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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매우 힘든 독서였다. 저자의 가쁜 호흡과 들끓는 문체를 따라가기에 내 마음과 내 삶은 너무 건조했다. 나 자신 타고난 성품도, 생활도 그다지 드라이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작가이자 창녀이자 예술가인 뜨거운 여인 앞에서 입은 다물고 무릎은 꿇어야 했다.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패전 독일의 연합군, 도시의 야수, 집 잃은 고양이 같은 남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몸을 판다. 아이들이 잠든 후 사람들 몰래 집을 빠져나와 밤길을 거닐다 보면 신호를 보내는 남자들이 있다. 그녀는 섹스 이외에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에 자신을 기꺼이 노출시킨다. 어느 날은 한푼도 못 쥐어본 채 길가에 버려지고 어느 날은 배부른 식사를 대접받고 두둑한 지폐를 챙겨오기도 한다. 처음엔 흑인 애인과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시작한 매춘이었으나 어느새 그녀는 사랑과 성을 파는 노동자로 스스로를 규정해 나간다.
떠오르는 일화 하나.
고향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삼십분 가량 나가면 시내가 나오는데 터미널 근처의 골목에 엄마의 단골 미용실이 있었다. 긴 머리에 연예인처럼 생긴 미용사 아줌마와 허여멀끔한 날건달처럼 보이던 아줌마의 남편을 기억한다. 어른들이 풀어놓는 뒷담화의 세계에 일찍이 맛을 들인 나는 그날도 미용실에 모인 아줌마들의 수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미용사 아줌마는 그 여자가 여관 청소만 한 게 아니고, 로 시작하여 장황하게 썰을 풀었고 결론은 이랬다. 청소 다니며 몸도 팔았던 젊은 아낙이 근방 사내들의 돈을 싹 긁어모아 아이들을 데리고 타향으로 떠버렸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대개의 반응이 비난이 아닌 칭송이다시피 했던 것. 철없는 남편과 고단한 생에 찌들어 있던 아줌마들에게 이 짜릿한 일화는 이보다 더 신날 수 없는 감정이입과 대리만족 감이었다.
그러니까 질서정연해 뵈는 낮의 세계에 길들어버린 내 이해의 범위는 생계로서의 매춘을 용납하는 것 정도였나 보다. 몸을 파는 여인의 뒷방에는 굶주린 아이들, 병약한 노모나 모두들 수재라고 일컫는 동생, 혹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기둥서방이 있지는 않을까. TV문학관이나 수사반장을 즐겨본 탓인지 무언가 사연이 있겠지, 사연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은연중에 소망하거나 상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몇 차례 주어졌던 다른 노동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그녀에게 매춘은 단순한 생계 수단 이상의 자발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건물 청소를 한 뒤 앓아눕고 인디언 아내로서의 부유하지만 지루한 생활을 박차고 나온다. 각종 성병과 포악한 사내들에게 시달려야 하면서도 밤이면 또 다시 거리로 나서고 흑인 병사와 기약없는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방으로 익명의 남자들을 불러들인다.
끊임없이 격렬하게 이어지는 그녀의 매춘기를 읽으면서 '배운 게 도둑질'이란 옛말과 함께 사람마다 적성이 따로 있긴 있나 보다, 라는 생각. 나는 왜 생계형 매춘 밖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각자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는 것이다. 공장에는 노동자가 있고, 가정에는 주부가 있으며, 길거리에는 창녀가 있다. 보석처럼 밤을 반짝반짝 빛내는 그녀들이 있다. 우리는 사랑을 다루는 위대한 예술가일 뿐이다. 결코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p.434). 결혼이라는 제도가 온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매춘은 악으로 규정되어야 하고, 규정될 필요가 있고, 그러나 수요가 있는 한 더 음습한 곳으로 피해갈 뿐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필요악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데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우리에게 그 이상을 호소해온다. 이쯤 되면 로맨틱한 자유의 나라, 프랑스에서조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수긍이 간다.
평생토록 백인을 조롱하고 흑인을 사랑했듯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안착보다는 자유, 적응보다는 일탈을 지향하는 타고난 창녀였던 셈이다. 구슬픈 재즈 같기도 하고 서정적인 서사시, 화려한 회화 같기도 한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뜨겁고 자유로운 혼이 일찍이 매춘 아닌 다른 것에 눈뜨고 인도받았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마를린 먼로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얻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 강력한 성적에너지와 사랑에의 갈망을 정열적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면! 그러나 레알 그녀의 주장처럼 그 또한 창녀를 당당한 성 노동자로 인정하기는 커녕 동정의 포즈로 바라보는 것에 지나지 않을 터. 이미 결혼이라는 굳건한 제도에 안착한 내 고루한 의식은 그녀의 혁명적 구호를 따라가기엔 내내 숨이 차다.
An original writer is not one who imitates nobody, but one whom nobody can imitate. 샤토브리앙의 말이다. 누구도 모방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사람.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그런 면에서 내가 만난 매우 독창적인 작가들 중 하나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누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었겠는가. 이 낯설고 이색적인 책에서 나는 다른 세상을 만났고 관심 밖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겁고 굼뜬 내 느리적거리는 의식은 차치하고라도 분명 의미있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