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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바보들의 결탁』에서 오늘날의 사회 현실을 읽는다
책을 덮은 후, 너털웃음과 비애의 페이소스도 다 지나간 뒤, 서문에 쓰인 표현대로 이 “한 편의 위대하고 왁자지껄한 소극”이 우리에게 전하는 건 바로 변함없는 인생의 아이러니다. 소설을 관통하는 사회적 배경은 60년대 미국 사회인데, 매카시즘의 여파가 여전히 힘을 행사하고, 인종 및 성 차별 철폐와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을 부르짖는 운동이 끓이질 않으며, 일자리를 얻지 못해 거리에 부랑자가 넘쳐나던 그 사회는 불행히도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저절로 겹쳐진다. 사회에 “지독하리만치 비참여적”이었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가 흑인 공장노동자들을 위해 “무어인의 존엄을 위한 성전”에 나서고 동성애자들의 정치적 권익을 위해 인류사상 처음으로 동성애자 정당 “평화당” 건설을 기획하는 이야기, 흑인 부랑아 존스가 불완전고용상태에서 벌이는 기발한 사보타주, 하류인생들의 얼토당토않은 취업과 퇴직 문제, 이그네이셔스의 “성애를 초월한 애인”이자 데모꾼 머나의 요란한 사회운동 등은 작금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그대로 시사하고 풍자한다. 주인공의 과대망상적 정신세계와 서민들의 인생살이로 풀어낸 60년대 코믹 버전의 난국 타개법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어떤 코드로 현실화되고 있을까? 청년 세대가 시쳇말로 88만원 세대를 이어 77만원 세대로까지 곤두박질친 지금, 20세기 캥거루족이요 워킹푸어였던 이그네이셔스는 21세기의 개혁을 어떤 방식으로 주도할까?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들의 활약을 기대하며 음흉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독자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괴짜 천재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작품의 포문을 여는 스위프트의 제사는 『바보들의 결탁』을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비롯한 세상 여러 작가들이 즐겨 쓰는 인용구가 되었다. 그만큼 세상의 일면을 꿰뚫는 의미심장한 문장일 것이다. 왜 세상 바보들은 천재를 환영하지 않을까? 주인공 이그네이셔스는 가르강튀아와 돈키호테, 변태적인 토마스 아퀴나스를 한데 뭉뚱그려놓은, 미국 문학사상 전례가 없는 독특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뚱뚱한 거구에, 기이한 행색에, 게으르고, 거만하고, 호통 치기 일쑤이며, 중세 철학을 신봉하고, “신학과 기하학”이 부재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조롱과 분노를 쏟아내길 서슴지 않으며, 석사 학위까지 받고서도 하는 일이라곤 방안에 틀어박혀 “우리의 세기를 비판하는 장문의 고발장을” 쓰면서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서른 살 청년이다. 자신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자신의 독특한 세계관을 남들은 두려워하고 증오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금껏 만년 백수로 살아온 그에게 드디어 돈을 벌러 나가야만 하는 위기가 닥쳤으니, 이 작품은 바로 1960년대 초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이그네이셔스가 그 자신이 “변태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바로 그 자본주의 체제와 난생 처음 정면 대결함으로써 겪는 불운의 궤적을 좇는다. 공장 직원으로, 뒤이어 핫도그 노점상으로, 그는 일하는 곳마다 그만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회변혁을 획책하고, 그만의 지성과 망상이 빚어내는 기이한 세계 속으로 뉴올리언스의 온갖 인간군상을 빨아들이다가, 종국에는 본의 아니게 핵폭탄처럼 터뜨리는 사건을 통해 그간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직소퍼즐처럼 완벽히 짜 맞추는 구심점 노릇을 하게 된다. 그는 사회부적응자요 어릿광대에서 영웅이요 구원자가 된 걸까? 유머와 웃음 뒤로는 저릿한 비애감이 스멀거린다. 그가 내지르는 고함과 허세 밑에는 세상 속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머니와 영원히 집 안에 틀어박힌, 세상으로부터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부적응자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밉살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 매혹적인 인물에게서, 작가로서 인정받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존 케네디 툴의 슬픔과 자기혐오가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 바보들이 아무리 결탁해도 한 천재의 거대한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법. 이그네이셔는 결국 모두를 구하고 탈출하며, 툴은 사장될 뻔한 원고를 사후엔들 세상에 내놓았으니 말이다. 지난날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을 때, 이휘호 여사가 감옥에 들여보낸 책 보따리에는 『바보들의 결탁』의 한국어 해적판이 들어 있었다. 이 소설을 읽고 故 김 대통령은 크게 웃었을까. 출판계나 정계나, 세상의 천재는 어디에나 있다.
솔직히 읽기전에는 많은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록한 북미와 유럽권의 토크쇼와 개그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우리의 정서와는 맞지 않다는걸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웃기지도 않는데 깔깔대는 방청객들의 감정이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곧 나의 착각으로 바뀌었고, 영상매체가 아닌 글로서,그것도 문화권이 다른 미국의 소설이 오랫동안 웃음을 잃어버린내게 박장대소하는 웃음을 준다는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동안 오만과 편견으로 전문서적이 아니면 외면했던 그들의 창의적 발상을 내 스스로가 늦게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바보는 결코 손해보는 사람이 아니다. 바보 '한스'도 스스로를 유쾌하게 지도했기에 바보면이서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행복은 멀리 있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다. 다만 주변 어딘가에 숨겨져 찾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만화책도 아닌것이 그것도 미국의 소설이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는것,,,,
2010년 마지막을 보내는 내게 준 새로운 깨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