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일기
서윤후 지음 / 샘터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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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의무적으로 매일 일기를 쓰거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초등학생이라면 응당 매일 일기를 쓰고

일주일에 한번, 혹은 방학이 끝난 후

선생님께 매일의 일상과 기분을 써낸

일기를 검사받는 일이 보편적이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엇비슷한 매일,

어린이들에게는 크게 감정의 동요가 없기에

일기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아서,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은 특별한 의미보다는

귀찮은 숙제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일기를 쓸 때보다 설레고

또 기다려지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검사를 위해 일기장을 제출하고 나면

선생님이 틀린 맞춤법을 교정해 주거나

인상적인 일기가 씐 날에는

짤막한 답변을 달아주곤 했는데,


온통 연필로 쓴 글씨라 때로는 번지기도 하고

아직 여물지 않은 울퉁불퉁 큼직한

어린이의 글씨와 달리 곧은 글씨체로

빨간색이나 파란색 볼펜으로 써 내려간

선생님의 글씨를 보는 그 순간이다.


때로는 글씨체를 칭찬하기도,

어떤 날에는 좀 더 예쁜 글씨를 쓰라는 지적이

있는 날도 있었지만


친구와의 사이에서 갈등을 빚거나

집에서 일어난 일들 속 나의 행동이나 생각을

헤아려주고 현자처럼 답을 주는

선생님의 글이 좋아서 일기를 더 열심히

부지런하게 기록하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일기라는 게 참 그렇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기도 하며

필자이자 유일한 독자 역시 나이기에

'누가 이걸 읽는다'는 전제를 두고 쓰지 않지만

이렇듯 어떤 면에서는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아이러니한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


아마도 작가가 그런 마음으로

이 일기들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닐까,

어린 날 내 일기를 보고 답변을 써주던

선생님의 감상이 궁금해 설레던

그때가 오버랩 되었다.


스무 살에 등단한 작가,

그것도 '시'를 쓰는 사람이라니

그의 일기 속에는 어떤 일상과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공식적으로 상대가 허락해 준 일기장을

몰래 펼쳐읽는 수줍음과 설렘으로

이 책을 펼쳤다.


특히나 '쓰기 일기'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고, 때로는 멈추었으며,

어떤 날에는 괴로워

끝끝내 혼자서만 읽으려고

잠가두었던 마음을 펼쳐낸,

'쓰는 사람의 마음'을 포장 없이

그렇지만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이 일기들은


'글쓰기'에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또 쓰기에 몰두하며 보낸 그의 매일을 쫓아

이리저리 그의 시간들을 유영하며

누군가의 쓰고 읽는 일에 이만큼 가까이 닿아

한 사람을 더 깊이 알게 된 느낌을

마주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는 강연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시인들이 쓴 시를 통해서

'한 사람'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글을 읽은 것만으로도

공감과 연대의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잘 모르지만

쓰기에 몰두하고 고민하고 헤매는

그의 일기를 통해 적어도

서윤후라는 '쓰는 사람',

그리고 그가 '쓰는 마음'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편지는 내 손을 떠나 상대에게 건네는 순간

아무리 내가 쓴 글이어도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지만,

일기는 오롯이 내 손안에 남아

휘발되거나 다른 이에게 가닿지 않고

그대로 침전해 그것이 나를 설명하고,

나 자체가 된다.


그렇기에 쓰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시에 흠씬 두들겨 맞고도 계속해서

시에게 포옹을 하고,

계속해서 써나간 작가의 일상과

그의 가장 안쪽을 내보인 이 일기는

쓰고 기록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일상을

그렇게 돌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더기같이 매일 차곡차곡 쌓여가는 매일을

이름을 붙여 명명하고 특별한 날로

변모시키는 사소한 기록들이,

내가 멈춰서 오래 곱씹고 보관할 수 있는

마음속 작은 웅덩이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일기와 기록, 쓰기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기도 했다.


스무 살부터 꾸준히 글을 써온 사람임에도

멋지게 완성된 글만을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어둠 속에 수없이 무너지고,

언젠가는 밝게 타오르는 순간까지

쓰기를 업으로 삼고, 쓰는 삶을 살며

부딪쳐온 수많은 감정들을 통해


상처가 상처를 지나는 이야기,

상처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

그 질문이 다른 상처에게로 닿아

대답을 흉터로 짊어지는

문학을 바라보는 그만의 특별한 시선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굉장히 인간적이고 가깝게 느껴졌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나만의 어둠,

숨기고 싶은 어둠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은 어둠 하나쯤

켜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그의 쓰기에 관한 고백이자


어둠 속에서 어둠을 밀어내도록 도와준

쓰는 일에 대한 조명이기도,

그가 쓰기를 통해 받고, 보내고, 말해주고 싶은

많은 마음들을 녹여낸

혼신의 힘을 다한 심심한 독백을 읽어 내려가며


대단한 시작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내 몫의 문장과 쓰기를 통해

나의 일상과 매일을 기록해 본다면

그가 그랬듯 나 역시 어딘가에 가닿고,

또 나 자신에게 제대로 다가설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든다.


꽤나 열정적이어서 무척이나 뜨겁고,

때로는 무겁고 씁쓸했으며

어둠 속에서 침전하는 그의 마음들이

마냥 이해하고 읽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일기에 답장으로 짤막한 문장을 덧붙여주던

선생님의 마음처럼,

혼자 그의 일기에 이런저런 넋두리를 붙여가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독서였다.




※ 본 포스팅은 샘터 물방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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