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p.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 쇼세이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처리 능력이 높은 인간 특유의 뇌로 이제까지 온갖 생각을 곱씹고 정리해 [온전함]을 찾았으므로 그 정도 수준의 고민은 논리적으로 해결했답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종은 때로 어떤 조짐도 없이 자신을 보는 시선을 사회라는 공동체에 빼앗기고 맙니다. 맑았던 날이 갑자기 흐려질 때처럼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정리되었을 어둠이 느닷없이 우르르 나타납니다. - P-1

71p.
..쇼세이, 공동체의 확대, 발전, 성장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분노가 등장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어느 정도 방법을 확립해 놓았습니다.
..우선은 [생각은 사람마다 다른 법]부터 시작합니다. 이겁니다.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본래 의미에서 벗어나 범람하게 되면서 의견이 다른 개체들의 논쟁이 상당히 줄었습니다. 단어의 제대로 된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고방식은 저마다 다르지. 대체로 여기서 대화는 중단됩니다. 쇼세이에게는 정말, 좋은 흐름이죠.
..다만 같은 직장에서 오래 얼굴을 맞대야 하는 관계라면 그 무기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음에는 보듬어 줘야 합니다. 쇼세이가 채택한 방법은 [너는 다른 개체보다 매사를 본질적으로 바라본다]라며 상대를 깊이 이해하는 척 다가간 다음 [그러니까 눈앞의 일부터 하나씩 하자]라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격려하는 겁니다.
..이 방법은 대체로 잘 먹힙니다. - P-1

93p.
..외지 벌이라고 해도 좋겠죠. 쇼세이는 자기가 사는 생식지(자택)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다른 세계로 매일 돈을 벌러 나가는 느낌입니다. 출근이라기보다는 다른 행성으로 매일 돈을 벌러 나갔다가 돌아온다는 표현이 더 [온전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매일입니다. - P-1

94p.
..쇼세이, 그 상태에 도달했을 때 생각했습니다.
..살 수 있겠다고.
..이성애 개체에게는 이 감정이 보통 출발 지점 아닌가요?
..쇼세이는 골인 지점입니다.
..다이스케와 이쓰키, 소우는 그 상태를 0으로 시작해 1, 2를 쌓아 갑니다. 쇼세이가 죽어라 달려온 서바이벌의 단계를 이미 끝내고 순식간에 컨스트럭션, 즉 구축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기 인생을 구축하면 이번에는 신세를 졌던 공동체나 차세대 개체를 위해 이 세계의(기껏해야 백 년 전후의 시간적 척도에서) 나쁜(그렇다고 인간이 판단하는) 부분을 수정하는 레지스턴스, 즉 저항을 시작합니다. 생존, 구축, 저항, 그렇게 한 단계씩 오르는 게 그들 그녀들의 일반적인 인생 형태입니다. - P-1

95p.
..쇼세이는 발생한 순간부터 내내 0을 향해 달린 느낌입니다.
..언젠가 자신이라는 개체와 세계의 구조가 일치할 곳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내내 혼자 걸었습니다. 주어진 이 개체 그대로 살아남는 상태가 종의 보존에 반하거나 생물학의 근간을 흔든다고 얘기되지 않는 장소를, 줄곧 찾아 헤맸습니다. - P-1

154p.
..인간은 어차피 자기가 듣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인다니까요. 애당초 전문서란 [그것]과 관련된 삼라만상이 적혀 있기보다는 저자가 인지한 정보, 저자가 연구한 주제와 관련된 정보가 모여 있으니까요. 인간은 항상, 한 방향으로 편향된 정보를 취사선택합니다.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이상, [그것]에 대해 조사하면 할수록 [그것]의 진실에서 멀어집니다. - P-1

163p.
..수요를 넘어서 신제품을 계속 발매해야 성립하는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아주 적당한 순간에 자신을 다시 새롭게 상품화합니다.
..대체로 인간은 다음 세 단계 중 무언가를 선택하고 조합하며 상품화합니다.
..첫 번째는 Maryam처럼 차세대 개체를 낳아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확대하는 단계. 이쓰키도 지금, 이 패턴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겠죠. 다른 하나는 기시처럼 노동으로 회사라는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단계. 마지막은 소우가 말하는 SDGs로 대표되는, 그야말로 사회의 성장과 지구 전체의 개선과 이어지는 구조에 도전하는 단계입니다.
..이쓰키의, 자신이 원하는 게 진짜 뭔지 모르겠다는 어정쩡한 고민도 다음에는 어떻게 자신을 새로 상품화할지를 고민하는 겁니다.
..인간은 대체로 이 세 가지 패턴 중 하나에서 벗어나는 길, 즉 자신을 전혀 새롭게 상품화하지 않는 삶을 좀처럼 선택할 수 없습니다. 너의 [다음]은 무엇이냐고 공동체 감각의 감시 카메라가 감시하고, 본인도 자신을 새롭게 상품화해 새로운 생산성을 얻음으로써 자신은 확대, 발전, 성장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복 수준도 오르니까요. - P-1

229p.
.."부정형의 의사 표시는 아무도 안 봐 줘요."
..쇼세이, 침을 삼킵니다.
.."외부와 차단하고 자기로부터 홀로 도망쳐 온갖 일을 [하고 싶지 않아]라고 결정해도."
..쇼세이, 소우의 눈에 비친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세상을 부정해도 제삼자에게는 그냥 거기 있는 사람일 뿐이에요."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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