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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0호 - 2023.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평점 :
두툼하여 받는 순간부터 언제 읽지?라고 생각했던 창작과 비평 여름호.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내용을 적으려 한다.
난 평소에도 김금희 작가님의 문체를 좋아하여, 몇 권의 책을 읽었다. 복자에게, 경애의 마음처럼 쉽게 읽히나, 낮은 한숨을 가리게 해주는 다정함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이번 창비 여름호를 읽으며, 일단은 시에도 끌렸다.
여러편의 시를 읽으며, 내 마음 같은 시를 찾기도 했었다. 어쩌면 현재의 내 모습에 기운을 불어줄 문장들을 찾았다고나 할까? 시들은 괜찮았지만, 난 조금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힘을 주기 보다는 힘을 받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목차를 훑어보며, 읽고 싶은 부분들부터 읽기 시작했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은 조금 아껴두기로 하면서.
창비는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좋기도 하고, 조금 어렵기도 한 것 같다. 창작과 비평을 읽으면서 생각도 넓어지고, 조금 단조로워도 어려워도 끈기로 읽게 되는 순간들도 생긴다. 장애인권, 기후위기등은 우리가 자주 접하는 단어들이지만, 겉핥기로만 알고 있던것은 아닌지, 그 속에 내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저 단순한 구호에만 그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무튼, 돌고 돌아, 아끼고 아끼던 김금희 작가님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넘겨본다. 장편연재 1 이라고 써있네. 아, 이야기들이 계속 되는구나..(시리즈 책을 읽을때는 마지막 책까지 준비해 놓고 읽는 편이라 살짝, 재밌으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쨌건 겨울호까지 읽을테니, 그 안에는 끝내주시길.)
책을 읽으며, 이야기의 주인공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공사 백서를 건조하게 기록하는 일"이라니. 이야기는 어린 시절 강화도의 나, 낙원하숙에서 하숙을 하던 서울 살이의 나, 그리고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는 나가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중간 중간 고단한 일들을 겪어 내며 살아왔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증을 가지고 읽기도 했다. 어떤 문장은 너무 좋아서 밑줄을 긋고 노트에 적기도 했으며, 앞부분에 나온 은혜라는 친구와 절교를 했는데 다시 화해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고, 리사는 대체 어떤 아이였을까? 그후 낙원 하숙은 어떻게 되었지? 무슨 계기로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학점은행에서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글은 좋은 글이구나. 독자로 하여금 이토록 생각을 하며 읽게 하다니. 이 이야기를 다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듯하고, 또 읽을 이들을 위하여 더이상 스포는 해서는 안될 것 같다.
내가 좋았던 문장들을 소개한다.
[210"살아 움직이는 수리는 아니지만 저희가 하는 집수리도 수리는 수리이니까, 이 일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발견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215"나는 모르겠으면 그냥 하거든. 아까 인사한 선생님인 것 같은데 또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으면 그냥 해. 자기 전에 양치를 했나 안 했나 헷갈릴때도 그냥 하고." ]
[221"이달에 가는데 니는 이달에 말했지. 남겨지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매정하기가 쏜물 같은 년이다."]
[224"이름이 길면 제도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저분은 작도, 저는 제도" 그말에 나는 "강영두입니다."하고 웃으며 인사했다. "줄이면 저는 강도가 될 텐데 그건 좀 그렇네요.""아니요, 좋은데요. 파괴될 때까지 견디는 응집력이 건축에서의 강도니까. 단위로는 파스칼, 1평방미터에 1뉴턴의 힘을 받을 때의 압력."]
[229 ...낮의 일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제갈도희는 곤줄박이와 비슷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새 가운데 아마 가장 사람 친화적일 곤줄박이는 사람과 사람의 집에 궁금한 것이 많아서 조금만 친해지면 아예 안으로 들어와 날아다니기도 하니까. 머리의 흰줄, 목덜미의 감색 깃털, 아담한 몸까지 정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그 새를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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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호를 읽으며, 책의 편식에서 조금 벗어나, 새로운 맛을 보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원래 좋아하던 맛을 확인^^하기도 한, 덥고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에 뭔가 조금이라도 했구나, 라고 생각하게 했던 좋은 시간을 가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