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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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은,  예술가는 이 세상에 몸을 두고 살면서도 어떻게 다른 세상의 감각을 확보하며 '모든 감각의 착란'을 일으키는가. "나무 위에 허공이 있으니 그 나무가 꽃을 피워 올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허공을 두고 "모든 것이 가능한 자리이며, 다른 세상이란 저 허공과 같음"을 볼 수 있는가.

 

"사물을 새롭게 본다는 것은 말이 쉽지 지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래 기다려야 하고, 사물에 온갖 신경을 다 바치면서 쉬지 않고 생각해야 한다."(p.126)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미 보고 이미 말한 그대로 사물을 보는"것에 그치는 세인들은 '물결치는 바다'라는 말이 귀에 익어 바다에서 물결만을 보려고 한다.

 

최초로 바다에서 물결을 본 사람과 같은 예술가는 "인간이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꾸고,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바꾸고, 그래서 끝내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꾸는" 말을 만든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한 편의 시 때문에, 한 폭의 그림 떄문에 세상이 갑자기 낯선 것이 되어버리기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차라리 끔찍하게 여긴다."(p.126)

 

그렇기에 예술에는 희생이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가가 이 세계에 들고 들어온 또 하나의 인간 디자인은 낯설다. "다른 사람들에게 낯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조차 낯설기에, 그 낯선 세계의 최초 희생자는 그 자신이기도 하다. 낯익은 세계에 낯선 세계를 연결해야 하는 고역 또한 그의 희생이다."(p.128) 하지만 예술가가 세계를 낯설게보기 전에, 이미 낯설어진 세계가 있었음을 증언하는 글이 있다.

 

"예술의 희생보다 세상의 희생이 먼저 있다. 예술이 세상을 낯선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갑자기 낯선 것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예술이 있다. 예술에 희생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희생 뒤에 겨우 예술이 있다. 믿음과 사람이 그렇게 어렵고 믿음과 그렇게 절박하다."(p.131)

 

예술의 희생 속에서 세상의 희생을 살피는 황현산의 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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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장혜경 옮김 / 반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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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결정적이지만 개인의 판단과 책임의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에덴의 동쪽>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파울 파르하에허에 따르면 이 매력적인 소설속에는 유전과 환경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이 은근슬쩍 끼워져 있으며 그것이 큰 즐거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늘날 현장 생물학은 존 스타인벡의 아이디어를 입증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생물학자 드 발은 "영장류는 공감하고 협력과 연대를 추구하지만, 환경이 이런 행동을 지원할 경우에만 그러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사실은 다른 환경에선 얼마든지 극도로 잔혹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될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의 저자 파울 파르하에허는 오늘날의 사회가 "우리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하는 사회"라고 비판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며 타인이 항상 우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유아기의 신화가 사회를 뒤덮은 가운데 조금이라도 실패하고 낙오한 개인들이 우울증에 빠지고 고독사하고 있다. "어떤 현실도, 어떤 제품도 우리의 욕망과 욕구에 대한 완벽하고 확정된 대답은 줄 수 없"는데 능력주의 신화는 개인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부추겨 되려 더 큰 실망을 안긴다. 이 피할 수 없는 실망을 어떻게 극복해야할 것인가.

 

성숙의 과정은 '결핍'이라 부르고 싶은 힘든 상태를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익히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가는 데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가운데 개별적인 처방으로만 해결하려는 태도를 거두고 공동의 대답을 찾아보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실존적 차원의 결핍에, 삶의 위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물질적 대답은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고, 인생이나 사랑이나 죽음 같은 중요한 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다. 그 때문에 이런 결핍이야말로 창의성의 원천이며, 타인들과 힘을 합하여 추구해 나갈 더 숭고한 목표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이런 목표가 학문일지, 이데올로기일지, 예술일지, 종교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사람들을 한데 엮어 중요한 질문에 공동의 대답을 찾는 공동체를 꾸려준다는 사실이다."(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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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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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중독의 비극적 역설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데 공부와 삶을 분리시키고 공부에 올인하다보니 삶이 더욱더 빈약하고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 그 빈약함과 허약함을 채우기 위해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또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만들면서 삶은 공부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고요." p.132

 

가르칠 수는 없되 배울 수 있는 것들이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배움인 것들이다. 그런 배움에서는 흔히 시행착오라고 부를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 시행착오에서 발행하는 작은 기스들조차 파국의 조짐처럼 느끼는 분위기 속에서 배움은 실종되고 교육만이 남았다는 것이 이 책의 진단이다.

 

"삶이라는 것은 어차피 잡종인 것이고 누군가와의 마주침인데, 그 마주침을 다 위험이라고" 생각하기에, 최적화된 매뉴얼과 솔루션의 습득과 학습만이 공부라고 여기며 교육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 삶과 공부가 전도되어 마치 공부를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며, 그런 사람들의 삶은 굉장히 허약해지고, 빈약해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

 

그러나 '진짜 삶이란 이러이러 한 것이다'는 언명은 결국 아프고 흔들려봐야 어른이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허명은 아닐까. 삶이라는 것이 그런 관념을 실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작은 생활기스조차 병리화하여 절대 생기면 안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건 물론 심각하다. 하지만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부러 아파봐야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들이라 여겨졌던 일들이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표준모델을 들이미는 방식은 교육이 삶을 식민화한다는 저자들의 비판의 대상과 무엇이 다른가.

 

배움이 실패하더라도 가르칠 수 없는 것은 끝내 가르칠 수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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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김종옥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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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커피맛 같은 건 상관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아. 커피맛쯤이야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 (……) 분명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카페를 들락거렸고, 그만큼 자주 커피를 마셨지. 근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그때 마신 커피맛이 어땠는지 말이야. 그래서 생각이 났지. 아마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커피맛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만 했던 게 아닐까. 그게 맞을 거야. 정말로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 되면, 맛있다고 말하고, 맛이 없다고 말해야 했어."(「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p.23~24)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고 해서 앞으로 좀 더 커피맛에 신경을 쓰게 될까? 그럴 일은 좀처럼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령 조금 더 신경을 쓴다 하더라도 그것이 충만한 삶을 가져오지도 않을 것 같다. 심지어 충만한 삶이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으로서만 상상되는 무엇일 때 더 가치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아직까지 진실로 살아본 적은 없다. 눈에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일수록 그것을 똑바로 알아볼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의 삶이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순간에는, 오히려 그것을 제대로 붙들 수 없다. 우리 앞의 대상들이 저 자신인 채로 있을 때의 충만함, 그러한 대상들 안에 이미 고여 있는 내밀함, 그러한 충만하고도 내밀한 대상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뿌듯함 같은 것들, 그것들을 소유하면서 결국 우리 자신의 존재 또한 충만하고 내밀하고 뿌듯하게 만들 수 있는 매 순간의 기회들은 그때 그 순간에는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해설 |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권희철, p.319)

 

그런데 문제는 "그 떨리는 시작과 지속의 순간들"이 단지 스쳐지나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손으로 틀어막고 망가뜨리면서 살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의 표정에 어리는 어떤 암시를 눈치채지 못하고, 정작 준비한 말을 꺼내지도 못한 사이에 이미 어느 정도는 깨져버린, 아니 깨뜨려버린 것이다.

 

인생이 "삶을 끊임없이 조금씩 깨뜨리고 잃어버리는 과정"이라 해도, 여기 회상을 통해서나마 "접혀 있던 삶의 주름들을 펼치며 이제는 사라진 것들을 다시 불러와 그것을 감촉하고, 혹은 기억 안에서나마 잃어버린 삶을 다시 살아내면서 그것이 삶 안에서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절박하게 증언하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화자들은 그러한 증언들을 통해 "삶 그 자체를 보충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소설을 읽는 일이 독자들에게도 '삶을 아주 조금 되찾아줄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소설이 그것을 쓴 작가가 아닌 독자에게, 이미 사리지고 없는 것이 "그때 그 자리에 있었음을 혹은 있을 수도 있었음을 증언"해 줄 수 있을까? 그렇게는 아닐 것이다.

 

결국 소설을 읽을 때 각자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회상에 기꺼이 유혹당하며 각자의 과천행 버스를 타야만 할 것이다. 비록 격렬한 쓰라림만을 남길지라도, 스스로 증언해야만 하는 깨뜨림의 순간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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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책
폴 서루 지음, 이용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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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는 전혀 모르는 곳에 대해 향수병을 앓는다." p.23

 

모르는 곳에 대한 향수라는 이 넌센스같은 말을 한 카슨 매컬러스에 따르면 우리는 익숙한 것에 대한 향수와 낯설고 이국적인 것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 방황은 경험상 여행지에서도 끝날 줄 모른다. 저 낯선 골목길로 들어가볼지, 아니면 여기서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이렇게 끝나지 않는 방황의 한 가운에서 어떻게 정반대의 마음은 하나로 합쳐져 모르는 곳에 대한 향수가 되는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크든 작든 두 힘 사이의 갈등이 존재한다. 하나는 은밀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고 다른 하나는 넓은 장소로 나아가려는 충동이다. 하나는 내향성, 다시 말해 왕성한 사고의 환상의 내면세계로 향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외향성, 다시 말해 사람들과 구체적인 가치들이 존재하는 바깥 세계로 향한 관심이다.p.23(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러시아 문학 강의>)

 

나보코프식으로 설명하자면 모르는 곳에 대한 향수는 넓은 장소에서 찾는 은밀한 자유와 같다. 서로 모순된 충동이 동시에 발현되는 이 기묘한 병은 여행으로만 앓을 수 있는 질환이다.

 

알베르 카뮈는 "여행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이다"라고 썼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나라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순간......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오랜 습관을 지키려는 본능적인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것이야말로 여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사소한 접촉조차도 우리의 존재를 깊이 전율케 한다. 우리는 빛의 폭포와 조우하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영원함이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가 즐거움을 위해 여행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여행에 즐거움은 없다." p.462

 

감히 한 마디로 "존재하기 위해 떠난다"는 것 아니겠는가. 아니면 "떠나야만 존재할 수 있다"일지도. 폴 서루는 이 감동적인 발언이 무색하게 카뮈는 결코 멀리 여행한 적이 없는 소심한 여행자였다고 말한다.

 

소심하기로는 누구 못지 않기에 폴 서루가 제안하는 '당신만의 여행을 위한' 열 가지 팁에서는 한 가지만 실천해보기로 한다.

여덟. 지금 있는 곳과 아무 관계가 없는 소설을 읽어라. p.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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