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p.
...At eighteen I had no proper understanding of the ways that constituted encroachment. I had a feeling for them, an intuition, a sense of repugnance for some situations and some people, but I did not know intuition and repugnance counted, did not know I had a right not to like, not to have to put up with, anybody and everybody coming near.... - P-1

18p.
...With me too, he was uncalculated, transparent, free from deception, always was what he was, with none of that coolness, that withholding, that design, those hurtful, sometimes clever, always mean, manipulations. No conniving. No games-playing. He didn‘t do it, didn‘t care for it, had no interest in it.... - P-1

70~71p.
...It was the convention not to admit it, not to accept detail for this type of detail would mean choice and choice would mean responsibility and what if we failed in our responsibility? Failed too, in the interrogation of the consequence of seeing more than we could cope with? Worse, what if it was nice, whatever it was, and we liked it, got used to it, were cheered up by it, came to rely upon it, only for it to go away, or be wrenched away, never to come back again? Better not to have had it in the first place was the prevailing feeling, and that was why blue was the colour for our sky to be. Teacher though, wasn‘t leaving it at that. - P-1

87p.
...It was clear though, they served some purpose, some sense of ‘See! Look at that. What‘s the point? There‘s no point,‘ thus confirming for him, solacing him even, in his despair, that as things stood, as always they‘d stood, there couldn‘t be triumphs and overcomings because overcomings were fancies and triumphs were daydreams, effort and renewed effort a vain waste of time.... - P-1

90p.
...As for those living in the dark, long attuned to the safeness of the dark, this wasn‘t wee buns for them either. What if we accept these points of light, their translucence, their brightness; what if we let ourselves enjoy this, stop fearing it, get used to it; what if we come to believe in it, to expect it, to be impressed upon by it; what if we take hope and forgo our ancient heritage and instead, and infused, begin to entrain with it, with ourselves then to radiate it; what if we do that, get educated up to that, and then, just like that, the light goes off or is snatched away? This was why you didn‘t get many shining people in environments overwhelmingly consisting of fear and of sorrow.... - P-1

144p.
...It seemed, and again I liked this, that this exchange was taking place in that ‘How can we get this done?‘ manner, that same manner of maybe-boyfriend, also of teacher, not the prevalent ‘What‘s the point, nothing is of use, it‘s not gonna make any difference is it?‘ and this surprised me.... - P-1

164p.
...There was too much of risk, and besides, they were challenging the status quo while I was trying to go under the radar of the status quo.... - P-1

174~175p.
..So ‘I don‘t know‘ was my three-syllable defence in response to the questions. With it successfully I refused to be evoked, drawn out, shocked into revelation. Instead I minimalised, withheld, subverted thinking, dropped all interaction surplus to requirement which meant they got no public content, no symbolic content, no full-bodiedness, no bloodedness, no passion of the moment, no turn of plot, no sad shade, no angry shade, no panicked shade, no location of anything. Just me, downplayed. Just me, devoid. Just me, uncommingled.... - P-1

231p.
...Here, I‘d contemplate the floor – the light dust on it, the odd hair on it, the specks of my recent emesis on it – and I‘d consider the only true things in this world were these basic conditions of floor, dust and so on and that they, and only they, could sustain me forever. Sometimes though, I‘d change my mind and it would become the panel of the bath, or the toilet bowl or the friendly bathroom wall against which occasionally I‘d find myself, that I‘d consider just as dependable of sustaining me forever too. - P-1

264p.
‘...She said it was impossible, that it was perilous to focus on good things when there were bad things, all these bad things, she said, that could not be forgot. She said old dark things as well as new dark things had to be remembered, had to be acknowledged because otherwise everything that had gone before would have been in vain....‘ - P-1

269p.
...Yet they hadn‘t married because third brother had gone and done the usual unquestioned, unconscious, self-protective thing. Being loved back by the person he loved to the point where he couldn‘t cope anymore with the vulnerable reciprocity of giving and receiving, he ended the relationship to get it over with before he lost it, before it was snatched from him, either by fate or by somebody else.... - P-1

305p.
...Nevertheless, the news of this Milkman name unsettled people; it cheated them, frightened them and there seemed no way round a feeling of embarrassment either. When considered a pseudonym, some codename, ‘the milkman‘ had possessed mystique, intrigue, theatrical possibility. Once out of symbolism, however, once into the everyday, the banal, into any old Tom, Dick and Harryness, any respect it had garnered as the cognomen of a high-cadre paramilitary activist was undercut immediately and, just as immediately, fell away.... - P-1

335p.
...I stressed that, owing to a reversal of the lifeforce inside her, she was blossoming, losing that ‘life‘s over, I‘m finished with life, past it, just eking out what‘s left‘ older person‘s perspective that usually she went about in and that I hadn‘t  noticed she‘d gone about in until of late when she‘d stopped going about in it.... - P-1

346~347p.
... According to his rulebook – mine too, at least before the predations upon me by the community and by Milkman – the physical and verbal aspects could be the only aspects. That meant that what was not of those trespasses – stalking without touch, hemming-in, taking over, controlling a person with no flesh on flesh, no bone on bone ensuing – could not then be happening. So it came about that of everybody who had heard of the wooing of me by Milkman, third brother-in-law was the only one who, unquestioningly, hadn‘t considered it to have taken place. - P-1

348p.
...As we jumped the tiny hedge because we couldn‘t be bothered with the tiny gate to set off on our running, I inhaled the early evening light and realised this was softening, what others might term a little softening. Then, landing on the pavement in the direction of the parks & reservoirs, I exhaled this light and for a moment, just a moment, I almost nearly laughed.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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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p.
...그러니 역시 그건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 아니라 요한이 지어낸 농담이었는지도 모른다. 요한 같은 젊은 예술가 지망생이 자신의 특수성을 보편적 사실로 퍼트리거나 그렇게 착각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어쨌거나 도이치에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말은 청춘 시절 유희의 상징 같은, 말하자면 마법의 주문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의 주문에 지나치게 기대면 그 효능이 점차 떨어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 P-1

38p.
...도이치의 온갖 생각, 힘, 행위의 소산일 말, 말, 말...... 그러나 그는 지금 그 안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힘, 행위의 태동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일단 언어화된 생각이나 힘이나 행위는 핀으로 꽂아 표본 상자에 가지런히 넣어둔 나비처럼 두 번 다시 날갯짓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 P-1

77p.
...도이치는 각각의 사례를 메모하지는 않았지만 시카리가 방금 말한 명언의 세 가지 유형(요약형, 전승형, 위작형)은 머리에 새겨두었다. 곧바로 기억할 수 있는 이론은 대개 현실의 복잡성으로 인해 오류를 품고 있기는 해도 일단 이론으로서는 뛰어난 경우가 많다. "단순한 것은 항상 허위다. 단순하지 않은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발레리의 말을 굳이 꺼낼 필요도 없다. 도이치의 잼적, 샐러드적 세계관 역시 마찬가지다. - P-1

104p.
..한 인간은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 이는 괴테 만년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괴테는 본인이 천재였으니 한 천재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걸 믿고 싶었을 터다. 하지만 자기 혼자서는 아무리 애써도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래서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다‘로 태세를 바꾸었다. 일테면 셰익스피어에 의해, 또는 바로 아랫세대인 홈볼트에 의해. 전통이라는 거대한 나무에 자신을 접목함으로써 괴테는 자기도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도이치는 괴테라는 인간에게 의지함으로써 비로소 ‘모든 것을 말한‘ 문학적 전통에 접속할 수 있다.... - P-1

117~118p.
"...옛 독일 청년들은 대화 마디마디에 성서를 인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는데, 그건 결국 감정이나 사건이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명시하지. 우리의 사상을 표현하는 데 옛사람들이 엄선한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할 때, 그들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우리보다 더 정교하게 열어서 보여준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야. 거장들은 항상 옛사람의 장점을 이용하는데, 그 점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다네." - P-1

210p.
.."열이 확 받아서 ‘언어 시스템 자체가 인용이야‘라고 쏘아붙였지. ‘보르헤스도 그렇게 말했거든‘ 하고. 그랬더니 쓰즈키가 ‘논쟁에서 권위를 방패로 쓰는 사람은 지성이 아니라 기억력을 쓰는 것에 불과해‘라잖아. ‘다빈치도 그렇게 말했어‘ 하면서. 그럼 사귀는 수밖에 없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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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은 근대 이후에 출현했다. 이는 많은 학자의 일치된 견해기도 하다. 앞서 관광학에 관광의 명확한 정의가 없다고 했는데, 물론 개별 연구에는 참조할 만한 내용이 있다. 그중 하나인 존 어리와 요나스 라르센의 저서 『관광객의 시선』은 "관광객이 된다는 것은 ‘근대’를 몸에 걸치는 행위의 일환"이라고 했다. 여행은 예부터 존재했다. 순례와 모험 모두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관광은 근대 이후 사회에만 존재한다. 2세기 로마 귀족이 유프라테스강으로 ‘관광’을 가거나 15세기 베니스인이 팔레스타인에 ‘관광’을 갔다는 표현은, 비유로 사용할 수는 있겠으나 결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 P-1

...관광은 원래 갈 필요가 없는 장소에 기분에 따라 가서, 볼 필요가 없는 것을 보고,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을 만나는 행위다. 따라서 이는 일부 부유층만이 아니라 중산 계급이나 노동자 계급도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아닌 것에 어느 정도 돈을 쓸 수 있게 된 산업 혁명 이후의, 생산력이 향상된 풍요로운 사회에서만 산업으로 성립한다. - P-1

...관광객은 생활에 필요해 그곳에 들른 것이 아니다. 사야 할 것이나 가야 할 곳이 있지도 않다. 관광객에게는 방문한 곳의 모든 사물이 상품이고 전시물이며, 중립적이고 무위적인, 즉 우연히 시선 안에 들어온 대상이다. 관광객의 시선이란 세계 전체를 파사주=쇼핑몰로 여기는 시선이다. - P-1

..이 책의 문맥에서 말하면 2차 창작은 ‘관광’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특정 작품의 일부를 가져와 원작자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그것도 원작자의 허락 없이 ‘경박하게’ 창작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이는 관광객이 관광지를 방문해 주민이 기대한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일방적으로 만족해 돌아가는 상황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 P-1

...‘재귀성’이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항상 의식하면서 행동을 결정하는 메타적 태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전면화한 사회를 살고 있다. 이 점에서 포스트모던은 전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오히려 더욱 심화된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고 있다. - P-1

...설령 동기가 유치한 환상이라고 해도 한번 체르노빌까지 발걸음을 옮겨 그곳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투어 참가자는 필연적으로 그 사고 이외의 배경 정보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 정보의 다층성 속에서 다시 한번 사고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매년 체르노빌 투어를 통해 노리고 있는 효과다. 나 또한 처음 체르노빌에 갈 때는 유치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고 믿고 있던 장소를 찾아가 그곳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평범하지 않은’ 일이 우연히 그곳에서 일어났다는 ‘운명’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평범함’과 ‘평범하지 않음’ 사이의 왕복 운동이 바로 다크 투어리즘의 근간이다. - P-1

..세계에는 ‘오류’가 있다. 볼테르는 이 인식을 제시하고자 주인공이 세계를 여행하는 소설을 썼다. 나는 여기서 관광이라는 모티프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철학을 본다. - P-1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보편적인 우호를 가져오는 제반 조건"이 될까? 그는 여기서 "방문할 권리"(방문권)를 논한다. 국가 연합에 참가한 국가의 국민은 서로의 국가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지구의 표면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권리에 근거해 서로 교제를 제안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이 갖는 권리"로, 이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 영원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 그리고 칸트에 따르면, 이것이 매우 중요한데, 방문권이란 방문할 권리만을 의미하지 손님으로 환대받을 권리는 포함하지 않는다. "우호의 권리, 즉 외국인의 권한은 그곳 주민과의 교류 시도를 가능케 하는 제반 조건을 넘어서는 것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고 칸트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외국인이 교류를 "시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은 보장되지 않으며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 - P-1

...거꾸로 보면 존엄을 잃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에 자족하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 해도 정신적으로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코제브와 헤겔의 생각이다. 따라서 모든 인류가 그런 자족하는 존재가 되면 인간의 역사는—생물로서의 인류 자체는 존속한다 해도—끝난다. 코제브는 이와 같은 인간관에 따라 2차 대전 후의 세계를 ‘포스트역사’라고 지칭한 것이다. 전후 냉전 상황에 직면해 그는 인류가 나폴레옹 전쟁 이후 본질적으로 어떤 새로운 이념도 발명하지 못했다는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 P-1

..아렌트는 이 대립을 ‘타자’ 또는 ‘공공성’ 유무의 대립과 포갠다. 아렌트에 따르면 활동의 장에는 반드시 ‘타자’가 있다. 청중이 없는 연설은 없으며 봉사 대상과 면식이 없는 봉사자도 없다. 활동의 본질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차이를 인식한 후에 언어적으로 소통하는 데 있으므로 반드시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이는 공공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대조적으로 노동하는 공간에는 타자가 없다. 노동의 본질은 인간의 얼굴이 나타나지 않게 하고 인원과 시간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생명력’을 제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타자가 있을 수 없다고 아렌트는 생각한다.... - P-1

..슈미트, 코제브, 아렌트 모두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커다란 사회 변화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근본부터 되물은 사상가다. 슈미트는 친구와 적을 구분 짓고 정치를 행하는 자가 바로 인간이라고 답했고, 코제브는 타자의 인정을 추구하며 투쟁하는 자가 인간이라고 답했으며, 아렌트는 광장에서 토론하며 공공성을 만드는 자가 인간이라고 답했다. 언뜻 제각각인 답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인간을 무엇과 대비시켰는지를 보면 공통된 문제 의식이 부각된다. 슈미트가 친구/적 이론을 구축한 것은 친구와 적의 구분에 신경 쓰지 않고 경제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자유주의자)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코제브가 투쟁 정신으로 무장하고 역사를 만드는 이가 바로 인간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투쟁도 역사도 필요로 하지 않고 쾌락에 자족하는 인간(동물적 소비자)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을 집필한 것은 다시 인용하면 "자기 육체라는 사적인 공간에 갇힌",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노동하는 동물’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 P-1

..슈미트와 코제브 그리고 아렌트는 같은 패러다임을 살았다. 이들은 모두 경제적 합리성을 원동력으로 삼으며 정치를 배제하는, 친구/적의 구분이 없는 평면적인 대중 소비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고전적인 ‘인간’의 정의를 부활시키려 했다. 달리 말해 그들은 모두 글로벌리즘이 실현하게 될 쾌락과 행복의 유토피아를 거부하기 위해 인문학 전통을 활용하려 했다.
..이 책이 ‘관광객’을 사유함으로써 극복하려는 대상이 바로 이 무의식적 욕망이다. 20세기의 인문학은 대중 사회의 실현과 동물적 소비자의 출현을 ‘인간이 아닌 것’의 도래로 받아들이고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이 거부가 글로벌리즘이 진행된 21세기에 통할 리 없다. 실제로 인문학의 영향력은 이번 세기 들어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문학 자체를 변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이 책의 바탕에 있는 위기 의식이다. - P-1

...이처럼 풀어 해석하면 알 수 있듯 『영원한 평화를 위해』의 제1확정 조항(각 국가의 시민적 체제는 공화적이어야 한다)은 인간으로 치환해 생각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저속하다고 형용해도 될 정도의 논리다. 칸트는 각 국가에 ‘우선 네 하반신을 제어할 수 있게 된 다음에 국제 사회에 들어오라’는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 P-1

..경제는 연결되어 있으나 정치는 분리되어 있는 시대. 욕망은 연결되어 있으나 사고는 분리되어 있는 시대. 하반신이 이어져 있는데도 상반신은 이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시대. 이것이 2층 구조 시대의 세계 질서다. 마지막으로 저속하다고 비난받을 것을 각오하고 연상을 이어 가자면, 이 시대의 국민 국가(네이션) 간 관계는 종종 서로 사랑을 확인하지 않은 채 육체 관계부터 맺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기 쉽다고도 할 수 있다. - P-1

..자유지상주의는 글로벌리즘의 사상적 표현이고, 공동체주의는 현대 내셔널리즘의 사상적 표현이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과거 내셔널리즘의 사상적 표현이다.
..자유주의는 보편적인 정의를 믿었고 타자에 대한 관용을 믿었다. 그러나 그런 입장은 20세기 후반에 급속히 영향력을 잃었고 지금은 자유지상주의와 공동체주의만 남아 있다. 자유지상주의에는 동물의 쾌락만 있고 공동체주의에는 공동체의 선만 있다. 이대로는 어디에도 보편과 타자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사상적 역경이다. - P-1

..규율 훈련과 생명 권력은 프랑스 계열 현대 사상에서 권력의 두 유형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다. 거칠게 정리하면 규율 훈련은 권력자가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고 징벌을 가해 대상자의 행동을 좌우하는 권력을 가리킨다. 징벌을 가하기 때문에 규율 훈련이라 불린다. 한편 생명 권력은 어디까지나 대상자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면서도 규칙, 가격, 환경 등을 바꿈으로써 결과적으로 권력자의 의도대로 대상의 행동을 좌우하는 권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상의 사회적 삶에 개입하기 때문에 생명 권력이라 불린다.
..이 두 개념의 역사는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둘 다 푸코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푸코가 두 개념을 대립시켜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규율 훈련은 1975년에 간행된 『감시와 처벌』에, 생명 권력은 1976년에 간행된 『지식의 의지』(『성의 역사』 1권)에 등장한다. 두 책은 각기 다른 현상을 분석하고 있는데, 친구기도 했던 철학자 질 들뢰즈가 푸코 사후인 1990년에 발표한 짧은 평론에서 두 개념을 대립시키며 규율 훈련이 지배하는 ‘규율 사회’는 19세기까지의 사회 모델이고, 현대 사회는 생명 권력이 지배하는 ‘관리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간략한 도식을 제시했다. ‘규율에서 관리로’라는 이 도식은 푸코의 원래 주장에 비해 알기 쉬워 바로 널리 퍼졌다.... - P-1

..나는 앞서 관광객의 철학이란 동물의 층과 인간의 층이 연결되는 횡단의 회로, 즉 시민이 시민으로서 시민 사회의 층에 머문 채 공공성 및 보편과 연결되는 회로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했다. 방금 확인한 것처럼 네그리와 하트가 구상한 다중은 내 구상과 지향하는 바가 매우 비슷하다. 『제국』은 보통 국제 정치를 논한 책으로 수용되고 있지만 정치의 정의 자체를 변혁하려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철학적인 저서인 것이다. 다중의 모습은 이 책이 말하는 관광객과 극히 유사하다. - P-1

..‘우편적’은 어떠한가? 여기서 우편적이라는 말은 어떤 물건을 지정된 곳에 잘 배달하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배’, 즉 배달의 실패나 예기치 않은 소통이 일어날 가능성을 많이 함축한 상태를 뜻한다(현실의 우편 사업 관계자에게는 이 용법이 못마땅할 수 있겠다). 관광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편적’이다.... - P-1

..부정신학적 다중의 연대는 연대가 부재라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여겼다. 우편적 다중의 연대는 끊임없는 연대의 실패로 사후적으로 생성되어 결과적으로 연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그런 착각의 축적으로 이루어진다.
..네그리와 하트는 다중의 연대를 꿈꿨다. 나는 그 대신 관광객의 오배를 꿈꾼다. 다중이 데모하러 간다면 관광객은 놀고 구경하러 간다. 전자가 소통 없이 연대한다면 후자는 연대 없이 소통한다. 제국이 낳은 반작용인 전자가 사적인 삶을 국민 국가의 정치로 다루어야 한다고 외친다면, 제국과 국민 국가 틈새에서 탄생한 노이즈인 후자는 사적인 욕망을 통해 공적인 공간을 소리 없이 변화시킬 것이다. - P-1

..앞서 나는 바라바시와 앨버트가 네트워크의 시뮬레이션에 성장과 우선적 선택이라는 가정을 도입해 이 멱승 분포(무척도)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거꾸로 말하면 이들은 멱승 분포가 생성되는 메커니즘을 겨우 두 가정으로 설명했다. 바라바시와 앨버트의 연구가 가져온 진정한 충격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이 멱승 분포는 웹페이지의 링크 분포나 연 수입 분포뿐 아니라 다양한 통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 현상만이 아니라 자연 현상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도시 규모와 수의 관계, 논문 인용 빈도와 점수의 관계, 전쟁 규모와 발생 수의 관계, 서적 부수와 출판 종수의 관계, 금융 위기 규모와 발생 수의 관계, 지진 규모와 빈도의 관계, 대량 멸종 상황에서의 멸종 종수와 빈도의 관계 등이 모두 무척도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P-1

..수학적으로 보면 우리 한 명 한 명이 네트워크의 꼭짓점이다. 그리고 스몰 월드=무척도 네트워크에서 꼭짓점과 꼭짓점의 관계는 가지 하나로 연결된 두 꼭짓점이라는 대등한 관계로도, 연결된 가지 수에 큰 차이가 있는 불평등한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전자는 네트워크의 형태에 주목한 해석이고, 후자는 차수 분포에 주목한 해석이다. 실제로 이에 대응하듯 우리 인간은 다른 한 인간(타자)과 마주했을 때 상대를 대등한 인간으로 느낄 때도 있지만 부와 권력의 격차 앞에 압도당할 뿐일 때도 있다. 아렌트는, 아니 그뿐 아니라 많은 20세기 인문학 사상가가 전자와 같은 관계가 인간 본연의 모습이고 후자는 ‘인간의 조건’이 박탈된 상태라고 여겼다. 그러나 사실 양자는 하나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표현으로, 우리는 항상 둘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봐야 한다.... - P-1

..21세기의 새로운 저항은 제국과 국민 국가의 틈새에서 생겨난다. 이는 제국을 외부에서 비판하는 것도 내부에서 해체하는 것도 아닌, 오배의 재연을 시도한다. 만날 일이 없었을 사람과 만나고 갈 일이 없었을 곳에 가고 생각할 일이 없었을 생각을 함으로써, 제국 체제에 다시금 우연을 도입하고 집중된 가지를 바꿔 연결해 우선적 선택을 오배로 되돌리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그런 실천의 누적을 통해 특정한 꼭짓점에 부와 권력이 집중하는 현상에는 어떠한 수학적 근거도 없으며 언제든 해체하고 전복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 즉 지금의 현실은 최선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항상 상기하게 하고자 한다. 나는 이런 재오배 전략이 국민 국가=제국의 2층화 시대에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모든 저항의 기초에 두어야 할 필수 조건이라고 본다. 21세기 질서 속에서 오배 없는 리좀 형태의 동원은 결국 제국의 생명 권력을 모방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 P-1

..로티에 따르면 현대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통일하는 이론에 대한 요구를 포기"해야 하는 시대다. 예컨대 현대의 선진 서구 사회(1980년대에 집필된 책임을 상기하자)에서 특정 철학이나 종교를 사적으로 믿는 것은 자유이나 이를 공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하고 개종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과 종교는 원래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기에 사실 이는 모순이다. 사적으로만 즉 개인의 취미로만 믿을 수 있는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허용되는 것은 사적인 종교뿐이며 로티는 이것이 옳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이 모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구상한다. 그것이 리버럴 아이러니스트다. 여기서 ‘아이러니스트’란 모순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또한 이 입장은 책 제목에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인 ‘우연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달리 말해 자신의 사적인 가치관이 단지 우연한 조건의 산물임을 인정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우연히 일본인이어서, 우연히 남성이어서, 우연히 20세기에 태어나서 이런 신념을 갖고 있지 다른 조건 속에 있었다면 다른 신념을 가졌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로티는 이렇게 말한다. "20세기 자유로운 사회는 자신의 가장 고차원적인 희망을 말할 때의 어휘가, 즉 자신의 양심 자체가 우연의 산물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양심에 충실한 사람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 P-1

..과거에 공산주의는 개인도 국가도 아닌 제3의 정체성으로 ‘계급’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공산주의의 혁명성은 사실 이 정체성의 발명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는 이 제3의 정체성에 의거했기에 부르주아 국민 국가를 부정하는 동시에 개인의 자유(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었다.... - P-1

...가라타니는 2001년에 발표한 『트랜스크리틱』을 위시한 작업들에서 세 가지 교환 양식과 이 셋에 의해 각각 지탱되는 세 가지 사회 구성체를 구별하는 이론을 주장하고, 이 이론으로 현대 사회를 분석해 왔다. 이때 세 가지 교환 양식이란 ‘증여’, ‘수탈과 재분배’, ‘상품 교환’이고 세 가지 사회 구성체는 ‘네이션’, ‘국가’, ‘자본’이다. 후자 셋을 이 책의 용어로 하면 ‘가족’, ‘국가’, ‘시민 사회’에 해당한다. 네이션이 가족에 해당한다니 기묘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가라타니는 네이션을 "상품 교환 경제로 인해 해체된 공동체의 ‘상상적’ 회복"으로 위치 짓고 있기에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6 가족은 증여로 성립한다.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로 성립한다. 시민 사회는 교환으로 성립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이 셋이 서로 얽혀 성립된다. 가라타니는 이 복합체를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라고 불렀다. - P-1

..이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사람은 개인=나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 국가나 계급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가족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은 새로운 정치의 기초가 될 수 있다. 한편 사람은 취미 동아리를 위해 죽지는 않는다. 그래서 취미 동아리는 새로운 정치의 기초가 될 수 없다. 루소는 『사회 계약론』에서 사람은 일반 의지를 위해 죽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8 전체주의를 긍정하는 내용으로 악명 높은 문구지만 정치의 본질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기도 하다. 루소가 일반 의지 개념을 정치의 기초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반 의지를 ‘사람이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죽을 가능성이 없는 곳에 정치는 없다. 지금의 좌익은 이를 잊고 있다. - P-1

...가족이란 원래 우연한 존재다. 그래서 우연을 통해 확장될 수 있다. 가족의 윤곽은 성과 생식, 공동 거주와 재산 외에 사적인 애정을 통해서도 정해진다. 이 특성이 가족의 확장성을 낳는데, 이는 동시에 가족의 경계를 매우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 P-1

...신생아에게는 인격이 없지만 우리는 신생아를 사랑한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인격이 생겨난다. 먼저 인간=인격에 대한 사랑이 있고, 그것이 때로 종의 벽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연민=오배가 종의 벽을 초월하기에 우리는 가족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P-1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실리콘밸리의 적지 않은 엘리트가 트럼프를 지지해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 보수성은 이미 20년 전 「사이버 스페이스 독립 선언」에서 예고되었다. 캘리포니아 해커들은 원래부터 ‘미국 우선’이었던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란 처음부터 미국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므로. - P-1

..나는 딕 소설의 이와 같은 특징이 새로운 정보 사회론을 구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등장 인물은 현실에서 분신을 만들어 사이버 스페이스=다른 세계로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섬뜩한 것에 시달리다가 현실과 사이버 스페이스=다른 세계의 경계 감각을 잃게 된다. 즉 깁슨이 현실인 여기와 사이버 스페이스인 저기가 명확히 구분된 세계를 묘사한 반면, 딕은 여기와 저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이 현대 사회의 본질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나는 딕을 이렇게 읽어 냄으로써 네트워크를 새 프런티어=다른 세계로 여기지 않는, 진정 새로운 정보 사회론의 기초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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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자신만의 쿨 에이드 리얼리티를 만들어냈으며, 그걸로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았다. - P-1

..결국 나무에 새겨진 그런 말들은, 세월이 지나면 마치 기차역 옆 식당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즉석 음식을 주문받는 요리사가 그릴에 깬 계란처럼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부자들은 정식 요리처럼 대리석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마치 멋진 거리를 떠난 말이 하늘로 날아가듯 할 것이었다. - P-1

..판자들은 하천을 댐처럼 막아 커다란 욕조 같은 것을 만들었는데, 그 위로 넘치는 물들이 마치 수천 마일 떨어진 바다가 초청한 엽서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 P-1

..우리는 양떼를 보았다. 아이는 원래 털이 많은 동물을 보면 소리를 지른다. 그 애는 제 엄마와 내가 알몸으로 있는 것을 볼 때에도 그런 소리를 낸다. 아이는 이번에도 역시 그런 소리를 냈다. 우리는 비행기가 구름을 헤치고 날아가듯 그렇게 양떼 밖으로 차를 몰아 빠져나갔다. - P-1

..아이는 곧 동물과 물고기의 차이점을 알아내고는, 동물을 달랠 때 내는 부드러운 소리 대신 물고기들을 향해 맑은 은빛 소리를 냈다. - P-1

..미국의 송어낚시 쇼티는 마치 둘 사이의 공간이 점점 더 커지는 강이나 되는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P-1

(해설)
..그럼에도 미국 작가들의 탐색은 계속된다. 예컨대 월든 호수에서 낚시질하는 소로우, 폐허의 호수에서 재생을 기구하며 송어낚시를 드리우는 헤밍웨이의 닉 애덤스, 자살하기 전 찰스 강 속의 거대한 송어를 바라보는 포크너의 퀘틴 캄슨, 밤마다 제방 건너 녹색의 불빛을 바라보다 죽어간 피츠제럴드의 개츠비. 이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미국의 송어낚시’를 추구했던 미국문학의 주인공들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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