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건은 호감이 가지 않네. 아주 싫어. 너무나 어린아이스러운 요소가 많아. 아이들이란 태어나면서부터 늙은이고 정신병 환자야. 무언가 불길한 정신착란 증세가 있어." - P-1

.."제발 좀 참게. 내가 온 것은 존엄한 정의의 기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를 하기 위함일세. 이 세상의 정의를 위해서지, 알겠나. 철학적으로 말하면, 물론 정의 같은 건 없네. 정말로 정의라는 게 있다면, 우리는 우주라는 큰 오두막 안에 다시금 또 하나의 지붕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는 셈이 되겠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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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p.
..나는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얼마간 노력도 기울인다. 이를테면, 만나자는 친구의 연락을 거절하기도 한다. - P-1

45p.
..이사를 앞두고 가구를 보러 다니는 중이다. 예산 안에서 원하는 물건을 고르는 일은 소풍 가서 먹을 간식을 고르는 어린 시절처럼 즐겁다. - P-1

56~57p.
..물건을 잔뜩 소유하는 것은 왠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모르는 것만 같아서 불안해진다. - P-1

87p.
..좋아, 심어보자.
..근처 쇼핑몰에서 화분과 흙을 사서 알뿌리를 묻고 베란다에 쭉 놓았다. 봄이 되기까지 반년 가까이 남았으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퍼뜩 놀랐다. 나는 내가 내년 봄에도 건강히 여기 살아있으리라고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건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 행복을, 나는 자꾸만 잊고 산다. 몇 달이나 지난 후의 튤립을 기대하는 마음은 사실 대단한 행복이다. 알뿌리가 잠든 화분에 물을 주며, 가만히 고마움을 느끼는 나다. - P-1

105p.
..자, 내년의 나는 대체 뭘 배우고 싶어 할까? 꾸준히 하는 것은 대단하지만, 시작하는 것 또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P-1

114~115p.
..내 젊음을 자랑했고, 내 인생에는 성장만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비로소 인생은 늙어가는 것도 한 세트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노화‘를 존귀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누구나 다 늙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화를 완수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으니까. - P-1

157p.
..아무튼 나는 아주 건강하다. 그래서 예전에는 종종, "몸 하나는 건강해요~"라며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곤 했는데, 요즘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건강을 농담 삼아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은 구내염 하나만 생겨도 하루 종일 우울해지니까. 그 몇 배나 되는 아픔과 투쟁하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충고하고 다짐한다. - P-1

194p.
..나는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진 않았지만, 역시 속으로는 ‘다시는 못 올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동물을 봤다. 최대한 즐겨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언젠가,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나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서른일곱 살은 아직 젊지, 이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웃는 사람도 있지만, 서른일곱 살인 나 나름대로 늙어가는 불안이 있다.
..인기 만점 동물원을 여행하며 문득 그런 감정을 느꼈다. - P-1

199p.
..일부러 말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서 비로소 깨달았다. - P-1

209p.
..싫은 사람이 처음부터 싫었던 게 아닐 때 특히 곤란하다. 그 차이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 P-1

216p.
..나를 크게 보이려고 하면 나중에 반드시 힘들어진다. - P-1

223p.
..디자인이 단순한 물건을 살 때면 내 마음속에 ‘아까워‘라는 감정이 차곡차곡 차오른다. 모처럼 돈을 쓰는데 디자인에 공을 안 들인 물건을 사는 건 너무 아깝다. 이왕이면 여기에 주머니가 달리고 저기쯤에 하늘거리는 레이스가 달려야 이득이지 않나? 또 단순한 물건이라면 대량생산하는 저가 매장에서 사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디자인이 단순하고 가격이 좀 나가는 물건을 몸에 지닌 사람을 보면 감탄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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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p.
..So it was that with the apocalypse looming—possibly caused by an alien life-form—I stood in front of a bunch of kids and taught them basic science. Because what‘s the point of even having a world if you‘re not going to pass it on to the next generation? - P-1

45p.
..It‘s a mission crest. I‘ve seen enough NASA documentaries to know one when I see one. The circular crest has an outer ring of blue with white text. The text reads HAIL MARY across the top and EARTH across the bottom. The name and "port of call" for this vessel.
..I didn‘t think the ship came from somewhere other than Earth, but okay. Anyway, I guess I finally know the name of this ship I‘m on.
..I‘m aboard the Hail Mary. - P-1

115p.
..I clench my teeth. I clench my fists. I clench my butt. I clench every part of me that I know how to clench. It gives me a feeling of control. I‘m doing something by aggressively doing nothing. - P-1

123p.
...Interesting that they have the same propulsion tech as we do. But considering it‘s the best energy-storage medium possible, that‘s not a surprise. When European mariners first came across Asian mariners, no one was surprised they both used sails. - P-1

157p.
..Their move is taking a long time and I‘m getting bored.
..Wow. I‘m sitting here in a spaceship in the Tau Ceti system waiting for the intelligent aliens I just met to continue our conversation… and I‘m bored. Human beings have a remarkable ability to accept the abnormal and make it normal. - P-1

234p.
..Lokken cleared her throat. "I heard there were tornadoes in Europe?"
.."Yes," he said. "And they‘re happening more and more often. European languages didn‘t even have a word for tornado until Spanish conquistadors saw them in North America. Now they‘re happening in Italy, Spain, and Greece." - P-1

253p.
.."You sleep alone, question?"
.."Yes."
.."I also sleep alone many times. Sad sad sad."
..He just doesn‘t get it. A fear of sleeping alone is probably hardwired in his brain. Interesting… that might have been the beginning of their pack instinct. And a pack instinct is required for a species to become intelligent. That weird (to me) sleep pattern could be the reason I‘m talking to Rocky right now! - P-1

337p.
..I rub my eyes. Between the pain from my burns and the dopiness from the painkillers, it‘s hard to concentrate. And I‘m tired. One thing I learned back in my graduate school days: When you‘re stupid tired, accept that you‘re stupid tired. Don‘t try to solve things right then.... - P-1

349p.
.."That is sound of predator approaching you. That is sound of prey running away. Sound of object touching object very important. Evolve to hear."
.."Ah! Yes."
..It‘s obvious now that he points it out. Voices, instruments, birdcalls, whatever—they can all be wildly different sounds. But the sound of objects colliding isn‘t going to have much variance from planet to planet. If I bang two rocks together on Earth, they‘re going to make the same noise as if I bang them together on Erid. So we‘re all selected-for by being able to hear it. - P-1

350p.
.."Our intelligence is based on the animals‘ intelligences. So what is animal intelligence based on? How smart do animals have to be?"
.."Smart enough to identify threat or prey in time to act."
.."Yes, exactly!" I say. "But how long is that time? How long does an animal have to react? How long will the threat or prey take to kill the animal or escape? I think it‘s based on gravity."
.."Gravity, question?" He sets the device down entirely. I‘ve got his undivided attention.
.."Yeah! Think about it. Gravity is what determines how fast an animal can run. Higher gravity, more time spent in contact with the ground. Faster movement. I think animal intelligence, ultimately, has to be faster than gravity." - P-1

398p.
..He‘s completely right, of course. I‘m risking my life and maybe the structural integrity of the Hail Mary. But I can‘t just sit around for eleven days when there‘s so much work to do. How do I explain "impatience" to someone who lives seven hundred years?
.."Human thing," I say.
.."Understand. Not actually understand, but… understand." - P-1

448p.
..We tend to think of solid materials as magical barriers. But at the molecular scale they‘re not. They‘re strands of molecules or lattices of atoms or both. When you get down to the teeny, tiny realm, solid objects are more like thick jungles than brick walls.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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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의식 안쪽에 단단하게 붙어 그의 삶과 문학을 지배해온 질기고 억센 몇 개의 큰 흉터가 내게 발견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들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어차피 지금의 그는 자신이 살아낸 이제까지의 삶의 흔적들을 끌어안고 있는 하나의 표정이다. 표정에는 층이 있지만, 흔적들은 질서를 알지 못한다. 그것들은 서로 몸을 섞고 있다. - P-1

.."아버지가 누구입니까?"
..내 물음은 이렇게 생긴 사람과 저렇게 생긴 사람, 또 여기 있는 사람과 저기 있는 사람 가운데 누가 내 아버지냐는 뜻이 아니었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들 그렇게 받아들였지만, 아니었다. 나는 진정으로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를 몰랐다. 열대 지방의 아이들이 얼음의 존재를 모르듯이, 네안데르탈인이 컴퓨터의 존재를 알 까닭이 없듯이, 그렇게 나는 아버지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 P-1

...아버지가 일찍이 자신의 존재를 내게서 거두어갔던 것처럼, 이제 어머니도 내게서 자신의 존재를 지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삶은 오리무중이었고, 모든 것이 심드렁했다.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신비롭거나 감격스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 P-1

...그 야릇한 눈길들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적어도 그 순간, 거기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구별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그와 달랐다. 적어도 그들의 표정은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네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가 종종 경험하곤 했던, 세계로부터 이탈되어 나가는 듯한 걷잡을 길 없는 소외감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그는 온몸을 빠르게 관통하는 전율에 사로잡혀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는데, 그것은 세계를 상대로 맞서 있는 한 왜소한 개체의 외로움이 그를 덮쳤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조용히 떨어졌다. 그 한 방울의 눈물을 타고 몸속의 기가 모조리, 순식간에 빠져나가버렸다. 그는 맥없이 자리에 쓰러졌다.... - P-1

..현실이 평범하지 않으면, 의식도 평범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평범하지 않은 현실을 의식의 겉면에 그대로 노출해 보이는 평범함을 극도로 증오했다. - P-1

..그는 거의 항상 가난했다. 어머니가 주고 간 돈은 언제나 턱없이 모자랐다. 그는 그 때문에도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예나 지금이나 움직이면 돈이 든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그래서 거의 대부분 비지 않는다.... - P-1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 참혹한 가난과 외로움을 극복해보려는 어떠한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에 대해 비난할 권리가 없다. 그래서 그는 비난하는 대신(비난하는 것은 참여한다는 뜻이다) 혐오하거나 기피했다. 말하자면 초월하려고 했다. - P-1

..낭만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기반이라는 것을 나는 갖지 못했다. 그런 기반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어느 것도 허공에 뿌리를 내리지는 않는다. 요컨대 낭만주의자는 낭만주의라는 일정한 묘상苗床에서 키워져 모종된 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묘상의 모종은 적어도 두 가지의 기관을 몸에 품고 있어야 한다. 하나는 아름다움을 취하는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로움을 수용하는 기능이다. 내가 낭만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기반의 부재를 말하는 것은 그 두 가지의 감각을 몸에 익힐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 P-1

...모든 과거는 기억된 과거일 뿐이며, 모든 기억은 검열된, 또는 취사선택된 기억일 뿐이다. 시간은 독하고, 나의 자아는 너무 많은 층으로 둘러싸인 거대한―작은 우주다. 층마다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은 그 층에서만 진실이다. 그 모든 층을 관통하는 작살과 같은 하나의 진실은 없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가장 깊거나 가장 높은 층에 도달하지 않고는 그 진실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깊은 층이나 가장 높은 층에 그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뜻이 아니다. 그곳까지 이르러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곳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 P-1

...생각이 많은 것은 무언가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려는 욕망이 많은 생각을 만든다. 하지만 생각은 생산 능력이 없다. 그래서 결핍의 정도는 더욱 심해지고, 세상과의 불화는 더욱 증폭된다. 그 증폭된 불화감은 또 더 복잡한 생각의 밑천이 된다. 끝도 없는 악순환. 생각이 많은 사람은 세상을 쉽게 믿지 않고, 세상은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따돌림의 대상이 된(되었다고 느끼는) 생각이 많은 사람은, 복수하듯 세상을 따돌릴 채비를 한다. 거기서 다른 사람에 비해 자기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돌출한다. - P-1

..그날 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늘은 시종 가느다란 비를 뿌리고 있었다. 국어 담당 선생은 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보다는 가는 비를 는개라고 분류했다. 그 분류에 따르자면 아마 는개비였을 것이다.... - P-1

..진실은 사실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내가 어떤 글을 읽다가 붉은 볼펜으로 줄을 그었으며, 그 붉은 줄을 여태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슨 뜻이냐 하면, 그 책의 저자가 조이스라고 할 때, 제임스 조이스를 빌려서 내가 발언한다는 뜻이다. 조이스를 읽음으로써 비로소 세상이 악몽임을 깨달은 것이 아니다. 나는 붉은 볼펜으로 줄을 그었다. 그것은, 그를 알기 전부터 이 세상에서의 나의 삶이 바동거리는 악몽에 다름 아님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실은 제임스 조이스를 빌려 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임스 조이스에게서 내 말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내 말을 먼저, 대신 해버린 것이다. - P-1

...이름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은 어떤 사물에 대한 가장 제한적인 정의이다.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편의적으로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쓰는 것이 인식의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은 가장 허술한 방법이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구별하기 위해서이지 인식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 P-1

..—하지만 모든 인식은 파편이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참된 파편이냐 아니냐이지. 그리고 모든 참된 파편들은 참된 인식인 거야. 파편을 쥐지 않고는 실체에 다가갈 수 없어. 내가 꼭 쥐고 있는 나의 파편이 소중한 거야. - P-1

..어머니가 다녀갔다. 돼지고기볶음과 한 달 치 돈봉투가 어머니의 흔적이었다. 그것들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나는 처음으로 돼지고기가 놓인 상 앞에서 울었다. 밥이, 밥을 먹어야 하는 인간이, 밥을 먹기 위해 비순수로 무장해야 하는 현실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 삶은 얼마나 쓸쓸한가. 얼마나 참혹하게 슬픈가. 그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감상들이 ‘문학적’으로 솟구쳤다. 나는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 P-1

..인연의 그물에 갇혀 사는 사람을 미개인이라고 부른다. 이 사람의 사는 방식은 본능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부자유하고 몰가치적이며 무원칙하다. 에고와 에고의 연장에 불과한 가족이 미개인의 세계이다. 문명인의 자유는 무엇보다도 우선 인연으로부터의 자유여야 한다. - P-1

..그의 게걸스러운 책 읽기의 습관은 세상에 대해 수줍음과 적의를 동시에 키워가던 유년 시절에 형성된 것이었다. 기름진 풀밭을 발견한 양들은 한곳에 붙어서서 께적거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쪽에서 한입, 저쪽에서 한입, 하는 식으로 풀밭을 뛰어다니기부터 한다. 그 모습은 거기 있는 모든 풀들을 조금씩이라도 맛보고 말겠다 작정하고 설치는 것과 같다. 그 이치이다.... - P-1

...눈앞에 산이 있으면 그 뒤에 있는 산들은 보이지 않는다. 낮은 산도 높은 산을 가릴 수 있다. 산의 높이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눈과의 거리가 미치는 영향만큼은 아니다. 높이에 우선하는 것은 거리이다. 그에게는 하나의 산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뒤에 있는 산들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 P-1

...종교에 몰두한 자는 전부를 본다. 전부를 보는 자는 부분의 결함에는 눈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를 해부하는 자는 부분을 본다. 부분을 보는 자는 부분의 결함에 눈이 가면 끝내 전부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신봉자에게는 모든 것이지만, 해부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 P-1

..생각이 한쪽으로 몰리면 다른 출구들이 닫혀버린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밀고 나가게 되는 절박한 상황이 있다. 그곳 말고는 달리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갈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막무가내로 내달리게 되는. 그리하여 도무지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 상식은 선 위에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안전하다. 그러나 그 선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상식 밖에서는 상식에게 호소할 수 없다. 그곳에서는 파격이 상식이 된다. 편집적인 생각은 편집적인 길을 뚫는다. 그런 일이 발생하려는 순간에도 자각이 아주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렴풋하지만,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는(또는 하려 한다는) 걸 인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힘을 막으려는 희미한 반동도 일어나기는 한다. 그런 뜻에서 술꾼들이 경험하는 ‘필름이 끊어지는’ 상태와 이것은 다르다. 여기서는 필름이 돌아간다. 단지 필름을 중지시키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문제다. 길이 아닌 곳을 향해 몸을 던지는 난처한 상황을 빤히 목도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절망이다. - P-1

..니그렌이라는 스웨덴의 루터교회 감독은 『아가페와 에로스』라는 희귀하고 소중한 책을 썼는데, 그 책의 앞부분에서 그는 사랑을 아가페와 에로스로 분류하고, 그것의 차이를 선명하게 도식화하였다.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에로스는 그 대상 속에서 가치를 먼저 인식한다. 그래서 그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아가페는 먼저 사랑한다. 그래서 그 대상 속에 가치를 창조한다." - P-1

..내 속으로 드디어 분명하고 되돌릴 수 없는 특별한 성찰이 찾아왔다. 결국은 이곳에서도 나는 적이고 이방인이다. 가능한 유일한 대극은 형식과 개혁, 또는 신과 인간이 아니라, 지상의 세계와 지하의 세계이다. 그대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이다. 형식과 개혁, 신과 인간의 문제는 지상에 있는 그대들의 과제일 뿐이다. 지상의 세계에는 그런 갈등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갈등들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하나의 세계에 속해 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대들의 세계에 끼어들고자 했다.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참으로 가당찮은 욕망이었음을 이제 나는 깨닫는다. - P-1

...그는 어둠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자신의 몸이 어둠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그 신비스러운 합일의 경지가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상태였다. 그에게는 그런 신비를 체험한 경험이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어둠 속에 오랫동안 몸과 의식을 잠근 채 꼼짝하지 않고 있다보면 사물들이 나름대로의 형상을 빚어 스스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런 뜻에서 어둠도 빛이다.... - P-1

..이제 그는 아버지의 엄연한 존재를 시인했고, 그리하여 아버지로 하여금 그에 대해 책임을 지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신화를 쓰고자 했다.
..그가 해낸 것은 아버지와의 값싼 화해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교묘한 것이다. 죄의식의 되돌림. 아버지는,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고통당하기 시작한다. 고통을 통해 그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를 껴안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글쓰기는 감춰진 것의 드러내기이다. 그 드러내기는 그러나 감추기보다 더 교묘하다. 그것은 전략적인 드러냄이다. 말을 바꾸면 감추기 위해서 드러낸다. 그가 읽은 대부분의 신화들이 그런 것처럼. - P-1

(해설)
..그러면 이제부터 그 ‘밑그림’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를 살펴본다. 프로이트는 어린아이가 유년기에 겪어내는 중요한 삶의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경험", 즉 소설 이전의 밑그림을 ‘가족 소설Roman familial’이라고 명명했다. 어린아이는 성장하는 과정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이 맺는 삼각관계 속에서 전형적 위기를 만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상상력에 호소하여 어떤 "초보적 이야기"를 지어낸다. 마르트 로베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근원적 이야기가 곧 소설의 기원이라고 본다. 여러 예술 장르들 가운데서 ‘소설’은 "단번에 이야기로 만들어진 환상", 즉 "미래의 이야기들의 무궁무진한 저장고"인 동시에 소설이 기꺼이 그 구속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규약인 이 ‘이야기의 밑그림’을 모방한다는 점에서 다른 예술 장르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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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p.
...언뜻 한 인간에게 상황에 따라 다른 준거가 있는 듯 보이겠지만, 그 틀을 지탱하는 바탕엔 그의 견고한 기준이 있다. 차별을 불편해하는 언니의 살아 있는 감각이다. 상대를 이루는 ‘존재의 성질‘을 어디에 하나로 묶지 않으려는 자세. 상대를 고유함 그 자체로 새로이 받아들이는 느린 마음이다.
..역사란 모든 개인이 살아온 시간의 합이다. 오늘을 사는 나와 당신이 그 역사의 뉘앙스를 이루고 있겠지. 고유하게. - P-1

51p.
..사회적 지위가 하락했을 때 사람은 쉬이 우울감에 빠진다. 특히 자기 생각과 감정, 상태를 현지어로 설명하기 힘든 경우엔 더 그렇다. 입을 열 때마다 상대가 미간을 좁히며 집중해야 소통이 가능하면, 폐 끼치기 싫은 마음과 함께 초라해진 마음이 찾아온다. 집 현관은 심호흡하고 건너가야 하는 일상의 국경이다.... - P-1

72p.
...우리는 세계 어디를 가든 중요한 사람의 이름은 제대로 불리는 것을 경험한다.... - P-1

101p.
..결혼과 이민은 매우 닮았다. 다만 이 닮은꼴을 충족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가부장제에서 비켜난 결혼이거나 부부만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없어야 한다. 둘 다 ‘나‘의 가치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 곳에서 시작한다. 남의 편에 둘러싸인 관계 속에서 투항을 요구받는데 그동안 살아온 20~30년 경험은 애초에 잊자고 회유한다. 이민은 출신 국가의 경제력이 친정 부모의 능력처럼 작동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결혼하러 오면 "돈 벌러 왔다"라는 소리를 듣고, 부자 나라에서 오면 글로벌 가족이라고 불린다. ‘다문화 가정‘은 ‘무시‘를 허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둘 다 지위 하락을 경험한다. 그리고 결승점이 아닌 출발점이다. - P-1

110p.
...‘그‘가 장벽을 넘었다. 장벽과 그에 압도당하는 동요를 구별하는 차원에 이른 것이다. 장벽에 사로잡힐 때, 이는 짜증으로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실상은 일상의 과속방지턱일 수 있다. 우리가 관계 맺는 사람마다 장벽 하나쯤은 안기는 것이 인생이니까. 그걸 넘는 주체는 오직 우리다.... - P-1

126p.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적어도 청소년기를 보낸 30대와 40대로 이들에게는 아시아 사람이라는 개념이 없다. 아시아인 개념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경찰이고 교사이며 이웃인 곳에서, 즉 한국을 제1국으로 삼는 사람이 지역을 아시아와 지구로 확장할 때 갖는 동류의식 같다. 이렇게 보니 ‘한국 사회에서 황인종인 한국인이 왜 백인을 우대하고 동일시할까?‘ 했던 의문이 조금은 풀렸다. 나이지리아 흑인도 백인과 동일시한다. 1등 시민이 1등 지구인(백인 우월주의 사고일지라도)과 동일시하는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 P-1

137p.
...삶에서 나온 그들의 당부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입양과 친부모에 관해 자연스레 거론해서 아이가 생부모를 찾고 싶을 때 부모를 배신하는 것 같은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생활 반경 안에 ‘생물학적 거울‘을 꼭 갖도록 조성하는 일이었다. 아이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 말이다.... - P-1

140p.
.."우리 지금 미국 집에 왔어."
..아이는 곧바로 오빠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아이가 사랑이 충만한 외할머니 품에서 마음에 묶여 있던 감정 매듭을 많이 푼 것 같아 감사했다. 에바도 지금 가장 안전한 곳에서 스스로 온갖 매듭을 푸는 것이 아닐까? 여느 아이가 겪는 성장통과 어쩔 수 없이 묶인 여러 고비 그리고 사회가 묶어놓은 불편한 시선의 자취들까지…. 나는 벨이 35개월 된 에바를 낳았다고 믿는다. - P-1

185p.
..한편에서 "내국인에게 돌아갈 자리도 부족하다. 외국인 이주민에게까지 혜택을 넓힐 수는 없다"라고 주장한다면, 부족한 파이를 키우도록 정책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복지의 파이도 커져야 마땅하지만, 시장의 셈은 정비례를 모르고 권력은 반비례 정치로 몸을 사리며 표심 따라 부유한다. 오히려 국가 공동체를 갈등으로 분리 통치하는 시도가 병법처럼 통치술로 자리한 지 오래다. 그리하여 재난이 닥쳤을 때 호명되는 이름의 다수는 여전히 서민이다.... - P-1

217p.
..취약함을 보살피는 일상의 태도가 쌓이고 쌓여 정성을 기울인 사람까지 살리는 일이 일어날 때, 서구 전통에서는 이를 ‘은총‘이라 부르고 극동 문화에서는 ‘복 받았다‘라고 부른다.... - P-1

258p.
.."참 곱다. 예전에는 그렇게 다녀도 여름이라 초록이려니 했는데 지금은 마음에 콕 박히네. 아주 아름답다."
..먹먹해졌다. 삼킨 말이 있을 것 같았다. 혹, ‘또 볼 수 있을까?‘란 말은 아닐지. 인간 수명을 거의 누렸다는 생각에 이제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온 마음을 채운다는 말이지 싶었다. 어머니의 마음이 자리한 지점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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