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전체의 발전을 위해 존재하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사생활도, 실질적 차이나 실질적 연결도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전히 투명해진다. - P-1

34~35p.
..지방의 개천용의 낯섦은 사회생활의 ‘투명하지만 숨 막히는‘ 특성을 반영한다. 그들 삶의 투명성은 성장 과정과 성적이 체제가 정한 기준과 기대에 부합함으로써 의문의 여지 없이 인정받은 데서 드러난다. 반면 그들이 느끼는 숨 막힘은 개인의 고뇌, 망설임, 괴로움을 여유 있게 드러낼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인정‘을 받았지만, ‘관심‘이 부족했다. 인정은 시스템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한 사람의 성과를 평가하고 보상이나 처벌을 결정하는 것이다. 관심은 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이해하는 것이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 고민, 갈등, 그리고 역사를 발견하는 행위다. 이는 시험이나 판단, 보상과 처벌을 수반하지 않는다. - P-1

38p.
...모두가 비슷하다는 인식은 호기심을 잃게 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흥미마저 사라지게 한다. 모두가 같다는 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비슷하다는 의미이며 언제든 경쟁과 갈등이 일어날 수 있음을 뜻한다. 모두가 너무 닮았기에 상대를 파헤치려 하면 자신의 상처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모두가 똑같기 때문에 상대방의 고생을 특별히 동정할 가치가 없고, 상대방의 성공도 특별히 축하할 가치가 없으며, 일에 대한 열정도 의심스러울 뿐이다.... - P-1

44p.
..안생식 사고는 개방적이고 끊임없이 다양한 경험과 생각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교정하도록 한다. 이러한 사고의 목적은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지 않고, 심지어 명확한 방향조차 없다. 그러나 그 단계마다 경험에 더 풍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을 현실에 더 가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사고 과정은 물속을 헤엄치거나 숲속을 거니는 것과 같아, 감정적·신체적 공명을 일으킨다. 마치 홀륭한 예술과 철학 작품처럼 사고를 경험 속에 뿌리내리게 하고, 경험을 사고 속에서 자라게 하며, 우리를 우리 환경 속에 깊이 자리 잡게 한다. 사고와 경험은 덩굴처럼 얽혀 우리 몸을 단단히 감싼다. 하지만 안생식 사고는 개인이 일방적으로 환경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보수와 진취를 결합해야 한다. 보수는 현실 조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형성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취란 이를 바탕으로 현 상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새롭게 이해하고, 기존 조건을 충분히 창의적으로 활용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심지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진취적 면모가 없다면 그것은 사고가 아니다. ‘비사고‘ 혹은 ‘사고 거부‘의 평온한 나날과 ‘소확행‘은 오늘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 P-1

58p.
..하지만 샤오둥의 그림은 제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가 말하거나 쓰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가 쓰는 글은 모두 매우 직설적이며, 직접 사건을 기록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감정조차 서정적이지 않은데, 제가 이해하는 서정적이라 함은 감정을 비교적 응고시킨 뒤 다시 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그러지 않고 감정과 행동을 함께 드러냅니다. 그의 기록은 매우 직설적이지만 저는 그의 한 글자, 한 문장마다 무게와 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그에게 물어야 합니다. - P-1

69~70p.
..확장해서 말하면, 지금 우리 삶은 너무 편리한데 이 편리함은 성실함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편리하면 다양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게 지나치면 야만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것이 교류 없이, 스스로를 교정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면, 그게 바로 야만이 되는 거죠. - P-1

74p.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먼저 아주 구체적인 사람을 보고, 그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다음 분류적 사고방식을 통해 지도를 도구 삼아 그에게 좌표를 부여하되,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는 겁니다. 이 감정은 어느 정도 개인의 생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느 정도는 일반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표준화된 분류 방법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분류 자체는 각자 스스로가 생활을 관찰하면서 얻은 이해에서 나와야 합니다. - P-1

82p.
...사고를 거치지 않은 생활은 살 만한 가치가 없고, 사고에 지나치게 몰두한 생활은 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변증법적 관계입니다. - P-1

137p.
...우리는 자주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듣지만 사실 그것들도 직접적인 의미가 있진 않잖아요.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일종의 작은 소설을 듣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의 작은 이야기를 듣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능과 의미를 따지자면, 그런 인생의 경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P-1

140~141p.
...일부 학자는 두려움이 일종의 멤버십처럼 작동한다고 봅니다. 특정 사회 계층에 도달하거나 그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만이 두려움을 표현할 자격을 가지며, 그 계층의 구성원들은 서로 두려움을 공유하고 전달하면서 특정 두려움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강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한다고 말합니다. 앞서 언급한 중산층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범죄에 대한 걱정을 계속해서 표현함으로써 단지 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보안 요원 수를 늘리는 등의 조치를 끌어냅니다. 결국 이는 자신의 신체와 재산상의 안전 및 부동산 가치 보호라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이 됩니다. 반면 하층 사람들은 대개 두려움을 표현할 자격이 없거나, 설사 두려움을 표현하더라도 그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 P-1

179p.
...즉 그들에게 다큐멘터리나 긴 영상은 별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각자 더 긴박한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처지가 다르니까요. 예를 들어 저는 뤄푸싱이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것을 크게 지지했습니다. 그에게 우리와 함께 배우거나, 예술가가 되거나, 다큐멘터리를 만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과제가 있고, 자기만의 긴박감이 있는 거예요. - P-1

186p.
..충칭에 돌아가 보니, 투완土灣 방직 노동자 구역에 많은 실업자가 생겼습니다. 우리 친척 한 집도 대여섯 식구가 한 공장에서 동시에 실직했죠. 이 일은 제게 큰 충격이었고, 제 지식과 현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제 직접 경험과 지식 사이에 단절이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제 지식으로는 이 일을 설명할 수 없었기에 반드시 알아야겠다 싶었죠. 나중에 깨달은 것은, 지식 생산은 이미 있는 지식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단절 지점에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에 가서 판단하고 느끼고자 했습니다. - P-1

187p.
...많은 젊은 친구가, 저 자신을 포함해서, 흔히 겪는 큰 문제 중 하나는 이 단절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머릿속이 몇 마디 말이나 이른바 이론으로 가득 차 있어 직접 경험이 충격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직접 경험이 자신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계관이 조금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눈으로 본 것을 빠르게 기존 인식에 맞게 길들입니다. 이 일은 매우 쉽게 일어납니다. 모든 강력하고 주류적인 지식과 담론이 계속 힘을 발휘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있는 담론 체계로 우리는 쉽게 삶이 평온하다고 느끼니까요.... - P-1

196p.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분석하지 않고,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보지 않는 것입니다. 생활의 가장 큰 의미는 대부분의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간다는 데 있습니다. 의미는 오랜 시간의 축적을 통해, 여러 원인을 거쳐 마침내 나타난 결과에서 드러납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의미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의미를 부여하면 그에 대한 이해를 방해합니다. - P-1

200p.
...직관적 판단은 많이 보고 경험하면서 생겨납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많이 보고,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분석을 줄이고 서술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야 사물을 명확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좋은 지식은 결국 글로 표현될 때는 서술이 되고, 영상으로 표현될 때는 기록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1

235p.
...사람의 노동은 매우 중요하며, 전체 수도, 전기, 하수도 시스템의 작동을 유지하게 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이런 중요한 인공물의 기능을 오늘날 흔히 쓰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접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접히면 매우 중요한 사람들의 존재와 노동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설계가 잘된 건물일수록 접힘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복잡하고 지저분한 것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게 자연스러우며 깨끗한 듯하기 때문입니다. 자연 화원은 이 접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펼침‘입니다. 아까 말씀하신 등나무나 대나무처럼 계속 자라고 펼쳐집니다. 펼쳐지는 과정에서 꽃의 힘이 매일 바닥을 청소하는 노동만큼 강하진 않을 수 있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접힘은 사람의 노동 흔적을 없애고 결과만 보이게 하며, 노동 과정은 숨겨집니다. 반면 화원을 만들면 자신이 펼쳐가는 과정을 볼 수 있죠. 꽃은 내일 바로 피지 않을 수도 있고, 반드시 피는 것도 아니며,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과정 자체는 존재합니다. 사람의 주의력은 접힌 상태와 펼쳐진 상태에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 P-1

251p.
..많은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구매형 노동 분업 제도 아래에서는 자신이 하는 일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을 볼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노력도 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아예 보고 싶어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부근‘은 매우 흐릿해집니다. 때로 이런 흐릿함은 일종의 심리적 자기방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내면이 접히는 과정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데, 그 접힘을 펼쳐보면 아프고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차라리 보지 않기를 선택합니다. - P-1

271p.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사육사가 동물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단계 중 하나는 개체화입니다. 그가 느끼는 진정한 감정과 상호작용은 한 종 전체가 아니라, 반드시 특정 개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사육사가 한 무리의 코뿔새를 구별하는 능력은 그저 오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결과가 아닙니다. 이는 적극적인 개체화의 추구일 수 있으며, 개체를 인식하고 감정을 느끼는 과정에서 더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개체화가 없으면 집단 전체와 정서적 관계를 형성할 수 없지요. - P-1

316p.
..사람들은 먼 곳에 있는, 익명인 완전한 낯선 사람에게는 기꺼이 털어놓습니다. ‘털어놓음‘은 극적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상대방은 당신의 상황이 어떤지,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오직 그 순간의 고립된 감정만 봅니다. 분노, 수치, 또는 믿기 어려움과 같은 감정이요. 이런 감정은 확대되어 사건 전체가 매우 극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과의 교류는 다릅니다. 같은 방식으로 사건을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은 지루해할 수도 있고, 사건이 그리 극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당신도 당시 잘못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과 깊이 있는 교류를 하려면 이야기를 더 세밀하게 하고, 반성적이어야 합니다. - P-1

324p.
..오늘날에는 많은 일이 단기적인 유효성을 추구하고, 의미를 겉으로 드러내야 하며,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의미를 아주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말로 먼저 의미를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일도 있다고 보는데, 그럴 때는 일단 실행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 그것은 지속된다고 봅니다. 이런 일은 생활 속의 희망을 느끼게 하고 조용하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무언가가 있음을 체감하게 합니다. 이것이 제가 느낀 매우 직관적인 감각입니다. - P-1

338~339p.
..이 얘기는 허황되거나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사회의 혁명적 변화는 종종 특정 감각이나 감정이 정당화될 때 일어나곤 합니다. 지금 우리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200년 전과 완전히 다릅니다. 아이들은 기분이 좋지 않으면 떼를 씁니다. 오늘날 아이의 ‘떼‘는 아주 강한 정당성을 가지며, 어른들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과거에는 어땠죠? 아이의 ‘떼‘는 관리 대상이고, 이 아이를 ‘착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아이의 역할이 달라진 덕분에 아동심리학이나 아동교육학 같은 학문이 생겨난 것이죠. 이는 곧 우리가 생명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금 노인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사회에서 노인은 권위를 가진 존재였지만 그 권위 때문에 노인의 내면, 욕망, 감정 등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질서와 존엄, 지혜, 나아가 사회 전체를 대표해 우리를 통제하는 상징이었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노인도 연약하며 다양한 감정과 요구를 가진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아직은 진행형이지만 이제 우리는 점차 노인의 감정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노인의 감정과 인식의 정당성이 널리 인정받게 된 것은 사회 변화 과정에서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사실 모두가 예전보다 더 ‘유리 멘탈‘이 된 셈입니다. ‘유리 멘탈‘이 쉽게 상처받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상처받는 이유를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고 분석할지 아는 것은, 적어도 우리를 성찰하게 만드는 매우 직접적인 원동력이 됩니다. - P-1

344p.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하나의 경향을 보는 것 같습니다. 본래 관계적이고 공명적이었던 특성이 점점 더 개인적이고 내적인 특성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인식할 때 매력 같은 자극적 특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품성으로 판단합니다. 이 사람은 뛰어난가, 이 사람은 성실한가처럼요. 만약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의 생각을 반영한다면, 우리는 매력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매력이 있는 것인가"라는 인식 방식 자체도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1

394p.
...그렇다면 ‘쿨함‘이란 무엇인가? 쿨함은 결단할 용기와 자신만의 독특한 결단을 갖는 것입니다. 류샤오둥은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이 한 사람에 대해 내리는 판단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바꾸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의 이런 결단은 충동적 반응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는 특히 눈이나 얼굴이 아닌 몸을 보고, 근육과 자세를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그가 보려는 것은 오랜 생활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 몸입니다. ‘쿨함‘은 우회하지 않고, 꾸미지 않으며, 가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류샤오둥의 표현을 빌리면 ‘간사하지 않고‘ ‘성실한‘ 것입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특히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을 그릴 때 반복해서 그리고 다시 고칩니다. 자신의 그림이 실물과 닮지 않으면 허용하지 않습니다. 닮지 않았다는 것은 곧 충실하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의 예술적 방법과 관찰 방식은 곧 그 사람의 성격이 됩니다.
..그는 ‘견식見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견식 없는 쿨함은 바보짓이다. 따라서 그는 반드시 현장에 있어야 하며, 상대방의 오랜 생활의 경험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힘 있는 직접성은 역사적 맥락과 현장 상황에 대한 관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역사와 현장에 대한 감각이 곧 그가 말하는 ‘견식‘을 구성합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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