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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편지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7월
평점 :




매일 엇비슷한 일상 속,
즐겁고 행복한 일이나 뿌듯한 순간으로
채워지는 장밋빛의 나날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슬럼프에 빠진 듯
우울감에 휩싸이거나 지금의 현실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저 매일을 '그냥' 살아내기도 한다.
나의 잿빛 하루와 다른
누군가의 빛나는 일상,
매일을 충만한 감사함이나 행복으로
꽉 채운 사람들을 보고 나면 상대적으로
더 우울해지는 마음은 털어놓을 곳이 없다.
여기에 그런 마음으로 보내는 한 사람이 있다.
결혼해서 고등학생인 아들 둘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 나오미.
시부모님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매일 혼신의 힘을 다하며
열심히 일하는 남편,
이만큼 훌쩍 자라 입시를 앞두고
이런저런 지원을 기대하는 아이들을 위해
쇼핑몰 부업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의 만남 속,
여유 있는 환경 속에서 마냥 긍정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친구의 모습에서
질투감을 느끼고 감정이 비뚤어진 그녀는
친구에게 느껴지는 열등감으로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위로하고
토닥여주는 친구의 진심을 외면한 채
급히 자리를 일어서게 된다.
그러다 문득 집으로 돌아와
친구가 이야기한 특별한 우체국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 번 편지를 보내볼까'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수요일의 우체국.
수요일에 일어났던 일을 편지로 적어보내면,
낯선 누군가의 일상이 담긴 편지를
답장 대신 받아볼 수 있는 것으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익명성에 기댄 솔직함이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기에
털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자신의 진짜 수요일은 숨긴 채
시부모님과의 관계로 쌓인 스트레스를
독처럼 매일 일기장에 쏟아내는
자신의 현실 속 수요일이 아닌,
자신이 과거에 꿈꿔왔던 꿈을 이뤄낸 모습을
가상으로 꾸며내 편지로 보내게 된다.
마지막까지 보낼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편지를 보내놓고 나니
편지를 쓰면서도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눈물을 흘리게 되고,
누군가에게 가상의 모습이지만
꿈꿔왔던 일을 이뤄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느낀 기쁨과 행복의 감정을 통해
'지금이라도 시도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얻게 된다.
또 한 사람,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내 실력으로 과연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 어린 마음,
그리고 적당히 안정적인 지금의 현실과
약혼자와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바람 아래
사실은 용기가 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용기 있게 프리랜서 작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에 빠진 히로키.
어느 날 저녁 쓸쓸한 마음에 술 한 잔을 들이켜다
불현듯 떠오른 약혼자의 권유가 생각나
수요일의 편지를 쓰게 된 그.
자신의 수요일은 감춘 해 가상의 수요일을
써 내려간 나오미와는 달리
그는 과감하게 자신의 날 것 그대로의 마음,
하나도 숨길 것 없이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자신의 수요일을
용감하게 쏟아붓게 된다.
그리고 이 두 장의 편지를 펼쳐보게 된
수요일의 우체국 근무자 겐지로는
랜덤으로 편지를 교환하는 우체국의 규칙 대신
딱 서로에게 필요한 것 같은
두 사람의 편지를 서로에게 전하며
마법 같은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데……
나의 하루를 담은 편지가
모르는 타인에게 보내진다고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떤 내용을 써 내려갈까?
힘들고 피곤한 현실을 토로할까,
그래도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을 쓸까 고민이 되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내 감정의 본질 깊숙이까지 들어가
부끄럽고 창피한 고민까지 꺼내고 싶기도,
혹은 내 수요일의 편지를 읽는 사람이
'이 사람의 삶은 참 퍽퍽하고 딱하네'라고
동정하게 될까 봐 적당히 포장해서
멋지고 그럴싸한 모습만
쓰고 싶을 것 같기도 하다.
편지를 통해 가상의 꿈을 이룬 수요일과
너무도 솔직하게 현실을 담아낸 수요일
두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타인의 일상을 엿보고,
편지 속 타인이 전하는 그의 인생을 통해
좋은 자극을 받거나 동기부여가 되기도,
또 각자의 입장에서 편지의 내용으로
치유와 성장의 계기가 되는
나오미와 히로키의 모습은
수요일의 우체국이
의도하고 계산했던 것인지 혹은 자연스레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용기 없고 망설이던 자신의 삶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세계로 발돋움하고
용기 있는 도전으로 다른 내일을 만든
두 주인공의 발전이 자체가
굉장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매일 지친 일상
내가 마주하는 일상 속 수많은 사람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그저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사람들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연쇄한다는 것,
타인의 작은 한마디에 힘입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살아가며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과
타인이 내미는 따스한 손길과 마음에
매몰차게 거절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시야를 넓히고 손을 뻗으며
서로 연대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시간이기도 했다.
작중 편지가
서로의 편지를 교차해 받은
두 사람의 인생뿐 만 아니라
우체국에서 일하는
겐지로와 리호의 인생을 바꾸었듯,
이런 사소한 터치 하나가
나의 인생은 물론 타인의 인생을
새롭게 일으켜주고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매 순간 진심으로 타인을 대하고
각자의 사정과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이다.
웃는 얼굴과 웃는 얼굴에서 생겨난
즐거운 기분이 즐거운 오늘을 만들어주고,
그런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이 현재의 모습,
더 나아가 미래의 모습으로 이어진다는
책 속 메시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해피 배턴을 넘겨주듯
웃는 얼굴, 사소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따스하고 기운 넘치는 자세로
나의 인생뿐 아니라 나와 닿아있는 타인,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이끌어주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혹은 '퍽퍽한 삶이네' 하며
조금은 우울한 순간의 감정을
매일의 내 감정으로, 인생으로
만들어오고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해주며
우연히 닿은 작은 기적으로
인생의 새로운 분기점을 찾아
스스로 새로운 삶으로 개척해나가게 된
나오미와 히로키처럼
나 역시 기적을 기다리지만 말고
내가 먼저 나서 기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감사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