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p.
...부모가 있기에 나도 있다는 발상은 국가가 있기에 국민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와 직결되는 최대 악이다. 나아가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는 맹독이다.

15p.
..부모들의 무심함에는 그저 기가 찰 따름이다. 관찰력도 사고력도 없는, 거의 동물에 가까운 생물이 인간의 꼴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판단력이라는 것을 약간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런 잔혹한 세상에 자식을 내보내는 무자비한 짓을 저질렀겠는가.

24~25p.
..집을 떠난다는 것은 제2의 탄생을 뜻한다.
..제1의 탄생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부모 의지에 따른 것이지만, 제2의 탄생은 그 전권을 자식이 쥔다.

38p.
..자식은 우선 자신이 어떻게 키워졌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성격이 어떠한지를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기본적인 사항을 파악하려 하지 않거나 게으름을 피우고 외면하려 한다면, 이후에는 어떤 것도 설계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에 생긴 균열이 점점 커져 종국에는 와르르 무너지고 정신도 잃을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문제는, 정확한 자기 인식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 그것이다. 냉정하게 자기라는 인간을 직시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다.

47p.
..세상이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도, 그렇기에 재미있게 하기 위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시도해 보자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세상을 사는 확실한 의미 따위가 존재한다면 또 그 의미의 노예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제적인 의미가 없다는 것은 자유로운 의지로 나만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뜻이라고는 생각지 않는가.

77p.
..그러니 자립의 정도가 그것을 결정하는 셈이다. 자립에 반하는 삶의 방식은 곧 명석함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자립이란 인간이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충분히 곱씹은 후, 강한 인간을 지향하면서 과감하게 분투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독서와 우애, 교양만으로는 그 왕도를 터득할 수 없다. 혼자 힘으로 이 가혹한 세상을 끝까지 살아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강하고 굳은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몇 번이나 말하는데,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 시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다.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렇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생겨난 얄팍한 환영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긴장하고, 그 긴장감에서야말로 살아 있음과 사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82~83p.
..인간은 분에 넘치는 두뇌를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저항감과 고통을 느낀다. 반면 본능을 관장하는, 서로 물고 뜯고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 파충류와 별 차이 없는 가장 원초적이며 밑바닥에 있는 뇌 부위에 의지하려는 관성은 몹시 강하다.

129p.
..자기 신뢰의 습관을 터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전 생애에 걸친 목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흔들림 없는 목적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자립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살아가는 자기만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갖고 있고, 그 목적을 향해 하루하루 매진하면서 충만감을 느끼느냐 아니냐는 독립한 인간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175p.
..자신 속에 어떤 보물이 잠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도 모른다. 그 보석이 하나뿐이라고도 할 수 없다. 몇 개가 숨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대단한 것이다. 평생을 들여 그 보석의 원석을 갈고닦을 수 있느냐에 삶의 진가가 있다. 그 외는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무의미한 인생이다.

180p.
..직관만 의지할 뿐 생각하기를 포기한 인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셈이다.
..헤치고 들어가기 어려운 뇌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그 무한한 힘을 최대한 가동해, 지울 수 없는 자아와 자아를 둘러싼 세계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곧바로 지적인 기능은 쇠퇴해 결판나고 만다. 끝내는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는 아주 당연한 자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또 세상과 떨어져 있고, 진심이 변치 않는 성실하고 훌륭한 인물과 만날 수 없다. 따라서 경청할 가치가 있고, 생각하며 살도록 도와주며, 유익하고 위엄에 찬 말과도 조우할 일이 없다.

181~182p.
..생애를 다 바쳐도 좋을 만큼의 궁극적인 목표와 목적은 환영 따위가 절대 아니다. 차분히 기다리고 말없이 시시각각 관찰하는 끈질김만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고 언젠가 만날 수 있는 현실 자체이다.
..전심전력으로 노력할 가치가 있는 목적을 향해 길 아닌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온갖 장소는 보고일 수 있다.
..또한 목표 중의 목표, 목적 중의 목적은 온 정력과 인생을 쏟아 부어도 발전과 진보가 멈추지 않을 만큼 심오한 것이어야 한다. 게다가 아무도 발을 내딛지 않은 미지의 세계와 통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 번 그것을 발견하고 그 길에 발을 디딘 자는 거짓 삶과 진정한 삶을 구별할 수 있다. 나아가 수많은 사람이 혈안이 되어 추구하는 행복, 즉 단순히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한 공허한 충만감 따위는 상대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결정되는 이른바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터무니없는 환상으로 자기 삶을, 또는 자신의 죽음을 위로하는 태도에서도 단숨에 벗어난다.
..그런 후에야 청춘 시절이 열리면서 시작된 ‘바람직한 정념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확고한 해답을 얻을 수 있고, 비애와 쾌락의 황홀한 한순간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이 실은 인간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게 깨닫는다.

185p.
..진정한 목적을 지닌 자는 타인과 교류하는 것을 성가셔 한다.
..투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가 생긴 순간 시간이 귀중해져 인간관계를 꼭 필요한 범위로 좁힌다.
..고독하고 암담한 쪽은 이들이 아니라, 타인과 맺은 끈끈한 관계를 끊지 못하는 목적 없는 인간들이다. 타인과 불필요하게 교제하면서 유난히 밝은 척하거나 오기를 부리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인간들이다.
..만약 태어나기 이전에 태어날 확고한 의미와 흔들림 없는 목적이 마련되어 있었다면, 사람은 그 의미와 목적의 노예가 되어 오히려 그것들을 잃고 말 것이다.
..의미도 목적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즉,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의지의 자유로움이 존중된다는 뜻이며, 의지의 세계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컨대 스스로 그것들을 발견하면서 멋대로 사는 것이 좋다는 영원한 암시인 동시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는 의미가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렇게 멋진 조건과 권리는 없다.

196p.
..삶의 노예가 되는 한이 있어도, 죽음을 좇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랜 시간 이어 온 삶을 무시하고 찰나에 불과한 죽음에 집착하는 것은 너무도 바보스러운 짓이다.
..생명의 친구는 어디까지나 삶이지 결코 삶에 부수적인 죽음이 아니다.
..그러니 삶을 통해 죽음을 응시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삶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로 쟁취하는 것이고, 죽음은 가능한 한 물리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악전고투와 고생에야말로 생명의 가치가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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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톈밍의 문제는 세상으로 뛰어들 수도 없고, 세상과 별개로 우뚝 설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출세할 능력도 자본도 없이 고통스럽게 허공에 붕 떠 있었다.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네. 맞아요. 그래도 양심과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셔야 해요. 책임을 따르면 행성을 팔아야 하고, 양심을 따르면 항성을 팔지 않겠죠. 항성의 에너지를 포기한 것도 책임을 따른 결정이고요. 선생님은 과거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제 지도교수님도 그래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어요. 양심과 책임은 가치가 없어요. 이제 그건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이에요. 사회 인격 강박증이라고 부르죠."

..‘탈물질 효과’란 우주 심리학의 한 개념이다. 사람이 지구 세계에 있을 때는 물질의 실체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잠재의식 속 세계의 이미지가 물질과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외우주에서는 별은 멀리서 흐릿하게 반짝이는 점이고 은하계도 그저 희미한 빛을 내는 엷은 안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감각기관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세계가 질량과 실체감을 상실하고 시간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우주인의 잠재의식 속 세계가 물질적인 세계에서 공허한 세계로 바뀌게 되는데 이런 멘털모델이 바로 우주 심리학의 기본 좌표다. 인간의 심리 속에서 전함이 우주의 유일한 물질적 실체가 되고 아광속*에서는 전함의 운동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우주는 끝없이 넓은 전시장으로 변하고 별들은 환각으로 변하며 전함이 우주의 유일한 전시품이 된다. 이런 멘털모델은 거대한 고독감을 수반하게 되며, 잠재의식 속에서 ‘전시품’의 슈퍼 관찰자에 대한 환상이 생기고 더 나아가 자신을 완전히 들켜버렸다는 불안감과 수동성이 나타나기 쉽다.

.."광속 때문이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지름은 160억 광년이고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어요. 광속은 초속 30만 킬로미터밖에 안 되죠. 느려터졌어요. 우주의 한쪽 끝에 있는 빛이 영원히 다른 쪽 끝에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광속보다 더 빠른 건 없으니까 이쪽의 정보와 작용력도 우주의 다른 쪽 끝까지 전달될 수 없죠. 영원히. 우주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뇌에서 나온 신경신호가 온몸으로 전달되지 못해요. 그의 뇌는 팔다리의 존재를 모르고 팔다리는 뇌의 존재를 모르죠. 또 몸의 각 부위도 다른 부위의 존재를 몰라요. 이게 전신마비 환자가 아니고 뭐겠어요? 이것보다 더 끔찍한 비유도 할 수 있어요.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는 시체예요."

.."생존 자체가 행운입니다. 과거에 지구에서 그랬듯이 지금 이 냉혹한 우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지 모르게 인류가 환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생존을 아주 당연한 일로 여겼지요.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이 세계에 다시 진화의 깃발이 올라가고 여러분은 생존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모두 마지막에 남은 5000만 명에 속하길 바랍니다. 식량에 잡아먹히지 말고 여러분이 식량을 잡아먹으십시오."

..이때 청신의 의식은 우주만큼이나 투명하고 텅 비어 있었다. 회상할 것도 없고 뚜렷한 감정도 없었다. 생명의 태양이 내려앉으며 거울처럼 매끄러운 정신의 수면 위에 거꾸로 비쳤다. 매일의 황혼처럼 그렇게……. 이것이 맞다. 만약 세상이 손가락 하나 튕기는 사이에 재가 되어 날아갈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종말이라는 것도 풀잎을 따라 굴러떨어지는 이슬방울처럼 평온하고 담담해야 한다.

.."사실 말입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멸망이란 잘못된 말이에요. 그 무엇도 정말로 파괴할 수 없고 소멸시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해요. 물질의 총량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니까. 각운동량도 여전히 존재하죠. 그저 물질의 조합 방식이 변하는 것뿐. 카드를 다시 섞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생명은 스트레이트 플러시 같아서 카드를 한번 섞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세계감 때문이에요."
.."세계감이라고요?"
.."세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요. 우주 도시에는 넓은 내부 공간이 있어야 해요. 시야가 탁 트여야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요. 방사형 구조가 되면 고리로 된 파이프 속에서 살게 되죠. 전체 면적은 다른 우주 도시와 비슷하더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우주선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시시각각 인식하게 될 거예요."

.."인간의 본성을 잃으면 많은 걸 잃지만, 짐승의 본성을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돼."

..그렇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5000년 동안 미친 듯이 달려온 문명이었다. 끊임없는 진보가 더 빠른 진보를 부추기고, 수많은 기적이 더 큰 기적을 만들어냈다. 인류가 신처럼 위대한 힘을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진정한 힘을 가진 건 시간이며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 세상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문명의 끝에서 그들은 태곳적 갓난아기 때 했던 일을 해야 했다.
..돌에 글씨를 새기는 일을.

..곡률 추진 항적은 위험한 표시가 될 수도 있고, 안전보장 성명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느 세계의 옆에 있다면 전자가 되고, 그 세계를 감싸고 있다면 후자가 된다. 올가미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지만, 그가 그 올가미를 자기 목에 쓰면 안전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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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281p. [지적 거인이 되는 법]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며 내가 느끼는 격렬하면서도 막연한 경멸감을 해석해준 챕터.

55p.
...그들은 엘리트에 반대하며 자란 엘리트다. 그들은 부유하지만 물질주의에 반대한다. 그들은 평생을 무언가를 팔면서 살지만 자신들이 팔리는 것은 싫어한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반기득권적이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새로운 기득권 계층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69p.
..개인의 사회적 지위는 순자산과 그의 반물질적 태도를 곱한 값이다. 하나라도 0이 있다면 지위는 0이고, 양쪽 숫자가 모두 높다면 지위가 아주 높은 셈이다. 따라서 좋은 대접을 받으려면 그럴싸한 소득을 보여 주는 동시에 세속적 성공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는 걸 보여 줘야 한다. 당신은 늘 주위 사람들보다 한 단계 더 낮게 옷을 입어야 한다. 문신을 하거나 픽업트럭을 몰거나 혹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서 반지위적 일탈로 보는 행동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또 본인의 성공은 보잘것없다는 듯이 대화해야 한다. 업적을 드러내면서도 짐짓 감추며 모순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 계속 여피족을 속속들이 깎아내려야 스스로가 아직 그들처럼 되지 않았음을 보여 줄 수 있다....

107p.
...그리니치 빌리지에 거주하던 작가이자 편집자인 말콤 카울리는 1934년에 발표한 『망명자의 귀환』에서 20세기 초반 미국의 보헤미안이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보헤미안은 그의 말을 옹호한다.) "아이들에 의한 구원을." 우리는 각자 특별한 가능성을 품고 태어나지만, 사회는 그걸 조금씩 말살한다. "자기표현의 관념을." 삶의 목적은 내적인 자아의 개성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데 있다. "이교도의 관념을." 육체는 사원이며 나체와 섹스는 불결하지 않다. "현재를 사는 관념을." "자유의 관념을." 모든 법률과 관습은 철폐되어야 한다. "여성 평등의 관념을." "심리적 적응의 관념을."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억압받거나 부적응했기 때문이다. "장소 전환의 관념을."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새롭거나 활력 넘치는 곳으로 갈 때 비로소 진실을 마주한다.

130p.
..이런 추세가 이어진 결과, 교육받은 계층과 그들의 소지품 사이에 모험 격차가 생기고 있다. 그들이 소지한 물건들은 그들이 실제로 하는 일보다 더 위험한 활동을 위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안데스산맥 등반용으로 만들어진 등산화는 주로 농산물 시장을 활보한다. 혹한기도 견딜 최고급 양모 외투는 편의점의 시원한 복도를 걸을 때 걸친다. 사륜구동 자동차들은 기껏해야 진흙탕길을 좀 지나는 정도의 험한 여행길을 달린다. 다만 귀족 시대의 위선이 정중함을 가장한 무례함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보보들의 거친 장비는 모험으로 위장한 편안함이라 하겠다.

137p.
..이러한 지위 전도顚倒의 방식은 복고적이면서 동시에 하향적이다. 그냥 낡은 물건을 사는 행위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추가적으로, 사회적 계층 사다리 밑으로 내려가 더 가난한 사람들이 쓰던 소지품을 사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전 소유자들이 너무도 소박하고 순수해서 물건의 대단한 가치를 몰랐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의 의미가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그런 물건들로 주위를 장식해야 한다. 그래서 보보들은 더 부유해질수록 더 셰이커(Shaker, 자급자족하며 검소한 삶을 추구한 개신교의 한 종파) 교도처럼 산다.

181p.
...과거 100년 동안의 보헤미안들처럼 로작도 자기통제보다 자기표현을 더 강조했다. 그는 자기확장이 삶의 목적이라고 믿었다. 그는 "우리들 각자가 한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는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순수하게 경험할 줄 알고 지극히 광대한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쓸 줄 아는 온전히 통합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196~197p.
...한마디로 말하자면, 메티스를 지닌 사람은 흐름을 안다. 어떤 것들이 어울리고 어떤 것들이 어울릴 수 없는지,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질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하는지 안다.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를 구분할 수 있다. 이사야 벌린은 고전적인 에세이 『고슴도치와 여우』를 쓰면서 메티스를 알게 됐다.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우연히 처한 상황에서 우여곡절을 인지하는 특별한 감각이다. 영구적인 조건이나 바꿀 수 없는, 혹은 완전하게 설명하거나 계산할 수 없는 요인에 집착하지 않고 살아가는 능력이다." 이와 같은 지식은 지속적으로 대응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생긴다....

224p.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식인들은 궁극적으로 신성화의 힘을 독점하고자 경쟁한다. 특정 분야의 정상급 개인이나 기관은 그들이 좋아하는 인물과 주제, 담론 방식에 권위와 명예를 부여할 힘을 지닌다. 이와 같은 신성화의 힘을 지닌 사람들은 취향에 영향을 끼치고 특정한 방법론을 선호하고 특정한 원칙을 수립한다. 이처럼 막강한 신성화의 힘을 갖는 것은 지식인들의 꿈이다.

246p.
...언젠가 어느 현명한 사람이 이렇게 얘기했다. 작가의 궁극적인 힘은 어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출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데 있다고. 저자는 첫 번째 저서의 제목을 정할 때 자신이 평생 비위를 맞출 고객층을 염두에 두고 선택할 수 있다....

295p.
..요약하면, 도덕적 기준은 반드시 일시에 부상하거나 몰락하는 것이 아니다. 선행과 악행의 분명한 기준이 갑자기 생겼다가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은 주식 시장에서의 선물 거래만큼이나 복잡한 것이어서 어떤 기준이 한쪽에서는 떠오르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떨어진다. 결국 우리가 엄격해지는 것인지 느슨해지는 것인지 알기 어렵게 된다....

364p.
..그래서 우리 보보스는 많은 선택이 있는 세상에 살지만, 목숨까지 거는 신념의 삶은 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심오한 진실, 가장 깊은 감정, 혹은 가장 높은 소망에 접근할 수 있는 삶 또한 살지 못할 것이다. 종국적으로 자유와 신념, 덕행과 풍요, 자율성과 공동체를 조화시키려는 이와 같은 시도의 문제는, 그것이 무언가 끔찍한 분열이나 부도덕한 퇴폐주의로 이어진다는 점이 아니다. 그보다는 너무 많은 타협과 영적인 애매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일 것이다. 끝없이 선택만 하려는 사람은 결국 신념도 아니고 자유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직면할지 모른다. 그들은 결국 중도적이지만 아무 쪽도 아닌 삶을 살게 될지 모른다. 때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우리는 비록 그런 통합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그 대신에 우리 자신은 더욱 피상적이 되었고 깊고 높은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382p.
..정말로 조화로운 방식의 친밀한 권위는 과도한 개인주의와 공식적인 권위 사이의 제3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강력한 물체가 더 작은 물체에 압력을 행사하는 물리학적인 권위가 아니다. 그것은 생태계의 모든 구성체가 서로에게 점진적이고 은근한 압력을 행사해 전체적인 네트워크가 번창하도록 하는 생물학적인 권위인 것이다.
..이런 은근하지만 지속적인 압력을 과거의 보헤미안들은 억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마을을 떠나 대도시의 익명성과 자유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보보들은 공동체를 추구하며, 해방과 자유보다 통제를 더 선호한다. 그들은 이제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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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5p.
..분명 쇼핑을 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쇼핑으로 새로운 물건을 손에 넣을 때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도파민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기분(쾌감,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뇌내 신경전달물질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의욕적으로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뇌가 ‘이건 좋은 행동이니까 자꾸자꾸 해야겠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도파민이 분비되고 사람은 행복감을 느낍니다.
..인간의 뇌는 자신을 지키고 종을 보존하는 일, 즉 생존을 가장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래서 처음 발견한 장소에서 낯선 열매나 낯선 동물을 발견하면 ‘혹시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에게 ‘주워라‘, ‘잡아라‘라고 명령합니다. 갓난아기가 신기한 물건에 흥미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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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p.
...그녀는 광고에서 황금색 하이힐을 신고 황금빛의 향수 여신으로 표현되지만, SNS에는 우리와 똑같이 청바지에 헐렁한 면 셔츠를 입고 장을 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에서 친근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이 스니커즈의 효과다. 스니커즈는 톱스타 연예인들의 일상을 우리와 가까워 보이게 하고, 우리는 유명인이 신는 스니커즈를 직접 사서 신음으로써 현실적인 욕망을 채울 수도 있다.

179p.
..하지만 업계를 믿는다. 가장 먼저 경기가 살아날 곳도 스니커즈 시장이기 때문이다. 스니커즈를 비롯한 신발은 생활필수품이어서 먹고 자는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입고 신는 것에 씀씀이가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합리적인 가격의 스니커즈부터 다시 불황을 이겨낼 것이다. 신발은 늘 불경기에 가장 늦게 반응하고 또 가장 빠르게 정상으로 올라온다. 신발은 소비를 보상받을 수 있는 가장 눈에 띄는 생활필수품이자 패션용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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