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장기간에 걸친 계획이나 약속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음 날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되면 그는 불편을 느꼈다. - P-1
..편력수첩을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 지니는 것은 크눌프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흠잡을 데 없는 그 수첩은 그럴듯하게 지어낸 우아한 허구였다. 그 안에 기입된 공공기관의 공증 사항들은 정직하고 건실한 삶이 거쳐 온, 진실로 영광스러운 체류지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 삶에서 눈에 띄는 것이라곤 장소가 매우 자주 바뀌는 데서 알 수 있는 그의 방랑벽뿐이었다. 이 공식 증명서가 입증해 주고 있는 삶은 크눌프 자신이 지어낸 것이었으며, 그는 온갖 수단을 다해 이 위태위태한 허구의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 P-1
.."지금 서로 모른다는 것은 장차 알게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산과 골짜기는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지만 사람은 가능하니까요. 당신 고향은 어디죠, 아가씨?" - P-1
..‘저 친구는 정말 좋겠어.’ 무두장이는 약간의 질투심을 느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의 일터인 물웅덩이 쪽으로 가면서, 그저 구경하는 것 외에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이 독특한 친구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크눌프의 이런 태도를 거만한 것이라 해야 할지 겸손하다고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일을 하고 발전을 이루어가는 사람은 당연히 여러 가지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는 하지만, 결코 그토록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손을 가질 수 없으며 그토록 가볍고 날렵하게 걷지도 못한다. 아니, 크눌프가 옳았다. 그는 자신의 천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따라하기는 어려웠다.... - P-1
...그는 자신의 카드를 우아하게 책상 위에 놓고는 때때로 엄지손가락으로 카드의 가장자리를 쓰다듬었다. 주인은 경탄과 관대함을 드러내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노동자이자 시민인 사람이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을 참아내며 보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여주인은 사교적 처세술의 징표라 할 이런 기술을 열성적인 관심을 가지고 구경하였다. 그녀의 시선은 중노동에 의해 한 번도 망가진 적 없는 그의 길고 매력적인 두 손 위에 머물러 있었다. - P-1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이나 미덕을 자랑하고 뻐길 경우, 대부분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양복 수선공의 경건함도 예전엔 그랬던 것이다. 사람들이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을 구경할 수도 있고, 그들을 비웃거나 동정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결국 그들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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