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p.
..특수 청소란 무엇이냐. 요컨대 사람을 집에서 해방시켜 주는 일이야. 대부분은 반대로 생각하지. 시체때문에 집이 더러워졌으니까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라고. - P-1

468p.
..일찍이 어머니가 자신을 안고 있었던 곳을 요새처럼 둘러싸고, 마지막 정도는 누구 눈에도 띄지 않는 컴컴한 암흑 속에서 잠들고 싶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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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p.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 쇼세이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처리 능력이 높은 인간 특유의 뇌로 이제까지 온갖 생각을 곱씹고 정리해 [온전함]을 찾았으므로 그 정도 수준의 고민은 논리적으로 해결했답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종은 때로 어떤 조짐도 없이 자신을 보는 시선을 사회라는 공동체에 빼앗기고 맙니다. 맑았던 날이 갑자기 흐려질 때처럼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정리되었을 어둠이 느닷없이 우르르 나타납니다. - P-1

71p.
..쇼세이, 공동체의 확대, 발전, 성장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분노가 등장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어느 정도 방법을 확립해 놓았습니다.
..우선은 [생각은 사람마다 다른 법]부터 시작합니다. 이겁니다.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본래 의미에서 벗어나 범람하게 되면서 의견이 다른 개체들의 논쟁이 상당히 줄었습니다. 단어의 제대로 된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고방식은 저마다 다르지. 대체로 여기서 대화는 중단됩니다. 쇼세이에게는 정말, 좋은 흐름이죠.
..다만 같은 직장에서 오래 얼굴을 맞대야 하는 관계라면 그 무기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음에는 보듬어 줘야 합니다. 쇼세이가 채택한 방법은 [너는 다른 개체보다 매사를 본질적으로 바라본다]라며 상대를 깊이 이해하는 척 다가간 다음 [그러니까 눈앞의 일부터 하나씩 하자]라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격려하는 겁니다.
..이 방법은 대체로 잘 먹힙니다. - P-1

93p.
..외지 벌이라고 해도 좋겠죠. 쇼세이는 자기가 사는 생식지(자택)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다른 세계로 매일 돈을 벌러 나가는 느낌입니다. 출근이라기보다는 다른 행성으로 매일 돈을 벌러 나갔다가 돌아온다는 표현이 더 [온전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매일입니다. - P-1

94p.
..쇼세이, 그 상태에 도달했을 때 생각했습니다.
..살 수 있겠다고.
..이성애 개체에게는 이 감정이 보통 출발 지점 아닌가요?
..쇼세이는 골인 지점입니다.
..다이스케와 이쓰키, 소우는 그 상태를 0으로 시작해 1, 2를 쌓아 갑니다. 쇼세이가 죽어라 달려온 서바이벌의 단계를 이미 끝내고 순식간에 컨스트럭션, 즉 구축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기 인생을 구축하면 이번에는 신세를 졌던 공동체나 차세대 개체를 위해 이 세계의(기껏해야 백 년 전후의 시간적 척도에서) 나쁜(그렇다고 인간이 판단하는) 부분을 수정하는 레지스턴스, 즉 저항을 시작합니다. 생존, 구축, 저항, 그렇게 한 단계씩 오르는 게 그들 그녀들의 일반적인 인생 형태입니다. - P-1

95p.
..쇼세이는 발생한 순간부터 내내 0을 향해 달린 느낌입니다.
..언젠가 자신이라는 개체와 세계의 구조가 일치할 곳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내내 혼자 걸었습니다. 주어진 이 개체 그대로 살아남는 상태가 종의 보존에 반하거나 생물학의 근간을 흔든다고 얘기되지 않는 장소를, 줄곧 찾아 헤맸습니다. - P-1

154p.
..인간은 어차피 자기가 듣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인다니까요. 애당초 전문서란 [그것]과 관련된 삼라만상이 적혀 있기보다는 저자가 인지한 정보, 저자가 연구한 주제와 관련된 정보가 모여 있으니까요. 인간은 항상, 한 방향으로 편향된 정보를 취사선택합니다.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이상, [그것]에 대해 조사하면 할수록 [그것]의 진실에서 멀어집니다. - P-1

163p.
..수요를 넘어서 신제품을 계속 발매해야 성립하는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아주 적당한 순간에 자신을 다시 새롭게 상품화합니다.
..대체로 인간은 다음 세 단계 중 무언가를 선택하고 조합하며 상품화합니다.
..첫 번째는 Maryam처럼 차세대 개체를 낳아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확대하는 단계. 이쓰키도 지금, 이 패턴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겠죠. 다른 하나는 기시처럼 노동으로 회사라는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단계. 마지막은 소우가 말하는 SDGs로 대표되는, 그야말로 사회의 성장과 지구 전체의 개선과 이어지는 구조에 도전하는 단계입니다.
..이쓰키의, 자신이 원하는 게 진짜 뭔지 모르겠다는 어정쩡한 고민도 다음에는 어떻게 자신을 새로 상품화할지를 고민하는 겁니다.
..인간은 대체로 이 세 가지 패턴 중 하나에서 벗어나는 길, 즉 자신을 전혀 새롭게 상품화하지 않는 삶을 좀처럼 선택할 수 없습니다. 너의 [다음]은 무엇이냐고 공동체 감각의 감시 카메라가 감시하고, 본인도 자신을 새롭게 상품화해 새로운 생산성을 얻음으로써 자신은 확대, 발전, 성장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복 수준도 오르니까요. - P-1

229p.
.."부정형의 의사 표시는 아무도 안 봐 줘요."
..쇼세이, 침을 삼킵니다.
.."외부와 차단하고 자기로부터 홀로 도망쳐 온갖 일을 [하고 싶지 않아]라고 결정해도."
..쇼세이, 소우의 눈에 비친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세상을 부정해도 제삼자에게는 그냥 거기 있는 사람일 뿐이에요."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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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p.
..저 멀리 떨어진 나선형 성운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만, 넘버원의 회색 주름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역사가 과학이기보다 신탁인 것은 아마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중에야, 한참 지난 뒤에야 역사는 통계표라는 도구로 가르쳐지고 해부학적 절단면으로 보충될는지도 모른다. 선생은 어느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나라에 살던 대중이 처한 삶의 조건들을 보여 주는 대수학 정식을 칠판 위에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자, 시민 여러분, 여기 이 역사적 과정을 있게 한 객관적 요소를 보시오"라고 말하면서.... - P-1

75p.
...만성적인 감옥 몽상가들은 거의 언제나 미래를 꿈꾸었다. 만일 과거를 생각한다 해도 그것은 실제 있던 일이 아니라 자기들이 추측하거나 바라는 대로 각색된 것이었다. 루바쇼프는 자기의 정신 기관에 또 다른 놀라운 일이 저장되어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죽음과의 대면은 늘 사고의 메커니즘을 바꾸었고, 자극에 끌리는 나침반처럼 가장 놀라운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그는 경험으로 알았다. - P-1

120p.
.."물론이지. 언젠가 한 수학자가 말하길, 대수학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하더군. x를 풀지 않고서도 마치 아는 듯 조작하기 때문이라네. 우리의 경우, x는 익명의 대중, 즉 인민을 상징하지. 정치란 x의 실제적 본질을 생각하지 않은 채 x로 작업하는 걸 의미하네. 그러나 역사를 만든다는 것은, 방정식에서 x가 차지하는 의미로서의 x를 인식한다는 것이지." - P-1

137p.
..……궁극적 진리는 끝에서 두 번째 지점에서는 언제나 거짓이다. 결국 옳다고 입증될 사람은 그 전에는 틀린 것으로, 그리고 해로운 것으로 나타난다. - P-1

209p.
.."역사의 가장 위대한 범죄자는 네로와 푸케 타입이 아니라, 간디와 톨스토이 타입이네. 간디의 내면 목소리는 인도의 해방을 막는 데 영국의 총보다도 더 많은 역할을 했지. 은화 서른 닢에 자기를 파는 건 정직한 거래야. 그러나 자기를 자기 양심에 파는 건 인류를 포기하는 것이지. 역사는 선험적으로 도덕과는 무관한 거야. 그건 양심을 안 가졌어. 역사를 주일 학교의 가르침에 따라 이끌고자 하는 건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놔둔다는 의미이지. 그건 자네도 잘 알 거야. 이 내기에 무엇이 걸렸는지 알고 있는 자네가 보그로프의 울먹임을 얘기하다니……. 뚱뚱한 알로바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니……." - P-1

228~229p.
..인민들이 지배하거나 지킬 수 있는 개인적 자유의 양은 이들의 정치적 성숙도에 달려 있다. 앞에서 언급한 진자 운동은, 대중의 정치적 성숙도가 한 개인의 성장처럼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한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의 성숙도는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상품의 생산과 분배의 과정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인민들이 스스로를 민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은 전 사회 조직체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비례한다.
..그런데 모든 기술적 개선은 경제 기구에 새로운 분규를 야기하고, 새로운 요소와 결합 관계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러한 현상을 대중은 한동안 꿰뚫어 보지 못한다. 기술적 진보의 모든 도약은 상대적으로 대중의 지적 발전을 한 걸음 뒤처지게 한다. 그로 인해 정치적 성숙도의 온도계는 하강 국면을 맞이한다. 인민들의 이해 수준이 변화된 상황에 점차 적응하기까지는, 곧 그것이 문명의 낮은 단계에서 이미 소유한 것과 같은 자기 통치 능력을 회복할 때까지는, 때로 수십 년 혹은 여러 세대가 걸린다. 그러므로 대중의 정치적 성숙도는 하나의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오로지 상대적으로, 즉 그때그때 문명의 단계에 비례해 측정될 수밖에 없다.
..대중의 의식 수준이 상황의 객관적 상태를 따라잡을 때 평화적으로든 폭력에 의해서든 민주주의의 정복이 불가피하게 이어진다. 그것은 기술적 문명의 다음 도약(예를 들면 베틀의 발명과 같은)이 대중을 상대적인 미성숙 상태로 되돌려 놓고 어떤 형태의 전제적 통치의 출현을 가능케 하거나 필요하도록 만들 때까지 그렇다. - P-1

251p.
...루바쇼프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사람은 허영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태워 버려야 한다. 자살이 허영의 뒤집힌 형식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 P-1

283~284p.
..루바쇼프는 기소된 자의 육체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이런 방법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보통 두 명 혹은 세 명의 조사 책임자가 교대로 대질 심문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글레트킨은 절대로 다른 사람과 교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바쇼프만큼이나 자기 자신도 혹사시켰다. 그럼으로써 그는 루바쇼프에게서 마지막 심리적 안식처, 즉 학대받는 자의 비애나 희생자의 도덕적 우월성 같은 것마저 박탈했다. - P-1

290~291p.
..루바쇼프는 코안경을 소매에 문질렀다. 그 대화가 자신이 애써 믿으려는 것처럼 정말로 무해한 것이었을까? 물론 그는 분명 ‘협상‘도 하지 않았고, 어떤 합의점에 이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Z 역시 그럴 만한 어떤 공식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 대화 전체가 기껏해야 외교적 용어로 ‘수심 측정‘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수심 측정은 그 당시 그의 생각을 연결하는 논리적 사슬의 한 고리였다. 게다가 그것은 당의 일정한 관례들과 일치했다. 혁명 직후 옛 지도자도 망명에서 돌아와 혁명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 나라의 장군 참모로서 복무하지 않았는가? 나중의 첫 평화 조약에서 그는 평화에 대한 대가로 특정 영토를 포기하지 않았는가?
.."옛 지도자는 시간을 얻기 위해 공간을 희생시킨 거지."
..루바쇼프의 재치 있는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 P-1

305p.
...이바노프는 최후까지 자신의 과거를 질질 끌고 다녔다. 그래서 그가 하는 무슨 말에나 장난기 어린 우수의 빛이 서려 있었다. 글레트킨이 그를 두고 냉소주의자라고 부른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글레트킨의 무리에게는 지워야 할 어떤 것도 없었다. 그들은 어떤 과거도 안 가졌기 때문에 과거를 부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탯줄도 없이, 경쾌함도 없이, 우울도 없이 태어났다. - P-1

330~331p.
.."세상이 지금 이렇게 된 것은 영리함과 품위가 서로 싸우기 때문이야. 한쪽 편만 드는 사람은 다른 쪽은 없이 지내야 해. 사람이 여러 생각을 다 말하면 좋지 않은 거야. 그래서 『성경』에도 이렇게 적혀 있는 거야.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오는 것이니라." - P-1

338~339p.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바쇼프에게 다가갈 길은 아직 있었다. 가끔 그는 예기치 않게 어떤 가락 혹은 어떤 가락에 대한 기억에, 아니면 <피에타>의 구부러진 손이나 어린 시절의 어떤 장면에 대한 기억에 반응했다. 마치 소리굽쇠를 친 것처럼 응답하는 진동이 일어나고, 이것이 시작되면 신비주의자들이 ‘황홀‘이라고 부르거나 성자들이 ‘정관‘(靜觀)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되곤 했다. 현대 심리학자들 중 가장 위대하고 진지한 사람들도 이런 상태를 하나의 사실로 인정했고, 그걸 ‘대양적 감정‘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한 인간의 존재는 바닷가의 소금 한 알갱이처럼 녹아버렸다. 그러나 동시에 무한한 바다는 소금 한 알갱이에 모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알갱이는 더 이상 시간과 공간에 놓일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건 사고가 그 방향을 잃고 마치 나침반의 바늘처럼 돌기 시작하는 상태와 같았다. 그래서 그것은 마침내 그 축에서 벗어나 공간 속에, 마치 밤하늘의 빛 무리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상과 모든 감정, 심지어 고통과 기쁨 자체도 의식의 프리즘 속에 분열하는, 그저 같은 빛줄기의 분광인 것처럼 여겨졌다. - P-1

341p.
..당은 개인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동시에 자발적 자기희생을 강요했다. 당은 개인의 양자택일 능력을 부정하는 동시에 한결같이 옳은 것을 택하길 요구했다. 당은 선과 악을 분간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부정하는 동시에 죄와 배반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했다. 개인은 경제적 숙명성이라는 계시 아래 서 있었다. 개인은 영원히 감기기만 하고 멈추거나 어떤 것에 영향받아 움직일 수 없는 시계 장치 속 한 바퀴였다. 그런데도 당은 그 바퀴가 시계 장치에 반역을 일으켜 그 경로를 변화시키길 요구했다. 어디선가 계산 착오가 있어 방정식은 풀리지 않았다. - P-1

344p.
...역사의 맥박은 느렸다. 인간은 햇수로 계산했지만, 역사는 세대로 계산했다. 아마 지금도 창조의 둘째 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이 살아남아 대중의 ‘상대적 성숙의 법칙‘을 세울 수 있겠는가! - P-1

345p.
..어쩌면 먼 훗날에야 비로소 새로운 깃발과 함께 새로운 운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경제적 숙명성‘과 ‘대양적 감정‘을 모두 아는 새 정신이 일어나리라. 아마도 새로운 당의 당원들은 수도사 옷을 걸칠 테고, 오직 순수한 수단만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전도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한 인간이란 1백만 명을 1백만 명으로 나눈 결과라고 말하는 교리는 틀렸다고 가르칠 것이며, 곱셈에 근거한 새로운 종류의 산수를 도입할지도 모른다. 즉 1백만 명의 개인이 합쳐져 하나의 새로운 실체를 형성하고, 더 이상 무정형의 집단이 아닌 이 새로운 실체가, 무제한적이나 그 자체로 충족된 공간 속에서, 1백만 배로 확대된 ‘대양적 감정‘으로 자기 자신의 의식과 개인성을 펼쳐 나갈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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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열쇠»
...그리고 데들랜드의 청색은 일종의 시각적인 침묵이다. 아침에 보면 바위들조차 푸른 서리에 뒤덮여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미(美)일까 추(醜)일까? 나의 내면에서 해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이 거대한 침묵의 일부이다. 단지 그럴 뿐이다.... - P-1

«12월의 열쇠»
...이렇게 해서 생명은, 자신에게 충분히 봉사한 자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 P-1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그 대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을 주식회사로 만들고 그 주식의 40퍼센트를 팔아 치워도 좋다. 그 대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남은 수명 중 몇 년과 교환해도 좋다. 그러나 이런 내기에 응해 줄 초자연적인 상대는 아무래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대답을 몰랐기 때문이다.... - P-1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안 돼. 만약 그런다면, 당신은 나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느끼면서 일생을 보내야 해.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려고 할 걸. 당신이 그러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어. 왜냐하면 우리들은 닮은꼴이고, 나 자신이 바로 그렇게 됐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지금 그 해답을 찾아!」 - P-1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그래서 나는 원색의 리본처럼 내 마음을 비틀었고, 접은 다음,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요란한 크리스마스풍의 장식 매듭을 만들기로 했다.... - P-1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그리고 비밀은 바로 이 말에 있소.」 나는 시를 낭독할 때처럼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가 한 말은 옳았소! 모든 것은 바로 허영이었던 것이오! 중요한 것은 자만이었소! 예언자를, 신비가를, 신을 언제나 공격했던 것은 합리주의의 오만이었소.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고, 또 앞으로도 우리를 지탱해 줄 것은 바로 우리들의 불경스러움이었던 것이오. 신들도 우리 안에 있는 이것을 내심으로는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오. 신의 성스러운 이름들은 모두 입에도 올릴 수 없을 만치 불경스러운 것이란 말이오!」 - P-1

«이 죽음의 산에서»
..나는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인간은 왜 산에 오르는 것일까? 편평한 대지가 두렵기 때문에 높은 곳으로 이끌리는 것일까? 인간 사회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고, 그들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을 시도하는 것일까?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화환을 씌워 줘야 한다. 설령 그가 추락한다고 해도, 일종의 영광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실족해서, 섬뜩한 파멸과 소진의 구렁텅이로 떨어진다는 것은 패자에게는 걸맞은 클라이맥스이다 ─ 이것 또한 산과 마음을 진감하게 하고, 그 밑에 존재하는 사념 따위를 휘저어 놓으며, 패배와 차가움 속의 승리를 상징하는 시든 화환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차가운 탓에, 그 마지막 행위는, 그 동작은, 어딘가에서 영원히 얼어붙은 채, 조상(彫像)처럼 미동도 않고 궁극적 의도와 목적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는, 우주적인 악의의 개입에 의해서만 좌절되는 의도와 목적을. 모종의 필수적인 미덕을 결여하고 있으면서도 큰 뜻을 품은 성자나 영웅에게도, 언제나 순교자가 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최후의 순간까지도 정말로 기억하는 것은 최후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산들에 올랐던 것처럼, 카슬라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고, 그 대가가 무엇이 될지도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나는 하나뿐인 가정을 잃었다. 그러나 카슬라는 그곳에 있었고, 내 등산화는 신어 달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했을 때, 그녀의 정상 어딘가에 발을 디뎠을 때, 내 밑에서 하나의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승리의 순간이 바로 앞으로 다가와 있다면, 하나의 세계 따위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진실과, 미(美)와, 선(善)이 하나라면, 왜 이들 삼자 사이에서는 언제나 이런 알력이 존재한단 말인가? - P-1

«폭풍의 이 순간»
..그때, 내 대답은 이랬다. 「인간이란 그가 그때까지 한 모든 일,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들,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 이 모든 것의 총합이다.」 - P-1

«폭풍의 이 순간»
..이 탓에 오후는 엉망이 되었다. 젖은 발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주차장으로 되돌아갔고, 차로 물을 헤치며 집을 향해 갔다. 원래 희망은 사막에서 낙타를 타는 것이었던 하천 보트의 선장이 된 심경이었다. - P-1

«폭풍의 이 순간»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 끊임없이 쉬운 데로 도망칠 궁리를 하는 소도 결국은 도살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그 여정은 다른 소들에 비해 조금 더 즐거워진다고나 할까. - P-1

«폭풍의 이 순간»
...시간의 복수는 기억이고, 당신이 아무리 오랫동안 눈과 귀를 가리고 있어도, 다시 깨어날 때 과거는 역시 당신과 함께하고 있다. 그런 다음 취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완전히 변해 버린 세계에 있는 당신 아내의 이름 없는 무덤을 방문하고, 예전에 고향이었던 장소에 이방인으로서 되돌아오는 일이다. 그러면 당신은 또다시 그곳에서 도망치고, 이윽고 조금은 잊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의 실제 인생에서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렵 당신은 외톨이가 되어 완전한 고독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절망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알았던 것은 바로 이때의 일이었다. 나는 책을 읽었고, 일했고, 마셨고, 여자를 샀지만, 다음 날 아침이 오면 나는 언제나 나였고, 혼자였다. 다른 곳에 가면 심기일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나는 별에서 별로 도약을 거듭했지만, 변화를 겪을 때마다 나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 P-1

«폭풍의 이 순간»
...용기의 에센스란 결국 그런 것이다. 당신이 그때까지 했던 모든 일, 하고 싶어 했거나 싶어 하지 않았던 일들, 그리고 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거나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의 총합에 의해 이미 결정된 무의식적인 순간이자, 순간적으로 척추 신경을 타고 오르는 불꽃인 것이다. 고통은 그 뒤에 찾아온다. - P-1

«성스러운 광기»
..이미 해버린 일을 원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하늘 아래에서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대신 고뇌하고, 기억하고, 회개하고, 저주하거나, 잊을 수는 있다. 단지 그뿐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는 불가피한 것이다. - P-1

«루시퍼»
..불빛은 별과는 달랐다. 별들을 모두 때려눕히고도 남을 정도로 강렬했다. 불빛은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던 도시의 화려하고 질서 정연한 별자리였다. 규칙적으로 늘어선 가로등, 광고판의 조명, 치즈 상자를 닮은 아파트의 창문들을 밝히는 등불, 바늘처럼 뾰족한 마천루의 측면을 솔리테어의 카드처럼 여기저기서 밝히고 있는 반짝이는 사각형의 불빛, 도시 상공에 드리워진 구름층을 뚫고 빛의 안테나를 회전시키고 있는 서치라이트의 불빛. - P-1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과 더불어 1950년대의 SF를 대표하는 3대 거장의 한 사람이었던 아이작 아시모프는 『소비에트 과학 소설Soviet Science Fiction』(1962)의 서문에서 현대 SF의 발전 단계를 모험 주류(1926~1938), 과학 기술 주류(1938~1950), 사회 과학 주류(1950~)의 3단계로 나누고 있다.... - P-1

...굳이 구약의 창세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름이 곧 파워[魔力]라는 사상은 모든 원시 사회에 공통된 믿음이며, 이 믿음을 가장 고전적인 형태로 형상화한 것은 마법사 게드를 주인공으로 한 르귄의 『어스시Earthsea』 4부작이다. 곧잘 J. R. R. 톨킨의 대하 판타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3부작과 비견되곤 하는 〈어스시〉의 세계에서, 사람의 하나밖에 없는 이름은 곧 그 인물의 에센스이며, 삼라만상의 진정한 이름을 알아내는 일은 곧 세계를 이해하는 행위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호학(記號學) 지향이 강한 딜레이니는 장편 SF 『바벨-17』을 통해 비교 언어학의 새피어-워프 가설 ─ 인식의 많은 부분은 해당 언어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는 현대판 언령 신앙 ─ 을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의 모티프로 삼는다는 폭거(?)를 감행했고, 결국 『바벨-17』은 대니얼 키스의 『앨저논에게 바치는 꽃다발Flowers for Algernon』과 함께 1966년 네뷸러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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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소유물의 관리처럼 인간관계도 자신이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범위에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나는 생활비를 재점검하면서 깨달았다. - P-1

..예를 들어 매장에서 구매하려고 집어 든 옷을 계산대에 가지고 가기 전에 머릿속으로 ‘이 쇼핑은 소비·낭비·투자 중에 어디에 해당할까?’라고 순간 멈춰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쓰던 게 다 떨어져서 사려고 하는 소비인지, 집에 이미 있는데 더 사려고 하는 낭비인지 확실히 자각할 수 있다. 투자인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이 소비나 낭비다. - P-1

..상상 메모는 ‘저걸 사면 이렇게 될지도 몰라’라며 자신의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자세히 기록하고 소비 습관을 다듬어 나가는 방법이다.
(...)
..상상 메모를 쓰다 보면 어린 시절 갖고 싶은 옷이나 신발을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림으로 그렸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돈을 써서 원하는 것을 바로 손에 넣으려고 하지만, 사실 이상적인 이미지를 상상할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다. - P-1

..갈팡질팡하지 않으려면 지금 가진 물건으로 지내는 습관이 필요하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건널목 앞에서 일단정지’ 규칙이다. 건널목을 계산대나 지불 행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 P-1

..자신의 만족이 세간의 기준과는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위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생활의 만족도가 오른다. 무엇이 어떻든 마음에 편한 쪽을 의식주의 기본으로 하면 생활 전체 비용이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 P-1

..자가소비 시스템에서 내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작은 만족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해준 일, 돈을 내고 얻은 것에는 자칫 불만이 생기거나 지나친 요구가 따를 수 있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요구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다. - P-1

..내가 저소비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우선 시작한 일은 절약을 의식하는 것에 더해 과밀하지 않은 장소와 시간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혼잡한 장소나 시간대를 철저히 피하자 이전의 내가 상당히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장소의 분위기에 휩쓸려 움직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 P-1

..떠나려고 해도 붙잡는 것이 많은 세상이 되었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런 환경에서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점점 자신이 아닌 다른 요소에 휘둘리게 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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