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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고쇼 그라운드
마키메 마나부 지음, 김소연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8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몇 년 전 가을의 시작 무렵,
가족여행으로 떠난 일본 여행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도시가 있다.
서정적이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
과거의 시간이 멈춘 듯한 교토였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자,
마음속 로망을 자극하는 곳.
그런 교토를 배경으로 한,
8월의 뜨거운 여름과 펑펑 눈 내리는 겨울을 담은
특별한 판타지 소설을 만날 수 있었다.
마키메 마나부가 쓴 제170회 나오키상 수상작.
조금은 기묘하고 찬란한
청춘의 에피소드를 담은 두 편의 이야기다.
책 제목과 동명인 단편소설
〈8월의 고쇼 그라운드〉에 앞서,
작가만의 판타지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12월의 미야코오지 마라톤〉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상반되는 두 계절의 교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린 마음을 헤집는 혼돈과 흔들리는 시절,
그 안에 담긴 뜨거운 추억을 맛볼 수 있었다.
먼저, 거센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의 교토를 담은
〈12월의 미야코오지 마라톤〉은
어쩌다 역전 마라톤의 마지막 주자가 된
한 방향치 소녀의 이야기다.
빈혈로 인해 출전이 불투명해진 선배를 대신해
1학년 사카토가 출전 선수로 결정된다.
무려 27년 만에 전국 고교 역전 마라톤 대회
참가권을 획득한 의미 있는 경기였지만,
후보 선수였던 사카토는
긴장감이나 중압감 없이 따라나섰는데
갑작스런 경기 출전에 많은 걱정이 뒤따른다.
코스를 헷갈리지 않고 잘 달릴 수 있을까
걱정하던 것도 잠시,
막상 경기에 임한 그녀는 달리며 즐거워하는
경쟁자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고
어느덧 경기에 몰입하게 된다.
지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달리며 즐거워하는 스스로를 마주한다.
그렇게 달리는 와중,
인도에서 깃발을 들고 검을 휘두르며
기모노 차림에 상투를 올린 이상한 무리를 보게 된다.
응원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달리기를 이어간 사카토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그녀가 봤던 그 무리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미스터리한 기분과 함께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교토의 풍경 아래 눈발을 헤치며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청춘의 모습.
평범한 일상 속 풍경에서 갑자기 등장한
미스터리한 존재는
소름 돋는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1등이나 우승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30위권 안에 든 보통의 결과였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한 청춘의 빛나는 순간까지.
경주가 주는 긴장감과 감동이 이어지며
작가 특유의 필력이 빛났다.
뒤이어 펼쳐지는 〈8월의 고쇼 그라운드〉에서는
여자친구와의 이별로
권태한 일상을 보내던 구치키가
친구의 제안으로 매해 오봉 연휴마다 열리는
아마추어 야구 대회에 참여하게 된다.
졸업을 위해 교수님의 제안으로
야구 대회에 참여하게 된 다몬,
그의 부탁을 받은 구치키는 뜻 없이 제안을 수락한다.
선수가 부족한 오봉 연휴의 아마추어 야구 경기에서
우연히 구치키와 구면인 중국 유학생 샤오,
벤치에 앉아 있던 에이짱과 그 일행까지 함께하며
청춘들의 뜨거운 여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불타는 더위 속 하루 걸러 치러지는 경기가
어떻게든 이어지는 모습은 놀라웠다.
하지만 그 평온도 잠시,
이름도, 직업도, 사는 곳도, 연락처도 모른 채
대회에 함께하는 에이짱 일행에 대해
샤오가 찾아낸 정보는
평범하던 청춘들의 야구 대회에
갑작스런 반전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현실 같은 환상과
쨍쨍 내리쬐는 햇볕 속 교토의 잔잔한 풍경은
여름의 한복판에서
청춘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충분했다.
무모해 보이는 것에도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젊은 청춘들의 땀방울.
‘불꽃이 없다’는 이유로 이별했던 구치키가
야구를 통해 마음속에 불꽃을 일으키게 된 성장은
기특하고,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앞선 마라톤 이야기에서도,
뒤에 이어지는 야구 이야기에서도,
젊은 시절 누구나 느낄 법한 불안과 설렘,
상처의 감정을 담백하게 그려냈기에
독자의 연령대에 따라 색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킬 듯하다.
청춘을 지나간 세대에게는
지나간 청춘에 대한 향수와 회환으로,
동년배의 청춘들에게는 공감과 설렘
그리고 한 발 더 내디딜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환상이 가미된 두 이야기는
현실의 고통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며,
실제 존재하는 교토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했기에
비현실적인 사건과 설정에도
거부감 없이 금세 빠져들게 만들었다.
일상 속에서 발견한 기묘한 경험의 틈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판타지를 꿈꾸게 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각각의 스토리는 다르지만,
여러 주자가 이어 달리는 역전 마라톤과
팀 스포츠인 야구를 통해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며
관계를 맺는 과정을 보여준다.
각자의 상처와 고민을 가진 인물들이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치유와 성장을 경험하는
의미 있는 결말로 이어진다.
두드러지는 선인과 악인 없이,
청춘 그대로의 흔들림과 성장을 표현한 이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하게 달궈졌다.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지명과 풍경,
한국어판에만 있는 교토의 지도까지.
실제 존재하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판타지는
단순한 배경으로서의 도시가 아닌 감정의 무대로 기능했고,
그로 인해 더 ‘교토 앓이’를 하게 만들었다.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따뜻한 여운으로,
앞으로 교토를 떠올리면
내가 직접 여행으로 경험했던 모습과 함께
이 소설 속의 뜨거운 여름, 시린 겨울을
함께 추억하게 될 것 같다.
잔잔하지만 확실한 여운으로
청춘의 불씨를 가슴에 불러일으키는 이 문장들이
삶의 방향을 잃은 순간에도,
때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날에도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도와줄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나면 사라지는 이상한 호접몽처럼,
한여름 청춘의 열병 같은 이 이야기들이
여름에 제격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단순한 청춘 소설이 아니라,
교토라는 도시를 감정의 무대로 삼아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찬란한 여름과 겨울의 기록이다.
읽고 나면 그 여운은 교토의 풍경처럼
마음속에 잔잔히 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