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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평점 :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이 얼마나 단호한 문장인가?
출간되기 전 제목만으로도 독서동아리에서 토론하기에 충분하다 여겼다. 읽어보지도 않고 결정해서 토론할 수 있냐고 하는 분도 있었지만 박지리작가의 책과 박지리문학상을 받은 책들이 그 보증이요, 둘째는 ‘단요’라는 작가가 그 보증이다.
운 좋게도 가제본을 미리 받아 보게 되었다. 리뷰를 쓰는 고통은 운이 아니라 운명처럼 느껴졌다.
‘이거 소설 맞아?’ 도서관에서 000번대 총류에 있거나 300번대 사회과학에 있을 법하다. 주석이 달린 소설, 어디가 사실이고 어디가 허구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의 사실들이 소설의 허구에 담겨있다. 그런 면에서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 소설을 닮았다. 1950년대 영국의 사실적 근거를 배경으로 하여 쓴 2034년의 <능력주의>를 읽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작금을 바탕으로 사람들 머리 위에 행위에 따른 청색과 적색의 수치가 표시되는 수레바퀴가 떠 있는 미래를 말하는 이 소설은 배경지식면에서 훨씬 이해하기 쉽다.
"만질 수도 없고 과학으로 검증할 수 없는 원판은 인간의 정수리에서 50센티가량 떠올라있으며,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된다.“
그렇다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 머리 위에 등장한 청색과 적색의 비율을 보여주는 수레바퀴, 단순하게 두 가지 색으로 사람들은 평가된다. 실시간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사람 사는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슨 원리로 이 원판이 움직이는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청색을 더 얻고자 한다. 작가는 이런 열망을 따라 환경, 정치, 세계정세, 경제, 사회, 문화, 금융, 도덕, 아이돌팬돔, 철학, 종교, 음모론, 윤리학, 등의 사회 곳곳에 단순하지 않은 세상의 작동원리를 툭툭 던지며 이 세계로 부른다.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언어를 들려주며 객관화시키고 자신의 언어를 들려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주관적 이입을 하게 한다. 독자가 단순 순응이 아닌 적극 가담을 하게 하는 매력이다. 감히 말하지 못하고 생각으로 담고 있던 세상에 대한 비판과 적용들이 단요작가의 언어 속에서 형상화될 때 묘한 카타르시스가 일어난다. 슥슥 지나가는 말속에 깊은 의미를 담은 사회용어와 이를 바탕으로 던지는 생각은 단요작가의 나이를 의심하게 하고 독서력을 궁금하게 한다.
1, 2장은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사회를 각 분야의 핵심단어들을 던지며 보여준다. 그러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룬다. 연예인, 종교인들은 어떤 수치를 기록할 것 같은가? 당신의 머리에는 어떤 비율로 뜰 것 같은가? 사람들은 선을 더 얻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것 같은가? 수레바퀴 추적, 관리 에플리케이션은 당연히 나올 것 같지 않은가? 청색이 99.4%가지고 있는 교수는 어떻게 그런 수치를 얻었을까? 죄 있는 사람을 변호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 위의 수치를 인정할까? 생각지도 못한 적용들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제목만으로도 독서동아리에서 나누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은 진화하여 독서동아리에서 슬로리딩으로 나누길 적극 권한다. 작가가 던지 광범위한 지식들을 나의 배경지식으로 정리하고 그에 따른 논리들을 파헤친다면 이 한 권의 책으로 현재 각 분야의 웬만한 이슈들이 나의 지적 논리로 정리될 것이다. 이 짧은 소설이 수백 페이지의 해설서로 탄생 될 것이다. 수능 비문학을 준비한다면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에서 건드린 사회이슈들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요즘 세상이 뒤숭숭하다. 예전에 “세상은 요지경”이라면 지금은 폭풍이 바다를 뒤집듯한 세상이다. COVID-19 이후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변화를 몸으로 느낀다. 쏟아지는 AI제품, 쳇봇, 환경과 경제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뭔지 모르지만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초대형 5등급 태풍이 쉼 없이 뒤집어 놓고 있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할 판이다. 복잡 다양, 얽히고 설킨 세계를 나는 어떻게 살든 단순하게 두 가지 색으로 판단된다면? 그 판단의 수레바퀴원판이 당신의 머리 위에 실시간으로 떠 있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은가? 당신은, 세상은 수레바퀴 이후 어떻게 변할 것 같은가?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당신의 상상과 비교해 보길 바란다.
2장 마지막 문장이다.
“안티휠에 대해, 적색 영역에 대해, 우리가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차례다.”
(안티휠: 수레바퀴에 대한 통념을 거부하는 입장)
이 문장은 프롤로그의 마지막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대각선 병상의 바늘은 적색에 멈춰 있다. 그림자가 검은 연못처럼 열리더니 앙상한 손들이 청년의 영혼을 붙잡아 뜯어내는 중이다. 그런데(중략) 청년의 원판에서 청색 비중이 9할이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길래
2장 이후 이렇게 바뀐 세계를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살 수 있을까?
돈은 욕망의 공용어이고, 자본주의는 그 언어의 문법입니다. 바라는 게 있는 사람은 돈을 쓰고, 돈을 바라는 사람은 시키는 일을 합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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