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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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다음 페이지에 펼쳐질 의외의 결말을 예상하고 있습니까? 여기에서 책을 덮고 결말을 떠올려보십시오. - 제4부 진상편의 도입부에서

 

<기대 반 우려 반의 편견>

몇 번 밝힌 적이 있는데... 사실 저는 고전 추리 소설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많은 추리 소설 독자들이 환호하는 그 유명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읽고...사실 전 조금 밍밍함(?) 심심함(?)을 느꼈거든요. 글이 쓰여진 당시를 감안해서 읽는다면 그들은 아주 뛰어난 작품들임에 분명하고,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추리 소설들이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저는 21세기를 살고 있으니 21세기형 추리 소설들이 훨씬 구미에 맞는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70년대 80년대의 초기작들조차도 제 성에 안 찼던 적이 많았기에 출간된 지 40년이 훌쩍 넘은 이 작품 또한 솔직히 크게 기대하진 않고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고전 중에서도 엘러리퀸의 'Y의 비극'을 읽고선 그 세련됨에 반했었던지라... 작가가 엘러리퀸을 모방하여 썼다는 점은 조금 기대가 되긴 했습니다. 그리고 수십년간 끊임없이 절판되었다가 복간 요청으로 재출간되는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두 명의 탐정, 두 명의 용의자>

사카이 마사오라는 무명 작가의 청산가리 중독에 의한 자살 사건은 7월 7일 7시에 발생합니다. 행운의 777에 일어난 일이 한 사람의 죽음이라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자살에 의문을 품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사카이 마사오의 연인 나카다 아키코와 사카이 마사오의 작가 친구인 쓰쿠미 신스케. 작품 속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이들이지요. 철저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이 소설은 아키코와 쓰쿠미의 시점이 하나의 챕터씩 번갈아 가며 서술됩니다. 하나의 사건을 쫓는 다수의 탐정들의 대결은 추리 소설 속에서(사실 전 추리 소설 보다는 명탐정 코난에서 자주 보았네요;;) 흔히 있을 법한 설정입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 작품 속 두 탐정들은 각각 서로 완전히 다른 용의자를 쫓습니다. 이런 경우 어느 한쪽의 논리가 눈에 띄게 허술하여 한쪽의 논리에 쏠리게 되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두 사람의 논리 모두에 수긍이 가고 맙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척척 들어 맞는 두 사람 각각의 논리가 어쩐 일인지 합을 이루어 보려 하면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들 덕에 독자들은 미궁에 빠져버리고 말지요. 도대체 누구의 논리가 맞는 걸까요... 도대체 누가 범인일까요... 그리고 만약 어느 한 쪽만이 올바른 논리를 펼치고 있다면 그에 반해 모순 투성이가 되고 마는 다른 한 쪽의 논리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속지 않았으나, 깨끗하게 속고 말았습니다.>

저는 추리 소설, 특히 범인 찾기나 반전이 중심이 되는 추리 소설의 경우 세세하게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범인이나 반전 등을 곧잘 맞추고는 합니다. 책을 읽으며 온 신경을 거기 쏟아붓거든요. 특히 서술 트릭의 경우 한 글자 한 글자 초집중을 해서 읽으며 절대 작가한테 속지 않을 것이고, 결코 내 뒤통수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쓸데없는 승부욕으로 집요하게 책을 읽어나갑니다. 때문에 저를 완벽하게 속이고 뒤통수를 후려 갈겨주는 소설을 만날 때는 오히려 엄청난 희열감을(변태성향일까요;;)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어가면서는...네...솔직히 중간쯤에서 트릭은 눈치채 버렸습니다. 최근에 읽은 다른 작품에서도 이와 비슷한 트릭이 사용됐었던 것이 기억났던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트릭의 정체일 뿐... 사건의 진상이나, 특히 반전이 밝혀질 때는 아차! 싶었습니다. 트릭은 눈치챘는데.... 왜 '그것'은 생각지 못했던 것일까... 알고 보면 참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었는데....하며 결국 작가에게 깨끗하게 지고 만 것에 조금은 분해하며....한편으로 가차없이 뒤통수를 가격 당한 것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속지 않았으나, 결국 크게 속아버리고 말았네요. 그래서 앞으로 돌아가 곳곳을 되짚어 보니 이제서야 아귀가 들어 맞는 것들을 확인하고선 소름이 돋고 패배를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역시 서술 트릭은 바로 이 맛에 읽는 것이지요. 그렇게 저는 이 천재 작가에게 경탄하고 말았습니다.

 

<불후의 명작이 된 불운의 명작>

제가 이 책을 읽어가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 작품이 40년 전의 작품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단 겁니다. 앞서 언급했던 고전이기에....하는 편견 및 우려는 완벽한 저의 기우였던 것이지요. 이 작품이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1973년.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아 곧 절판되었고, 몇몇 추리 소설 독자들의 요구로 2004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으나 그때 역시 반응은 뜨뜻미지근하여 개정판 역시 절판이 되었답니다. 그러다 2012년 작가는 이미 작고한 시점에 다시 한번 복간되어서야 비로소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시대를 너무 빨리 타고 태어나 불운했던 삶을 살다 간 천재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어쩌면 이 작품의 작가 또한 너무 빨리 태어나 이 작품을 너무 빨리 세상에 낸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대를 너무나 앞서갔던 것이지요. 40년이 흐른 후에야 독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는 작품... 그야말로 '불후의 명작이 된 불운의 명작'이랄 수 있겠네요. 총 4개의 살의 시리즈가 있고, 앞으로 계속 한국에도 출간 될 예정이라 하니 그 작품들 또한 무척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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