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랍 속 작은 사치
이지수 지음 / 낮은산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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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미스터 션샤인' 이라는 드라마에서

고약하기로 소문난 조부와

비겁하기로 소문난 아버지를 둔 덕에

열정 없이 사는 '시시한 놈'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김희성 역할을 맡은

변요한 배우의 대사 하나가

많은 주목을 받았었다.


"난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원하면 세상에 있는 무엇이든

그의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무엇도 가지려고 하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그리고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의 말은


존재의 이유와 쓸모만을 찾느라 바쁜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메시지였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손에 넣어도

만족하고 기쁜 것은 잠깐,

그 환희의 순간은 찰나이고

금세 시들해지기 마련이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남게 되는 것은

무용해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


이 책은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라는

생존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어떤 시간을 견디고 만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작은 사치의 목록을 엮어 만든 이야기이다.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지만,

있으면 좋으니까 굳이 구입하는 것.

그런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것을

사치품이라 명명하며

작가의 서랍 속에 담겨 있는

작고, 오래되고, 반짝이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작가에게 미지근한 행복과 평온함,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사치를 들여다보며

나에게 무용하지만 커다란 가치가 있는

물건, 찰나에는 무엇이 있나

되돌아보며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마음 포근한 시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무리 내 일상이 퍽퍽하고

또 때로는 타인과 비교하며 느껴지는

남루함에 작아지는 날이라도

내 마음을 침범할 수 없게 하는,

한 시절의 나를 지켜주는,

일상에 윤기를 더해주는 작은 사치들은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매일,

타인과의 비교로 작아지고 위축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게는 책갈피나 핸드크림,

프라이팬과 피아노 레슨처럼

물건과 행위는 물론이거니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 그리고 이별을 통해

느끼게 되는 행복과 작별의 순간 등


책 속의 따뜻하고 유쾌한 에피소드부터

묵직하고 뭉클한 에피소드들은

작가만의 작은 사치를 넘어서

우리의 마음에도 작고 안온한 행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작가가 소개하는

무용하지만 충분한 행복을 안겨주는

목록을 따라 읽어 내려가며,


가끔 마음이 지칠 때마다

햇볕에 보송하게 말려 따끈해진

이불의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거나

스트레스가 많았던 직장인 시절

금요일 퇴근 후 불을 꺼두고 방에서 춤을 추며

눈물을 흘리며 기분을 털어냈던

잊고 있던 나만의 작은 사치를 떠올랐다.


고된 하루를 건너갈 수 있게 도와준 것은

결국에는 어떤 쓸모나 존재 이유가 있는

값비싼 물건이나 그 무엇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나조차도 있는 줄도 모른 채

잊고 살아가던 소소한 것일지 모른다며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고

오늘 하루의 생활 중 단 한 가지라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자는

작가의 메시지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새로운 기준점을 만들어준 듯하다.


충분히 스스로, 그리고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고 기쁘고 만족스럽게 할 수 있는데

내가 가진 것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않고

타인이 가진 것에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을 크게 생각하는 삶으로

가까이 쉽게 만날 수 있는 행복을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아주 보통의 하루,

소소한 일상의 조각 속에서도

분명하게 확실한 행복을 안겨주는

나만의 '사치'를 찾음으로써

때로 고된 하루일지라도

무사히 건너갈 수 있겠다는 기대는

다가올 인생의 수많은 나날들에

단단한 믿음과 힘이 되어줄 것 같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무용한 것들,

혹은 나만의 작은 사치들을 잘 그러모아

순간순간 기쁨을 만끽하며

그런 매일이 쌓여 행복한 인생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타인과 비교하며 작아지고 위축되는 사람에게

잊고 있던 주머니 속, 서랍 속

행복을 일깨워 주는 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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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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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설사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보았으면

하는 약간의 이기적인 마음이 들 만큼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이

긍정적이길 바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누군가 뒤에서 내 이야기를 좋지 않게 하는

소위 험담을 듣게 된다면

괜스레 시무룩해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왜 상대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궁금해지고,

그 생각을 바꾸게끔 하고 싶어

행동거지에 좀 더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다닌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참나, 진짜 어이없네.

나라고 자기를 좋게 보는 줄 아나.'

생각하면서도 그 말에 내심 신경을 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알 바 아니야'라고 머리로는 말하고 있지만

마음에서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거나

좋지 않은 모습으로 보인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사실은 어려웠음을

이렇게나마 소심하게 고백한다.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이 평온해질까,

이런 말들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거나

흔들리지 않을까 생각을 하던 차에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라는

제목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기 위한 법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이 책은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

타인의 평판에 휘둘리거나 흔들리지 않는

인생 조언을 건넨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이다.


소노 아야코는 소설가이지만

나는 오히려 그녀의 에세이를 더 많이 접해왔는데,

나이가 든 할머니가 건네는 따끔하게

뼈 때리는 조언들이

오히려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기에

이번에도 그런 조언들이 나의 복잡한 마음을

조금은 편안해지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펼쳤다.


그녀는 좋은 사람 노릇은 피곤하다며,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다 보면

남들 눈에는 그럴싸한 모습을 갖추더라도

정작 그 안에는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는

'가짜 나'만 남게 되는 법이라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굳건하게

나를 지키는 방법과

타인을 원망하지 않으면서 진정 편안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를 전한다.


인간관계에서 안간힘을 쓰며

어떻게든 좋고 멋진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포장'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요즘의 사회에서


무난하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으려다

속이 문드러지는 경우는 허다하다고,

수많은 비교로 상처받으며

삶을 만끽하지 못하느니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라는 명쾌한 접근이다.


좋은 사람이길 포기한다는 말이

나쁜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의지를 갖는 것에서

편안함이 시작된다는 것으로


인간관계에 그리고 타인의 평판에

신경 쓰느라 위축된 지금의 나에게

꽤나 따스하고 직설적인 조언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편안함'은 타인에 대한 기대를

낮게 가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람은 원래 '악하다'라는 성악설을 염두에 두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기대감이 크지 않기에 실망할 일도 줄어든다는 것이

그녀의 논리이다.


당연히 '모두가 좋은 사람,

나에게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면

무리 없고 편안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이 경우 배신이나 험담 앞에

당황하거나 아연실색하게 되니

애초부터 성악설을 따르게 되면

의심은 대부분 기우에 지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은 유지하기 어렵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평판은 유지하기 쉽다.

늘 좋은 사람으로 노력하다가

한번 화를 내면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네'

소리를 듣기 십상이지만,

마냥 나쁘게만 보이는 사람이 한번 마음을 열고

좋은 모습을 보이면

'쟤가 그래 보여도 사람은 좋아' 평을 받으니

늘 잘해주는 것보다 한번 잘해주는 것이

되려 좋은 평판을 받는 것도 같고 말이다.


이처럼 평판이라는 것은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유지하기 쉬우니

그렇다고 나쁘게 굴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말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또 인간 내면 깊숙이 스며있는

위선이나 무례, 어리석음, 자신이 옳다며

타인에게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이중성 등을 미리 이해하고 나면

일일이 실망하고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는

가르침도 전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치에 맞지 않으면 거절하고,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지' 생각하며 넘기고,

평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삶.


이런 마음속 기대를 내려놓음과

약간의 힘을 빼는 관계를 대하는 기술은

인생을 이미 이만큼 살아낸 선배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자

현명한 삶의 지혜로 느껴져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에게

애써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노력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든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100% 좋은 사람일 수 없기에,

각기 다른 마음을 모두 맞출 수 없으니

'적당히' 나의 기준점을 정해놓고,

너무 애쓰지 않는 인간관계로 삶을 임할 때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위안이 된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마음속을 떠나지 않던

나를 향한 날 선 나쁜 말들이

책장을 덮고 나서는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냥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좋게 보아주는 사람들 곁에서,

혹은 조금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인간관계에서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애쓰고 싶은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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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일기
서윤후 지음 / 샘터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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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의무적으로 매일 일기를 쓰거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초등학생이라면 응당 매일 일기를 쓰고

일주일에 한번, 혹은 방학이 끝난 후

선생님께 매일의 일상과 기분을 써낸

일기를 검사받는 일이 보편적이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엇비슷한 매일,

어린이들에게는 크게 감정의 동요가 없기에

일기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아서,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은 특별한 의미보다는

귀찮은 숙제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일기를 쓸 때보다 설레고

또 기다려지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검사를 위해 일기장을 제출하고 나면

선생님이 틀린 맞춤법을 교정해 주거나

인상적인 일기가 씐 날에는

짤막한 답변을 달아주곤 했는데,


온통 연필로 쓴 글씨라 때로는 번지기도 하고

아직 여물지 않은 울퉁불퉁 큼직한

어린이의 글씨와 달리 곧은 글씨체로

빨간색이나 파란색 볼펜으로 써 내려간

선생님의 글씨를 보는 그 순간이다.


때로는 글씨체를 칭찬하기도,

어떤 날에는 좀 더 예쁜 글씨를 쓰라는 지적이

있는 날도 있었지만


친구와의 사이에서 갈등을 빚거나

집에서 일어난 일들 속 나의 행동이나 생각을

헤아려주고 현자처럼 답을 주는

선생님의 글이 좋아서 일기를 더 열심히

부지런하게 기록하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일기라는 게 참 그렇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기도 하며

필자이자 유일한 독자 역시 나이기에

'누가 이걸 읽는다'는 전제를 두고 쓰지 않지만

이렇듯 어떤 면에서는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아이러니한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


아마도 작가가 그런 마음으로

이 일기들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닐까,

어린 날 내 일기를 보고 답변을 써주던

선생님의 감상이 궁금해 설레던

그때가 오버랩 되었다.


스무 살에 등단한 작가,

그것도 '시'를 쓰는 사람이라니

그의 일기 속에는 어떤 일상과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공식적으로 상대가 허락해 준 일기장을

몰래 펼쳐읽는 수줍음과 설렘으로

이 책을 펼쳤다.


특히나 '쓰기 일기'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고, 때로는 멈추었으며,

어떤 날에는 괴로워

끝끝내 혼자서만 읽으려고

잠가두었던 마음을 펼쳐낸,

'쓰는 사람의 마음'을 포장 없이

그렇지만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이 일기들은


'글쓰기'에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또 쓰기에 몰두하며 보낸 그의 매일을 쫓아

이리저리 그의 시간들을 유영하며

누군가의 쓰고 읽는 일에 이만큼 가까이 닿아

한 사람을 더 깊이 알게 된 느낌을

마주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는 강연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시인들이 쓴 시를 통해서

'한 사람'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글을 읽은 것만으로도

공감과 연대의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잘 모르지만

쓰기에 몰두하고 고민하고 헤매는

그의 일기를 통해 적어도

서윤후라는 '쓰는 사람',

그리고 그가 '쓰는 마음'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편지는 내 손을 떠나 상대에게 건네는 순간

아무리 내가 쓴 글이어도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지만,

일기는 오롯이 내 손안에 남아

휘발되거나 다른 이에게 가닿지 않고

그대로 침전해 그것이 나를 설명하고,

나 자체가 된다.


그렇기에 쓰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시에 흠씬 두들겨 맞고도 계속해서

시에게 포옹을 하고,

계속해서 써나간 작가의 일상과

그의 가장 안쪽을 내보인 이 일기는

쓰고 기록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일상을

그렇게 돌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더기같이 매일 차곡차곡 쌓여가는 매일을

이름을 붙여 명명하고 특별한 날로

변모시키는 사소한 기록들이,

내가 멈춰서 오래 곱씹고 보관할 수 있는

마음속 작은 웅덩이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일기와 기록, 쓰기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기도 했다.


스무 살부터 꾸준히 글을 써온 사람임에도

멋지게 완성된 글만을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어둠 속에 수없이 무너지고,

언젠가는 밝게 타오르는 순간까지

쓰기를 업으로 삼고, 쓰는 삶을 살며

부딪쳐온 수많은 감정들을 통해


상처가 상처를 지나는 이야기,

상처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

그 질문이 다른 상처에게로 닿아

대답을 흉터로 짊어지는

문학을 바라보는 그만의 특별한 시선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굉장히 인간적이고 가깝게 느껴졌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나만의 어둠,

숨기고 싶은 어둠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은 어둠 하나쯤

켜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그의 쓰기에 관한 고백이자


어둠 속에서 어둠을 밀어내도록 도와준

쓰는 일에 대한 조명이기도,

그가 쓰기를 통해 받고, 보내고, 말해주고 싶은

많은 마음들을 녹여낸

혼신의 힘을 다한 심심한 독백을 읽어 내려가며


대단한 시작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내 몫의 문장과 쓰기를 통해

나의 일상과 매일을 기록해 본다면

그가 그랬듯 나 역시 어딘가에 가닿고,

또 나 자신에게 제대로 다가설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든다.


꽤나 열정적이어서 무척이나 뜨겁고,

때로는 무겁고 씁쓸했으며

어둠 속에서 침전하는 그의 마음들이

마냥 이해하고 읽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일기에 답장으로 짤막한 문장을 덧붙여주던

선생님의 마음처럼,

혼자 그의 일기에 이런저런 넋두리를 붙여가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독서였다.




※ 본 포스팅은 샘터 물방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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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일기
서윤후 지음 / 샘터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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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은 마음을 담아둔 일기를 몰래 읽는 느낌.
쓰는 사람으로 때로는 불타오르고 때로는 멈추어 침전하던 매일을 따라가며
그럼에도 ‘쓰기‘에 가닿고자 하는 한 사람의 열정 덕분에 기록에 대한 열망이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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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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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능시험이 끝났다.

매년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면

언론에서는 각종 입시전문가나

교육가들의 입을 빌려

시험의 난이도를 이야기하고

입시전략에 대해 열띤 보도를 이어간다.


인생의 첫 단추이자,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인

대학입시를 시험 한 방에 결정짓다니

너무 도박 같은 느낌 아닌가 싶을 만큼

'수능시험'이 주는 압박감과 부담감은

대한민국에서 입시교육을 거친 누구에게나

이미 겪어본 경험일 것이다.


그렇기에 시험이 끝나고 나면

고사장을 나오면서부터 눈물을 쏟는 아이들,

혹은 예상보다 어려운 난이도로

낮은 점수를 받은 수험생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마음 아픈 사연이

수없이 많은 교육과정의 변화에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뉴스로 오르내린다.


수능을 본 지도 꽤 오래전 일,

이제 나와는 관련 없는 먼 나라 이야기

즈음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에서,

모두의 인생에서 수능과 대학은

여전히 그 영향력이 꼬리표나 낙인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어떤 대학을 나오느냐에 따라

취업시장에서의 난이도가 달라지고,

학연이라는 결속은 사회인이 되어서도

우리를 계속 괴롭히며 압박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해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수능시험에서의 '킬러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현행 입시제도를 뒤엎는 결정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 발표에 집중했고,


사교육의 대표이자

일명 일타 강사라는 이름으로

일 년에 수십억의 연봉을 받는

유명 스타강사들은 검찰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이 책은 이런 우리나라 공교육의 어두운 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승자 독식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한

한국의 교육 현실을 바라보는

소설가들의 시선을 담아낸 책으로,

입시경쟁과 학교폭력, 사교육 열풍과

청소년 인권 같은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첨예하게 분석해 내고 날카롭게 꼬집은

'르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소설이란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둔

'허구의 이야기'이거늘,

14명의 작가가 써 내려간 각 단편들은

우리의 주변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법한 이야기이기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만큼

너무도 적나라했고 현실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들은 이야기한다.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학생 본인에게,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에게

혹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우리의 사회가,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강요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보아왔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 구조의 부조리함과

오늘날의 씁쓸한 교육을 이야기한다.


각자가 잘하는 것을 찾아

그것을 능력으로 개발하도록 도와주고,

그런 가르침 아래 자라난 아이들이

배움을 업으로 삼아

즐겁고 행복하게 인생을 이어가는 것,

그러한 개인의 발전이 쌓이고 쌓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발전된 사회를 만드는

행복한 핑크빛 세상이 아니라


잘 될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어도

부모가 밑받침을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세상,

부모의 능력과 재산이 아이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상,


무엇이라 콕 집어 명명할 수는 없지만

잔뜩 뒤엉킨 '잘못된 세상' 안에서

우리는 이를 바로잡을 생각 없이

그 세상과 사회에 순응하며

그런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해

각자의 인간성을 억압하고,

경쟁을 부추기고, 부조리함을 강요하고 있다.

전혀 희망적이지 않은 잿빛 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결국 우리는

모두가 피해자로 남는다.

누구도 마음 깊이 행복할 수 없기에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내어

오늘날의 교육 실태를

촘촘히 톺아보는 작가들의 시선은

우리가 해결해야만 하고,

반성해야만 하는 문제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책을 읽는 내내,

한창 고교학점제로 예민해져 있는

중학교 3학년생 조카와

아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언니 부부의 모습이

책 속의 아이들, 부모와 겹쳐 보였다.


분명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노력을 하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지만,


자식을 위해 불법으로 금지된

집중력 강화제를 처방받아 복용을 권유하고,

작곡자를 꿈꾸는 자식에게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를 권하거나

자퇴를 말하는 부모의 행위도,

비뚤어져 보이지만

지금의 사회의 분위기상

어떤 면에서는 분명 '사랑'이기에

마냥 비난할 수도 없었다.


'요즘 교육이 아이들을 망친다'라고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입시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한 달에 수백만 원의 돈을 쏟아내는 부모는

전국 어디에나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언니, 그리고 아직은 미혼이지만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연 지금의 입시제도가 문제인지,

주입식 교육과 시험 만능주의가 원인인지,

학벌을 따지는 문화 때문인지,

부모들의 욕망 때문인지,

정권에 따라 쉽게 움직이는 교육정책이나

이를 악용해 돈을 벌려는 사교육 탓은 아닌지,

우리나라 어두운 교육 현실이 원인을

손으로 꼽아보면 수없이 많은 문제가 나온다.


책을 읽으며 갑갑해진 마음이지만

다 읽고 난 이후에도 정답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논점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하나하나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이 질문들에 답을 찾다 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는 세상에서는

지금과 다른 교육의 미래가

펼쳐져야 한다는 굳은 의지와

그 필요성만큼은 명확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함께 찾아내야 할 교육의 방향,

미래에 대한 문제 인식은 물론

이를 바로 마주하며 잘못된 시선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안내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저희가 본 것을 같이 봐주시고,

함께 괴로워해주십시오."라는

작가들의 당부처럼

올바른 어른이자 부모가 되기 위해

외면하지 말아야 할 문제에 당면했다.


언니에게도, 대한민국의 부모들에게도,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도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9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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