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p.
.."아이하고 다니면 아이들 마을, 스님하고 다니면 스님들 마을이야. 어디나 그렇지 않아?"
..맞는 말이었다. 야쓰다하고 다닐 때 이 도시는 여행자의 도시로 보였다. 사가르하고 함께 다니기 때문에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것이리라.

212p.
..‘앎‘이란 고귀하고, 그것을 널리 알리는 일에도 긍지가 깃든다. 그렇게 믿기에 퇴직한 뒤에도 기자로 살아갈 결심을 한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니까, 내가 해야만 한다.

275p.
.."제 생각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저는 완성을 원합니다. 시든 그림이든, 가르침이든, 인류의 예지가 응축된 완성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저마다 노력하고, 지혜를 짜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부처님은 철학 분야에 한 조각을 덧붙였습니다. 굉장히 크고, 중요한 조각을 더한 거지요. 그렇다면 범천의 설득은 헛수고가 아닐 테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449p.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위대한 일을 해내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나는 계획. 또 하나는 약간은 촉박한 시간.

518p.
..BBC가 전하고, CNN이 전하고, NHK가 이미 전했더라도 내가 글을 쓰는 의미는 거기에 있다.
..몇 명, 몇백 명이 제각각의 시점으로 전하는 글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간다. 완성에 다가간다는 것은,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인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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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뭐라고 할까요. 남자들은 흔히 자기의 의지를 시험해 보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특히 머리는 별로 우수하지 않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어떤 지위에 오른 사람들의 경우, 그 과정에서 자기 의지를 과시해 보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우선 자기만족을 얻을 수가 있겠지요.

...병호는 그때까지 흔들리던 가슴이 싸늘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윽고 알 수 없는 분노로 바뀌었다. 불행한 사람들의 불행한 행동이 그를 노하게 한 것이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강 건너 산 위에 흐릿하게 떠 있는 워커힐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저런 데서는 훌륭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살고 있겠지. 이상하다. 감옥 문이 보이네. 감옥에서 나오던 날도 이렇게 눈이 왔었는디…… 역시 나한테는 거그가 좋아. 거그 들어가 있으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거든. 지리산 더덕은 역시 맛이 있어. 그걸 고추장에 찍어 먹으문 맛이 그만이지. 치알봉 올라가는 비탈에 봄이면 온통 빨갛게 피는 그 꽃들, 이름이 뭐드라. 늙어서 이젠 생각이 잘 안 나는군. 그 꽃을 따먹고 배가 아파서 죽을 뻔했었지. 그건 먹어서는 안 돼. 벌써 옛날 일이야. 아, 저기 감옥 문이 열리네. 아, 저건 우리 어멈하고 아들이 아닌가.

..그의 슬픔은 단순한 슬픔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외로운 방랑객이 오랜 여행 끝에 고향에 돌아와 새삼스럽게 자신의 비참함과 생의 허무함을 깨닫고는 울음을 터뜨리는 그런 모습이었다. 무엇을 찾아 지금까지 헤매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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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p. (편집자 후기 중)
...어느 인터뷰에서 왜 무서운 이야기를 쓰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이런 대답을 한 적이 있지요. "부모자식간의 애틋한 정을 소설에서 그대로 묘사하면 듣는 사람이 머쓱해질 수 있지만, 그걸 잃어버리거나 위협받는 상황을 그리면 얼마나 소중한가를 비로소 떠올릴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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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면 상태에 있을 때 또는 꿈속에 있을 때 그는 영원히 잠들어 버렸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았다. 요즘 그는 종종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는데, 만일 그것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차라리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그것을 치렀으면 했다.

..그는 큼직한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어 힘껏 던졌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이 세상에 대해서 점점 비굴해지고 항상 별다른 일 없이 편리하게 사는 것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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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13p.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젠 알았어요. 당신은 더 이상 도움이 필요 없어요. 적어도 내 도움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굳은 의지와 모든 것을 거부하는 냉혹함이 있어요. 당신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거부하죠.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쫓는 것, 찾는 것은 내 도움 없이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순간 눈앞에 다른 세계의 문이 나타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안으로 한 걸음 발을 들여놓으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을,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이해받을 수 있는 말과 생각이 입을 열기만 하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내 두뇌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세계의 말과 생각을 번역하고 있을 뿐, 아직 내 생각만큼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소리치고 싶은 말은 영어도 프랑스어도 아랍어도 다른 외국어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단어와 문장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수정처럼 날카롭고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간결했다. 순간적인 깨달음은 곧 사라졌다. 힐이 있는 방으로 되돌아온 내 정신에 남아 있는 것은 쇼펜하우어의 인용뿐이었다.
..‘지성은 지성이 없는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120p.
...이 세계와 인간들은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존재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들은 현재의 단편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세계를 날마다 스쳐가는 그림자였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수많은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존재다. 선이든 악이든 결국 과거의 산물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는 현재가 없다.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141p.
..마약 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냉정함이 사라져 갔다. 나는 옆으로 누워 내게서 냉정함이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왠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이제 와서 감상에 잠기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아무것도 잃지 않는 편이 나았다.

199p.
...힐이 나와는 아무 인연도 없는 세계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받아들여 내가 지금껏 생각해 보지 못한 생활에 나를 남자로 편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선물을 받았지만 가치를 알지도 못하고 기뻐할 줄도 모르면서 쓰고 있었다. 그녀의 사랑과 동정은 그녀가 믿는 다른 세계를 내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세계이지 환상의 세계가 아니었다. 단잠과 즐거운 꿈의 세계이지 악몽의 세계가 아니었다. 말과 뜻을 가진 세계이지 남자가 영혼의 황야에 혼자 살아야 하는 세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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