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 교향곡
조셉 젤리네크 지음, 김현철 옮김 / 세계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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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생각하는 삶은 진정성에 그 의미를 둔다. 누구나 달 알고 있는 사람의 삶에서 어느 부분은 우리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삶을 소설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다. 그가 소설가였기에 소설속에 그 사람의 삶을 담아 냈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삶이다. 그러나 그것을 읽어 가면서 나도 모르게 함께 꽃을 피우고 그가 보여 준 예술적인 혼을 함께 들을 수 있어 언제나처럼 행복했다.
문학은 삶을 진실하게 보여주고 예술을 한층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가 소설 전반에 지배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문학의 다양성 특히 역사적인 존재감을 한층 넓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예술의 영향이겠지 싶다.
하나의 소재를 통해 장르의 창구 역할을 하는 소설에서 소통과 다양한 본보기가 된다. 베토벤에 대한 전무가로 일커러지는 작가 조셉 젤리네크 그에게 베토벤은 하나의 삶이었다. 베토벤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성 글들이 그를 소설이란 것으로 불러 들였고 많은 것들 가운데 베토벤의 곡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준다. 숨어 있던 많은 추측들을 하나로 잠재워 버린 10번 교양곡. 숨은 이야기. 악보의 발견 등 다양한 소재를 빠른 스피드로 재구성함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배가 시켜준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진다.
소설이 지닌 허구, 허구의 삶은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하기도 하지만 함께 있어 우리의 삶도 위대해 보이고 멀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지켜 보고 있을 것 같은 베토벤에게서도 우리의 삶은 의미 있게 보여 질 것 같았다.
베토벤의 연주곡은 어쩌면 우리가 듣고 싶었던 욕망의 삶. 그 연주가 이 책에 스며들어 곳곳에 베어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기 이전에 소설가가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선율과도 같은 곡들을 발견하고 들으면서 나는 이 삶을 조금더 가치있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설가에게 의미의 모티브로 베트벤을 선택한 것처럼 나는 그가 구성한 소설을 보면서 삶을 진실되게 바라보면 그만이었다.
음악적인 소설, 베토벤 바이러스의 영향 탓인지 이 소설이 가치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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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쿼시 - 그림자 소년, 소녀를 만나다
팀 보울러 지음, 유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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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혼을 울린 작가 팀 보울러, 그의 스쿼시를 읽고 있다. 때론 빠르게 때론 천천히 책장을 넘기고 있다. 그가 그려내는 삶은 이처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자유자재로 그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쿼시에는 10대가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결국 그것은 10대가 가진 무한한 마음과 가슴으로 이야기 하려고 애쓰는 흔적들의 증거일 것이다.
그 삶을 팀 보울러는 어쩌면 그 속도감을 만끽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의도가 물씬 느껴지는 소설, 10대에겐 빠르게 읽히길 원했고 다른 세대에겐 느리게 그러나 자세히 알게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10대들의 이야기. 스쿼시를 통해 갈등하고 화해하고 그 속에 여러가지 생각을 담음으로써 스쿼시가 실제로 끝나는 경기처럼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 속에 우리가 미쳐 모르고 있었던 버거운 10대들의 삶의 녹아 있고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이겨야 하는 삶의 혹독함이 서려 있다.
아슬아슬한 시소 게임처럼 우리의 삶을 성공 시키기 위해 기성 세대의 꾸지람도 있고 함께 웃으며 어깨를 툭툭 쳐 주는 다정함도 함께 있어 읽는 내내 함께 가고자 하는 길을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인생은 삶을 온전히 받치고 보여주는 것만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이면의 삶은 그것에 못지 않게 맣은 노력을 해야 한다.
꿈꾸는 삶도 잠시 접기도 하고 힘들어 울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그만 두거나 포기하지는 않은 꿈이 있어 꿈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열여섯, 그 소년이 보여주는 삶은 우리가 지금껏 포기하고 싶었던 삶이 아닐까
사랑 받고 싶고 억눌렸던 것을 한순간에 폭발하면서도 상서를 서로 어루만져구고 세대와 우리의 질서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그의 현실적인 삶, 그 속에서 우리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다양한 현실, 그것을 이 시대와 맞물리게 하면서 보편성을 따진다. 꾸준한 그의 삶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대단한 스쿼시에 대한 재능과 꿈을 찬란하게 펼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연약한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었다면 이 책 읽기는 반쯤 성공했을 것이다. 안타까움과 설레임 있던 소설. 그의 열정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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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후르츠 캔디
이근미 지음 / 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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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부터 사람의 시선을 확 사로 잡은 소설이 있다. 이근미의 장편소설. <어쩌면 후르츠 캔디>가 바로 그 책이다.
요즘 많이 거론 되고 있는 칙릿 소설의 한 작품으로 우선 분류 할 수 있을 것이다. 광고 회사로 무대가 옮겨져 있다.
누구보다도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평범한 외모의 조안나. 그녀에겐 취직(취업)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학교를 다녔다.남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준비를 나름대로 해 왔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있는 선배들의 준수한 직장.
그러나 조안나는 그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어쩌다 합격이 되는 것이 아닌 노력으로 합격을 했다.
그들에게서 들었던 축하 메시지.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채 그녀는 출근 준비를 한다.
운이 좋았던 그녀에게도 유행의 트랜드가 되는 다양한 세련된 옷차림으로 인해 높은 지위에 있는 친척(?) 관계로 다른 사람들은 바라보고 있다.
이럴 수 있었던 것은 출근부터가 남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부터가 불기 시작한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처럼 20대를 겨냥한 소설들이 쏙쏙 쏟아지고 있다.이 소설도 20대의 여성을 내세워 동경하고 꿈꿨던 세계 속에서 그 나름의 법칙과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해 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보이고 있는 평범하지만 일상을 파괴한 듯 한입장 표명은 그 세대를 대변하고 있는 느낌도 든다.
이 소설이 마음에 드는 것은 캔디 하나를 통해 그것을 먹으면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캔디의 달콤함처럼 모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느낌도 들고 캔디를 입안에 넣고 단 맛을 느끼며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주인공을 보면서 자신의 삶은 조금은 감췄던 과거와는 다르게 자신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이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캔디로 달래 보는 것이 이 소설을 재미있게 보게 한 계기인 것 같다. 세상 물정 모르고 새내기 신입 사원의 좌충우돌 회사 생활기처럼 동경 한 곳에서 오래도록 정이 넘치게 바꿔갔으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 초심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좋을 것 같다.악명높은 상사로 인해 가슴에 상처도 받겠지만 오해하거나 자신감을 잃지 말고 꿋꿋한 모습을 지금처럼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소설에서 느낀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나도 성공과 사랑 그리고 짝퉁을 몸에 휘어 감고 사람에게 눈길을 돌려 봐야겠다.
그들의 당당함을 함께 느끼고 싶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껏 웃게 하고 마음껏 즐기게 한 소설에 박수를 보내 본다. 마법처럼 나도 퇴근길에 캔디를 사서 입 안에 넣어 봐야겠다. 충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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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이다
김선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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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여성 작가에 의해 여성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소설은 책을 덮으면서 여성의 힘과 그녀가 풀어 놓은 이야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친절한 설명처럼 묘사된 그녀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생애가 아닌 다양한 각도에서 모든 것들을 받아 들이는 스펀지 같았다.

그것이 여성의 몸이다 보니 남성의 다른 이면을 느끼는 희열도 함께 찾아 들었다. 인간적인 모습과 그 시대의 모습들은 어느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감칠맛 나는 시에서 이제는 소설로 옮겨진 언어의 늪은 오래도록 나를 빠져 들게 만들었다.
이왕이면 깊숙이 빠져 들고 싶다는 욕망도 생기게 만든 것이다.

춤꾼에 대한 생각은 처음부터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최승희의 삶 속에 춤이 어떻게 자리를 잡고 있는지 어떻게 무희의 생활에 그렇게 온 정성을 쏟았는지 알게 되었다.
운명과도 같았던 삶과 소설가의 만남을 통해 무언가 자유롭게 표현 되어 지고 그것을 보는 사람은 그것에 흠뻑 매료되어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우주론적 생각까지 들게 하는 것을 보면서 삶의 전부가 되어 준 춤이 이제는 나의 몸에도 전달이 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욕망과 시대의 흐름 사이엔 언제나 그렇듯 이견의 차이를 갖는다. 그것을 때론 좋은 의미로 때론 부정적인 의미를 지녔지만 최승희가 보여주는 모습은 언제나 일관된 모습을 지니고 있었기에 더 몰입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담백하고 투명한 비닐 같은 문체. 최승희의 성장과 치열한 삶과 시대의 어울리게 살고자 했던 무용가의 정신. 이러한 다양한 내용들로 소설은 한데 어울러져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다. 화려함 속에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도 어느 한쪽 구석을 메우고 삶에 보이고 싶었던 부분은 물론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들까지 보여 줌으로서 더욱 삶에 충실하면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불우했던 모습과 불안한 인간적인 면이 모두 담겨진 소설을 읽으면서 때론 나의 모습을 함께 투영하기도 하고 조금 떨어져 보면서 내 삶의 진지한 앞을 보기도 했다.

열정과 살아 숨쉬는 혼이 담겨진 최승희의 춤을 앞에서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면. 소설을 쓴 시인의 모습과 같은 맥락에서 보이고 보이지 않는 자아의 모습을 성장 시켰다면 작가는 적소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화려화지만 그 속엔 인간미가 철철 흘러 넘치고 그를 따라 가다 보면 예술가적인 면모를 다시금 느끼면서 한 사람의 생애를 고스란히 가슴에 담는다. 또한 상상적인 인물들과 만나면서 최승희는 한껏 저 하늘처럼 높아져 있다. 이것이 나는 춤이다가 가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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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 인류 역사를 진전시킨 신념과 용기의 외침
장 프랑수아 칸 지음, 이상빈 옮김 / 이마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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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를 만론하고 어떤 현상에 대해 여러가지 반응을 보이기 될 것이다. 우리의 신념과 용기가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서 심장부를 흔들어 놓은 것 처럼 다른 체제의 모습까지 변화를 가져 오게 만들었다면 그 물음에 대해 타탕한 반문을 하게 될 것이다. 많은 성직자와 각계계층의 사람들에게서 듣는 '노'의 표현을 듣게 되고 승리자와 다르게 표현되는 것들에게 접근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앞으로의 자세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사회에 대한 불평으로만 맞설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누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그것에 대한 거부권과 그것을 자신의 논리로 접근하면서 그것을 취급하고 받아 들일깨 새로운 평가와 차후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사의 흐름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여 준 'NO' 는 한글 '노'의 발음처럼 타협과 수용에 양 극단의 날개에서 자신의 올바른 말들이 펼쳐진다.

이런 것의 첫걸음은 어쩌면 거부와 가치의 사이에서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비판적인 것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하나의 특권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반항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한 사회가 가진 제도권으로 진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고 무언가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조금 더 발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창조론에 거부를 하는 것이나 다윈에 대한 물음에 대해 용기있게 앞장서서 비판을 함으로써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에 조금 더 바짝 다가서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동일한 선상에서 인류 역사의 흐름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노'가 가진 의미와 가치를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고 필요와 목적에 의해 애써 숨겨왔던 당시의 시대상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간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이었다. 그가 폭력에 대해 생각했던 모습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읽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기회의 포착이 아닌 수동적인 저항에서 벗어나 그가 보여준 자유로의 모습이 참으로 순수해 보였다는 것이다. 

 폭력등에서 우리가 보고자 한 여러가지 사례들은 어쩌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목소리처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특징으로 생각이 되었다.
이러한 생각들과 목소리들은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입증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용기의 첫걸음으로 읽혀지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외침으로써 다양한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그토록 비판하고 비난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것을 다 받아 들이수는 없겠지만 탄압하고 소외 된 계층에게는 어쩌면 이러한 모습들이 새로운 삶을 도와 주는 전달자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그리고 사회의 공식적인 결과로의 표현이 아닌 이면의 모습에서 그 사회가 가진 힘과 유지 될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을 맛본 것도 이 책을 읽은 하나의 커다란 수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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