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은 근대 이후에 출현했다. 이는 많은 학자의 일치된 견해기도 하다. 앞서 관광학에 관광의 명확한 정의가 없다고 했는데, 물론 개별 연구에는 참조할 만한 내용이 있다. 그중 하나인 존 어리와 요나스 라르센의 저서 『관광객의 시선』은 "관광객이 된다는 것은 ‘근대’를 몸에 걸치는 행위의 일환"이라고 했다. 여행은 예부터 존재했다. 순례와 모험 모두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관광은 근대 이후 사회에만 존재한다. 2세기 로마 귀족이 유프라테스강으로 ‘관광’을 가거나 15세기 베니스인이 팔레스타인에 ‘관광’을 갔다는 표현은, 비유로 사용할 수는 있겠으나 결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 P-1

...관광은 원래 갈 필요가 없는 장소에 기분에 따라 가서, 볼 필요가 없는 것을 보고,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을 만나는 행위다. 따라서 이는 일부 부유층만이 아니라 중산 계급이나 노동자 계급도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아닌 것에 어느 정도 돈을 쓸 수 있게 된 산업 혁명 이후의, 생산력이 향상된 풍요로운 사회에서만 산업으로 성립한다. - P-1

...관광객은 생활에 필요해 그곳에 들른 것이 아니다. 사야 할 것이나 가야 할 곳이 있지도 않다. 관광객에게는 방문한 곳의 모든 사물이 상품이고 전시물이며, 중립적이고 무위적인, 즉 우연히 시선 안에 들어온 대상이다. 관광객의 시선이란 세계 전체를 파사주=쇼핑몰로 여기는 시선이다. - P-1

..이 책의 문맥에서 말하면 2차 창작은 ‘관광’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특정 작품의 일부를 가져와 원작자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그것도 원작자의 허락 없이 ‘경박하게’ 창작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이는 관광객이 관광지를 방문해 주민이 기대한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일방적으로 만족해 돌아가는 상황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 P-1

...‘재귀성’이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항상 의식하면서 행동을 결정하는 메타적 태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전면화한 사회를 살고 있다. 이 점에서 포스트모던은 전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오히려 더욱 심화된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고 있다. - P-1

...설령 동기가 유치한 환상이라고 해도 한번 체르노빌까지 발걸음을 옮겨 그곳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투어 참가자는 필연적으로 그 사고 이외의 배경 정보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 정보의 다층성 속에서 다시 한번 사고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매년 체르노빌 투어를 통해 노리고 있는 효과다. 나 또한 처음 체르노빌에 갈 때는 유치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고 믿고 있던 장소를 찾아가 그곳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평범하지 않은’ 일이 우연히 그곳에서 일어났다는 ‘운명’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평범함’과 ‘평범하지 않음’ 사이의 왕복 운동이 바로 다크 투어리즘의 근간이다. - P-1

..세계에는 ‘오류’가 있다. 볼테르는 이 인식을 제시하고자 주인공이 세계를 여행하는 소설을 썼다. 나는 여기서 관광이라는 모티프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철학을 본다. - P-1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보편적인 우호를 가져오는 제반 조건"이 될까? 그는 여기서 "방문할 권리"(방문권)를 논한다. 국가 연합에 참가한 국가의 국민은 서로의 국가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지구의 표면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권리에 근거해 서로 교제를 제안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이 갖는 권리"로, 이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 영원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 그리고 칸트에 따르면, 이것이 매우 중요한데, 방문권이란 방문할 권리만을 의미하지 손님으로 환대받을 권리는 포함하지 않는다. "우호의 권리, 즉 외국인의 권한은 그곳 주민과의 교류 시도를 가능케 하는 제반 조건을 넘어서는 것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고 칸트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외국인이 교류를 "시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은 보장되지 않으며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 - P-1

...거꾸로 보면 존엄을 잃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에 자족하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 해도 정신적으로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코제브와 헤겔의 생각이다. 따라서 모든 인류가 그런 자족하는 존재가 되면 인간의 역사는—생물로서의 인류 자체는 존속한다 해도—끝난다. 코제브는 이와 같은 인간관에 따라 2차 대전 후의 세계를 ‘포스트역사’라고 지칭한 것이다. 전후 냉전 상황에 직면해 그는 인류가 나폴레옹 전쟁 이후 본질적으로 어떤 새로운 이념도 발명하지 못했다는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 P-1

..아렌트는 이 대립을 ‘타자’ 또는 ‘공공성’ 유무의 대립과 포갠다. 아렌트에 따르면 활동의 장에는 반드시 ‘타자’가 있다. 청중이 없는 연설은 없으며 봉사 대상과 면식이 없는 봉사자도 없다. 활동의 본질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차이를 인식한 후에 언어적으로 소통하는 데 있으므로 반드시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이는 공공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대조적으로 노동하는 공간에는 타자가 없다. 노동의 본질은 인간의 얼굴이 나타나지 않게 하고 인원과 시간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생명력’을 제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타자가 있을 수 없다고 아렌트는 생각한다.... - P-1

..슈미트, 코제브, 아렌트 모두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커다란 사회 변화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근본부터 되물은 사상가다. 슈미트는 친구와 적을 구분 짓고 정치를 행하는 자가 바로 인간이라고 답했고, 코제브는 타자의 인정을 추구하며 투쟁하는 자가 인간이라고 답했으며, 아렌트는 광장에서 토론하며 공공성을 만드는 자가 인간이라고 답했다. 언뜻 제각각인 답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인간을 무엇과 대비시켰는지를 보면 공통된 문제 의식이 부각된다. 슈미트가 친구/적 이론을 구축한 것은 친구와 적의 구분에 신경 쓰지 않고 경제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자유주의자)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코제브가 투쟁 정신으로 무장하고 역사를 만드는 이가 바로 인간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투쟁도 역사도 필요로 하지 않고 쾌락에 자족하는 인간(동물적 소비자)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을 집필한 것은 다시 인용하면 "자기 육체라는 사적인 공간에 갇힌",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노동하는 동물’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 P-1

..슈미트와 코제브 그리고 아렌트는 같은 패러다임을 살았다. 이들은 모두 경제적 합리성을 원동력으로 삼으며 정치를 배제하는, 친구/적의 구분이 없는 평면적인 대중 소비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고전적인 ‘인간’의 정의를 부활시키려 했다. 달리 말해 그들은 모두 글로벌리즘이 실현하게 될 쾌락과 행복의 유토피아를 거부하기 위해 인문학 전통을 활용하려 했다.
..이 책이 ‘관광객’을 사유함으로써 극복하려는 대상이 바로 이 무의식적 욕망이다. 20세기의 인문학은 대중 사회의 실현과 동물적 소비자의 출현을 ‘인간이 아닌 것’의 도래로 받아들이고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이 거부가 글로벌리즘이 진행된 21세기에 통할 리 없다. 실제로 인문학의 영향력은 이번 세기 들어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문학 자체를 변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이 책의 바탕에 있는 위기 의식이다. - P-1

...이처럼 풀어 해석하면 알 수 있듯 『영원한 평화를 위해』의 제1확정 조항(각 국가의 시민적 체제는 공화적이어야 한다)은 인간으로 치환해 생각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저속하다고 형용해도 될 정도의 논리다. 칸트는 각 국가에 ‘우선 네 하반신을 제어할 수 있게 된 다음에 국제 사회에 들어오라’는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 P-1

..경제는 연결되어 있으나 정치는 분리되어 있는 시대. 욕망은 연결되어 있으나 사고는 분리되어 있는 시대. 하반신이 이어져 있는데도 상반신은 이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시대. 이것이 2층 구조 시대의 세계 질서다. 마지막으로 저속하다고 비난받을 것을 각오하고 연상을 이어 가자면, 이 시대의 국민 국가(네이션) 간 관계는 종종 서로 사랑을 확인하지 않은 채 육체 관계부터 맺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기 쉽다고도 할 수 있다. - P-1

..자유지상주의는 글로벌리즘의 사상적 표현이고, 공동체주의는 현대 내셔널리즘의 사상적 표현이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과거 내셔널리즘의 사상적 표현이다.
..자유주의는 보편적인 정의를 믿었고 타자에 대한 관용을 믿었다. 그러나 그런 입장은 20세기 후반에 급속히 영향력을 잃었고 지금은 자유지상주의와 공동체주의만 남아 있다. 자유지상주의에는 동물의 쾌락만 있고 공동체주의에는 공동체의 선만 있다. 이대로는 어디에도 보편과 타자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사상적 역경이다. - P-1

..규율 훈련과 생명 권력은 프랑스 계열 현대 사상에서 권력의 두 유형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다. 거칠게 정리하면 규율 훈련은 권력자가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고 징벌을 가해 대상자의 행동을 좌우하는 권력을 가리킨다. 징벌을 가하기 때문에 규율 훈련이라 불린다. 한편 생명 권력은 어디까지나 대상자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면서도 규칙, 가격, 환경 등을 바꿈으로써 결과적으로 권력자의 의도대로 대상의 행동을 좌우하는 권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상의 사회적 삶에 개입하기 때문에 생명 권력이라 불린다.
..이 두 개념의 역사는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둘 다 푸코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푸코가 두 개념을 대립시켜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규율 훈련은 1975년에 간행된 『감시와 처벌』에, 생명 권력은 1976년에 간행된 『지식의 의지』(『성의 역사』 1권)에 등장한다. 두 책은 각기 다른 현상을 분석하고 있는데, 친구기도 했던 철학자 질 들뢰즈가 푸코 사후인 1990년에 발표한 짧은 평론에서 두 개념을 대립시키며 규율 훈련이 지배하는 ‘규율 사회’는 19세기까지의 사회 모델이고, 현대 사회는 생명 권력이 지배하는 ‘관리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간략한 도식을 제시했다. ‘규율에서 관리로’라는 이 도식은 푸코의 원래 주장에 비해 알기 쉬워 바로 널리 퍼졌다.... - P-1

..나는 앞서 관광객의 철학이란 동물의 층과 인간의 층이 연결되는 횡단의 회로, 즉 시민이 시민으로서 시민 사회의 층에 머문 채 공공성 및 보편과 연결되는 회로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했다. 방금 확인한 것처럼 네그리와 하트가 구상한 다중은 내 구상과 지향하는 바가 매우 비슷하다. 『제국』은 보통 국제 정치를 논한 책으로 수용되고 있지만 정치의 정의 자체를 변혁하려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철학적인 저서인 것이다. 다중의 모습은 이 책이 말하는 관광객과 극히 유사하다. - P-1

..‘우편적’은 어떠한가? 여기서 우편적이라는 말은 어떤 물건을 지정된 곳에 잘 배달하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배’, 즉 배달의 실패나 예기치 않은 소통이 일어날 가능성을 많이 함축한 상태를 뜻한다(현실의 우편 사업 관계자에게는 이 용법이 못마땅할 수 있겠다). 관광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편적’이다.... - P-1

..부정신학적 다중의 연대는 연대가 부재라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여겼다. 우편적 다중의 연대는 끊임없는 연대의 실패로 사후적으로 생성되어 결과적으로 연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그런 착각의 축적으로 이루어진다.
..네그리와 하트는 다중의 연대를 꿈꿨다. 나는 그 대신 관광객의 오배를 꿈꾼다. 다중이 데모하러 간다면 관광객은 놀고 구경하러 간다. 전자가 소통 없이 연대한다면 후자는 연대 없이 소통한다. 제국이 낳은 반작용인 전자가 사적인 삶을 국민 국가의 정치로 다루어야 한다고 외친다면, 제국과 국민 국가 틈새에서 탄생한 노이즈인 후자는 사적인 욕망을 통해 공적인 공간을 소리 없이 변화시킬 것이다. - P-1

..앞서 나는 바라바시와 앨버트가 네트워크의 시뮬레이션에 성장과 우선적 선택이라는 가정을 도입해 이 멱승 분포(무척도)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거꾸로 말하면 이들은 멱승 분포가 생성되는 메커니즘을 겨우 두 가정으로 설명했다. 바라바시와 앨버트의 연구가 가져온 진정한 충격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이 멱승 분포는 웹페이지의 링크 분포나 연 수입 분포뿐 아니라 다양한 통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 현상만이 아니라 자연 현상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도시 규모와 수의 관계, 논문 인용 빈도와 점수의 관계, 전쟁 규모와 발생 수의 관계, 서적 부수와 출판 종수의 관계, 금융 위기 규모와 발생 수의 관계, 지진 규모와 빈도의 관계, 대량 멸종 상황에서의 멸종 종수와 빈도의 관계 등이 모두 무척도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P-1

..수학적으로 보면 우리 한 명 한 명이 네트워크의 꼭짓점이다. 그리고 스몰 월드=무척도 네트워크에서 꼭짓점과 꼭짓점의 관계는 가지 하나로 연결된 두 꼭짓점이라는 대등한 관계로도, 연결된 가지 수에 큰 차이가 있는 불평등한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전자는 네트워크의 형태에 주목한 해석이고, 후자는 차수 분포에 주목한 해석이다. 실제로 이에 대응하듯 우리 인간은 다른 한 인간(타자)과 마주했을 때 상대를 대등한 인간으로 느낄 때도 있지만 부와 권력의 격차 앞에 압도당할 뿐일 때도 있다. 아렌트는, 아니 그뿐 아니라 많은 20세기 인문학 사상가가 전자와 같은 관계가 인간 본연의 모습이고 후자는 ‘인간의 조건’이 박탈된 상태라고 여겼다. 그러나 사실 양자는 하나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표현으로, 우리는 항상 둘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봐야 한다.... - P-1

..21세기의 새로운 저항은 제국과 국민 국가의 틈새에서 생겨난다. 이는 제국을 외부에서 비판하는 것도 내부에서 해체하는 것도 아닌, 오배의 재연을 시도한다. 만날 일이 없었을 사람과 만나고 갈 일이 없었을 곳에 가고 생각할 일이 없었을 생각을 함으로써, 제국 체제에 다시금 우연을 도입하고 집중된 가지를 바꿔 연결해 우선적 선택을 오배로 되돌리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그런 실천의 누적을 통해 특정한 꼭짓점에 부와 권력이 집중하는 현상에는 어떠한 수학적 근거도 없으며 언제든 해체하고 전복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 즉 지금의 현실은 최선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항상 상기하게 하고자 한다. 나는 이런 재오배 전략이 국민 국가=제국의 2층화 시대에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모든 저항의 기초에 두어야 할 필수 조건이라고 본다. 21세기 질서 속에서 오배 없는 리좀 형태의 동원은 결국 제국의 생명 권력을 모방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 P-1

..로티에 따르면 현대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통일하는 이론에 대한 요구를 포기"해야 하는 시대다. 예컨대 현대의 선진 서구 사회(1980년대에 집필된 책임을 상기하자)에서 특정 철학이나 종교를 사적으로 믿는 것은 자유이나 이를 공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하고 개종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과 종교는 원래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기에 사실 이는 모순이다. 사적으로만 즉 개인의 취미로만 믿을 수 있는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허용되는 것은 사적인 종교뿐이며 로티는 이것이 옳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이 모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구상한다. 그것이 리버럴 아이러니스트다. 여기서 ‘아이러니스트’란 모순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또한 이 입장은 책 제목에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인 ‘우연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달리 말해 자신의 사적인 가치관이 단지 우연한 조건의 산물임을 인정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우연히 일본인이어서, 우연히 남성이어서, 우연히 20세기에 태어나서 이런 신념을 갖고 있지 다른 조건 속에 있었다면 다른 신념을 가졌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로티는 이렇게 말한다. "20세기 자유로운 사회는 자신의 가장 고차원적인 희망을 말할 때의 어휘가, 즉 자신의 양심 자체가 우연의 산물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양심에 충실한 사람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 P-1

..과거에 공산주의는 개인도 국가도 아닌 제3의 정체성으로 ‘계급’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공산주의의 혁명성은 사실 이 정체성의 발명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는 이 제3의 정체성에 의거했기에 부르주아 국민 국가를 부정하는 동시에 개인의 자유(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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