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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독서 - 내 삶의 기초를 다지는 근본적 읽기의 기술
에밀 파게 지음, 최성웅 옮김 / 유유 / 2014년 10월
평점 :
HOW TO READ A BOOK에 이어 이번엔 THE ART OF READING이다. 두 책 모두 독서의 방법에 대해 기술하는 책이지만 책 제목에서 느껴지듯 접근 방식이 판이하다. 『독서의 기술』이 단계별 독서 원칙을 제시하고 부연 설명을 통해 '읽는 법'에 대해 실용적으로 접근했다면, 『단단한 독서』는 한 편의 깊이있는 에세이처럼 읽히지만 그 속에서 '읽는 법'에 관하여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파고들고 있다. 정말 ART가 맞다.
『독서의 기술』을 읽은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자꾸만 비교하며 읽게 되었는데 '빠르게 읽고 다시 읽어라 vs. 천천히 읽고 거듭 읽어라'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책을 읽는 속도에 대한 언급만 다를 뿐이지 두 저자는 근본적으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철학자와 인문학자의 차이랄까.
일단 『단단한 독서』의 머리말 제목은 '느릿느릿 거듭거듭 읽기 위하여'이다. 저자인 에밀 파게가 말하는 독서법의 요체이다. 『독서의 기술』의 '빠르게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에 호되게 당한 터라, 너무나 상반된 주장이 처음부터 튀어나왔기 때문에 '도대체 어쩌라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은 지금은, 두 저자의 책에 대한 근본적인 사상은 같다고 본다. 다만 다양한 작품에 따른 서로 다른 독서의 기술들이 있을 뿐.
내가 매우 감명깊게(?) 읽었던 '손가락으로 읽기'에 대해 에밀 파게는 '사상 수집가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독서 방법'이라며 '이는 책 읽기의 모든 즐거움을 박탈하고, 그 자리에 사냥의 즐거움을 대신 채워 넣는다.'(19쪽)라고 평한다. 다소 거친 비유지만 너무나 들어맞는 말이기에 1장부터 흥미를 가지고 책 읽기를 시작했다.
[2장 생각을 담은 책 읽기]에서는 철학서의 독서 방법에 대하여 지속적인 비교와 대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강조하며 사유의 즐거움에 대해 논한다. HOW TO와 ART의 차이만큼이나 두 책의 기술 방식은 그 제목을 그대로 따라가는데, 『단단한 독서』에서 풍부한 문학적 비유와 심리학적 접근 방식 덕분에 훨씬 더 읽는 재미를 느꼈던 것같다.
[3장 감정을 담은 책 읽기]에서는 소설 읽기에 대해 주로 다루는데 '각자의 본래 정신 상태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책 읽기 방식은 매우 다양함'을 전제로 독자들을 1. 작가의 서술만을 따라 읽는 사람, 2. 사실주의 소설만을 좋아하는 독자, 3. 이상주의 애호가, 4. 시를 읽는 사람 등으로 나누고 각 독자의 심리에 대해 다룬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시를 읽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이거나 예술가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술적 언어' 안에서의 독서를 원한다...(중략) 시인과 시를 읽는 사람들 사이에는 소설가와 소설의 독자들 사이에 없는 특별한 유대감이 있다.
시인에게 시의 독자는 무언가 정수를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독자 또한 자신이 정수를 지니고 있거나 그렇다고 믿는다. 소설의 독자도 평소 그렇게 거만을 떨지 못하는데, 시 독자는 거의 언제나 자신에 차 있다. (중략)
너무 나아간 부분도 있지만 저자의 심리 꿰뚫어보기가 꽤 정확해서 흥미로운 장이었다.
[4장 연극 작품 읽기]는 프랑스의 18, 19세기 희곡 작품을 토대로 전개되는데 아는 작품이 하나도 없고 너무 프랑스적이라고 생각되어 건너뛰었다. (사실은 못읽었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나에게는 이 책이 1912년에 쓰인 작품임을 떠올리게 하는 유일한 장이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저자는 '사상적 측면에서 무엇이 작가의 것이고 무엇이 등장인물들의 것인지를 가리는' 성찰의 즐거움에 연극 작품 읽기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5장 시인 읽기]도 예시 때문에 난해하긴 했지만 계속 건너뛸 수는 없어 억지로 읽었다. 시의 운율이나 의미만큼이나 구두점에도 주의하여 시를 읽을 것(구두점이 잘 찍힌 판본과 그렇지 않은 판본의 비교를 통해 달라지는 시의 느낌을 예시로 든 것은 무척 흥미로웠다!), '자신의 영혼 깊숙이 새겨진 기록을, 매우 애틋한 마음으로 애지중지하는 문구를 되뇌어 암송하는'(133쪽) 것, '형편없지는 않더라도 작품에 만족감을 느끼지는 못할 때 산책의 시간이나 불면의 밤을 이용하여 시인의 문장을 다시 조안하거나 압축'하는 것의 즐거움을 통해 시인 읽기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6장 난해한 작가 읽기]에서는 '난해한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원칙'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을 '과장이 심한 사람이며 지성에 집착하는 사람이다.'(146쪽)고 해석한다. 그들은 1.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2.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3. 이해하고 감탄하는 척하는 사람일 뿐이며 '난해한 작가들에 대해 우리가 할 작업은 그들이 덮어쓴 번잡한 장식과 복잡한 갑옷을 속옷만 걸친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7장 조악한 작가 읽기]에서도 의의를 찾고 있는데 그것은 좋은 작품의 비교 대상이 됨으로써 우리 인식의 범위를 확장해준다는 것이다. 좋은 작품만을 읽어 탁월함에 대한 감성밖에 없다면 매우 좁고 오만한 정신의 소유자가 될 수 있으므로. 물론 조악한 작가의 책 읽기는 분별력을 갖추고 읽는다면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 다는 그 자체로서의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조악한 작가를 조금은 읽자. 못된 심보 때문이 아니라면 매우 훌륭한 일이다. 우리 안에 바보 같은 책에 대한 증오를 심자. 바보 같은 책에 대한 증오 자체는 우리에게 조금도 쓸모있지 않다. 그것이 제 가치를 발휘하려면 그 씨앗이 우리 안에서 좋은 책들에 대한 사람과 목마름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170쪽)
[8장 독서의 적]은 저자의 '독서'라는 것에 대한 성찰이 매우 깊이 있게 드러난 부분인데, 그가 꼽는 독서의 주적은 자기애, 소심함, 비판적 정신 등이다. 각각이 주적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든 독자 여러분이 직접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이 세심한 사상의 흐름을 요약 정리할 수 있는 깜냥이 안되기 때문이다.
[9장 비평가 읽기]는 '언제 비평가를 읽어야 할까?'라는 문제가 중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비평가'라고 하는 자가 문학사가인가, 진정 비평만을 하는 비평가인가에 달려 있다. 이것은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문학사가와 비평가의 큰 차이를 말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덕분에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비평가'의 의미를 재정립하게 되었다. 결국 독자는 진정 나만의 인상을 받는 것이 중요하므로 그 비평이 '문학사가라면 원 작가에 앞서 읽어야 할 것이며 비평가라면 결코 먼저 읽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결론이다.
[10장 거듭하여 읽기]는 저자의 독서에 관한 사상을 집대성한 부분으로 거듭하여 읽어야 하는 이유를
첫째,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특히, 철학자, 모럴리스트, 사상가의 책들,
둘째,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는 문체를 즐기기 위해,
셋째, 자기를 저 자신과 비교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내 삶의 기초를 다지는 근본적 읽기의 기술'이라는 부제의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다.
나의 맺음말: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다시 살아간다는 것이다.'(239쪽)라는 저자의 '독서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통해 나의 '인생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커진 듯하다.
p.s. 『동사의 맛』때부터 느낀 건데 도서출판 유유의 책은 정말 읽기 편하다♡ 재생종이로 만들어져 무게도 가볍고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에다, 표지까지 세련됨을 놓치지 않았다. 다음 유유의 책으로는 『단단한 과학 공부』를 골라볼까 한다.
p.s.2 이 책의 역자인 최성웅 님은 누구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프랑스어 학습 까페 [빠드꾸와 프랑스어](cafe.naver.com/pasdequoi)를 운영하고 계세요. 책을 읽는 내내 평소 자주 접하지 않았던 18, 19세기 문학작품에 대한 예시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역자 각주를 달아주시고 언뜻 봐도 어려워 보이는 번역을 깔끔히 해내신 걸 보고 '오- 역자 분 정말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까페에 들어가보니 저렴한 가격에 프랑스어 강좌도 정기적으로 여시는 것같아요. 프랑스어에 관심 많으신 분들 들러보시면 좋을 것 같아 적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