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벽의 그림자
최유안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6월
평점 :



얼마 전 편의점 회사 홍보맨이 쓴
《어쩌다 편의점》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 담긴 다양한 편의점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공감도 가고 꽤나 흥미진진한 독서였는데,
그 가운데 개성공단에서 운영되던 편의점과 관련된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한 직원들의 쉼터 역할로,
북한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었지만
점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북한 인원이 스태프로 근무하는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인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하며 서먹서먹하던
남한의 점장과 북한의 스태프들은
시간을 더해가며 어느새 친한 오빠 동생이 되었고,
이념은 이들의 인정人情 앞에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고 했다.
개성공단의 운영 중단으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는 아직도 개성공단의 편의점 전화번호를 기억해
가끔 생각이 나면 전화를 걸어 통화 신호를 들으며
그들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고.
그저 일로 잠시 엮였을 뿐인데도
그리운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따금 눈시울을 붉히고,
잘 살고 있을지 여전히 자신을 기억할지,
이렇게 오래 못 볼 줄 알았다면
그때 더 잘해줄 걸 하는 회한이
마음속 씻기지 않는 슬픔으로 남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직접 그들을 마주하고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통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개성공단 편의점에서의 이별은
이렇게도 가깝고 생생한 슬픔인데
통일은 여전히 거대담론으로 미뤄져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탈북, 그리고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큼 한 뼘만 안으로 들어오면
나의 이야기, 혹은 가족이나 내 곁의 현실임에도
대체로 회피하거나 상관없는 일처럼,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누구도 나서서 알리려고 하거나
혹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있는 것 같다.
아마 책 속에 등장하는 해주에게도
탈북자와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동서독 통합을 주제로 한 논문 자료 조사를 위해
독일에 머무르던 전직 경찰인 해주는
마지막 면담을 앞둔 어느 날,
사례 연구차 연락을 주고받았던 박사를 통해
독일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동양인 사망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망자는 독일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28세의 윤송이.
그녀는 한 폐쇄된 건물에서 추락사했고,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박사는 그녀의 자살 동기가 충분치 않은 데다
재독 교포 거주 비율이 높은 베르크에서 사는
탈북자라는 점에 의문을 품고 해주에게 귀띔한 것이다.
해주는 송이의 죽음에서 불현듯
자신을 잘 따르던 탈북자 동생 용준을 떠올린다.
그저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오게 되었고,
다른 한국 사람들처럼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평생 한국에 터를 잡고 사는
소박한 소망을 가졌던 이십 대 청년.
알고 보니 평양의학대학 재학생인 용준이었지만
그는 한국에서 자신의 그저 '탈북자'일뿐이라며
씁쓸하고 차가운 현실 앞에 사그라들어 간다.
그전까지는 탈북민이나 북한에 전혀 관심 없던
해주의 시선은 용준과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상황을 좀 더 알게 될수록 변화가 나타나고
손을 잡아주지 못하고 품어주지 못했던
용준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이
그로 하여금 독일에서 윤송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쫓게 만든다.
해주는 베르크에 모여사는 교포들,
그들과 관련되어 있는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며
언젠가 용준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탈북이 그냥 북한을 나온다는 말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그것은 이미 목숨을 내놓고 시작하는 일이라고.
언제든 북한으로 다시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평생을 살게 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그럼에도 뛰쳐나오는 거라고.
그렇기에 알면 알수록 윤송이에게서
자꾸 용준이 겹쳐 보이고,
윤송이 사건의 내막을 알아야만
세상을 등지고 떠나버린 용준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용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세계를 알게 되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는 윤송이의 사건에 관심이나 있었을까.
그저 진급을 하고 연봉이 늘고
먹고사는 문제나 생각하며 살아갔을 해주가
자신의 곁에 '분명히 존재했던' 용준을 통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그림자를 쫓고
그들을 기억하고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 것이 아닐까.
이는 해주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탈북민들을 바라볼 때
'이방인'이라는 차가운 시선은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또 이념이나 정치적인 문제로 골치 아프니
모른척하고 외면하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던
암묵적인 방관자였던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해서
윤송이와 용준, 홍성수에게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방인으로 헤매고 있을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우리들,
혹은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 마음이 어떤지
제대로 그들의 현실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 걸까?
이런 문제를 누가 고민했어야 할까,
과거에는 외면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까?
하는 안타까움에 그저 답 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미 통일을 이뤄낸 독일이라는 배경 속,
자유를 쫓아 목숨을 걸고 나왔으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돼버린 탈북민과
그들에게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장춘자와 베르크 사람들, 해주를 통해
우리가 외면했지만 이제라도 알아야 할 마음을,
불편하고 불안해 회피하던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게 된 계기가 된 독서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변해버린 밤,
죄책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해주의 용기 있는 선택처럼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외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는 많은 윤송이와 용준, 홍성수가 있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한 필사의 새벽을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