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상점 TURN 2
강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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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이 다년간 전자책 플랫폼으로 구축한

장르 친화적인 노하우로 작가 발굴에 힘써온

리디와 손잡고 흡인력 있는 전개와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장르소설

TURN 시리즈를 론칭하였다.


출간과 동시에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

조예은 작가의 《입속 지느러미》에 이어

두 번째로 강민영 작가의 장편소설 《식물, 상점》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한계 없는 이야기의 세계에서 저마다의 터닝포인트를

마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간된 이 시리즈는

SF,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채로운 소설을 통해

문학의 경계를 초월해 이야기 본래의 재미와

가능성을 꿈꾸며 기획되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TURN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는

'식물, 상점'이라는 식물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루는

특별한 숍을 운영하는 유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꽃이나 화분을 한번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요즘 유행처럼 식물 집사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식물 키우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지만

햇빛과 온도, 바람과 습도 등 여러 가지 요건을

식물에 따라 변화를 줘야 하기에

웬만한 정성이나 섬세함으로는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반려동물과는 달리 소리 등으로

직접 의사표현하지 못하고

배고플 때나 졸릴 때나 모든 감정의 표현을

울음으로 표현하는 아기처럼

무언가의 결핍이나 과잉을 떨어지는 잎과

지고 마는 꽃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식물은 하나의 '생명'으로서의

생동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이를 아끼고 보듬는 마음에는 지켜보는

끈기마저 필요하다.


그렇기에 지나가는 길에 핀 꽃을 꺾거나

혹은 식물의 잎을 떼는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말을 하지 못할 뿐, 소리를 내지 못할 뿐

분명 자신의 의사와 생명이 있는 식물임에도

강한 자의 쉬운 손길 아래 금세 무너지거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 부지기수다.


몇 차례의 연애 실패 후 마음을 닫고 있던

식물, 상점의 주인 유희에게 다가온 한 남자.

따스하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그녀를 이용하려고 했던

그 남자의 본심이 드러나고

무엇보다 그녀를 '쉬운 여자'라 칭하며

아무렇지 않게 그녀가 아끼는 식물들의 잎을 뜯거나

밟고 괴롭히는 그의 모습에서

유희는 '자신에게 하는 행동'인 양

불쾌함과 더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아마도 유희에게 그녀가 가꾸는 식물과

상처받고 병충해로 생명력이 약해진

그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식물, 상점이

그녀이자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 여성에 대한 혐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기기 쉬운

'남녀관계의 데이트 폭력'과 같은 문제에

그녀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선다.


그녀가 사랑하는 식물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

호미를 들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이다.


그렇게 사그러든 남자들과 사건은

그대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비롯해

수많은 데이트 폭력 등으로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저 쉽게 잊히고 사라진 수많은 여자들처럼

누구도 찾는 사람 없이 그렇게 사라진다.


그녀가 운영하는 식물, 상점의 식물들을 위한

거름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죽음이었겠지만.


처음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순간적인 감정에

죽음을 선택한 것처럼 유희의 행동에

예상치 못했던 전개라 놀라기도 하고

또 '그냥 헤어지지 죽이기까지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세상의 수많은 여자들이

별 대단한 이유 없이도 죽임을 당하는

현실 속의 사건들을 생각하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과 남자들의 죽음은

성별만 바꾸었을 뿐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고통 속에서도 홀로 맥없이 싸우다 저물고 마는,

쉽게 밟고 꺾고 잎을 따는 그들의 행동에

사라지는 수많은 여성들을 향한 연대이기도

현실을 아프게 꼬집는 울림 있는 메시지로도 느껴졌다.


처음을 시작으로 그녀를 찾는 손님들의 사연은

유희로 하여금 외면할 수 없게끔 만든다.

데이트 폭력, 불법 촬영, 오픈 채팅방 성희롱,

동물 학대와 스토킹, 로맨스 스캠, 가정폭력까지

자신들의 욕망을 우선시하며 상대방을 지배하며

복종하는 남자들을 바라보며

유희는 그녀들을 대신해 용기 있게

본인이 뻗어나갈 방향을 찾아나간다.


식물은 자신이 처한 문제를 조용히 머금다가

견디지 못할 때 표출한다고 했다.

섬세한 손놀림으로 식물들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하던 유희는 식물을 넘어서

손님들을 위해, 같은 형태의 고통에서 빠져나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원인을 찾고

말끔하게 지우는 행위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타인을 향한 연대와 도움의 손길 아래,

어느덧 상처받았던 과거의 본인을 괴롭히고

옭아매던 트라우마를 회복해나간다.


분명 '범죄'가 분명함에도 유희의 행위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를,

여성들의 고통과 두려움이 다시 시작되지 않기를

어느덧 한마음으로 응원하며 마음을 졸인 책이었다.


분명 사건을 쫓아 유희를 추적하는 경찰임에도

어쩌면 '성별' 때문인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그에게서조차 공감의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아마도 암묵적으로 여성들에게 행해져 온

수많은 범죄와 현실을 뒤집어 놓은 이 이야기는

대단하게 통쾌한 결말도 아니고,

완전한 행복이나 깔끔한 마무리는 아니더라도

그들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멈추기 위한 노력,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우뚝 홀로서기를 하고자 노력한 연대의 움직임은


작가의 말에 담긴 강민영 작가의 말처럼

꿈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

그렇지 않은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었다.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

사회의 다양한 범죄 앞에 작아지고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터닝포인트로

딱 적당한 그런 책이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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