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세 방연순 할머니
공가희 지음, 방연순 그림 / KONG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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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반 전 즈음, 요양병원에서 긴 시간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던 외할머니가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나와 나이 뒷 자리가 똑같아 50세 차이였던 젊은 할머니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생과 사'라는 종이 한장 차이만큼의 간극을 넘어
더이상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한 차례 가족의 죽음을 겪어보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생경한 경험이자 아픔이었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기 몇 년 간은 함께 살았었는데
그때는 지금 느끼는 아릿한 그리움을 예상하지 못한 채
할머니와의 시간을 당연스레 흘려보냈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고 점점 얕아지는 인지능력과 기억으로
그렇게나 예뻐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우리가 누군지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서 슬슬 뒤늦은 후회의 감정이 들었다.

아직 살아계시지만 '할머니가 이랬었는데' 하고
과거형으로 할머니를 추억할 때가 많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코로나라 면회가 되지 않아
할머니의 삶 마지막은 참으로 외롭고 쓸쓸하기만 했던 것 같아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때 더 자주 찾아뵐 걸 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신듯
아직도 이따금 찾아오는 그리움에 먹먹해진다.

우리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한창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던 시절 활동하고 집에 가져오던
그림과 비슷한 방연순 할머니의 그림책을 보고는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그림에 손녀의 글, 엄마와 외삼촌에게 물어 찾아가는
방연순 할머니의 삶을 따라가면서 분명 '타인'임에도
'우리 할머니'와 같은 모습이 많이 보여 몇 번이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수술을 앞둔 중환자실에서 고통에 눈 뜨지 못했음에도
목소리만 듣고도 엄마인 큰 딸을 알아보던 할머니,
30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도 엄마와 삼촌, 이모를 생각해서
정신줄을 붙들고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던 할머니,
넉넉치 않은 큰딸의 가정형편에 남의집 밭일을 거들어주고는
얻어낸 채소나 과일 등을 들고 이고 우리집에 찾아오거나
쌀을 팔아 보내고 떡을 해 오던 할머니,
그렇게 고생만 하며 살고도 편한 노후는 커녕
평생 가장 멀리 간 곳이 동네 할머니들과 갔던 제주도 여행이 전부였던 할머니.

방연순 할머니의 삶과 너무도 닮아있는 나의 할머니를 추억하며
그래도 아직 살아계신 할머니에게 좋은 추억이자 선물이 될 수 있게
책을 만들어낸 손녀의 마음이 대단하기도 참 부럽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평생의 모든 노력을 쏟아낸 할머니의 인생에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 한순간도 '나'는 생각하지 않고 자식과 손주들만 생각한 할머니는 행복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나역시 할머니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참 많았구나,
이제는 묻지도 못하는 질문의 답을 이렇게나마 대신 찾아본다.

어린시절 방학을 맞아 할머니 댁에 가면
쟁반 한가득 수북하게 계란프라이를 부쳐놓고
초코파이와 쿠크다스를 사놓고는 하나라도 입에 더 넣어주려 애쓰던 할머니가,

눈밭에서 뛰놀다 들어오면 내복만 입은채
아랫목 뜨끈한 이불 속에 우리를 넣어둔 채
찬물로 빨래를 해서 빨개진 손으로 감기 걸릴새라
우리 옷을 연탄불 위에서 펼쳐들고 말리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읽는내내 할머니가 많이 떠오르고 너무도 보고싶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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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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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큰 이슈가 되었던 AI 컴퓨터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치 국가대표 경기를 보듯 기계와 인간의 대결 앞에
우리와 '한 팀'인 그를 응원하는 마음에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를 때마다 쏟아지는
기사에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알파고에 연이은 패배로
점점 굳어가고 초조한 표정으로 바뀌던
천재 바둑 기사 이세돌의 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은
창피하겠다 혹은 이만큼이나 발전한
과학기술에 대한 경이로움보다는

인간보다 뛰어난 컴퓨터,
'스스로 생각하고 진화하는 기계'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크게 느껴졌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만 하더라도
테슬라 생산공장에서 작업 로봇이
인간 작업자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 만큼
인간이 만들어낸 컴퓨터가 단 시간에 인간을 뛰어넘고
스스로 진화해 우위를 점했다는 점이
어딘가 모르게 섬뜩하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감정에 휩싸이게 했다

이 책은 폰 노이만 프로젝트의 핵심 질문인
'인간의 이해나 통제를 넘어 진화하는 지능을 가진
자기 복제 기계의 탄생은 가능한가'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으로 씌여진
벵하민 라바투트의 신작이다

일반적인 소설과는 달리 실존 인물을 다뤘기에
읽는 내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가를 헷갈릴 정도로
몰입감 있는 표현과 디테일로 가득한 책으로

평상시 과학사와 세계사 특히 양자역학이나
컴퓨터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에
총 3부작으로 파울 에렌페스트, 폰 노이만, 이세돌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세부적인 내용들은
꽤 어렵게 느껴지고 의문이 가득했지만

천재로 불리는 각 인물의 내면과 행동,
그로 인해 변화하는 세계를 심도 있게 표현한
과거 - 현재, 동양 - 서양, 인간 - 기계가 충돌하고
대결하는 격전의 모습이 흥미진진해
쉼 없이 빨려들 수 있었다

이야기는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의
비이성의 발견으로 시작해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컴퓨터과학자인
폰 노이만에 의해 매니악 컴퓨터가 발명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더욱 발전되어 지금의 AI(알파고)로 이어져
바둑 기사인 이세돌과 대결하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적 발전의 결과물이 인간의 지성
그 이상으로 뛰어넘는 결말까지 이어지며

세상에 없는 것, 완전히 새로운 것,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하는 결정적인 것을 향한
천재들의 광기 어린 지성을 보여줄 뿐 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들의 고뇌와 격돌, 갈등과 갈망을
적나라하게 마주하며 과학자들의 땀과 노력 속에
가려진 민낯도 확인할 수 있었다

2부인 폰 노이만의 이야기는 총 3부 가운데
가장 중점적이고 심도있게 다뤄졌는데,
주변인들이 화자가 되어 인터뷰하듯 이야기하는
그들의 입을 통해 언급되는 노이만의 모습을 통해
그의 내면을 짐작하고 들여다보는 접근 방식으로
독자 스스로가 정보를 조합해
노이만에 대한 판단과 의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그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흡입력이 있었다

이어지는 이세돌과 AI의 대결을 통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의
대미를 장식하였는데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연이어 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대결 37수에서
획기적인 '신의 손길이 닿은 한 수'를 둔
이세돌의 회심의 일격을 담은 장면을 통해

'모든 사람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현실에서 단순히 바둑의 수를 넘어
인류가 가진 힘과 희망을 느낄 수 있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짜릿한 마음을 느끼기도 했고

인간의 경험치를 뛰어넘어 무한해 보이는
컴퓨터의 발전이 앞으로 다가올 과학사와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책을 덮는 마지막에는
두려움 반 궁금증 반으로 너른 상상을 펼칠 수 있었다

과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천재적인 한 인물의
심리적인 묘사부터 복잡한 아이디어를
독자들에게 엄청난 양의 문장으로 풀어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앞으로 끌어나가게 한
작가의 필력으로 긴 호흡의 책이지만
내내 감탄하고 몰입하게된 독서였다

닫힌 결말이 아닌 한계 없는 가능성을 보여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맺어진 이 책을 보며
낯설고 끔찍하지만 이 아름다운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책을 덮고난 뒤에도
여전히 물음표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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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참견 드림 - 오늘을 피워낼 따뜻한 참견을 부칩니다
죠지(여동윤) 지음 / 마인드빌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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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들여다보면
사연 없는 사람 없다는 얘기가 있듯이
겉으로는 사뭇 평범하고 무탈한 듯 보이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고민 하나, 사연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민이 생길 때면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나름의 고충을 안고 사는 '현생'에서는
나만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이런 얘기를 토로하기가 어렵다

어떤 때에는 되려 이런 고민의 토로가
나의 약점이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어
힘든 마음을 감추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채
매일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고민이 있거나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보다
나를 잘 모르는, 그리고 나를 드러내지 않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상대에게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내게 되기도 하는데,

이 책은 고민이 있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나무숲' 같은 역할을 해준 책으로
YES24에서 덕담소라는 이벤트로
독자들의 참여를 받아 사연을 모집해
작가이자 배우인 죠지 여동윤 님이 사연에 따라
피드백을 건네는 참여형 에세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형태의 책이었다

나와 다른 듯 비슷한 고민을 가진 타인의 사연과
이에 대해 차분하게 답변을 해주는 작가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는데

고민에 대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식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비슷한 고민과 실패를 겪으며
느낀 이야기들을 펼쳐낼 뿐 그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음을 얻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건
사연자 본인의 몫으로 남겨두며

그저 터놓을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귀로,
조언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흔들리는 마음에 보내는 답장 같은 느낌으로
마음 한구석에 위로와 공감을 안겨주어
라디오를 듣는 듯 따뜻하게 읽어 내려 갈 수 있었다

이런 고민을 터놓아도 되는 걸까 망설일 수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작가는 나 역시 마찬가지라며
문제를 말하면 정말 문제가 될 거라
말을 삼가고 잔뜩 겁을 먹은 채
창백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말에는 책임이 필요하고,
책임을 인식하고 뱉는 말은 무겁지만
살다 보니 말을 참는 건 재앙이고
책임을 가지고 말해도 실수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실수하더라도 그 말에 책임지고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말이다

예상치 못한 타인에게서 따뜻한 위로를 받아
내게 내민 네 손을 잡고 함께
마음의 알을 깨고 나오자는 그의 말에
'내 얘기를 꺼내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고
무장해제의 마음이 되는 건
아마도 따뜻한 참견으로 마음의 귀를 열어둔
그의 배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꿈, 사랑, 갈등 등 타인에게는 한없이 객관적이지만
나에게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
누군가 편견 없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내심 기대고 싶은 순간들에 건네는
그의 이야기는 분명 '타인'의 삶이고 그의 생각임에도
다 듣고 난 뒤에는 어느샌가 그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고민을 이만큼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해지기도
그 이야기들을 다 꺼내놓고 나면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
비로소 알게 되는 것처럼

때로는 친구와 술 한 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듯
사연을 듣고 써 내려간 그의 글과 그림 아래
고민으로 꽉 차있어 조각나 찢어진 마음들은
다시 이어 붙어 새로운 힘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누군가의 고민과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오늘 한편에 쌓여있던 고민을 녹여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하는 위안과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적당히 미지근한
토닥임을 건네는 그의 글들로 힘을 받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누군가의 용기 있게 내민 오늘의 따뜻한 손으로
내일은 고독에서 벗어나
함께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든다

나 하나만 생각하지 말고
내 주변의 고민이 있을 누군가에게
따뜻한 참견을 건네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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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씨의 친구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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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 성별만 바꾸면 절절한 사랑인데
당사자들은 친구라고 부르는 게
우정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쏟았듯
친구라는 인간관계는 어떤 부분에서는
그 어떤 관계보다 소중한 관계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는 아침에 학교에서 만나
야간자율학습을 마치는 밤까지
가족보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기에
서로를 향한 마음이 애틋해지기도 하고

유년 시절부터 이어진 친구관계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지거나
혹은 잠시 연락이 끊어졌다 다시 만나도
그때의 감정이 다시 솟아나며
어제 일처럼 다시 가까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친구라는 소중한 관계도
때로는 별것 아닌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인해
사소한 균열이 생기기도 하며
그 균열로 인해 그 관계가 깨지며
인연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 책은 오랜 친구와 작은 균열로
소원한 관계가 된 미우라 씨가
하우스메이트로 한 〈친구〉와 함께 살게 되며
비로소 깨닫고 마주하게 되는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담은 만화이다

함께 살게 된 새로운 친구에게
관계가 소원해진 절친과의 갈등으로 생긴
고민을 털어놓으며
미안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의 파도 속,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더라도
혹여나 또 같은 상처를 입게 될까 두려워 망설이는
한 사람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책 속에서 마주하는 미우라 씨와 친구의 갈등은
꼭 그만의 일이 아니라 내 이야기라고 해도 될 만큼
어떤 면에서는 많이 닮아있기도 했는데

친구관계나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서 고민하며
'언제든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에
대한 열망까지도 한 번쯤은 꿈꿔왔던 상황이기에
더 마음에 와닿았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친구와의 인연이 자연스레 끝나고 지나갔으니
내게 남아있는 관계와 인연에 최선을 다하는 게
맞는 거라는 생각을 하다면서도

이따금씩 그때의 말이나 행동이 후회스럽거나
'친구가 줄어드는 것 같네' 하는 마음에
스스로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볼 때면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같은 마음을 느껴보았기에
만화 속의 미우라 씨가 인생 처음으로 용기 있게
새로운 친구와 하우스메이트가 되었을 때

과연 새 친구를 통해 그가
절친과의 관계에서 생긴 상처와 고민,
두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새 친구와는 그런 갈등 없이
마냥 잘 맞는 새로운 절친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응원의 마음이 들기도 했고

조금 차가운 듯 늘 단답으로만 대답하는
친구에게 숨겨져 있는 비밀을 알게 된 후에는
미우라 씨에게 알 수 없게 애잔한 마음이 들며
괜시리 울컥하기도 했다

그래도 새로운 친구에게
숨김없이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미우라 씨가
그와 나누는 대화, 시간을 통해
결과적으로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깨닫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니
그녀는 미우라 씨에게 정말 좋은 친구로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같이 찍은 사진은 역시 지우는 게 좋겠어'
라며 새 친구와 찍은 사진을 정리하려는
미우라 씨의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는데

책장을 덮고 난 제일 뒷장에 담겨있는
미우라 씨와 친구의 사진을 보며
'역시 지우지 않았구나' 하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니
꽤나 감정이입을 한 독서였나 보다

나 역시 그녀와 같은 〈친구〉와 함께하게 된다면
미우라 씨처럼 이만큼 과거의 상처를 덜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미우라 씨가 친구와 함께 살기로 결심하게 된
마음까지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오래간만에 무척 마음이 따뜻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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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로봇 닥터 네오픽션 ON시리즈 18
윤여경.정지훈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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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심심치 않게
일상에서 속속 등장하게 된 '로봇'

익숙하게는 로봇청소기나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아
목소리로 대답해 주는 AI 스피커 등도 있고
최근에는 로봇수술이라는 이름으로
좀 더 정교한 손길이 필요한 수술에서도
로봇의 역할이 꽤 커지고 있다.

'인간보다 똑똑하다'라는 사실 때문인지
친숙하고 신기하면서도
입력된 명령어나 프로그램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로봇이 '혹시나' 자아를 가지게 되어
인간을 공격하거나 우리의 우위에 서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와 두려움의 마음도 공존하곤 한다.

나 역시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접한
로봇의 인간 공격이나 영화 등을 통해 가진 이미지인지
특히나 사람 형체를 가진 로봇이라 하면
그 쓰임새나 필요성을 떠나
약간의 거부감이 있는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소설은 만약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의사가 존재하며,
그 로봇에게는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 방식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최소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 얼핏 우리가 볼 때
'자아'가 있는 것으로 생각이 들 수 있다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인간보다 빠른 두뇌회전과 빠른 데이터 분석,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기에 분명 이론상으로는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사보다 뛰어날 수 있지만

소설 속의 사람들 역시 현실의 우리들처럼
로봇 의사의 판단에 인간의 생명을 맡긴다는
사실 자체에 반발심을 가지며 날 선 반응을 보인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이 로봇의사
로사에게는 없기에 그 감정에 동요 없이
의사로서 '생명'을 구하는 것에 매진할 뿐이다.

본인을 반대하는 시위대 중 한 사람의 쇼크를 목격한
로사(로봇 의사)는 당사자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두면 생명이 위독해질 것을 우려해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고 본인의 최소 결정권에 따라
그를 치료해 생명을 구해내지만,
'억지로 진료했다'라는 언론의 보도와 사람들의 거부로
아무도 찾지 않는 응급실에 좌천되고 만다.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버린'
로봇 의사와 그와 유일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인간의사 수호는 사람들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사명감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게 된다.

그래봤자 감정이 없고 '정해진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하는 로봇이기 때문에
과연 인간의 삶 속에 녹아내릴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로 가득했던 질문이었는데

로사와 수호의 협업,
기계와 생산자로서가 아니라 동료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발전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아직 현실화된 것은 아니지만
로봇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언젠가 현실의 상황이 될
로봇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삶을 조금이나마
미리 생각해 보고 예측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내가 부족한 부분, 한 번에 찾아내기 어려운 데이터를
찾아 분석하고 결과를 예상하므로 인해
시급을 요하는 골든타임이 중요한 의학 분야에서
특히나 로봇의 역할이 필요하겠다는 것 역시
이 책을 통해 새로이 가지게 된 생각이다.

만약 내 가족의, 혹은 나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인간 의사가 아닌 로봇의사라고 한다면
무조건 '안 될 일이야'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따스한 소통과 환자를 위한 후속 조치,
그리고 자신에게 거부감을 가진 환자와
그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는
로사라면 믿고 맡길 수도 있겠다 싶다.

로봇이라고 하면 단순한 기계라고만 생각했는데
"로사가 의료 로봇이라고 해서
단순한 기계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
로사도 자네에게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고,
자네도 로사로부터 배울 것들이 많을 거야.
찾아봐. 서로가 서로를 불필요하다고 느끼면
가까워질 일은 영원히 없겠지."라는
본문 속 인간 의사에게 건네는 말을 통해
다시금 생각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인공지능은 그 편리함과 빠르고 정확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종속되거나 굴복하게 될지 몰라
인간에게는 공포가 되기도 하는데,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큰 가치를 위해
용기 있게 한 걸음 내딛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인공지능이 삶에 스며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호기심 어리고 유쾌한 상상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미리 읽어보고 다가올 변화를
예측해 보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SF 소설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과학적인 전제가 많아
어렵다고 느끼기 마련이었는데
로봇과 인간의 소통과 협업이라는 소재로
쉽게 접근하고 읽을 수 있어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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