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련화
손승휘 지음 / 황금책방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손에 잡고나서 부터, 읽기가 아까운 책이었다. 그동안 역사적 인물을 배경으로 다양한 위인이 재조명됐지만, 대부분 기존의 장군과 왕, 충신들 위주였고, 여성은 최근에 들어서야 덕혜옹주,허난설헌등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5000천년 역사를 통틀어 위대한 위인을 뽑으라면 나는 감히 '유관순' 이라고 말하고 싶다. 덕혜옹주나 허난설헌들이 시대적 압박을 받으며 뛰어난 재능을 뽑내고, 지혜를 가다듬었지만, 그들은 문필가이자 왕족이었지, 결코 한 국가의 앞길을 책임지는 혁명가는 아니었다. 흔히들

대한제국의 '잔다르크' 라고 부르지만, 나는 유관순과 잔다르크를 비교하고 싶지 않다. 시대적 배경과 인물이 놓이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결코 잔다르크를 비하 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역사의 숨결에서 옥중에서 빨간 시린꽃이 되어 저버린 슬픔이 화형의 이슬보다 내게는 더 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저자 손승휘는 우리가 기존에 알던 유관순을 그대로 적기보다 인간으로서의 사랑과 일대기를 적고 있다. 연대상 3.1운동이 등장하지만 결코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3.1운동보다 ' 여자 유관순'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은 연기처럼 다가와 진하게 마음을 적신다.  사랑의 일기는 봄의 벚꽃처럼 그려진 한련화이다. 4월이 끝나감에도 여전히 봄의 아지랑이를 맞이하기가 쉽지 않다. 계절을 여는 봄바람에 함께 웃음이..사랑이 그리워 진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름, 유관순.
하지만 이제까지 그 누구도 몰랐던 ‘인간’ 유관순이
지금 여기에 있다.

한련화. 마른 땅에 피어나는 연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트로이 전사들이 흘린 피에서 자라난다는 전설을 가진 꽃. 팍팍한 땅을 뚫고 나와 핏방울같이 작고 빨간 꽃을 맺는 이 꽃의 꽃말은, 애국이다.

1919년 3월 1일, 경성에는 일본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하는 만세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 소녀가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받고도 끝까지 저항하다 숨을 거둔다. 유관순, 그녀의 이름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기억하는 독립투사의 ‘신화’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를 ‘인간’ 유관순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제 유관순을 독립투사가 아닌 인간이자 여인으로 생각하려 한다. 표정 없이 앉아있는 그녀의 초상화에 삶을 불어넣으려 한다. 손끝이 아리면 소리를 지르고, 내일의 고통을 상상하면 두려움을 느끼고, 배가 고프면 뜨끈한 밥을 상상하고, 속이 뒤틀리면 욕을 내뱉을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하려 한다. 아련한 첫사랑에 눈물을 흘리고, 봄날의 햇살과 꽃내음을 즐길 줄 아는 ‘여인’이자 ‘소녀’로 떠올려 보고자 한다.

신화를 벗은 그녀를 만나면, 살이 터지고 뼈가 뒤틀리는 고된 아픔 속에서도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속에 담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을 마주대하는 그녀의 처절한 용기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척박한 감방 속에서 죽어 나가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던 그녀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될 것이다.
못다 한 사랑, 조선과 조선의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여인, 유관순을 ‘한련화’를 통해 만나보기 바란다.

독립운동가, 열사 유관순이 아닌,
인간 유관순을 말한다.


우리는 이제까지 유관순의 애국심과 저항정신을 위인전이나 교과서 속에서 수도 없이 배워왔다. 하지만 그녀가 왜 나라의 미래를 고민했는지, 왜 그녀가 직접 나서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녀는 태생부터 독립투사이자 위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망설임과 두려움이 없는, 고뇌가 없는 애국 소녀는 범인(凡人)들이 접근할 수 없는 신화가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릴 적에 누구나가 유관순의 위인전을 읽었지만 성인이 된 후엔 그녀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애국투사의 신화’ 앞에서 인간의 냄새를 빼앗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힌 채 두 다리만 버둥댔다.
침은 손톱이 아니라 머릿속을 뚫는 것 같았다.

지난겨울, 볕도 들지 않는 곳에서 한기로 몸을 덜덜 떨며 서대문 형무소 감방 안에 들어가 앉아 보았다는 작가의 고백을 들으면, 그 시절 독립운동가들이 당한 고문은 말로도 쉽게 내뱉을 수 없다. 살과 뼈가 뒤틀리는 고문과 고된 노역, 그리고 여성이기에 당해야 했던 수치스러운 조롱과 비웃음.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유관순을 접하고 있으면 죽어버리는 것보다도 더 힘든 것이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살아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먼저 떠난 사람들의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나를 붙잡아준 건 그 사람들이 내게 남긴 한 마디였다.
“아무 생각 말고 살아남아라. 살아남는 게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렴.”

끝까지 삶을 살아내는 것, 옳다고 생각한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마른 땅을 뚫고 피어나는 작은 한련화 꽃잎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래서 살아남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의에 대한 저항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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