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톈밍의 문제는 세상으로 뛰어들 수도 없고, 세상과 별개로 우뚝 설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출세할 능력도 자본도 없이 고통스럽게 허공에 붕 떠 있었다.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네. 맞아요. 그래도 양심과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셔야 해요. 책임을 따르면 행성을 팔아야 하고, 양심을 따르면 항성을 팔지 않겠죠. 항성의 에너지를 포기한 것도 책임을 따른 결정이고요. 선생님은 과거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제 지도교수님도 그래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어요. 양심과 책임은 가치가 없어요. 이제 그건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이에요. 사회 인격 강박증이라고 부르죠."

..‘탈물질 효과’란 우주 심리학의 한 개념이다. 사람이 지구 세계에 있을 때는 물질의 실체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잠재의식 속 세계의 이미지가 물질과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외우주에서는 별은 멀리서 흐릿하게 반짝이는 점이고 은하계도 그저 희미한 빛을 내는 엷은 안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감각기관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세계가 질량과 실체감을 상실하고 시간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우주인의 잠재의식 속 세계가 물질적인 세계에서 공허한 세계로 바뀌게 되는데 이런 멘털모델이 바로 우주 심리학의 기본 좌표다. 인간의 심리 속에서 전함이 우주의 유일한 물질적 실체가 되고 아광속*에서는 전함의 운동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우주는 끝없이 넓은 전시장으로 변하고 별들은 환각으로 변하며 전함이 우주의 유일한 전시품이 된다. 이런 멘털모델은 거대한 고독감을 수반하게 되며, 잠재의식 속에서 ‘전시품’의 슈퍼 관찰자에 대한 환상이 생기고 더 나아가 자신을 완전히 들켜버렸다는 불안감과 수동성이 나타나기 쉽다.

.."광속 때문이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지름은 160억 광년이고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어요. 광속은 초속 30만 킬로미터밖에 안 되죠. 느려터졌어요. 우주의 한쪽 끝에 있는 빛이 영원히 다른 쪽 끝에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광속보다 더 빠른 건 없으니까 이쪽의 정보와 작용력도 우주의 다른 쪽 끝까지 전달될 수 없죠. 영원히. 우주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뇌에서 나온 신경신호가 온몸으로 전달되지 못해요. 그의 뇌는 팔다리의 존재를 모르고 팔다리는 뇌의 존재를 모르죠. 또 몸의 각 부위도 다른 부위의 존재를 몰라요. 이게 전신마비 환자가 아니고 뭐겠어요? 이것보다 더 끔찍한 비유도 할 수 있어요.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는 시체예요."

.."생존 자체가 행운입니다. 과거에 지구에서 그랬듯이 지금 이 냉혹한 우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지 모르게 인류가 환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생존을 아주 당연한 일로 여겼지요.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이 세계에 다시 진화의 깃발이 올라가고 여러분은 생존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모두 마지막에 남은 5000만 명에 속하길 바랍니다. 식량에 잡아먹히지 말고 여러분이 식량을 잡아먹으십시오."

..이때 청신의 의식은 우주만큼이나 투명하고 텅 비어 있었다. 회상할 것도 없고 뚜렷한 감정도 없었다. 생명의 태양이 내려앉으며 거울처럼 매끄러운 정신의 수면 위에 거꾸로 비쳤다. 매일의 황혼처럼 그렇게……. 이것이 맞다. 만약 세상이 손가락 하나 튕기는 사이에 재가 되어 날아갈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종말이라는 것도 풀잎을 따라 굴러떨어지는 이슬방울처럼 평온하고 담담해야 한다.

.."사실 말입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멸망이란 잘못된 말이에요. 그 무엇도 정말로 파괴할 수 없고 소멸시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해요. 물질의 총량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니까. 각운동량도 여전히 존재하죠. 그저 물질의 조합 방식이 변하는 것뿐. 카드를 다시 섞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생명은 스트레이트 플러시 같아서 카드를 한번 섞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세계감 때문이에요."
.."세계감이라고요?"
.."세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요. 우주 도시에는 넓은 내부 공간이 있어야 해요. 시야가 탁 트여야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요. 방사형 구조가 되면 고리로 된 파이프 속에서 살게 되죠. 전체 면적은 다른 우주 도시와 비슷하더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우주선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시시각각 인식하게 될 거예요."

.."인간의 본성을 잃으면 많은 걸 잃지만, 짐승의 본성을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돼."

..그렇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5000년 동안 미친 듯이 달려온 문명이었다. 끊임없는 진보가 더 빠른 진보를 부추기고, 수많은 기적이 더 큰 기적을 만들어냈다. 인류가 신처럼 위대한 힘을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진정한 힘을 가진 건 시간이며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 세상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문명의 끝에서 그들은 태곳적 갓난아기 때 했던 일을 해야 했다.
..돌에 글씨를 새기는 일을.

..곡률 추진 항적은 위험한 표시가 될 수도 있고, 안전보장 성명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느 세계의 옆에 있다면 전자가 되고, 그 세계를 감싸고 있다면 후자가 된다. 올가미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지만, 그가 그 올가미를 자기 목에 쓰면 안전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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