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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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가

같은 팀 동료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들어

꽤나 큰 이슈가 되었었다.

벤탄쿠르 라는 선수가

우루과이 매체와의 인터뷰 진행 중,

진행자가 손흥민 유니폼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자

그의 사촌 것도 괜찮지 않으냐며

그들은 다 똑같이 생겼다는 발언을 내뱉은 것이다.


그보다 한참을 먼저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 역시

그라운드에 발을 디디면 야유가 따라나오기도 했고,

일명 '개고기 송'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응원하는 응원가에서조차

인종과 문화에 대한 차별이 담겨 있어

불쾌했지만 너무 어렸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뒤늦은 고백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라 한들

그저 아시아인이라는, 소수자라는 이유 하나로

과거나 15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차별과 멸시가 만연하는 현실이 참 씁쓸했다.


세계화 시대,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어우러져

단 몇 시간이면 서로의 땅을 밟을 수 있고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발전했다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여전히 나라, 인종, 성별,

그리고 사회적인 계급을 이유로

같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차별은 아시안인

우리나라에만 해당된 것은 아니다.

해외 시상식의 레드 카펫에서

경호원에게 인종차별로 과도한 제지를 받은

유색인종 배우의 사연,

여행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유튜버를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눈 찢는 모습을 보이거나

아시아인들에게는 제대로 주문을 받아주지 않고

불친절한 서비스로 응대하는 식당 등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비단 우리가 '피해자'인 것 말고도

흑인에게 튀기라는 이름으로 부르거나

서양인에게는 관대하고 친절하면서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무시하고 '아랫것'으로 보는

우리가 '가해자'인 사례 또한 참 많다.


서슴지 않고 '우리'와 다른 타인에 대해

쉽게 판단하고 규정하는 우리의 행위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라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파란 피부의 혼혈인이라는 극희소성을 가진,

그저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모든 곳에서 둥 떠서 부유하는 한 소년의

삶과 성장의 과정을 담았다.


《멜라닌》의 주인공 소년 재일은 어린 시절부터

파란 피부 탓에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은근한 냉대와

이웃들의 노골적인 멸시 속에서 자라났다.

학교에서는 이름 대신 피부색이나 혼혈아라는 이유로

아바타, 스머프, 도라에몽, 똥남아 튀기 같은

별명으로 불리며 늘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늘 고독하고 외로웠던 재일에게

유일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존재는,

바로 대차고 강직한 성격의 엄마였다.

새 빌라로 이사를 가던 날 윗집 부부가

“파란 피부가 어쩌네, 집값이 어쩌네” 하며 쑥덕거리자

엄마는 바로 계단을 뛰어올라 문을 두드린다.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지르며

맞서 싸우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랬던 엄마가 미국 이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할머니의 위독한 건강을 이유로 동생만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자

재일은 크게 상심하게 된다.


난생처음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경험,

두 아들 중 '더 나은 애'를 데려오지 않은

후회의 감정을 드러내는 아버지 앞에

재일은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다.


그렇지만 외롭고 험난한 미국 생활에도

그를 돕는 이들은 나타났다.

이렇다 할 능력도 없이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아버지에게

선뜻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강우 삼촌과

학교에서 만난 클로이, 셀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강우 삼촌은 세탁소 겸 세차장을 운영하며

재일을 친아들처럼 보살펴 주었다.

재일에게 ‘제이’라는 영어 이름을 지어주고

미국 문화와 생활 방식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클로이는 백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파란 피부로,

다른 아이들이 재일에게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셀마는 수업 시간에 ‘칭챙총’ 같은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교사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으며 재일을 돕는다.

이후로도 클로이와 셀마는 공격적인 혐오나

괴롭힘으로부터 재일을 보호한다.


셋은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학교생활, 진로,

음악, 영화, 연애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든든한 조력자이자 친구가 되어준 그들로 인해

재일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지만

평온한 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클로이는 미네소타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셋은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소통하며 소식을 이어간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클로이는

파란 피부로서 자신의 느낀 차별적 시선,

재일이 경험했던 모욕에 대한 폭로까지

블로그에 많은 글을 쓰게 되고,

그 내용이 일파만파 퍼지며 클로이는 유명세를 얻는다.


“변혁을 꿈꾸는 십 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언론의 조명까지 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에 반발심을 느낀 범죄자에게

클로이는 끔찍한 일을 당한다.


재일은 클로이가 당한 일에서 쉬이 헤어나지 못한다.

같은 파란 피부로서 평생 이 고통을

떨쳐버릴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클로이의 사건에서 재일이 채 헤어 나오기도 전

불행한 사건은 연달아 그를 찾아온다.


재일과 아버지의 미국 생활을 보살펴주던 강우 삼촌도

갱의 총격을 받아 치료를 받던 중 목숨을 잃는

불의의 사건을 겪고,

셀마는 숲에 난 화재에 휘말려 의식 불명 상태에 이른다.

그러자 재일은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불행을

제 탓으로 여기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감내해야 했던 경멸과 야유를 떠올리며

삶에 대한 비관에 빠져드는 것이다.

과연 재일은 이러한 역경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사랑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을까.


재일의 시선을 따라 구미에서 인천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함께 존재하고 살아보며

지난한 불평등의 시간 속,

'과연 나라면, 잔혹한 이 상황에

절망하거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 한구석이 갑갑하고

꽉 막힌 듯한 고통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년에 불과한 재일이

선의를 잃지 않고 현실 속에서 용기 있게,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이웃들의 손가락질 앞에 본인 역시

'소수자'이자 '이민자'이지만

그들과 마주해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이 보여 살포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일방적인 구타와 수없이 비꼬는 조소에

때로는 움츠러들고

때로는 스스로 외로움을 자초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선에서 생겨난 증오의 감정이

자신을 해치게 두지 않는 재일의 안간힘 어린 노력에서


쉬이 국적과 인종으로, 혹은 사회적 지위나

나의 이익이나 입장 등에 따라

타인을 규정하고 판단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떠오르게 해 부끄럽기도 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는 특별히 모날 것 없는

평범의 범주에 들어가는 재일의 아버지 역시

미국이라는 환경에서는 이주민이자 소수자로서

그들의 편견 어린 시선 아래 위축되고 작아졌으며,

무력감과 그들에 대한 분노로

아스라이 무너져 자립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유약하고 어린 나이의 재일이

그럴듯한 낙관이나 순진한 낭만 없이,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용기 있고 강단 있는 한걸음 한 걸음은

여전히 혐오와 멸시가 만연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싶다.


그를 규정하는 차가운 불평등의 시선에서 벗어나

더 먼 세계로 자신을 내던지는 재일,

그리고 그런 그를 기다리는 엄마 응우옌 우 녹,

그저 '파란 피부 이방인' 과

'베트남 여자'로만 보이던 그들이

책장의 마지막을 덮으며 비로소 제 이름을 찾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대신

모든 곳에 속하지 않는 자유로

스스로 충만함을 찾고 희박한 희망의 탐색자로

세계를 떠돌기로 결심한 그의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찬란한 푸른빛일지 기대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파란 피부의 재일'을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을 거두어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써 내려가야 할

공동체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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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과 헤어질 결심 - 나를 붕괴시키는 탄수화물 중독
에베 코지 지음, 박중환 외 옮김 / 세이버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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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디저트 문화가 많이 발달해서

국민 질병이 '당뇨병'이라 할 정도로

젊은 세대부터 혈당 관련 질병을 앓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점차 서구화되는 식단은 물론,

유튜브 채널에서 국내에서 해외까지 뻗어나가는

'먹방'이 하나의 문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각종 케이크나 액상과당이 듬뿍 들어간 음료,

탕후루 등과 같이 당 함량이 높은 음식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보면

'이런 증세가 있다면 당뇨 전조증상'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오곤 하는데,

이런 게시물에는 수많은 청년들이 친구를 태그 하며

'이거 완전 내 증상? 당장 병원 가야 하나?'

이런 류의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당뇨병에 걸리게 되면 단순히 약 복용을 떠나

그로 인한 연쇄 질환으로 극단적으로는

손가락이나 발가락 등에 괴사가 일어나기도 하고

시력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에

그저 ' 단것 좀 먹는다고 무슨 일 있겠어?'

라는 생각으로 쉬이 넘길 일이 아닌 것이다.


나 역시 부모님이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등

대사질환을 앓고 계시기에

가족력으로 그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나름대로는 꽤 신경을 쓰며 살아왔지만


20대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던 증상들이

30대가 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씩

그 전조증상이 나타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꼭 반드시 약으로 치료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족력이 있기에 안심할 수 없어

고지혈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그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면서

'과연 약 말고 다른 해결책은 없는 걸까?'

궁금증이 생기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날 수가 있었다.


이 책은 당뇨를 치료하는 전문의이지만

본인도 당뇨병 진단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한 의사가 우연히 '저 탄수화물 식단'으로

당뇨는 물론 고혈압과 고지혈증 등

대사질환에 효과를 얻게 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치료로 권한

저탄수화물 식단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정리한 책이다.


약 없이도, 특별히 과한 운동이나 칼로리 제한 없이도

지금 먹는 식단에서 탄수화물의 비중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건강수치가 달라지고

살이 빠지거나 여러 질환이 해결될 수 있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답에

물음표가 들기도 했는데,


인류의 유전자 시스템은 곡물 위주의 식단에 맞춰

아직 진화되지 않았다는 점,

탄수화물의 섭취로 인해 발생하는

혈당과 인슐린 분비의 상관관계 등을 살펴보며


건강을 되찾을 수 있고 앞으로의 인생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답이 이미 나와 있음에도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서 건강을 걱정하는 건

너무 바보 같은 고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빵이나 떡, 케이크나 쿠키, 과자 등을 비롯한

정제 탄수화물로 만들어진 간식류는

다른 영양소는 거의 없고 탄수화물의 비중이 높아

영양 불균형이 있을 뿐 만 아니라

대부분 '자극적인 맛'을 위해 당분을 많이 넣어

신체의 혈당조절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매일 먹는 건 아니니까라며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커피 한 잔에 곁들이는 빵 한 조각,

그리고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찾게 되는

라면이나 칼국수 등으로 섭취하는

탄수화물의 비중은 하루 전체 식단에서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알게 되니

그동안 내가 건강관리에 너무 무심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기도 했다.


아직 30대의 신체,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니 이제야 겨우

인생의 3분의 1 정도밖에 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의사가 처방하는 고지혈증 약을 먹으며,

일명 '세트'처럼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걱정하면서 남은 인생을

전전긍긍하면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한다고 달라질까?' 하는 의문의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실행해 보고

건강을 찾은 실제 경험담이 있는 만큼


식단에서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이나

식이섬유의 비중을 늘려 변화를 준다면

머지않은 시간에 지금 먹고 있는 약도

끊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나처럼 경계의 수치를 가지고 있거나

가족력을 가진 사람들 외에도

요즘 유행하는 당중독, 디저트 중독으로

손과 입에서 탄수화물과 당분을 떼지 못하는

요즘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자극과 도움이 되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해야 할 일이 많다.

당장의 내 식단에 있어서의 변화를 위해

'답을 알고 있으니 빨리 시도하는' 마음먹기,

그리고 이미 고혈압과 당뇨 등의 대사질환으로

약을 복용하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 탄수화물과 헤어질 결심을,

건강을 만날 결심을 해야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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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분식
김재희 지음 / 북오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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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배고프고 마음이 주린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오래된 노포 식당의 영업종료 안내문이

인터넷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동안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며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라는 담담한 인사말에

자주 찾던 단골손님들은

댓글을 달듯 안내문에 사장님을 향한

마음을 남기기도 했고,


영업종료되기 전 아이의 손을 잡고

혹은 함께 자주 찾았던 옛 친구, 지인과 가게에 들러

그리움을 한 번 더 맛보고 눈물짓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찡한 울림을 주었다.


이토록 음식이란 단순히 끼니를 때우고

허기를 해결하는 것 그 이상으로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위로해 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한 힘이 담겨있다.


추억의 음식을 한입 먹는 것만으로도

예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듯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어릴 적 분식집에서 먹던 맛은

수없이 긴 세월이 지나가도 여전히

잔상처럼 남는 것처럼 말이다.


맛은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는 일등 공신이자,

혀에 감도는 그 맛들은 우리의 과거와

그때 받았던 사랑과 열정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음식으로 기억되는

추억의 시간을 다시금 떠올리고 맛보기 위해

어린 시절 자주 찾던 분식집이나

힘들었던 직장 생활 시절을 달래주던

단골 식당을 종종 찾고,

그의 영업종료 앞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을

가장 치열하고 아름답고,

또 가슴 아프게 시리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한 분식집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동네의 한편에서 소박하지만 따스한 손길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내주던 유미 분식,

이곳을 자주 찾았던 단골손님들 앞으로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편지의 발신인은 분식집을 운영하던

김경자 사장님의 딸 유미.

유미는 어머니의 부고를 전하며

식당을 아껴주던 특별히 고마운 손님들을 초대해

추억의 음식을 대접하고

어머니가 남긴 것을 전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편지를 받은 단골손님들은

오랜 시간 잊고 있던 유미 분식을 찾아

한데 모이게 되는데…


편지를 받고 오랜만에 유미 분식을 찾은 손님들.


김밥 한 줄이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결혼에 골인하게 된 은행원 연경,


치즈돈가스를 좋아하던 지아의 실종에

실수로 결정적인 제보를 놓친

유미분식 사장님에 대한 분노로

발걸음을 끊게 된 영순,


동네 한량으로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현실 앞에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게 된 개떡 남편,


왕따를 당해 은둔형 외톨이로

세상에 상처받은 청년 대호,


자린고비에 괴팍한 성격에

새벽마다 소 불고기덮밥을 배달해달라며

생떼를 쓰던 건물주 아저씨,


경찰시험 고시생 시절

홍합을 넣은 어묵탕 국물로

마음에 한자락 위로를 받았던 미성,


항상 대박을 꿈꾸며

성공을 위해 앞만 보며 달렸으나

사기와 사업 실패로 좌절하고 나서야

항상 자신만을 기다려주던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된 청년 순기까지


유미 분식을 찾았던 그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한자락 따스한 위로가 되었던

맛깔스러운 추억의 음식을 맛보며

과거의 시간 속에 푹 빠져들게 되고

되짚는 시간 속에서 잊고 있던 마음을

되찾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손님들의 사연을 따라 유미 분식의 음식을 맛보며

잊고 있던 과거의 삶을 회귀하듯 되짚고,

또 인생에서 놓치고 있던 마음은 없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어떤 시절을 떠올리면

입안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음식과 맛,

그 음식을 내어주던 누군가가 연상되듯

맛본 적 없는 유미분식 김경자 사장님의

손맛이 책을 통해 나에게까지 전달되어

추억을 넘어 변화와 성장, 치유를 가져오는

기적을 만날 수 있는 힐링의 순간이었다.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에서 온다고,

누군가가 정성스레 만든 한 그릇의 음식에서

맛보는 포근한 위로,

그 위로로 힘내서 내디딘 한 걸음이 쌓여

우리의 삶을 조금씩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소박하지만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놓치지 말고,

서로에게 위로와 힘을 주며

때로 지쳐 넘어질 때에도 일으켜 세워 줄 수 있는

다정함을 잊지 말자는 작가의 메시지는

바쁜 오늘을 사느라 서로의 진심과

내 마음속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요즘의 우리에게 많은 울림이 될 것 같다.


유미 분식의 사장님이 남긴 마지막 선물이

생각지 못했던 반전이자

아쉬움과 애틋함을 가진 단골손님들에게

작은 기적 같은 순간으로 다가온 것처럼,


매일 쌓여가는 사소한 추억의 조각들을 모아

후회 없는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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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개업
담자연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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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난 다음에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가끔 죽음에 이르렀다가 다시 살아나는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이 있기도 한 걸 보면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잠시 걸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 인기가 있었던 tvN의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삶을 다한 사람들이 저승사자의 이끌림으로

이승과 저승 사이 어떤 공간에 잠시 머무르며

저승사자가 건네주는 차 한 잔을 마시고는

이승의 기억을 잊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기억을 지우지 않은 채

다음 생을 기약하며 저승으로 건너가곤 했다.


이 책은 그 이승과 저승 사이에 위치한

환승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로,

생일을 하루 앞두고 환승 세계에 뚝 떨어지게 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쩌다 이 세계에 떨어지게 된 것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소녀 영채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싶은 그녀는

제 사장이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아직 삶이 남은 자는 이승으로

삶을 다한 자는 저승으로 건너가기에

국수 한 그릇만 먹으면 되겠지 쉽게 생각했지만,

국수에 담기는 '자신만의 구슬'이 없어

환승 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구슬이 생길 거라는 기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제 사장의 국숫집에서

임시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정이 많고 다정한 다미 아저씨,

가끔은 노인처럼 때로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진여사,

차갑고 냉철하지만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제 사장과 함께 지내며

어느덧 이승에서의 시간은 흐릿해진 채

국숫집 생활에 적응해 나가게 된다.


국숫집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들렀다.

엄마와 딸, 20년 지기 친구,

남편과 사별한 아픔을 겪은 아내 등

짝지어진 듯 서로를 이어주는

인연의 실타래가 엮여있다.


그들의 사연에 마음 깊이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건네는 채이가 영 못마땅했지만,

항상 손님이 다녀가고 나면 그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고통으로 힘겨워하던 제 사장은

채이의 위로로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깨닫게 되며

조금씩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환승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채이는 환승에 엮인 비밀에 가까이 다가가고,

아무런 이승에서의 기억도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

벌받는 시간을 보내던 제 사장도 자신과 엮인

채이의 운명에 관해 하나하나 알게 된다.


과연 형벌을 받는 제 사장은 기억을 찾고,

또 채이는 이승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환승 세계의 사람들에게 숨겨진

비밀의 진실은 무엇일까?


만약 내가 채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갑자기 이승을 떠나 저승 사이 환승 세계에

동떨어지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포감과 두려움

그리고 왜 여기에 왔는지도 모르기에

다시 돌아가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답답함은

이야기를 따라 흥미로운 환승 세계의 설정에

푹 빠져들기에 충분한 서두였는데


환승 세계에 적응해 나가는 채이를 통해

국숫집에서 마주하는 각각의 감동적이고

마음 아픈 사연을 통해

결국에는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타인과의 '인연'이라던가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환승의 국숫집에서 제 사장이 내놓는 국수는

국물이나 고명을 떠나 붉은빛의 운명 구슬이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얼핏 국물을 맛깔나는 빛깔로 물들이는 것 같지만

그 구슬을 먹는 손님들은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바로잡게 되는 것이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꿈을 포기했다고,

본인이 엄마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해

죄책감을 느끼는 딸은 국수를 통해

사실 엄마가 자신을 좀 더 믿어주길 바라는

진심을 깨닫게 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보육원에서 자라

혼자 까칠하게 살아왔던 남자는

가족을 잃고 세상에 혼자뿐이라 오해했지만,

사실 평생 옆을 지켜주었던 친구가

가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략결혼이지만 외로웠던 삶의 유일한 사랑이자

구원이었던 남편과의 사별로 힘들어하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이 소중한 사람을 잃는 저주에 걸린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 불행과 행복 역시 결국에는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늦게나마 알게 된다.


각자의 삶을 국수를 먹고 채이와 제 사장과의

대화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심과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 그들은

후회 없는 끝맺음을 위해 후련한 마음으로

다시 이승에 돌아가게 된다.


전하지 못했던 진심과 어긋난 타이밍을 바로잡아

꼬인 운명의 실타래를 풀고 다시 이승으로,

혹은 누군가는 저승으로 떠나가는 발걸음을 보며

비록 '환승 세계'에서 국수를 먹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굉장히 의미 있었고


채이를 귀찮아만 하는 것 같은 제 사장이

손님들에게 건네는 채이의 위로로 고통이 덜어지고

또 어린아이인 것 만 같았던 채이가

환승 세계에서 마주한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소설 속 판타지이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울리는

감동적인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이승에서 저승을 넘어갈 때

우리를 후회 없게 만드는 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온기,

그 사랑을 잊지 않는 서로에 대한 다정함이라는

메시지가 남는다.


서로에게 얽힌 운명을 마주하게 된

제 사장과 채이가 후회 없이 웃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런 다정함을 잃지 않고

전하지 못한 진심과 후회의 마음을 바로잡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 어떤 말은

입에서 나와 귀로 흘러가 사라지게 되고,

어떤 말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 남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 매 순간 후회 없이 소중한 진심을 담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야겠다는 다짐이다.


혹여 미운 마음에 진심을 숨긴 인연은 없었던가,

미처 깨닫지 못해 표현하지 않았던 마음은 없던가,

내 마음속 진심을 이만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전한 진심과 함께 한 시간은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잊어버리더라도 잃어버리는 건 아니라는

책 속 채이의 말처럼 삶과 인연에 담겨있는 다정함이

결국엔 우리를 살게 하고 꼭 필요한 마음이라는

따뜻한 국수 한 그릇 같은 뭉근한 온기가 남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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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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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불평등 아래에서도 키워올린 희망이라는 씨앗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되려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 소년을 자라게 했다.
그 성장은 각자를 억압하고 규정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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