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p. «소년들은 자라서 어디로 가나»
...자신의 삶을 실패라 규정한 다음에는 다른 어떤 것도 그 실패만큼 심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영감은 오직 실패한 자신에게만 몰두했다. 그리고 자신의 실패에만. 영감이 실패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어렴풋하게나마 하게 된 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 P-1

78p. «밥 한번 먹어요»
...그 형 말이 그랬다. 순금을 자꾸 보다 보면 홀려. 다이아몬드나 루비 같은 것도 많이 만져봤지만 금은 달라.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금가락지 같은 거 말고. 그냥 금. 어떤 형태로 고정되기 전의 순금 그대로. 그런 여자가 생기면 꽉 잡아야 돼. 형은 그렇게 말하고 내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 P-1

109~110p. «무슈 파비용의 굴욕»
...제 영혼에 각인된 테루아가 있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영혼에 각자의 테루아를 새기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저 또한 그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저 역시 예기치 못하게 여기까지 흘러온 걸요. 그들이 자신들의 굴욕에 무감해져왔듯 저 또한 제가 겪은 굴욕에 익숙해지기까지 했지요. 게다가 와인으로서는 치명적이게도 저는 본성을 잃어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변질된 정체성으로 더 이상 무엇을 고수할 수 있을까요. 저는 타협이 왜 합리적인지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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