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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겐 흥미롭고 즐거운 독서였다. 그리 깊이 들어가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가볍지도 않은, 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책.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평소 사주명리학을 접해 본 경험이 있다거나 자주 점집을 들락거리면서 '주워들은 풍월'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닐까 한다. 사주명리학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읽으라면 , 끝까지 쉽게 읽어 내기가 그리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아줌마는 공부를 해야겠네요. 자식이나 재물, 이런 거하고는 영 인연이 없어요. 평생 공부하고 , 글 쓰겠어요.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도 글을 쓰겠구먼요. "
책 초반에 나오는 얘기인데, 저자인 고미숙이 점집에 갔을 때 들은 사주명리학에 대한 첫경험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한 느낌이었을까 짐작이 간다.
많은 사람들은 사주팔자가 여전히 믿을 게 못되고 비과학적이며 터무니 없는 미신이라고 주장하는데, 겪어 보면 알게된다. 그 신기하고도 절묘한, 그리고 경험하고도 여전히 믿기 힘든 음양오행의 오묘한 조화를. 그리고 겪어 보지 않으면 절대로 영원히 이해할 수도 없다. 나의 경우도 모태 점집 마니아이신 우리 어무이를 통해 서서히 사주명리학의 신통함에 대해 접하게 되었고 주변사람들의 점집 방문 경험을 많이 듣거나 내가 직접 경험함으로써 사주명리학을 믿게 된 케이스다. 몇가지만 예를 들자면....
case 1 : " 아마도 의약계통 또는 건강 관련 업종에 종사하겠으나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학운이 조금 미약하여 의사나 약사는 아닙니다. 역마의 기운이 강하니 가만히 앉아 일하는 내근직은 전혀 맞지않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돌아다녀야 하는 팔자군요"
=>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잔뼈가 굵어 지금은 건강식품회사 직접 차린 내친구가 20대 후반에 나랑 같이 가서 들은 사주풀이
case 2 : " 전형적인 선비사주군요. 30대 쯤 외국 나가 살 운이 있으니 유학가서 박사하면 되겠습니다. 문과 보다는 이과 적성이며 직장운이 늦게까지, 그리고 큰 굴곡없이 지속되는 걸로 보아 대학에 몸 담을듯... "
=> 유학 다녀와서 모 대학에서 교수(바이러스 전공)하는 우리형이 초딩때 들었다는 사주풀이
글쎄, 이런 걸 생년월일시만 알고 대충 눈치봐서 찍을 수 있을까?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일단 내 주변의 가벼운(?) 사례 두 개만 말했지만 명리학 고수들의 엄청난 무용담은 수없이 많다. 나의 경우를 말해 볼까?
내가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공부하다가 해마다 시험 떨어지고 취업을 할 것인지, 한 번 더 Go를 할 것인지 고민하던 때, 나와는 달리 벌써 시험에 합격한 후 배부르게도 또 다른 진로를 고심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한 명은 내친 김에 사법시험까지 볼 것인지를 고민하던 친구였고 또 한 명은 유학을 갔다와서 교수를 해볼까 고민하던 친구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점집에 거의 가 본적이 없었고 주로 우리 어무이께서만 해마다 유명하다는 점집을 순례하시고 내게는 듣고 온 사주풀이를 전해 주시던 때였다. 그래서 나는 두 친구에게 어무이로부터 전해 들은 유명하다는 점집 얘기를 하며 선택이 고민될 때는 점집이 최고라는 조언 겸 격려를 해줬다. 무려 백수 처지에. -_-
하여간 몇 달 후 이 친구들과 다시 모일 일이 있었는데 친구 중 한 명이 벌써 그 점집에 갔다 왔는데 거의 도사 수준이라며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얘기인 즉슨, 자리에 앉아 생년월일만 말했더니 그 사주보는 아저씨가 잠시 후 " 자네 혹시....... 직업이 ..... 회계사인가?" 라고 했고 내 친구는 깜짝 놀랐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외 다른 것들도 대체로 잘 맞았고.
그 얘기를 들은 나머지 친구 한 명이 그럼 자기도 다녀오겠다는 얘길 했고 몇 달 후 만난 자리에서 그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친구도 그 집에 가서 생년 월일을 말했더니 역시나 잠시 후 " 자네 혹시....... 직업이 .... 회계사인가?"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외의 다른 개인적인 인생이력에 대한 적중도는 먼저 간 친구와 대동소이. 우리는 술 마시면서 아마도 그 아저씨 아무나 젊은 남자 오면 회계사냐고 일단 찍는가보다 라며 농담한 기억도 난다.
이쯤에서 나도 궁금해졌다. 점집소개만 해 주고 정작 나는 못가봤는데....나도 한 번 가볼까....하는.
아마도 공부가 무척이나 하기 싫었거나 시험준비에 대한 회의가 들던 어느 날이었을텐데, 드디어 난생 처음 점집이란 곳을 혼자서 가봤다. 나도 생년월일시를 말하고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사주풀이를 기다리는데..... 그 아저씨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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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네 혹시...........
회계사......
시험 준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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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나이도 같은데 누군 회계사냐고 물어 보고, 누군 회계사 시험 준비하냐고 물어보고. 내가 따지듯 물어 보자 그 아저씨 가라사대, "자네 사주를 보아 하니 분명 적성이나 할 일은 이분야인데 아직 나쁜 대운이 안 끝나 합격운에 이르지 못했으니 준비하냐고 물을 수밖에. "라며 당연한 얘길 묻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 이후로 그 아저씨가 '때려 죽여도' 붙는다는 해에 난 시험에 합격했고 아무리 늦어도 이 시기 넘기기 전에 장가간다는 해에 결혼했다. 물론 그 이후로 난 사주명리학의 신봉자가 되었고 자칭타칭 점집 마니아도 되었다.
사주팔자는 미신이라고 하기엔 나와 내 주변의 경험상 너무 잘 맞는다. 저녁 7시의 운명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턱도 없이 당신은 아침 10시라든가 오후 2시의 운명이시군요라는 헛소리는 절대 안한다. 물론 분, 초까지 정확히 맞추지는 못해도 대략 저녁 6시에서 8시사이의 삶을 산다는 것 정도는 맞춘다. 물론 초일류고수에게 본다는 전제하에. 그래서 평소 사주점이 잘 안맞는다는 사람들은 대충 공부한 어설픈 사람들에게 봤거나 자기 태어난 시간이 정확치 않은 사람이 대부분일거라는게 내 생각이다. 참, 여기엔 신들린 무속인의 점은 제외한다. 신점은 맞을 땐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잘 맞지만 일반적으로 편차가 크다. 양궁으로 치면 10점 아니면 6점만 쏘는 궁사라고나 할까?
다시 책으로 넘어와서... 보통 사주명리학 하는 사람들은 글솜씨가 없다. 쉽게 쓸 수 있는 글도 일부러 현학적인 자세로 어렵게 쓰는 것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사주개론서나 해설서들이 대부분 난해하다. 그런 측면에서 일단 이책은 매끄러운 서술과 쉬운 설명에서 점수를 주고싶다.
이책은 사주명리학을 공부하기 위한 친절한 입문서는 아니다. 조용헌의 책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전설의 고향'류의 명리학고수들 무용담이나 점집 탐방기는 더더욱 아니고. 아마도, " 사주명리학, 너무 무시하지 마라. 다들 뜬구름 잡는 식의 거창한 얘기만 하면서 헛고생 하지만 음양오행의 조화를 알게 되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도 편해진다. 내가 공부해보고 겪어 보니까 그렇더라. 그러니까 너희들도 관심가지고 명리학 공부 좀 해보지 않으련? " 뭐 대충 이런 얘기가 아닐까 한다.
사회를 바꾸는 활동과 소수자를 위한 운동은 아주 종종 헌신과 희생으로 귀결되곤 한다. 혁명을 위해 자신을 내팽개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혁명인가?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하는 혁명이 대체 누구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공적으로 표방하는 명분과 내밀한 욕망 사이의 이중 플레이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아무리 혁명을 외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의 욕망은 곧 사회적인 인과의 결과물이다. 나의 질병은 곧 시대적 징후의 산물이다. 나의 욕망, 나의 질병을 탐구하고 해명할 수 있을 때 비로서 타자들에게 그것을 전파하고 순환시킬 수 있다. - p 55
너무 직설적으로 쓰면 좀 없어 보이니까(?) 인문학적인 고상한 용어도 섞어 쓰면서 얘기는 진행된다.
흔히들 자기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굳세고 사주팔자를 안 믿는 사람들에 대한 대답도 이런 식이다.
숙명론은 정해진 운명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몸이 아플 때 의사나 묘방만을 찾으면 그것이 곧 숙명론이다. 왜 아플까? 그 인과를 찾기 시작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가게 되면 그건 숙명론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비전탐구가 된다. 그런데 그 비전탐구를 하려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원리와 좌표를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사주팔자란 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 p 127
좋은 팔자란 길한 것을 맞이하고 흉한 것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길과 흉에 대한 인식과 욕망의 배치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생명의 바다, 음양오행의 매트릭스에 길흉은 없기 때문이다. - p 245
모르긴 몰라도 사주명리학에 대한 공부는 저자가 나 보다 훨씬 많이 했겠지만 장담컨데 전국의 유명하다는 점집(주로 명리학) 은 내가 더 다녀봤을 것이다.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다가 올 운명을 100% 맞추는 사람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다. 30년 이상 이 공부만 해 온 고수들도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결론 삼아 저자는 이렇게 재미있고도 살아가는데 요긴한 명리학 공부를 직접 해 보는게 어떠냐는 식으로 권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상식수준에서 조금 공부하면 도움이 된다. 정말 인생의 기로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기에 사주명리학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가 되어 있으면 상담을 받으러 가더라도 더 예리하게 질문을 잘 할 수 있고 , 그들의 설명과 논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설프게 책 몇 권 공부해서 자기 운명이나 남의 운명을 본인이 직접 감정하려 들면 큰 실수를 할 수 있다. 남의 귀한 자식의 인생진로를 엉뚱한 방향으로 망칠 수 있고, 사랑하는 청춘남녀의 결혼을 궁합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갈라 놓을 수 있으며, 손대지 말았어야 할 사업을 남에게 부추길 수도 있다. 책 좀 읽고 공부 약간 했다고 하면 주변에서 (재미삼아겠지만) 질문공세를 퍼부으며 가만 놔두지를 않는다. 내가 아는 모 고수는 10년 이상 공부하고 1 만명 이상의 사람을 만나 감정해보니까 그제서야 어렴풋이 조금 감이 좀 오더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어려운 공부다. 사주풀이를 평생직업으로 할(물론 재능도 갖춰야겠지만)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깊숙히 공부는 하지말자. 하더라도 조금만 하자. 이게 내가 어줍잖게 사주명리학 서적 몇 권 읽고 수많은 전국의 내로라하는 역술인 고수들 만나 본 결과 내린 결론이다.
다시 말하자면, 약은 약사에게, 점은 점쟁이에게. 단, 반드시 초절정 고수에게!
P.S. 1. 뜬금없이 책 몇 페이지 걸러 한 번 씩 등장하는 (^^;) 같은 이모티콘은 누구의 아이디어 일런지? 인터넷 상의 가벼운 블로그 글도 아니고, 너무 자주 등장하니 이 책에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넘어 눈에 거슬리기까지 했다.
2. 지난 몇 번의 점집 관련 페이퍼로 점집을 소개해 달라는 숨은 댓글과 메일을 100 건이 넘게 받았다. 물론 일일이 친절하게 장문의 답변을 드렸고. 그런데.... 한 번이라도 서재상에서 인사를 나눈 경우라면 모를까 처음 방문해서 대뜸 문의 댓글 한 번 달고 그 이후로는 깜깜무소식인 1회성 댓글 문의는 이제는 정.중.히. 사양하련다. 잘 안 믿어지겠지만 나도 제법 바쁜 사람이다. 게다가 점집 영업사원은 더더욱 아니고. -_-;;
서재에서 처음 뵙는 분들의 점집 문의에 대한 비밀 댓글에 대해서는 9/28일 오전 11시 이후로 절대 답글 안 달아 드립니다. 문의하지 마세요 !!!