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세 방연순 할머니
공가희 지음, 방연순 그림 / KONG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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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반 전 즈음, 요양병원에서 긴 시간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던 외할머니가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나와 나이 뒷 자리가 똑같아 50세 차이였던 젊은 할머니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생과 사'라는 종이 한장 차이만큼의 간극을 넘어
더이상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한 차례 가족의 죽음을 겪어보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생경한 경험이자 아픔이었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기 몇 년 간은 함께 살았었는데
그때는 지금 느끼는 아릿한 그리움을 예상하지 못한 채
할머니와의 시간을 당연스레 흘려보냈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고 점점 얕아지는 인지능력과 기억으로
그렇게나 예뻐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우리가 누군지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서 슬슬 뒤늦은 후회의 감정이 들었다.

아직 살아계시지만 '할머니가 이랬었는데' 하고
과거형으로 할머니를 추억할 때가 많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코로나라 면회가 되지 않아
할머니의 삶 마지막은 참으로 외롭고 쓸쓸하기만 했던 것 같아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때 더 자주 찾아뵐 걸 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신듯
아직도 이따금 찾아오는 그리움에 먹먹해진다.

우리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한창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던 시절 활동하고 집에 가져오던
그림과 비슷한 방연순 할머니의 그림책을 보고는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그림에 손녀의 글, 엄마와 외삼촌에게 물어 찾아가는
방연순 할머니의 삶을 따라가면서 분명 '타인'임에도
'우리 할머니'와 같은 모습이 많이 보여 몇 번이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수술을 앞둔 중환자실에서 고통에 눈 뜨지 못했음에도
목소리만 듣고도 엄마인 큰 딸을 알아보던 할머니,
30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도 엄마와 삼촌, 이모를 생각해서
정신줄을 붙들고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던 할머니,
넉넉치 않은 큰딸의 가정형편에 남의집 밭일을 거들어주고는
얻어낸 채소나 과일 등을 들고 이고 우리집에 찾아오거나
쌀을 팔아 보내고 떡을 해 오던 할머니,
그렇게 고생만 하며 살고도 편한 노후는 커녕
평생 가장 멀리 간 곳이 동네 할머니들과 갔던 제주도 여행이 전부였던 할머니.

방연순 할머니의 삶과 너무도 닮아있는 나의 할머니를 추억하며
그래도 아직 살아계신 할머니에게 좋은 추억이자 선물이 될 수 있게
책을 만들어낸 손녀의 마음이 대단하기도 참 부럽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평생의 모든 노력을 쏟아낸 할머니의 인생에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 한순간도 '나'는 생각하지 않고 자식과 손주들만 생각한 할머니는 행복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나역시 할머니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참 많았구나,
이제는 묻지도 못하는 질문의 답을 이렇게나마 대신 찾아본다.

어린시절 방학을 맞아 할머니 댁에 가면
쟁반 한가득 수북하게 계란프라이를 부쳐놓고
초코파이와 쿠크다스를 사놓고는 하나라도 입에 더 넣어주려 애쓰던 할머니가,

눈밭에서 뛰놀다 들어오면 내복만 입은채
아랫목 뜨끈한 이불 속에 우리를 넣어둔 채
찬물로 빨래를 해서 빨개진 손으로 감기 걸릴새라
우리 옷을 연탄불 위에서 펼쳐들고 말리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읽는내내 할머니가 많이 떠오르고 너무도 보고싶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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