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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날 - 존엄사의 최전선에서, 문화인류학자의 기록
애니타 해닉 지음,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7월
평점 :
*본 리뷰는 출판사의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죽음을 고통 없이 맞이할 수 있다면,
그건 용기일까, 특권일까. ❞
《내가 죽는 날》은
의료 조력 사망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그러나 깊이 있게 다룬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스스로 떠나는 방식을 선택할 때
그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얼마나 좁고 복잡한가.
누군가는 죽음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그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려 한다.
어떤 선택이든, 고통은 함께 겪게 된다.
많은 사람이 '더는 살 수 없음'이 아니라
'자기답게 살 수 없음'을 이유로 죽음을 선택한다.
병의 악화가 자신과 가족에게 남기는 무력감을 아는 이들.
하지만 그 결정은 쉽지 않다.
법의 조건은 엄격하고, 의사의 판단은 신중하며,
죽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폐쇄적이다.
조력 사망을 원해도, 서류를 준비하다 임종을 맞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조력 사망은 자살과 다르다.
핵심적인 차이는 '인간관계의 개입'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준비하고,
작별을 말할 시간을 가지며,
떠나보낼 준비를 함께 해나가는 과정.
이 죽음은 혼자가 아닌 죽음이다.
죽음을 선택하는 권리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의식으로 이해될 때,
우리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죽음을 준비한 이들이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약을 쥔 순간, 비로소 평온해졌고,
떠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후에야
화해와 마지막 인사를 시작한 사람들.
죽음을 공포로만 그리지 않고,
죽음의 준비, 임종의 통제, 이별의 의식은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삶의 끝을 스스로 정한다는 건
삶을 온전히 살아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죽음은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과 꼭 닮아 있었다.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 중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는 있지만,
의료 조력 사망은 여전히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찬성 여론은 높지만
종교적, 윤리적 갈등 속에서
관련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어떻게 떠나고 싶은가?"
"그리고 그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는가?"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
우리가 회피해 온 그 감정과 제도를
이제는 천천히 들여다볼 때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기답게 떠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이제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