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리 성급한 거냐. 스스로에게 물었다. 히나코의 성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느릴 터인데, 만날 때마다 어른의 전조를 찾고 있었다. 그걸 바라는 것이다. 혼내지도, 안아주지도 못하는 딸을 어떻게 대할지 모른 채, 언제까지고 어린아이로 있을 수 없다면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어주기를.

..각 지역마다 추억이 있었다. 그곳에만 있던 새며 꽃, 나무들이 그리워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나이를 먹을 때까지 한 번도 과거에 살았던 지역을 찾아가 보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불안정한 생활, 단절된 기억. 그것들은 서로 교차하는 일 없이 마음의 그늘에 맥락도 없이 드러누워 있었다.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혹은 도무지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절로 떠오르는 곳을 고향이라 부른다면 아오세에게는 숫제 고향이 없었다.

...언덕 위 새집을 얼마나 꿈꾸었던가. 당시에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소년이 꿈꿨던 건 정주의 상징으로서의 집이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본능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는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있기에 인간은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다.

...가상의 적에 관한 정보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상대에 대해 아는 게 없으면 진짜 적이 되지 않고 끝난다....

...불을 켜는 순간은 늘 낯설고 움츠러들었다. 아침에 나설 때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보다 과거의 한 장면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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