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p.
..나는 친절해 보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다가가곤 했다. 그들이 나를 돌봐주리라는 깊은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다가 이 세상 누구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돌봐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마음속의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겉모습은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62~63p.
..보통 사람은 양면가치를 지니고 있고, 두 가지 모순되는 상태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두 상태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한쪽에 있을 때는 다른 쪽의 감정 상태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보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서 인간의 모순성이나 애매모호함을 용인하지 못한다. 그는 어떤 사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조화시켜 일정하고 통일성 있게 이해할 수가 없다. 특정한 순간에 좋거나 나쁜 사람일 뿐, 그 중간이나 회색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묘하거나 근소한 차이는 아예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주 힘들게만 이해한다. 끊임없이 엄습해 오는 모순된 감정들과 이미지들로부터,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에서 오는 불안으로부터 경계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분열‘ 기제는 종종 역효과를 가져온다. 성격이라는 옷감 안에서 처음에는 작게 해어졌던 부분이 나중에는 완전히 찢어진다. 즉, 자기 정체감과 다른 사람들의 정체성이 더욱 극적으로, 더욱 자주 바뀌게 되는 것이다.

63p.
..전부가 아니면 무(無)라는 경계인의 사고방식은 인간관계뿐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이 하나밖에 없다고 믿는다. 일단 행동을 취하면 되돌릴 수 없다. 예를 들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여자가 직장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녀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경계인의 노력 또한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일 때가 많다. 경계성 성격장애가있는 한 대학생의 경우, 정치 캠페인에 깊이 관여하게 되자 모든 수업에서 낙제 점수를 받게 되었다. 다음 학기에 그는 수업에 전념하기 위해 일체의 정치 활동을 그만두었다. 자신의 시간을 두 가지 활동에 나누어 쓸 수 없었던 것이다.

68p.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초래했음을 깨닫게 되면, 즉 이러한 순환이 너무 자주 반복되어서 관계가 더는 손쓸 수 없이 망가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가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관계를 끊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이 끔찍한 과정을 또다시 겪는다.

70~71p.
..경계인들은 자신을 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든 간에 항상 모자람이 있다고 느낀다. 앞에서 분열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는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근거로 삼는 것은 상대방과의 가장 최근의 만남이라고 했다. 그들은 관계라는 것을 여러 요소들이 공존하는 통합체로 보지 못한다. 관계란 언제나 "그런데 당신은 최근 나를 위해 뭘 했지?" 라는 질문일 뿐이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 그들의 자존감은 자신의 최근 업적에 달려 있다. 그리고 남들을 평가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가혹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마음에 드는 경우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 중 일부는 하는 일에서 눈부신 성공을 이루고, 직장과 공동체, 혹은 가정에서 업적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자기가 마치 대사를 외우는 배우 같다고 느낀다. 관객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그들의 존재는 사라지는 것이다.

80p.
...리니핸도 이런 믿음에 동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신체의 90% 이상 부위에 3도 화상을 입은 사람들과 같아요. 정서적인 피부라고 할까, 그것이 거의 없으니 아주 작은 접촉이나 움직임에도 심한 괴로움을 느끼죠."

84p.
..중독성 수치심이란 자신이 인간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전반적인 감각으로서 경험된다. 그것은 이제 우리의 한계를 알려주는 감정 같은 게 아니라 존재의 양태, 핵심 정체성 그 자체이다. 중독성 수치심은 자신이 가치 없다는 느낌, 고립감, 공허함, 그리고 완전히 혼자라는 느낌을 준다. 자신에게 노출되는 것, 그것이 중독성 수치심의 핵심에 놓여 있다. 수치심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경계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스스로에게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85p.
...반대로, 어떤 경계인들은 자신의 힘을 아예 포기하는 방식으로 무력감에 대처한다. 예를 들어, 군대나 극도로 조직화된 신앙집단같이 모든 선택이 미리 정해지는 삶을 택할 수도 있고, 공포감을 통해 그의 삶을 지배하려는 가학적인 사람과 관계 맺기를 택할 수도 있다.

86p.
..외로움을 느낄 때, 우리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자신을 달래곤 한다. 비록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심지어는 이미 세상에 없다 하더라도 큰 위안이 된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나 상태를 대상항상성(object constancy)이라 한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 중 일부는 기분이 좋지 않거나 불안할 때 기분 전환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일이 어렵다. 어떤 사람이 바로 곁에 있지 않으면, 정서적인 차원에서 그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87p.
..경계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 중에 타인을 읽어 내고 그들의 자극점과 약점들을 찾아내는 데 놀라운 능력을 보이는 이가 적잖다. 이러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어서, 한 임상전문가는 농담처럼 경계인들을 영매(靈媒)라 부르곤 했다.

128p.
..그 사정은 이렇다. 경계인들은 남들과 너무 가까워지면 그들에 의해 집어삼켜지거나 통제당할 것이라고 느끼기 쉽다. 그들은 건강한 개인적 경계를 어떻게 세우는지 모를 뿐 아니라 진정한 친밀함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상대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고 혐오감을 느껴 떠날까봐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무방비로 노출되거나 통제당하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방법으로는 상대에게 시비 걸기,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고 하지 않기, 아주 극적이거나 격한 행동을 하기 등이 있다. 그러나 거리를 두다 보면 금세 혼자라고 느끼게 된다. 공허감이 심각해지고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도 더욱 강해진다. 그들은 다시 사람들과 가까워지고자 안간힘을 쓴다. 이 같은 순환이 되풀이된다.

158p.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 도움을 받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변화의 이득이 장애물보다 클 때 자신의 행동을 바꾼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204p.
..개인적 한계 혹은 경계는 어느 지점에서 당신이 끝나고 타인이 시작되는지를 알려준다. 경계는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믿는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정의한다. 마치 달걀 껍데기처럼, 경계는 당신에게 형태를 주고 당신을 보호한다. 마치 게임의 규칙처럼, 경계는 질서를 부여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들을 하도록 도와준다. 건강한 경계는 부드러운 플라스틱처럼 적당히 유연하다. 그것은 휘어지기는 하지만 부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신의 경계가 지나치게 유연하다면 위반과 침범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럴 경우에 당신은 다른 사람의 느낌과 책임을 떠맡게 되고 자신의 느낌과 책임은 잃게 될 것이다.

215p.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겉보기엔 정상 같은 상태로 ‘현실‘ 세계를 맞았다. 나에게는 ‘타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경계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조차 않았다. 나의 미성숙한 자기 개념 안에서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나 자신의 확장으로만 보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러듯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학대했다. 어디에서 내가 끝나고 어디에서 이 세상이 시작되는지 몰랐으므로 세상이 곧 나였고 내가 곧 세상이었다.

249p.
...제시는 어린아이같은 감정을 성인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만큼 현실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것이 경계성 성격장애의 특징이다. 어른처럼 행동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런 행동을 기대하거나, 당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고 그런 감정을 가진 자신을 꾸짖는다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264p.
..싸우고 있는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 쓸데없는 싸움을 포기하고 자신의 필요나 욕구, 신념들을 명확하게 말하기 시작하면 상대방도 보통 그 상황에 맞게 자신의 행동을 바꾼다. 이런 현상은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에서 다 나타난다. 상대가 경계인이라면 당신이 만드는 변화에 이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349~350p.
..상실은―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든, 가족의 해체이든, 소중한 희망과 꿈의 무산이든, 아니면 자식을 잃을지 모르는 위기이든―강력한 불안과 슬픔, 그리고 버림받아 혼자가 되는 데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감정을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대신 그들은 상실에 대한 슬픔을 분노로 봉인한 채 배우자를 끝없는 다툼에 끌어들임으로써 불가피한 이별을 막아 보려고 애쓴다. 싸움과 언쟁은 두 사람 사이의 접촉을 유지하는 방법인 것이다(비록 부정적인 접촉 방식이긴 하지만). 싸움을 하는 동안에도 이들은 상대방과 화해하는 환상을 버리지 않는다. 과거에도 극적인 상실(부모의 죽음이나 이혼 등)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정신적 충격에 대한 반응까지 같이 하고 있는지 모른다.

351~352p.
..만약 심리적으로 취약한 경계인이 배우자가 떠난 것을 자신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경계인은 배신과 착취와 음모에 대한 피해망상을 갖게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존스턴과 로즈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결혼생활의 잔해들을 둘러보면서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들은 배우자가 애초부터 자신을 착취하고 버리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믿게 된다."
..그 시점에서, ‘배신을 당한‘ 경계인 배우자는 공격적으로 반응하여 상대를 반격하게 될 수 있다고 존스턴과 로즈비는 말한다. 이 반격은 경계인의 삶에서 핵심적인 강박관념이 될 수도 있다. "이들에게 비경계인 배우자와 그의 동맹자들은 위험하고 공격적인 사람들로 비칩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으므로 상대에게 보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들은 느끼지요. 혹은 더 급박하게,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구호는 이것이지요. ‘공격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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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p.
..So you can see that because there were no great pleasures while living in the desert, the small pleasures became great pleasures and the pleasures of children became the pleasures of grown men....

26p.
...It was an extraordinary thing because he could make a kind of smile with his voice without smiling with his lips. His voice smiled while his face remained serious. It was a most forcible thing because it gave people the impression that he was being serious about being nice.

122p.
...He used to keep a bottle of green hair mixture on the side table in his study—when you have to dust a room you get to know and to hate all the objects in it—and this bottle had the royal coat of arms on the label and the name of a shop in Bond Street, and under that, in small print, it said "By Appointment—Hairdressers To His Majesty King Edward VII." I can remember that particularly because it seemed so funny that a shop should want to boast about being hairdresser to someone who was practically bald—even a monarch.

136p.
..She looked at him, and at that moment he seemed to be standing a long way off from her, beyond some borderline. He was suddenly so small and far away that she couldn‘t be sure what he was doing, or what he was thinking, or even what he was.

186p.
.."I don‘t see why not," he answered. "It‘s the same brain. It‘s alive. It‘s undamaged. In fact, it‘s completely untouched. We haven‘t even opened the dura. The big difference, of course, would be that we‘ve severed every single nerve that leads into it—except for the one optic nerve and this means that your thinking would no longer be influenced by your senses. You‘d be living in an extraordinarily pure and detached world. Nothing to bother you at all, not even pain. You couldn‘t possibly feel pain because there wouldn‘t be any nerves to feel it with. In a way, it would be an almost perfect situation. No worries or fears or pains or hunger or thirst. Not even any desires. Just your memories and your thoughts, and if the remaining eye happened to function, then you could read books as well. It all sounds rather pleasant to me."
.."It does, does it?"
.."Yes, William, it does. And particularly for a Doctor of Philosophy. It would be a tremendous experience. You‘d be able to reflect upon the ways of the world with a detachment and a serenity that no man had ever attained before. And who knows what might not happen then! Great thoughts and solutions might come to you, great ideas that could revolutionize our way of life! Try to imagine, if you can, the degree of concentration that you‘d be able to achieve!"
.."And the frustration," I said.
.."Nonsense. There couldn‘t be any frustration. You can‘t have frustration without desire, and you couldn‘t possibly have any desire. Not physical desire, anyway."

201p.
..What you lose on the swings you get back on the roundabouts.

228p.
..Looking at him now as he buzzed around in front of the bookcase with his bristly head and his hairy face and his plump pulpy body, she couldn‘t help thinking that somehow, in some curious way, there was a touch of the bee about this man. She had often seen women grow to look like the horses that they rode, and she had noticed that people who bred birds or bull terriers or pomeranians frequently resembled in some small but startling manner the creature of their choice. But up until now it had never occurred to her that her husband might look like a bee. It shocked her a bit.

238p.
...Good heavens above, I had seen men who were perfect shrimps in comparison with me displaying an astonishing aplomb in their dealings with the fairer sex. And oh, how I envied them!....

306~307p.
...for whether you know it or not, there is a powerful brotherhood existing among people who own very costly automobiles. They respect one another automatically, and the reason they respect one another is simply that wealth respects wealth. In point of fact, there is nobody in the world that a very wealthy person respects more than another very wealthy person, and because of this, they naturally seek each other out wherever they go. Recognition signals of many kinds are used among them. With the female, the wearing of massive jewels is perhaps the most common; but the costly automobile is also much favoured, and is used by both sexes. It is a travelling placard, a public declaration of affluence, and as such, it is also a card of membership to that excellent unofficial society, the Very-Wealthy-People‘s Union. I am a member myself of long standing, and am delighted to be one. When I meet another member, as I was about to do now, I feel an immediate rapport. I respect him. We speak the same language. He is one of us. I had good reason, therefore, to be elated.

376p.
..This time I stepped well back. "You dirty thieving bastards!" I cried. "The whole lot of you!"
..Automatically, as though they were puppets, all the heads down the line flicked round and looked at me. The expressions didn‘t alter. It was just the heads that moved, all seventeen of them, and seventeen pairs of cold glassy eyes looked down at me. There was not the faintest flicker of interest in any of them.
.."Somebody spoke," they seemed to be saying, "We didn‘t hear it. It‘s quite a nice day today."

389p.
..I believe that all poachers react in roughly the same way as this on sighting game. They are like women who sight large emeralds in a jeweller‘s window, the only difference being that the women are less dignified in the methods they employ later on to acquire the loot. Poacher‘s arse is nothing to the punishment that a female is willing to endure.

410p.
..."Cheer up, Vic," she said to me, her white teeth showing. She looked like the creation, the beginning of the world, the first morning. "Good night, Vic darling," she said, stirring her fingers in my vitals.

479p.
..Henry sat quite still and stared into the candle flame. The book had been quite right. The flame, when you looked into it closely, did have three separate parts. There was the yellow outside. Then there was the mauve inner sheath. And right in the middle was the tiny magic area of absolute blackness. He stared at the tiny black area. He focused his eyes upon it and kept staring at it, and as he did so, an extraordinary thing happened. His mind went absolutely blank, and his brain ceased fidgeting around, and all at once it felt as though he himself, his whole body, was actually encased within the flame, sitting snug and cozy within the little black area of nothing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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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방을 검토해나가면서 방주인들이 남긴 심리학적 자취를 알 수 있었고, 그들의 성격이 표현된 각기 다른 방식들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크게 3가지 분류, 즉 ‘자기정체성’, ‘감정 조절’, ‘행동양식’의 흔적이 주로 사람들이 주변 환경을 다루는 메커니즘인 듯했다....

..온라인에서 맺게 되는 인간관계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면서 자신의 각기 다른 모습을 구분지어 드러내는 일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자신이 보이고자 하는 모습만을 노출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 사람을 만난 첫날에는 몰랐지만 천일이 지난 후에는 알게 되는 그런 것들은 구체적으로 과연 어떤 것들일까? 맥애덤스는 이 질문에 대해 훌륭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친밀감의 각기 다른 세 단계를 거치는 과정이라고 그는 말한다....

..맥애덤스가 말한 대로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한 처음 두 단계를 거쳐 그 사람의 특성과 개인적인 관심사들을 파헤치고 나면, 이제 성격의 근원적인 기반에 부딪치게 된다. 바로 정체성이다. 맥애덤스는 그가 주창한 마지막 3단계를 이렇게 표현한다.
.."재구성된 과거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예상을 통합해 삶의 일관된 통일성과 목적, 의미를 제공하는 자기 내면의 이야기."
..이처럼 정체성은 우리 삶의 다른 요소들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다시 말해 정체성이란 우리의 과거·현재·미래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주는 끈이다....

..《점프 북》의 핵심은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행동에서 각자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할스만은 공중으로 점프하는 그 자세가 마치 성격을 보여주는 표상과 같다는 생각에 매혹된 나머지 점폴로지(Jumpology, 도약학)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우리는 물건을 숨겨둔다. 만약 여러분이 다람쥐라면 물건을 숨겨두는 능력에 생존이 달려 있다. 가능한 한 많은 도토리, 피칸(pecan) 열매, 개암 열매를 모으는 동시에 눈 오는 겨울에 대비해 이를 비축해두어야 한다. 물론 음식과 다른 소모품을 1년 내내 언제라도 구입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렇게 식량을 쌓아 쟁여놓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서 수백만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에도 우리의 대뇌에 각인되어 있다. 이 본능적인 성향은 현대문화 속에 흡수되고 다듬어져서 골동품부터 우표, 핫소스 병, 열차 티켓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수집 취미 속에 남아 있다.

...행복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 기분과의 연관성에 관한 깨달음은 트라비스의 통찰력을 일깨웠다. 장소에 대한 감정적인 연관성을 발전시켜나가고 그것이 나중에 우리가 주위 환경에 반응하는 것에 영향을 끼친다는 게 분명해보였다. 결과적으로 장기적인 감정적 행복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주변 환경이 우리 안에 각인되어 있는 심리적 욕구와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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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p.
...게다가 소설이라는 것은 단어의 옷을 입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경험하고 고민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넓게 보면 취재의 순간 역시 집필의 순간이다. 말하자면 몸속에 소설의 공간과 공기를 새겨 넣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몸으로 쓰는 소설 역시 퇴고의 기간이 있어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것은 몸과 정신이 자연스레 잊게 된다. 나는 이것을 몸의 퇴고라 한다....

87p.
..그 후 대학에 입학했고, 기쁜 마음에 ‘자아, 이제 본격적으로 가볼까?‘라고 결심하니, 르네상스 음악 감상실은 사라져버렸다. 이해할 수 없는 가사를 옮겨 적고, 많은 음표들이 떠다니던 갈색 테이블과 자줏빛 소파는 길가에 내버려져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목이나 사연만 읽어줄 뿐, 별다른 말없이음악과 음악 사이의 이음새만 손질하던 과묵한 DJ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소중한 또 하나의 것이 거리에서 가슴으로 이주해왔다.

138~139p.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클럽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말하자면, 경기가 없어도 찾아와서 경기장에 감도는 전운과 백 년 이상 쌓아올린 승리와 실패를 맛보게 하는 것, 그리고 승리와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 경기장이 살아온 것처럼 선수들도 살아갈 것이며, 관중들도 살아갈 것이라는 것. 어떤 이는 축구선수로, 어떤 이는 해설자로, 어떤 이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으로,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즐거워하는 것 사이를 오가며 계속 살아갈 것이라는 것, 결국 시합도 훈련도, 여행도 일상도, 여유도 바쁨도, 칭찬도 비난도 언젠가는 승리와 패배처럼 그저 ‘삶이라는 명사 하나 이상(의 그 무엇)‘에 켜켜이 쌓여갈 뿐이라는 것.

143p.
...하지만, 어쩐지 추억의 앨범을 펼쳐야만 살아나는 예술가는 쓸쓸하다. 비단 예술가에게뿐 아니라, 그 쓸쓸함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느껴진다. 사람과 술은 오래될수록 좋지만, 오래돼서 좋은 이유는 만날 수 있고, 꺼내 마실 수 있기 때문 아닌가. 나는 그렇기에 굳이 ‘X-Japan 적인 삶‘과 ‘안전지대적인 삶‘을 택하라고 하면, 약간은 망설일지 모르겠으나 결국은 후자를 택할 것이다. 박물관에 사진으로 걸린 채, 견학 온 초등학생들에게 ‘저런 사람이 있었어요. 굉장히 용감하게 싸웠고, 굉장히 장렬하게 전사했어요‘라고 소개받는 건 곤란하다. ‘일동 묵념‘ 같은 존경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144p.
...누구나 생의 길을 걷다 보면 진흙이 묻기 마련이고, 햇볕을 쬐다 보면 검게 그을리기 마련이고, 즐겁게 웃다 보면 주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마련이기 마련인 것을 외면하려면 자신을 혹독하게 박제시킨 후, 박제된 자신, 즉 삶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만을 안주삼아 술잔을 들이켜며 생의 나날들을 고독하게 보내야 한다....

157p.
...역시 사람은 사회적 계급을 모두 떼버리고 무작위로 모여봐야, 인생에서 자신이 처한 위도와 경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즉, 나도 그만큼 나이를 먹어버렸다는 것을 훈련을 받으러 온 동년배들을 통해 뒤늦게 깨달았다.

198p.
..우리는 여행을 떠났을 때, 뭐든지 빌려 쓰는 걸 당연하게 느낀다. 그런데, 폭넓게 보자면 천상병 시인이 이 땅에서의 삶을 ‘한 번의 소풍‘으로 비유했듯, 인생 자체가 한바탕 여행 아닌가. 즉, 우리 인생을 긴 여행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많은 것을 빌려 쓰면서 그것을 내 것으로 긍정하며 지낼 수 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명백한 착각이지만,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낙관적인 착각이라 할 수도 있다. 오늘은 ‘백세 시대‘라는 예기치 못한 생의 연장을 부여받은 우리에게, 과연 소유란 무엇이고 대여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려 한다.

200p.
..물론 집만 이런 건 아니다. 소모품, 가령 연필이나, 노트북이나, 전화기 따위는 나보다 일찍 죽어버린다. 온전히 내 것이라면 내가 웃고, 우는 평생 동안 함께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것들은 그저 내게 잠시 머무를 뿐이다. 비록 내가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표면적으로는 내 소유로 인정을 받더라도, 그것들은 언제나 살아 있는 나를 떠나 어느 순간 죽어버린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떠나보내야 한다. 과연 나를 스쳐지나갈 뿐인 것을, 온전한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경제학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구매‘란 비용을 지불했더라도 결국 ‘화폐의 교환행위‘인 것이다. 화폐와 물품을 교환했지만, 그 물품이 온전히 내것이 될 수 없다면? 나는 결국 모든 것을 빌려 쓰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생은 ‘끊임없이 뭔가를 빌려 쓰는 날들의 연속‘이다.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 땅에서의 삶의 전제조건이다. 물론, 모든 이의 생이 이렇다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일단 내가 처한 생은 이렇다.

200~201p.
..이 생각이 햇살처럼 꾸준히 마음을 비추면 얼음처럼 견고했던 헛된 희망도, 쓸데없는 꿈도 스르륵 녹게 된다. 인생은 담백해지고, 바라는 건 소박해지고, 일상은 간결해진다. 소유에 대한 집착도 줄고,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준다. 원래 내 것은 없었기에, 당연히 모든 걸 빌려 쓴다고 여기게 된다. 이렇듯 하루씩 자신의 삶을 빌려 쓰게 된다. 결국, 삶 전체가 빌려 쓰는 것이 된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232p.
..약간 동떨어진 인용이긴 하지만, 언젠가 한 소설가의 산문집에서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차밭 주인은 남의 밭 차에 대해 품평하지 않는다."....

234p.
..굳이 이런 걸 바라고 사는 건 아니지만, 이런 원칙이 삶이라는 바쁜 여정에 오른 행인에게 건네는 차 한잔 정도는 된다. 여하튼, 차밭 주인은 남의 차에 대해 품평하지 않는다. 같은 의미로, 작가 역시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해 품평하지 않는다. 인간 역시 다른 인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소설을 쓰건, 차 농사를 짓건, 그 밭 옆길을 지나가건, 삶은 누구에게나 정직하게 다가온다.

240p.
..간혹 밤에 스탠드를 켜놓고 <You Can‘t Go Home Again>을 즐겨 듣는데, 시원한 밤바람이 들어오는 5월, 창을 열고 들으면 정말 좋다. 특히 좋은 건 트럼펫을 연주하다 숨이 차서 쳇 베이커가 숨을 들이쉬는, 즉 들숨의 소리인데, 듣다 보면 ‘그래, 결국 사람이 하는 거였군‘ 하는 생각이 든다. 들숨과 날숨으로 양분해서 생각하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트럼펫 연주는 결국 전적으로 날숨에 의존해 있는데 어쩐지 들숨 소리를 듣지 않으면 ‘아니,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나는 거야‘라고 의문을 품게 된다....

285p.
..살다보니 점차 삶의 아픈 면이 보인다. 게다가 내게도 어느덧 흰머리가 하나씩 생길수록 ‘유머의 모발(이란 게 있다면, 이 소중한 것)‘이 하나씩 줄어가는 기분이다. 하여 요즘 바라는 것은 기왕 유머의 모발이 줄어간다면, 웃음의 대가로 상처를 치러야 했던 뾰족한 유머의 모발이 줄어가는 것이다. 대신 나와 당신이 함께 즐겁게 살 수 있는 유머의 모발은 천천히 줄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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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화가이자 건축가인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는 ‘집은 제3의 피부’라고 말했다. 우리 몸의 피부와 우리가 입고 있는 옷 다음으로 집은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인 것이다....

...카펫은 공간에 섬을 만들어준다. 카펫 위에 식탁과 의자를 놓으면 거실에 있는 ‘식당 섬’이 되는 것이다....

..공간은 항상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과 물건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공간과 물건은 우리에게 심미적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미적 인상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측면은 주변 환경이 보여주는 ‘미스터리’이다. 즉 비밀스러운 것, 뭔가 더 알아내고 싶게 하는 것, 다음 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을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형상물을 말한다. 수풀과 나무로 가려져 여러 공간으로 구획된 정원은 한눈에 훤히 들어오는 정원보다 더 신비스럽게 느껴져 사람들이 흥미로워한다....

..건물 구성 방식에 대한 규정이 많을수록 그 공간에 자유롭게 개성을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이에 대한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빈에 있는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다. 화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서는 기존의 건축 양식과는 거리가 먼 건물을 지었다. 곡선을 이용한 유기적인 형태, 불규칙적으로 설치한 창문, 직선이 없는 공간, 알록달록한 색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건물을 보며 감탄하지만 정작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독특한 건축 양식과 건물에 압도되어 그 공간에 동화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 결과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세입자 교체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 건물 안에서 안락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3의 피부인 집에서 계속 낯섦과 불편함을 느낀다.

..자기 공간에 대한 동화는 근본적으로 끝이 없다. 어떻게 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 동화는 지속되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인생 자체가 늘 변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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