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김지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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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복잡해지거나 고민이 생길 때

그런 마음을 털어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누군가는 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지르거나

혹은 청소나 빨래를 하며 깨끗해지는 모습에

잔뜩 흐려졌던 마음을 씻어내기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일단 주변을 청소하고

먼지와 때를 씻어내거나 혹은 귀찮아서 미루던

운동화를 빨며 잡생각이 많아지는 마음을

청소나 빨래에 집중하며 털어내는 편이다.


이 이야기는 나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가진 작은 상처,

걱정이나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온기로 보듬어주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연남동 골목 한곳에 위치한 '빙굴빙굴 빨래방'이라는

이름의 무인 빨래방을 무대로 한다.

빨래가 다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빨래방에 앉아

음료를 마시기도 하고

그곳 한편에 누가 일부러 놓은 것인지

혹은 흘리고 간 것인지 알 수 없는

연두색 다이어리에 방명록처럼 내 마음을 적어내며

자신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다.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아픈 감정들도 되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아이러니함을 가지고 있다.


진돗개와 사는 독거노인의 씁쓸하고 외로운 마음,

산후우울증이나 경력단절로 인한 경제문제

그리고 육아 스트레스로 힘든 날을 겪는 엄마,

관객 없이 가수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버스킹 청년,

만년 보조작가로 일하며 언젠가의 드라마 작가

데뷔를 꿈꾸는 작가 지망생을 비롯해

데이트 폭력 피해자와 기러기 아빠,

보이스피싱으로 가족을 잃은 아픈 사연까지


흔하지 않은 것 같은 각자의 사연이지만

이만큼 들여다보면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두의 일상이

너 나 할 것 없이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다.


속상한 마음도 꼭 해결 방법이 있는 문제라 아니라도

어딘가에 터놓고 얘기하면 속이 풀리는

고해성사 같은 마음으로 빨래방을 찾는 각자는

자신의 마음을 다이어리에 털어놓고

또 이름 모를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위로에

감동을 받아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는다.


어느덧 빙굴빙굴 빨래방은

단순히 '빨래하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의 젖은 마음, 더러워진 기분을 씻어주며

마음도 깨끗하고 뽀송뽀송하게 씻어주는

치유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상 속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빨래방이라는 공간에

우리의 이웃이자 나 자신이기도 한

보통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은

사람들의 감정이 쌓이고 각자의 이야기가 모여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된다.


그렇게 다이어리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따스한 공감과 온기로 사람 내음 가득해진

이 공간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저 모르는 타인에서

마음을 나누는 이웃이자 또 다른 의미의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의 진행은

삭막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이 공간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기도 했다.


각 등장인물의 사연을 따라 빨래방을 오가며

이야기의 후반부 등장한 다이어리의 주인공과

이 다이어리에 얽힌 사연을 따라

모두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는

연남동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던 우리네의 '정'이 이런 거였지,

투박하고 살가운 터치는 아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누군가의 손글씨 답변처럼

우리를 살게 하는 관계의 힘,

따뜻한 온기와 사람 내음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각자의 아픔을 짊어지고 그저 삭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마음에

'누군가에게 기대도 괜찮다'라는 위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라는

과하지 않은 기대감은

넘치지 않은 적당한 정도의 따스함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버티게 하는 힘이 된 것 같다.


꼭 소설 속 빨래방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둘러보고 관심 있게 지켜본다면

우리 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뻗어있다는 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구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아니더라도

나도 누군가를 위해 따스한 시선과 온기로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변을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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