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p.
...그린란드 사람들은 매일같이 기후 변화의 영향에 직면하고 자신들이 잃어버린 세상 앞에 비통해한다. 호주의 환경 철학자 글렌 알브레히트는 이러한 감정을 명명하고자 안락을 의미하는 라틴어 솔라티움solatium과 고통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알지아algia를 합성해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한때는 풍경에서 안락을 발견했다면, 이제는 고통을 발견하는 것이다. - P-1

31~32p.
..추가로 그 연구팀은 지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 치료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지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요즘 시대에는 만성 공급 부족이라 할 수 있는 무언가, 즉 경외감이 찾아온다. 발화하는 순간 입이 자동으로 벌어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일종의 시각적 의성어인 경외감awe 말이다. - P-1

37p.
...해양생물학자 월러스 J. 니콜스는 우리 모두가 ‘푸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생명에 필수적인 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의미다. - P-1

71p.
...페소아는 작은 마을의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집에서 바라본 너른 하늘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인간의 크기는 신체의 키가 아니라 시야의 범위를 기준으로 정해진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큼 크다." 그러므로 건물들이 광막한 하늘을 가리는 도시에서의 삶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야의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우리를 쪼그라뜨린다. 그리고 시인 페소아가 결론 내리듯,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보는 것"이기에 우리는 가난하다. - P-1

91p.
...SF 작가 어슐러 K. 르 귄은 "과학은 외부에서 정확하게 묘사하고, 시는 내부에서 정확하게 묘사한다"라고 쓰기도 했다. - P-1

93p.
..엘슨은 「우리 천문학자들」이라는 시에서 ‘경외감에 대한 책임‘을 설명한다. 이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의미하는데, 엘슨은 한결같은 태도로 우주를 향한 열정을 표현함으로써 그 의무를 스스로 실천한다. 이것은 내가 처음 접한 정답이기도 하다. ‘응답-능력‘response-ability 말이다. - P-1

173p.
..쌍둥이 행성을 찾는 것은 우리의 기원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철학적 혁명‘이 될 것이다. "진화론과 비교해 보세요"라고 베단탐이 말한다. "동물이 (이를테면 앵무새, 전갈, 소처럼) 세 종류뿐이었다면 다윈은 결코 그런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구를 동물의 한 종류로 생각해 보면 이 비교의 의미를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우리의 행성 지구가 어떤 사슬의 일부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사한 ‘동물‘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 P-1

178p.
..예상치 못한 것을 볼 수 있으려면 일종의 경각심을, 즉 불규칙성을 포착할 수 있는 방식의 시선을 길러야 한다. 실천은 어렵지만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웹은 말한다. 평범한 것을 낯설게 만들고, 아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만들어 보라고.
..외계 생명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외계 생명체를 인식하고자 하는 과학자라면 먼저 기존에 알던 것을 잊고 새로운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인간이 무엇인지, ‘자아‘가 무엇인지와 관련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탄생할 수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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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p.
..간직하고픈 추억의 물건과 재회한 후, ‘뭔가 버릴 건 없을까‘ 하고 다다미방을 둘러보니 구석에 놓인 대형 제습기가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당연한 듯 자리하다보면 아무리 필요 없는 물건이래도 눈에 안 들어온다는 걸, 이번에 불필요한 물건을 골라내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슬쩍 둘러보는 게 아니라 범위를 정한 뒤 눈에 들어오는 물건을 하나하나 점검하지 않으면 못 알아채는 게 제법 많다.... - P-1

37p.
.."이사의 묘미는 중요하다고 착각했던 물건을 버리는 데 있다." - P-1

49p.
..진품, 아름다운 것, 자신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 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것, 마음을 채워주는 것을 모르는 인생은 역시 경박해진다.... - P-1

53p.
...젊은 여성이 보이시하게 입으면 그 나름 멋지지만, 미묘하게 아저씨에 가까운 아줌마가 남성 느낌을 주는 옷을 입으면 자칫 빌려 입은 옷처럼 보인다. 내 안에 아저씨가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거울을 봐도 매번 ‘이건 아니야‘ 하게 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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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기간에 걸친 계획이나 약속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음 날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되면 그는 불편을 느꼈다. - P-1

..편력수첩을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 지니는 것은 크눌프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흠잡을 데 없는 그 수첩은 그럴듯하게 지어낸 우아한 허구였다. 그 안에 기입된 공공기관의 공증 사항들은 정직하고 건실한 삶이 거쳐 온, 진실로 영광스러운 체류지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 삶에서 눈에 띄는 것이라곤 장소가 매우 자주 바뀌는 데서 알 수 있는 그의 방랑벽뿐이었다. 이 공식 증명서가 입증해 주고 있는 삶은 크눌프 자신이 지어낸 것이었으며, 그는 온갖 수단을 다해 이 위태위태한 허구의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 P-1

.."지금 서로 모른다는 것은 장차 알게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산과 골짜기는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지만 사람은 가능하니까요. 당신 고향은 어디죠, 아가씨?" - P-1

..‘저 친구는 정말 좋겠어.’ 무두장이는 약간의 질투심을 느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의 일터인 물웅덩이 쪽으로 가면서, 그저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이 독특한 친구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크눌프의 이런 태도를 거만한 것이라 해야 할지 겸손하다고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일을 하고 발전을 이루어가는 사람은 당연히 여러 가지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는 하지만, 결코 그토록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손을 가질 수 없으며 그토록 가볍고 날렵하게 걷지도 못한다. 아니, 크눌프가 옳았다. 그는 자신의 천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따라하기는 어려웠다.... - P-1

...그는 자신의 카드를 우아하게 책상 위에 놓고는 때때로 엄지손가락으로 카드의 가장자리를 쓰다듬었다. 주인은 경탄과 관대함을 드러내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노동자이자 시민인 사람이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을 참아내며 보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여주인은 사교적 처세술의 징표라 할 이런 기술을 열성적인 관심을 가지고 구경하였다. 그녀의 시선은 중노동에 의해 한 번도 망가진 적 없는 그의 길고 매력적인 두 손 위에 머물러 있었다. - P-1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이나 미덕을 자랑하고 뻐길 경우, 대부분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양복 수선공의 경건함도 예전엔 그랬던 것이다. 사람들이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을 구경할 수도 있고, 그들을 비웃거나 동정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결국 그들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1

..그는 침묵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 속에 숨어 있는 고통을 난 아직 실제로 겪어본 적이 없었다. 또한 두 사람이 여전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해도 그 사이에는 언제나 깊은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으며, 그 심연은 오직 사랑으로만, 그것도 매 시간마다 임시 다리를 통해 간신히 건너갈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 P-1

...그는 마치 재능 있는 어린애가 어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 투로 학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그들이 자신보다 더 많은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능력으로 어떤 올바른 일도 시작한 바가 없고, 그렇게 많은 재주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어려운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경멸했다. - P-1

.."보아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했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했고 조롱당했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당했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했었다." - P-1

(해설)
...독일어 동사 ‘wandern’을 번역한 ‘방랑하다’와 ‘편력하다’는 그 의미가 비슷해서 혼용하기도 하지만 번역어로서는 조금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 방랑을 일상적인 의미에서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님’의 의미로, 편력을 중세 이래로 체계화되어 온 장인 제도의 일부로 이해하면 좀 더 명확하게 맥락이 전달된다. 편력은 기술 습득의 기초 단계인 견습생 기간을 마친 기능공들이 장인이 되기 위한 시험을 통과해서 자신의 가게를 소유할 자격을 얻기 전에 의무적으로 다른 지역의 장인들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묵으며 기술을 연마하는 제도이다. 직종이나 시대적 배경에 따라 편력의 조건과 기간, 옷차림과 필수 소지품, 전문용어 등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고, 편력 기능공들은 ‘편력 수첩’에 자신의 이동 기록과 경력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 P-1

..작가는 자신을 매혹시키는 것을 묘사하는 자입니다. 크눌프와 같은 인물들은 내겐 매우 매혹적입니다. 그들은 ‘유용하지는’ 않지만, 많은 유용한 사람들처럼 해를 끼치지는 않지요.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크눌프같이 재능 있고 생기 가득한 사람들이 우리의 세계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크눌프와 마찬가지로 그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제가 독자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 연약한 사람들, 쓸모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되,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1935년 2월 23일 한 독자에게 쓴 편지 중에서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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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p.
.."별로 없습니다. 장례식도 무덤도 필요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샴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는데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키우지 못했으니, 내가 죽으면 나 대신 샴 고양이를 키워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우유는 그냥 접시 말고 커다란 부삽에 따라 먹였으면 좋겠군요. 처음 한두 모금 날름날름 핥고 나면, 부삽으로 고양이의 턱을 툭 올려 치세요. 고양이 얼굴이 우유로 흥건해지겠지요. 그걸 하루에 한 번은 꼭 부탁드립니다. 중요한 일이니 잊지 마세요." - P-1

25p.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줄에 매달려 걷는 인형처럼, 책임 없는 행위의 가뿐함에 자신이 자살을 시도하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고 느꼈다. 인생은 가벼움으로 가득했다. - P-1

58p.
..‘남들이 보면 고독한 인간이 고독에서 헤어나려 애쓴 나머지 별 희한한 짓도 다 벌인다 싶겠지. 하지만 고독을 적으로 돌리면 안 돼. 나는 언제나 내 편으로 여길 거야.‘
..하니오는 드뷔시의 전주곡을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P-1

85p.
..세계가 의미 있는 것으로 변하면 죽어도 후회는 없다는 기분과, 세계가 무의미하니 죽어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어디서 서로 화해하는 것일까.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하니오에게는 죽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 P-1

93p.
..그러다 점차 일상의 감각이 되돌아왔다. 일상의 감각이란 자살미수 이후,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고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감각을 말한다. 슬픔도 기쁨도 없는 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의 윤곽이 부옇고, 밤이나 낮이나 ‘무의미‘가 간접조명처럼 부드럽게 인생을 비춘다. - P-1

97p.
..여자의 몸에서는 시골의 마른 풀더미 같은 냄새가 났다. 나중에 하니오가 자기 옷에 마른풀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을 신기하게 여겼을 정도로. - P-1

169p.
..오랜만에 보는 시내 경치 어디에도 죽음의 기운은 없었다. 사람들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의 생활에 푹 잠겨, 인생의 장아찌 같은 모습으로 걸어 다녔다. ‘저기 가면 나는 새콤한 피클이겠군‘ 하고 하니오는 생각했다. 그에게 장아찌는 술안주에 지나지 않았다. 삼시 세끼와는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내 운명이니 어쩔 수 없지.‘ - P-1

190p.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하기 쉽지만, 무의미하게 살기 위해선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하니오는 새삼스럽게 절감했다. - P-1

206p.
..하니오는 ‘이유‘를 지닌 모든 인간을 경멸할 수 있는 지점에 서 있었다. - P-1

208~209p.
..즉 하니오는 무의미에서 시작해, 그 무의미에 하나하나 의무를 부여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절대 의미 있는 행동을 시작해서는 안 되었다. 의미 있는 행동을 시작하는 바람에 좌절하거나 절망하고 무의미에 직면한 인간은, 일개 감상주의자다. 목숨을 아까워하는 자들이다. - P-1

290p.
..혼자였다. 별 돋은 아름다운 하늘 아래, 경찰서 앞 어두운 골목길 안에서 경찰을 상대하는 술집의 빨간 초롱이 두세 개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니오의 가슴에 밤이 들러붙었다. 밤이 그의 얼굴에 납죽 들러붙어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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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생이라는 생물은 두 종류로 나뉜다. 독자적인 감성을 지닌 사람과 독자적인 감성을 지니는 것을 동경하는 사람. 이케다는 후자였다.... - P-1

..폐공간에는 인간의 생활과 오래도록 단절된 데서 오는 매력이 있다. 썩은 다다미를 뚫고 나와서 늠름하게 자라는 대나무의 장엄함, 인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종교 시설이 빚어내는 디스토피아의 분위기. 그런 것은 일단 보고 나면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마성을 숨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어두운 면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숨고 싶은 인간, 세상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싶은 인간에게는 안성맞춤인 장소가 될 수도 있어서다. - P-1

..전에 호조가 물은 적이 있다. 유령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 텐데 왜 별 탈 없이 있을 수 있느냐고. 그때 깨달았다. 자신은 흥미가 없다는 것을.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하지만 자신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한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쩐지 제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이런 걸 사람으로서 최하라고 하던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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