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 도시로 숨 쉬던 모던걸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가기까지
김명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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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작고하신 우리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

1923년 창간되어 1934년까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총 73권의

《신여성》이라는 이름의 잡지가 발행되었다.


가정 안에서 조용히 숨겨진 존재,

가사나 육아에만 전념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남편을 챙기는

수동적인 삶이 당연한 것으로 비치던

그 시절의 사회에서 말하는

신여성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여름이 다가오면 흰 구두와 양산을 사고,

해수욕을 즐기거나 벚꽃 놀이를 즐긴다.

머리는 구불구불한 펌을 하거나

과감하게 짧은 단발로 자르고,

가끔 테니스와 골프도 친다.

좋아하는 음반을 사 모으거나

자유연애로 데이트를 즐기는

잡지 속 신여성의 모습은

요즘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이모는

다른 삶을 살아온 것일까?

그때의 신여성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했던 그 시절,

여성들에게 이런 소비와 문화향유가 있었다니

과연 사실일까 싶을 만큼

잡지 속 신여성의 모습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새로운 외양을 장착하고

집 '안'에서의 삶에서 '밖'으로 나온

여성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문화충격 그 자체.


시스루 스타일의 의상이나 단발 등

서양에서 들여온 옷차림과 머리모양으로

백화점 쇼핑을 즐기는 신여성의 모습,

호떡이나 군고구마 같은 것을

여자가 직접 가게에 들어가 사는 것이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던 당시의 모습 등은

꽤나 흥미를 끄는 소재로,

새로운 여성의 등장을 담은 이 책에

재미있게 접근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장을 거듭할수록

근대의 스타이자 주목받는 신여성이 겪었던

각종 스캔들과 소문,

그들을 향한 가학적인 폭력은 물론

신여성의 실체를 파헤치겠다며

정의라는 논리 아래 '은파리'라는 이름의

관음적 시선으로 여성을 미행하고

불편한 소문을 양산했던 당시의 시선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며

여성의 '변화'를 비난하고 비판하게끔

유도했던 잡지의 진짜 '의도'를 보여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잡지의 주된 집필진은 대부분 남성,

여성 잡지임에도 여성 필자의 비율은

30퍼센트 안팎에 불과했다고 한다.


근대도시의 신교육과 신문물을 열망하며

'안'에서 '밖'으로 나온 여성들을

조명하고 소개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소문과

시빗거리를 짚어내고,

새롭게 공적 영역에 나타난 여성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체하며

혹은 꾸짖고 계도하겠다는 목적을

내세우는 이 잡지 속의 시선은


어떠한 사안에 대해

여성들이 잘 모를 것임을 전제하고

남성들이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당시의 '맨스플레인(mansplain)'이기도 했고,

사실 《신여성》은 여성이 '주체'인 잡지가 아니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계몽잡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행가나 영화 등 당대 폭발적으로 유입되었던

대중문화에 대해 어떤 집단보다 먼저 나서

수용자와 생산자가 되고자 했던 여성의 모습,

자기들만의 문화를 쌓아나가던 그들의 적극성,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자유로운 연애와

성에 대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던 행보까지


그들의 '불온한' 행보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못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치부,

여성을 억압하려는 시도가 가득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세워나가고자 애써온

신여성의 모습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시대의 차이가 있기에

고리타분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1920-30년대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곱디 고울 리 없겠다는 짐작은 있었지만

남성 중심적 잣대로 바라본

새로이 등장한 신여성의 이미지는


책을 읽는 내가

마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인 양

그들이 강요하는 시선과 비난 아래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과

뜨거운 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적이고 강압적인 시선에

강력히 반발하는 여성들의 백래시

(backlash - 진보적인 사회, 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의 반격)를 마주하는 짜릿함,


그 시대를 살아던 신여성들이

한 사람으로서 우뚝 서 자신으로 서고자,

또 자신의 욕구를 겉으로 드러내고

바깥으로 나온 용기 있는 시작과 도전은

그들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한편으로는 그 시도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신여성의 등장부터

그들을 다시 익숙하고 폐쇄적인

가정이라는 공간으로 내몰아가는

남성들의 시선과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 '과거'의 일임에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잡지에 소개된 2-30년대 여성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남성과

당시 사회 분위기를 담아내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여성의 역사'를 재조명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여성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재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용기 있게 '밖'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내고

또 자신의 욕구대로 행동하는

신여성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비난의 시선으로 그치지 않는 아이러니함,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서는

남성의 '창기'가 다름없다고 평하면서도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은 가정에 소홀하거나

혹은 여성성을 잃어버렸다는 평으로,

심지어 경제활동을 하며 가정을 챙기는 여성은

'남성의 기를 죽인다'라는 논평이 덧붙여졌으니

여성들의 삶은 참 고단하기 그지없었다.


도시의 거리에서 가정으로 되돌아간

100년 전 신여성을 재조명한 이 책,

《신여성》을 다시 읽으며

당대와 지금 여기의 현실을 똑같은 의미로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깨닫고

현재의 현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에 대한 자유,

그리고 규정되고 강요되는 역할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당대 신여성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목소리는


여전히 유리천장, 워킹맘, 경력단절 등의

용어로 뒷받침되는 현대에서의

신여성의 분투기로 이어져

지금도 여전히 달려가는 길 끝에 있을

열린, 혹은 막힌 출구를 향해 매일을 쌓아가는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100년도 넘는 시간을 달려

함께 걸어주는 그 시대의 신여성들의 발걸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지금의 끝없는 길에 용기를 더해주었다.


지금 마주하는 우리의 현실이

그때의 신여성들이 그랬듯

변화 없이 아스라이 저물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 그때의 여성들에게

지금의 우리가 따뜻한 격려를 얹어줄 수 있는

단단한 동료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발걸음을

내디뎌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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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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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지 않은 나이에 입문한 작가 생활임에도

생애 동안 남긴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박완서 작가,

그녀가 쓴 유일한 역사소설이자 대작인

미망을 새로이 개정해 방언과 입말,

소설에 쓰인 한자어와 일본어, 숙어 등의

표현을 풀어내 더욱 이해하기 쉽도록

민음사에서 새로이 출간되어

감사한 기회에 읽어보게 되었다.


미망은 작가의 고향인 개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들을 통해

그리운 고향의 산하를 거침없이 누비고,

운명과 싸워 흥망과 울고 웃는 삶의 모습을

풀어내고 싶다고 고백했는데,

개성 지방의 물과 흙으로 키워낸 인삼농사와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분단에 이르기까지 전씨가 사람들을 통해

한반도의 역사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녹여낸 대작이다.


대한민국 이전의 조선,

그 이전의 고려 시절부터 맥을 이어온

역사와 경제, 구시대의 가족과 그 이후로

시대를 거듭하며 변해가는 시대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기도 한데,


역사의 큰 줄기를 관통해가는 과정 속

작가 특유의 여성주의적 관점,

서정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인물에 대한 냉철하고 가식 없는 평가와

욕망에 가차없는 판단이 빛을 발하는

부분들이 넘겨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 집필했음에도

결연하고 전진하는 듯한 단단한 힘이 서린

문장과 전씨일가의 삶을 통해서

인생에 대한 참 맛을 깨우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책의 시작은 신분제가 들썩이던 시절,

비범한 상업 감각으로 인삼 농사와 장사를 통해

집안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해

자수성가한 전처만 영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지금이야 넉넉한 부를 가지고 있으니

세상 두려울 게 없어 보이는 전처만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서만의 아버지는 등짐장수로 번 돈을

청국이나 왜국과 밀무역했다는 오해를 받아

동네 양반집 이생원에게 문초를 당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던 어린 서만이 대들어

진노한 이생원이 '눈을 뽑겠다'라며 달려들자

아버지는 스스로 눈을 쑤시며

한쪽 눈을 잃은 대가로 아들을 지킨다.


이때부터 서만은 동네를 떠나 전국을 돌며

장사를 시작하고 종국엔 큰돈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와 거부가 된 것이다.

샛골에는 그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그곳의 삼포는 거의 그의 것과 진배없었기에

일명 개성 제일가는 상인이 되었다.


그는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으나

장남은 일찍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딸인 태임 하나만 낳은 채 세상을 떠나고,

다른 아들과 손자들이 있음에도

일찍이 세상을 떠난 첫째 아들의 여식인

손녀 태임에게 유난히 애틋하게 아낀다.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장사꾼으로서의 촉이 좋았던 그는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느낀

개화의 바람을 눈치채고는

이 변화에 걸 맞춰 손녀 태임을

지금껏 자신의 어머니가, 그리고 아내가,

또 며느리나 이 세상 여자들이 살아온 것과는

다른 삶으로 이끌고 싶다는 소망으로

애정을 담아 키워왔다.


그러나 그런 평온한 나날들도 잠시,

아들의 집에서 사환으로 일하는 청년

종상의 얼굴에서

어린 시절 그를 두렵게 하고

집안에 아픈 상처를 가져다준

이생원을 떠올리게 하고,

그가 이생원의 손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다.


운명의 뜻인지

이생원 댁과 얽히게 된 전처만은,

가세가 기울었다는 이생원 댁의 손자인 종상을

자신의 첩인 해주댁의

집에 머슴으로 보내게 되고


삼포의 인삼(전처만의 인삼)을

일본인들에게 불법으로 넘기려 한 걸

혼자 쫓아서 관아에 신고했으나

되려 거꾸로 벌을 받아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게 된 종상을 보고

보호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한편,

전처만과 마찬가지로 그를 신경 쓰고

챙기는 손녀 태임을 보며

어떤 면에서는 어떻게든 종상을 집에서 쫓아

내고 싶다는 걱정에 빠지게 되는데……


짜임새 있는 각 인물들의 서사,

천서만의 어린 시절과 이생원 댁과의

끈질긴 악연이 담긴 이야기는 물론


충분히 성공한 삶을 이루었으나

마음에 차지 않는 남은 두 아들보다

더 애정하고 잘 키워내고 싶은 건

먼저 떠난 장남의 여식인 태임뿐이다.


친우의 딸을 며느리로 들이고 싶은 마음에

병이 든 것을 숨긴 채 혼사를 고집해

이렇게 벌을 받는 건가 자책하기도 하는

천서만은 마냥 계산적이지도,

혹은 요즘식 표현으로 꼰대스럽지 않은

깨어있는 시선을 가지고 있어


그가 태임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빛,

당시였으면 큰 죄인 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며느리를 포용하고

그 아이마저 어여삐 여기는 그의 마음은


반드시 복수하고 또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악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성공해 모든 것을 쥐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쓸쓸하고 외로운

그의 삶 전체를 엿볼 수 있어 인생에 대한,

시대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좋기도 했고


그의 애정 아래 자라 티 없이 단단한 태임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공부에 대한 욕구,

신분을 떠나 종상에 대한 신뢰나 애정을

숨기지 않는 모습 역시도

굉장히 놀라운 발전이 아니었나 싶다.


전처만과 머릿방아씨 모두 세상을 떠나고

종상과 태임의 새로운 발걸음을 기약하며

1권이 마무리되는데,

2권을 통해 새롭게 펼쳐지는 시대의 변화 속

그들의 신식공부는,

또 혁명과 개화에 전씨 일가는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지 궁금한 마음이다.


전처만의 아버지 대부터 시작해

몇 대를 이어 이어지는 그 서사와

각 인물들의 성격, 연결고리 등을

하나하나 만들어낸 박완서 작가의

깊이 있고 놀라운 필력에 감동하게 된 독서였다.


태임과 종상은 오히려 안되기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하게 될까,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며 또 다른 어려움을 없을까

얼른 다음 책을 찾아 펼쳐봐야겠다.


한 사람뿐 만 아니라

한 집안의, 여러 세대의, 우리나라의 역사의

긴 시간을 이어 한반도의 삶을 담아온

작가의 이야기는 정말 오래도록

앞으로도 울림 있는 메시지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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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도윤 지음 / 한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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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게 무서운 여동생이

화장실에 같이 가달라며 깨우는 소리에

일어난 초등학생 이준,

동생이 바지를 적시면 혼나는 것은 자신인지라

먼저 앞장 서라며 동생을 앞세웠는데

문고리를 잡은 동생이 앗, 뜨거워하고

화들짝 놀라며 울기 시작한다.

집에 불이 난 것이다.


문틈에서 시커먼 연기가 들어오고

방안에 갇혀 어쩌지 못하던 두 남매는

창문 밖에서 옆집 아주머니가

뛰어내리면 아래에서 받아준다고 얘기했지만,

혹여나 다칠까 무서운 마음에 망설이다가

오빠인 이준이 먼저 창밖으로 뛰어내려

불길에서 겨우 빠져나오게 된다.


동생에게도 빨리 뛰어내리라고 외치던 찰나

화염이 집을 집어삼키며 폭발했고,

그렇게 이준을 제외한 온 가족은

화마로 세상을 떠나고 이준만 혼자 남는다.


가족이 떠나간 세상에서 외롭고 고독하게,

그토록 도움의 손길을 간절하게 기도하던

그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는 신을 원망하며

어른이 된 이준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도시가 아닌 외따로이 따로 떨어진 산골의

바깥과 최소한으로 교류하며 살아가는

한사람 마을로 발령받게 된다.


발령을 일주일 앞두고,

미리 집을 구하고 인사를 나눌 겸 찾은

한사람 마을은 이상하게도 울타리가 쳐져 있고

굉장히 폐쇄적인 분위기이다.


그곳에 자리 잡고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지만,

일요일이면 피로 추정되는 액체가

뚝뚝 덜어지는 비닐을 들고 입으로 무언가

중얼거리며 수십 명의 마을 주민들이

교회를 찾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그에게 교회 출입을 허가하지 않던

이장이자 목사는 노골적으로 호기심과

경계를 풀지 못하는 이준을 교회로 초대해

그들의 예배에 참관할 수 있게 해준다.


매주 예배마다 한 사람을 뽑아

신과 '영접'하게 해준다는 기이한 현실,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것도,

이준에게는 기이하고 알 수 없는 광기에

두려움이 함께 느껴진다.


우연한 계기로 목사가 신을 영접하는

영광의 방에서 신을 영접하게 된 이준은

그때부터 신을 통해

'가족을 다시 살리고 싶다'라는

비뚤어진 마음으로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데……


엄청난 관객 수로 놀라운 기록을 세웠던

한국형 오컬트 작품인 파묘에 이어

이 붐을 이어갈만한 작품이라는 소개 글을 담은

이 책은 다양한 소재의 장르를 스릴러와 결합한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는 2002년 생의

신예 작가 신도윤의 장편소설이다.


오컬트(Occult)란

과학적으로는 증명되거나 믿어지지 않는

미스터리한 소재를 다루는 작품으로

초자연적 현상, 악마, 악령, 마법, 심령술

등을 주제로 하기에 과연 그가 책을 통해

'종교'와 '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조심스럽게

책장을 펼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를 가진 초등학교 교사 이준이

이상하고 괴기스러운 한마을의 교사로 부임하며

마주하게 되는 신비한 일들,

그리고 그가 목격한 마을 사람들의

'신의 영접'을 향한 히스테릭한 집착이나

무조건적인 믿음은 특별하게 등장하는

두려운 사건이나 존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 있는 진행이 인상적이었다.


피로 추정되는 액체를 뚝뚝 흘리는

비닐봉지를 들고 교회로 향하는 주민들,

그리고 그가 교회에 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교회 목사이자 이장, 그리고 운영팀까지.

이 모든 상황이 되려 그와 독자를

'어떻게든' 교회 안으로 들어가

비밀스럽게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도록

이끌고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의심했던 제물이

무언가를 해한 것이 아니라

정육점에서 파는 진짜 '고기' 였다는 점이나

신을 영접하는 것 자체가 연출된 상황이거나

신을 가장한 목사의 군림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영접해서 아픈 허리가 낫는 등

긴장감을 고조시켰다가도

'에이 아무것도 아니었네' 하고

스르륵 기대를 무너뜨리며

독자들을 좌지우지하는 필력이

무척이나 인상적이기도 했고,


무조건적으로 목사와 신을 믿는

마을 주민들을 들여다보면

그 한편에 기대고 바라는 소원이 있다는 점에서

이준과 그리고 평범한 우리 모두와

크게 다르지 않아 과연 누가 악인이고,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갈등하게 하는 요소가 많았다.


처음에는 한사람 마을의 교회,

영광의 방 안에서 목사의 기도 아래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신의 존재 자체와

그리고 그 진실 이면에 무언가 숨어있을 것 같아

거기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따라갔다면


나중에는 그토록 기이할 정도로

목사와 신을 맹신하는 마을 사람들의

비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에

가깝게 닿아가고 그 이상의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 이준의 모습을 보면서는


되려 순수하게 바라는 소원을 기대하며

제물을 바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보다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이성을 잃는 이준이 공포스럽고

괴기스럽게 느껴져 그 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지는 마음으로 쫓게 되었다.


왜 신은 한사람 마을에만 나타나는가 라거나

조금은 허무한 결말에 맥이 빠지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런 천벌, 파국의 결말을 막기 위해

목사가 그토록 마을을 테두리 쳐 통제하고

그들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평화가

이방인이자 과한 욕심을 가진 이준으로 인해

그 중심이 무너지게 된 건 아닐까,


어쩌면 제물을 받고서야 기도를 들어주는 신이나

진실을 은폐하고 그저 질서를 유지하고자

입을 닫는 교회의 목사보다

이준이 악인이자 천벌받아야 할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상하게 비틀린 주민들과 마을의 수상함을

경계하며 읽었던 이야기의 끝에서 느낀

어떤 면으로는 참신한 이 결말은

두드러지는 공포 요소가 없이도

초자연적이면서도 심리를 자극해

두려움과 공포, 기이함으로

극단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못하게 하는

매력적인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이 되었든 감히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소원을 이뤄주는

신을 신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신의 강림이나 그와의 영접이

과연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그렇게 '자연'을 거스른 채 질서가 무너진

세상을 과연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까

끝나지 않는 질문들이 많이 남았다.


누구든 마음속에 간절한 소원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안타까운 사연 역시 많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게 두어야 하는 게

사실은 세상의 섭리이지 않을까 할 만큼

사람들이 각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움직임이 가져오는 세상의 파국이,


내면에 담긴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섬뜩하고 씁쓸한 결말이었지만

이로 인해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독서이기도 했다.


책으로도 쫄깃한 긴장감이 한가득이었지만

영상화된다면 더욱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혹시나 하는 즐거운 기대감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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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편지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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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엇비슷한 일상 속,

즐겁고 행복한 일이나 뿌듯한 순간으로

채워지는 장밋빛의 나날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슬럼프에 빠진 듯

우울감에 휩싸이거나 지금의 현실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저 매일을 '그냥' 살아내기도 한다.


나의 잿빛 하루와 다른

누군가의 빛나는 일상,

매일을 충만한 감사함이나 행복으로

꽉 채운 사람들을 보고 나면 상대적으로

더 우울해지는 마음은 털어놓을 곳이 없다.


여기에 그런 마음으로 보내는 한 사람이 있다.

결혼해서 고등학생인 아들 둘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 나오미.

시부모님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매일 혼신의 힘을 다하며

열심히 일하는 남편,

이만큼 훌쩍 자라 입시를 앞두고

이런저런 지원을 기대하는 아이들을 위해

쇼핑몰 부업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의 만남 속,

여유 있는 환경 속에서 마냥 긍정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친구의 모습에서

질투감을 느끼고 감정이 비뚤어진 그녀는


친구에게 느껴지는 열등감으로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위로하고

토닥여주는 친구의 진심을 외면한 채

급히 자리를 일어서게 된다.


그러다 문득 집으로 돌아와

친구가 이야기한 특별한 우체국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 번 편지를 보내볼까'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수요일의 우체국.

수요일에 일어났던 일을 편지로 적어보내면,

낯선 누군가의 일상이 담긴 편지를

답장 대신 받아볼 수 있는 것으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익명성에 기댄 솔직함이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기에

털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자신의 진짜 수요일은 숨긴 채

시부모님과의 관계로 쌓인 스트레스를

독처럼 매일 일기장에 쏟아내는

자신의 현실 속 수요일이 아닌,

자신이 과거에 꿈꿔왔던 꿈을 이뤄낸 모습을

가상으로 꾸며내 편지로 보내게 된다.


마지막까지 보낼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편지를 보내놓고 나니

편지를 쓰면서도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눈물을 흘리게 되고,


누군가에게 가상의 모습이지만

꿈꿔왔던 일을 이뤄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느낀 기쁨과 행복의 감정을 통해

'지금이라도 시도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얻게 된다.


또 한 사람,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내 실력으로 과연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 어린 마음,


그리고 적당히 안정적인 지금의 현실과

약혼자와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바람 아래

사실은 용기가 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용기 있게 프리랜서 작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에 빠진 히로키.


어느 날 저녁 쓸쓸한 마음에 술 한 잔을 들이켜다

불현듯 떠오른 약혼자의 권유가 생각나

수요일의 편지를 쓰게 된 그.

자신의 수요일은 감춘 해 가상의 수요일을

써 내려간 나오미와는 달리


그는 과감하게 자신의 날 것 그대로의 마음,

하나도 숨길 것 없이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자신의 수요일을

용감하게 쏟아붓게 된다.


그리고 이 두 장의 편지를 펼쳐보게 된

수요일의 우체국 근무자 겐지로는

랜덤으로 편지를 교환하는 우체국의 규칙 대신

딱 서로에게 필요한 것 같은

두 사람의 편지를 서로에게 전하며

마법 같은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데……



나의 하루를 담은 편지가

모르는 타인에게 보내진다고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떤 내용을 써 내려갈까?

힘들고 피곤한 현실을 토로할까,

그래도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을 쓸까 고민이 되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내 감정의 본질 깊숙이까지 들어가

부끄럽고 창피한 고민까지 꺼내고 싶기도,


혹은 내 수요일의 편지를 읽는 사람이

'이 사람의 삶은 참 퍽퍽하고 딱하네'라고

동정하게 될까 봐 적당히 포장해서

멋지고 그럴싸한 모습만

쓰고 싶을 것 같기도 하다.


편지를 통해 가상의 꿈을 이룬 수요일과

너무도 솔직하게 현실을 담아낸 수요일

두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타인의 일상을 엿보고,

편지 속 타인이 전하는 그의 인생을 통해

좋은 자극을 받거나 동기부여가 되기도,

또 각자의 입장에서 편지의 내용으로

치유와 성장의 계기가 되는

나오미와 히로키의 모습은


수요일의 우체국이

의도하고 계산했던 것인지 혹은 자연스레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용기 없고 망설이던 자신의 삶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세계로 발돋움하고

용기 있는 도전으로 다른 내일을 만든

두 주인공의 발전이 자체가

굉장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매일 지친 일상

내가 마주하는 일상 속 수많은 사람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그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사람들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연쇄한다는 것,


타인의 작은 한마디에 힘입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살아가며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과

타인이 내미는 따스한 손길과 마음에

매몰차게 거절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시야를 넓히고 손을 뻗으며

서로 연대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시간이기도 했다.


작중 편지가

서로의 편지를 교차해 받은

두 사람의 인생뿐 만 아니라

우체국에서 일하는

겐지로와 리호의 인생을 바꾸었듯,


이런 사소한 터치 하나가

나의 인생은 물론 타인의 인생을

새롭게 일으켜주고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매 순간 진심으로 타인을 대하고

각자의 사정과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이다.


웃는 얼굴과 웃는 얼굴에서 생겨난

즐거운 기분이 즐거운 오늘을 만들어주고,

그런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이 현재의 모습,

더 나아가 미래의 모습으로 이어진다는

책 속 메시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해피 배턴을 넘겨주듯

웃는 얼굴, 사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따스하고 기운 넘치는 자세로

나의 인생뿐 아니라 나와 닿아있는 타인,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이끌어주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혹은 '퍽퍽한 삶이네' 하며

조금은 우울한 순간의 감정을

매일의 내 감정으로, 인생으로

만들어오고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해주며


우연히 닿은 작은 기적으로

인생의 새로운 분기점을 찾아

스스로 새로운 삶으로 개척해나가게 된

나오미와 히로키처럼

나 역시 기적을 기다리지만 말고

내가 먼저 나서 기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감사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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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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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홈베이킹을 취미로 삼아

하루가 멀다 하고 쿠키나 구움과자 등을

굽던 때가 있었다.


내가 만든 디저트를 포장해 선물했을 때

상대의 감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때로는 '파는 것 같이 정말 맛있어'하는

얘기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것은

베이킹을 하는 동안은 딴 생각 할 겨를 없이

오롯이 만드는 결과물에만 집중하느라

마치 '명상'을 하는듯한 느낌을 주는

그 시간 자체였다.


레시피대로 똑같이 만든다고 하더라도

들어가는 가루의 용량이 조금만 달라져도,

볼에 약간의 물기가 남아있어도,

휘핑을 너무 오래 치거나 짧게 치면

무엇이 원인인지도 모른 채 우는 아기처럼

처참한 결과물을 마주하게 되기에

살살 재료들을 달래고 읍소해가며

정성을 들여 모든 과정의 손끝에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된다.


그렇게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 뒤 완성된

쿠키나 구움과자, 빵이나 케이크 등을 보면

'먹지 않아도 자식의 먹는 모습만 봐도

이미 배부른듯한' 부모의 마음과 함께

쉬이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는

베이킹의 까다로움에 혀를 내두르며

당분간은 빵은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하는

마음 두 가지가 공존하게 된다.


달콤한 빵을 먹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힘든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뿌듯함,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에 몰입하고

이 완성된 빵이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

만드느라 애쓴 내 마음을 헤아려

맛있게 먹어줄 생각을 하면

절로 행복함이 가득 찬다.


그렇기에 힘들다, 이제 못하겠어 하면서도

한 번씩 비싼 재료비와 번거로운 설거지를

감수하면서도 '베이킹하고 싶다'하는 마음이

이따금 찾아오곤 한다.


이 책은 그렇게 빵을 굽는 마음으로

투박하면서도 잔잔하고 따뜻한 위로를 담아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정성스레 반죽을 치대고 오랜 발효시간을 거쳐

온도와 시간을 지켜 정성껏 구워내듯,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책'을 써 내려가고자 애쓴

작가의 매일에 대한,

그에게 그런 의미가 되어준 책에 대한 글이다.


식빵이나 포카치아 같은 담백하고

밋밋하지만 쫄깃한 식감과 특유의 소박함으로

질릴 틈 없이 식사 때마다 찾게 하는 빵,

그리고 마카롱이나 캉파뉴 같은

극강의 달콤한 맛을 가진,

때로는 그리 고급스럽지도 않지만

겨울철 길거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붕어빵이나

엄마가 믹스로 적당히 만들어낸 도넛처럼


우리가 살아가며 수없이 마주하는 빵들만큼

다채롭고 다양한 맛의 글,

그 맛을 연상시키는 책을 작가가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만의

잔잔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재조명하였다.


책은 총 다섯 개의 주제로 나뉘어

〈당신에게 권하고픈 온도〉

〈하나씩 구워낸 문장들〉

〈온기가 남은 오븐 곁에 둘러앉아〉

〈빈집처럼 쓸쓸하지만 마시멜로처럼 달콤한〉

〈갓 구운 호밀빵 샌드위치를 들고 숲으로〉로


각 장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의 중요성,

소설 쓰기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고민과 각오,

가족과 친구 반려견 등

주변의 소중한 관계에 대한 일화,

사랑을 통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

인간과 자연, 문화 안과 밖의

경계를 넘어선 연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넘나들며

작가가 오래 붙들고 아껴온 이야기들을

빵과 책을 매개로,

삶을 바라보는 마음을 담아내었다.


읽어보지 않은 책 일지라 하더라도

친절하게 소제목처럼 붙여준

빵의 이름과 함께 따라 읽다 보면

어떤 맛과 풍미의 글인지

눈으로 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가의 따스하고 다정한 덧붙임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또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가까이 책을 끼고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정다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또 타인에게도 다정해지려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삶이 고통스럽거나 혹은 불행 앞에서

무기력해질 때마다,

혹은 대단한 무너짐이 아니더라도

때로 조금 우울하고 지치는 날에

나를 위로해 주고 기분전환을 시켜주는

따뜻한 온기를 가진 '한 덩이의 빵'이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말자며,


곁에 있는 타인에게 건네는 빵 봉투처럼

매일 세상이 나에게 다정하지 않을지라도

나와 타인의 매일이 다정하기를

빌어줄 수 있는 마음과 기대를 담아

아련하고 달콤한 빵과 그와 같은 글을 전했다.


정성스레 갓 구워낸 빵을 품에 안겨주듯

정성스레 한 글자 한 글자 길어낸 글들은

그의 바람만큼이나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속에 따스한 위로와 다정함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만들어준 도넛의 추억이나

스무 살 봄에 찾았던 다방의 기억,

불같은 사랑을 꿈꾸던 그 시절의 토스트처럼

그의 마음을 붙들어둔 지나온 시간 속의 빵,

그가 살아온 삶에 관한 이야기와


소설가로서 글을 쓰는 이의 고뇌나 고민같이

그가 인생을 살아오며 마주한 빛과 그림자,

그리고 글을 쓰는 이로써 열망하는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적극적인 열의까지 자신의 삶을 향한

단단하고 또렷한 각오를 엿보며


자기 앞에 주어진 매일에 최선을 다하는

한 사람의 인생과 그의 내면을

글을 통해 투명하게 마주할 수 있었고,

또 그의 글을 통해 느껴지는 다정함 만큼이나

내가 아닌 그와 타인과, 세상을 향한

다정한 온기와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독서였다는 생각이다.


누군가가 정성스레 빚어낸 하루,

타인을 향한 다정함을 잃지 않는

그의 읽고 쓰는 나날들을 찬찬히 엿보며

바쁜 현실을 살아가느라 내 마음과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었던 일상이

조금은 갓 구워낸 빵처럼

말랑말랑하고 온기가 가득해지는

따뜻한 변화를 가져온 것 같아 기쁘다.


매일은 아니어도 이따금 빵을 굽는

따스하고 온기 가득한 마음으로

주변과 타인을 살피며

다정함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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