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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한창 큰 이슈가 되었던 AI 컴퓨터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치 국가대표 경기를 보듯 기계와 인간의 대결 앞에
우리와 '한 팀'인 그를 응원하는 마음에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를 때마다 쏟아지는
기사에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알파고에 연이은 패배로
점점 굳어가고 초조한 표정으로 바뀌던
천재 바둑 기사 이세돌의 모습을 보며 느낀 감정은
창피하겠다 혹은 이만큼이나 발전한
과학기술에 대한 경이로움보다는
인간보다 뛰어난 컴퓨터,
'스스로 생각하고 진화하는 기계'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크게 느껴졌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만 하더라도
테슬라 생산공장에서 작업 로봇이
인간 작업자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 만큼
인간이 만들어낸 컴퓨터가 단 시간에 인간을 뛰어넘고
스스로 진화해 우위를 점했다는 점이
어딘가 모르게 섬뜩하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감정에 휩싸이게 했다
이 책은 폰 노이만 프로젝트의 핵심 질문인
'인간의 이해나 통제를 넘어 진화하는 지능을 가진
자기 복제 기계의 탄생은 가능한가'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으로 씌여진
벵하민 라바투트의 신작이다
일반적인 소설과는 달리 실존 인물을 다뤘기에
읽는 내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가를 헷갈릴 정도로
몰입감 있는 표현과 디테일로 가득한 책으로
평상시 과학사와 세계사 특히 양자역학이나
컴퓨터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에
총 3부작으로 파울 에렌페스트, 폰 노이만, 이세돌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세부적인 내용들은
꽤 어렵게 느껴지고 의문이 가득했지만
천재로 불리는 각 인물의 내면과 행동,
그로 인해 변화하는 세계를 심도 있게 표현한
과거 - 현재, 동양 - 서양, 인간 - 기계가 충돌하고
대결하는 격전의 모습이 흥미진진해
쉼 없이 빨려들 수 있었다
이야기는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의
비이성의 발견으로 시작해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컴퓨터과학자인
폰 노이만에 의해 매니악 컴퓨터가 발명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더욱 발전되어 지금의 AI(알파고)로 이어져
바둑 기사인 이세돌과 대결하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적 발전의 결과물이 인간의 지성
그 이상으로 뛰어넘는 결말까지 이어지며
세상에 없는 것, 완전히 새로운 것,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하는 결정적인 것을 향한
천재들의 광기 어린 지성을 보여줄 뿐 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들의 고뇌와 격돌, 갈등과 갈망을
적나라하게 마주하며 과학자들의 땀과 노력 속에
가려진 민낯도 확인할 수 있었다
2부인 폰 노이만의 이야기는 총 3부 가운데
가장 중점적이고 심도있게 다뤄졌는데,
주변인들이 화자가 되어 인터뷰하듯 이야기하는
그들의 입을 통해 언급되는 노이만의 모습을 통해
그의 내면을 짐작하고 들여다보는 접근 방식으로
독자 스스로가 정보를 조합해
노이만에 대한 판단과 의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그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흡입력이 있었다
이어지는 이세돌과 AI의 대결을 통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의
대미를 장식하였는데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연이어 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대결 37수에서
획기적인 '신의 손길이 닿은 한 수'를 둔
이세돌의 회심의 일격을 담은 장면을 통해
'모든 사람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현실에서 단순히 바둑의 수를 넘어
인류가 가진 힘과 희망을 느낄 수 있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짜릿한 마음을 느끼기도 했고
인간의 경험치를 뛰어넘어 무한해 보이는
컴퓨터의 발전이 앞으로 다가올 과학사와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책을 덮는 마지막에는
두려움 반 궁금증 반으로 너른 상상을 펼칠 수 있었다
과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천재적인 한 인물의
심리적인 묘사부터 복잡한 아이디어를
독자들에게 엄청난 양의 문장으로 풀어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앞으로 끌어나가게 한
작가의 필력으로 긴 호흡의 책이지만
내내 감탄하고 몰입하게된 독서였다
닫힌 결말이 아닌 한계 없는 가능성을 보여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맺어진 이 책을 보며
낯설고 끔찍하지만 이 아름다운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책을 덮고난 뒤에도
여전히 물음표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