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p. ..여자가 편안한 긴 의자 위에 앉는다. 밖으로 나가 다시 시내를 살피며 길을 찾아갈 뜻이 더는 없다. 사방 벽을 주의 깊게 살펴본 뒤 여인은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본다. 부운 발, 신발을 쳐다보며 요 며칠 걸어 다녔던 길을 생각해본다. 넓은 도시를 걸어 다니며 점점 더 외롭고 피곤했다. 이 방의 아름다움이 그녀를 감동시키지 못하지만 기운을 다시 차릴 기회를 준다. ..여인이 눈을 감고 내가 있건 말건 상관없이 긴 의자 위에 몸을 누인다. 눈을 감은 채 가지런히 누워 있다. 그렇게 그녀는 그 방을 살려내고, 내가 늘 조심스레 건넜던 그 문턱을 넘어와 완전히 방을 소유한다.
142p.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그 그늘은 구출이라기보다 패배였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늘 감수해야 할 혹은 넘어가야 할 야생의 요소, 열망하는 혹은 증오하는 요소다.
183p. ..이젠 더는 혼자 산책도 못해요, 아빤 더는 움직이지 못해요. 아빠는 바다가 절대 흔들리지 않기를 원했어요. 아빠는 모두와 다 잘 지내고, 방해를 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아쉬운 부탁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바다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빠는 그걸 내게 요구했어요. 아빠의 절약을 받아들이고, 아빠는 헌신적인 사람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집착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달라고 요구했어요.
189p. ..결국 환경 곧 물리적 공간, 빛, 벽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곳이 맑은 하늘 아래 있는지 빗속에 있는지 여름날 맑은 물속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차 안인지 자동차 안인지, 해파리 떼처럼 여기저기 퍼져 있는 여러 모양의 구름들을 뚫고 날아가는 비행기 안인지는. 머물기보다 나는 늘 도착하기를, 아니면 다시 들어가기를, 아니면 떠나기를 기다리며 언제나 움직인다. 쌓다가 푸는 발밑의 작은 여행 가방, 책 한권을 넣어둔 싸구려 손가방. 우리가 스쳐 지나지 않고 머물 어떤 곳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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