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도 언젠가는 그런 불안함을 느낄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그만둘 거라고 기대했지만, 아이들은 그만두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먹고 나면 이전에 아팠던 기억 같은 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그 기억 때문에라도 반드시 한 번 더 해야만 했다. 마치 그 고통이야말로 물건을 되돌아오게 만드는, 그리하여 그것을 떨어뜨리는 즐거움을 한 번 더 맛볼 수 있게 하는 이유인 것 같았다. 맨 처음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 내가 그것들을 되돌려주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은 다른 무언가를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게 뭐였을지는 나도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하지만 나로서는, 속물적인 자기 과시나, 심지어 자기 정의定意로서의 문학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어떤 책이 다른 책보다 더 나은 책임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사실 감탄할 만한 책을 읽을 때마다 점점 더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어 보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은, 누구를, 그리고 그 무언가를 설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들을 통해 라이언이 배운 것은 실패는 자꾸만 되돌아오는 반면, 성공은 끊임없이 스스로 확인해야만 하는 무엇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글쓰기, 고통이 변질된 것 같은 그 작업에서 아일랜드가, 트랄리에서 보냈던 그의 과거가 완벽한 뼈대가 되어주었다. 갑자기 미국의 근본적인 익명성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가장 뛰어난 수강생은 아니었다. 그 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또한, 동료 수강생들은 바로 그 익명성을 붙들고 씨름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기댈 수 있는 정체성이 없는 사람이 더 좋은 작가가 된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을 덜 뒤틀린 시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에 있을 때보다 미국에 있을 때가 더 아일랜드인다웠다.
..나로서는 교향곡을 하나씩 차례대로 들으면서 오후 시간을 보내는 것이,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을 읽으며 보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클레리아의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가 같은 것을, 그러니까 개별적인 것들이 지워지고 인간사의 부분들을 모아둔 총합에 초점을 맞출 때 드러나는 어떤 객관성을 대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그것 역시 일종의 규율, 자아와, 자아가 하는 말을 일시적으로 지워버리는 금욕주의의 한 형태겠지만, 어쨌든 빽빽하게 꽂혀 있는 클레리아의 교향곡들은 압도적이었다....
...한때는 그런 더 큰 세상이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 그 충동은 내가 가졌던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일 뿐이었다. 그 끈은 어디로도 나를 데려가지 않는다. 그저 한없이 펼쳐진 익명의 황무지로 데려갈 뿐이었다. 나는 원하는 만큼 멀리 헤엄쳐나갈 수도 있었고, 거기서 그대로 익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충동, 자유롭고 싶다는 그 욕망마저도 내게는 여전히 어떤 강박이었다. 나는 그 충동과 관련한 모든 것이 환영에 불과함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그 존재만큼은 여전히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들이 너무 많았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눈에 띄었고, 유용했던 것들이 번거로운 것들이 되어버렸다. 두 아이는 이전에 잘 어울렸던 것만큼 이제는 적대적이 되었는데, 조화는 시간을 초월하고 무게도 없는 것인 반면, 적대감은 구체적인 공간과 시간을 차지했다. 손에 잡히지 않던 것들이 단단한 실체를 가지게 되었으며, 머릿속에만 있던 것들이 형체를 띠게 되었고, 사적인 것들이 공개되었다. 평화가 전쟁이 될 때, 사랑이 증오로 바뀔 때, 무언가가 세상에 등장하게 마련인데, 그건 유한성이 지닌 순수한 힘이었다. 사랑이 우리들을 무한한 세계에 붙잡아둔다면, 증오는 그 반대였다. 놀라운 점은 증오는 아주 세세한 것들에까지 미치기 때문에, 아무것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무언가 개선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에 말입니다. 중독되었기 때문에 삶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그 이야기에 깊이 휘둘리는 거예요. 심지어 소설도 거기에 영향을 받는데, 이제 그 소설이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이 책에서 기대했던 대로 풀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점점 더 나아지는 삶에 대한 이런 감각을 나는 더 이상 바라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더 겁에 질렸지만, 어쩌면 두려움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은 거기에 옷을 입혀주는 거잖아요. 말하자면 번역을 하는 거죠. 그저 번역을 해주는 단순한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이 무해한 것이 될 때가 많으니까요...."
.."저는 세계가 다시 순수해지는 걸 보고 싶어요. 개인적인 의미가 없는 그런 공간이오. 하지만 전혀 모르는 곳, 아무도 저를 모르고 제가 아는 사람도 없는 그런 곳으로 가는 방법 말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떻게 하면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는지, 도대체 그런 곳이 있기는 한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관계나 책임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것들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은데, 동시에 거기서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생략’ellipsis이라는 단어는, 그 친구들의 설명에 따르면, 어원 그대로는 ‘침묵 속에 숨다’라는 의미였다.
.."그건 우리가 동물들이 인간 의식의 순수한 반영이라고 보는 경우 아닐까요? 동시에 우리는 동물들의 존재에서 어떤 도덕적 힘을 끌어내서는, 거기에 비춰 인간들의 존재를 객관화하고 안전하게 보호하기도 하잖아요. 노예나 하인들처럼, 그들이 없어지면 주인들이 불안함을 느끼는 그런 존재인 셈이죠. 동물들은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우리가 진짜라는 걸 확인해줍니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 접근하는 거예요. 동물들과의 상호 관계에서 우리는─동물들이 아니라요─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지죠. 아무래도─적어도 인간 입장에서는─동물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점은 녀석들이 말을 못 한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언어 장벽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이 없다고,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웃긴 생각인 것 같다고도 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영어를 쓰게 만드는 추세에 대해서는 거의 죄의식이 들 정도였고, 언어가 바뀌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뒤처질지 생각하면, 그건 필수품 몇 개만 챙겨 집을 떠나는 것과 비슷한 일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상상 속에는 어떤 순수함이 있었고, 자신을 새로 태어나게 할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에 그녀는 끌렸다. 정신적인 면에서나 언어적인 면에서 기존의 혼란스러운 상태를 벗어난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호소력이 있었다.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무언가를 두고 떠나야 했다....
.."저는 요약병이라고 불러요." ..그녀가 쉰 듯한 목소리로 기운차게 말했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려고 할 때마다, 어느 정도의 양을 채우기도 전에 그 작품이 정리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가끔 ‘긴장’이나 ‘시어머니’처럼 한 단어로 요약될 때도 있었다. 엄격히 말하자면 시어머니는 복합어지만 아무튼 그랬다. 질투라는 단어가 이미 모든 것을 요약하는데, 뭐 하러 힘들여서 질투에 관한 희곡을 쓴단 말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느새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도 똑같은 작업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대가들의 작품, 언제나 존경해 마지않았던 작가들의 작품도 대부분 요약이 가능했다. 심지어 그녀가 신처럼 모시는 베케트의 작품들도 의미 없음이라는 단어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런 요약한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걸 느끼면 어떻게든 눌러보려 애썼지만, 단어들은 오르고 또 올라와 결국 머릿속에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박혀버리곤 했다. 책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그녀는 며칠 전 밤에 친구와 술을 마셨는데 테이블 건너편을 보며 친구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 결과 자신들의 우정이 끝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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